2012년 6월호

최룡해<인민군 총정치국장> 핵심 실세로 급부상…장성택보다 공식 서열 앞서

김정은 체제 출범과 파워 엘리트

  • 정성장│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softpower@sejong.org

    입력2012-05-22 16: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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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룡해가 낮은 수준의 현지 지도라고 볼 수 있는 ‘현지료해(現地了解)’를 시작한 것은 그가 군대를 지도하는 것과 관련해 일정한 권한을 위임받았음을 시사한다. 최룡해와 장성택 사이에 일정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진 것이다.
    최룡해 핵심 실세로 급부상…장성택보다 공식 서열 앞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절대 권력자 김정일이 2011년 12월 17일 사망하면서 그의 삼남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김정일 사망 직후 국내외 대다수 전문가는 북한이 ‘장성택 섭정 군부 집단지도체제’에 의해 운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망과는 다르게 북한은 김정은 단일 절대독재체제를 확립하고 공식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처럼 전문가 다수의 전망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난 것은 그들이 김정은의 권력 장악력을 과소평가하고 장성택과 군부 엘리트들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이 북한을 이끌어가는 핵심 실세 중 한 명인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모든 엘리트를 조종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최고 실세는 아니다. 그럼에도 다수의 전문가는 장성택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북한의 파워 엘리트들이 모두 마치 장성택의 핵심 측근인 것처럼 실제와 다른 주장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그동안 다수의 전문가가 김정일과 장성택 이외의 다른 파워 엘리트들에 대해 무관심했고 연구를 충분히 진행하지 않은 데 기인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이 글은 김정은의 공식적 권력승계과정에서 누가 부상했고, 그들이 현재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실증적인 분석에 기초해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정일 사망 직후 북한 지도부는 5대 권력기관(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공동 명의로 김정은을 김정일의 유일한 후계자로 받들 것임을 명확히 했다. 이후 북한은 2011년 12월 30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에 의해 김정은을 군대의 최고직책인 최고사령관직에 추대함으로써 김정은은 군권부터 먼저 공식적으로 장악했다. 김정은이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을 가지고도 군대를 지도할 수 있지만, 그간 군대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유일적 지휘는 최고사령관 명의로 이뤄져왔기 때문에 김정은의 최고사령관직 취임은 군권의 완전 승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김정일 사망 약 4개월 후인 2012년 4월 11일 임시전당대회에 해당하는 당대표자회를 개최해 김정일을 ‘조선로동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내세우고, 김정은을 당의 새로운 최고직책인 ‘당 제1비서’직에 추대했다. 이로써 김정은은 가장 중요한 당의 제1인자 지위도 공식적으로 차지했다.

    당권, 군권, 국가수반직 승계



    ‘당 제1비서’직은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직책이지만, 과거 스탈린 사후 소련에서 흐루시초프가 집단지도체제를 복원하는 차원에서 공산당 서기장직(북한의 총비서직에 해당)을 폐지하고 제1비서 직책을 신설해 그 자리에 취임한 선례가 있다. 그래서 김정은이 총비서직이 아니라 제1비서직에 추대된 것을 가지고 절대 권력을 가지지 못한 것처럼 해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북한이 과거 당 총비서에게 부여했던 것과 동일한 지위와 권한을 당 제1비서에게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해석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북한은 당 규약을 개정해 과거 총비서가 겸임하던 당중앙군사위원장직을 당 제1비서가 겸직하게 함으로써 김정은은 당의 최고군사지도기관의 수위에도 올랐다.

    당대표자회 개최 이틀 후인 4월 13일 북한은 당의 결정을 입법화하는 국가기구인 최고인민회의를 소집해 김정일을 ‘공화국의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하고, 김정은을 국가의 새로운 최고직책인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직에 추대했다. 당에서 총비서직 대신 ‘제1비서’직을 신설해 취임한 것처럼, 국가에서 국방위원장직 대신 제1위원장직을 신설해 취임한 것이다. 이로써 김정은은 국가수반직까지 차지하게 됐고,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을 기념해 진행한 열병식에서 첫 공개연설을 함으로써 그가 북한의 명실상부한 제1인자임을 북한과 전 세계에 과시했다.

    이 같은 김정은의 권력승계 과정에서 김정은의 측근들이 부상하고 일부 엘리트가 퇴진하는 권력 변동이 일어났다. 특히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의 위상이 제4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급격히 높아지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났다.

    2010년 9월 개최된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출된 정치국 위원 중에서 김경희의 이름은 맨 마지막으로 호명됐는데, 제4차 당대표자회 이후 그의 이름은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제외한 정치국 위원들 중 가장 먼저 호명되고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 5명 중 당의 최고지도자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국가기구(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내각)를 대표하는 2명과 군대(총정치국과 총참모부)를 대표하는 2명으로 구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김경희는 정치국 상무위원직에 선출될 수 없었지만, 상무위원이 아닌 위원들 중에서는 제일 먼저 호명됨으로써 김정은을 제외한 당의 엘리트들에 대한 그의 우월적 지위가 드러나고 있다.

    제3차 당대표자회 결과 정치국 상무위원이 아닌 위원들 중 제일 먼저 호명된 인물은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었다. 제4차 당대표자회 직전 인민무력부장이 김정각으로 교체되는데, 김경희의 이름이 김정각보다 앞서고 있는 것은 그가 기존의 정치국 위원 배치 기준을 무시할 정도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정일의 후계자로서 사실상 제2인자였던 김정은의 이름이 제3차 당대표자회 직후 정치국 상무위원 바로 다음에 그리고 정치국의 위원 바로 앞에 호명됐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룡해 핵심 실세로 급부상…장성택보다 공식 서열 앞서


    최룡해 핵심 실세로 급부상…장성택보다 공식 서열 앞서
    김경희의 정치국 내 서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비서국 내 서열이다. 왜냐하면 1974년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 결정된 후 권력의 중심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비서국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1974년 이후 김정일은 조직비서로서 다른 비서들의 보고를 받아 김일성에게 전달하는 제2인자 지위에 있었다. 1980년 개최된 제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는 상무위원 중 네 번째로 호명됐지만, 비서국에서는 김일성 바로 다음에 호명돼 2인자로서의 위상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김경희는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위원회 비서로도 선출돼 비서들 중 가장 먼저 호명되고 있다. 이는 그가 김정일의 유언을 집행하면서 비서국을 총괄적으로 지도하는 지위에 있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가 최근에 입수한 김정일의 유훈에서 김경희는 김정은을 보좌할 인물로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는데, 그가 당중앙위원회 비서로 선출됨으로써 그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공식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급부상한 최룡해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은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직에 선출됐고,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는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했다. 장성택이 맡고 있는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직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직처럼 요직이어서 김정일 시대에는 견제 차원에서 행정부장에게 정치국 후보위원 이상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관례를 무시하고 장성택에게 정치국 위원 지위를 부여한 것은 그가 김정일의 유훈에 의해 김경희, 최룡해 등과 함께 김정은을 보좌할 인물로 지목된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정일 사후 장성택에 대한 견제보다 그의 김정은에 대한 보좌 역할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바로 그 같은 사실을 반영해 장성택은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파워엘리트 중 김정은의 공개활동 수행횟수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장성택의 이름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김경희와 김정각 인민무력부장 바로 다음에, 즉 정치국 위원 중에서는 세 번째로 호명됨으로써 그가 북한체제에서 사실상 김정은, 김경희 다음가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국방위원회에서 장성택 부위원장의 이름은 과거에 오극렬 부위원장 다음에 호명되었으나, 4월 13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5차 회의에서 발표된 국방위원회 구성원 명단에서 장성택의 이름은 오극렬보다 먼저 호명돼 그의 높아진 위상이 재확인됐다.

    제4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그 위상이 급격히 높아져 외부세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최룡해다. 최룡해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직과 당중앙위원회 근로단체 담당 비서직에 선출되고 당중앙군사위원직에도 선출됨으로써 과거의 김정일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비서국 그리고 당중앙군사위원회에 모두 소속됐다. 그런 그가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상무위원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고,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도 리영호 군 총참모장보다 먼저 호명되고 있다. 최룡해는 당의 최고군사지도기관인 당중앙군사위원회의 부위원장직에도 임명되었다. 최룡해의 이 같은 급부상은 그가 제4차 당대표자회 개최 전 총정치국장이라는 군대의 가장 중요한 요직에 임명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국 상무위원직 중 하나는 군 총정치국장이 맡게 돼 있다.

    최룡해는 김일성 주석과 ‘빨치산 동지’ 사이로서 1968년부터 1972년까지 민족보위상을, 그리고 1972년부터 1976년까지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최현의 아들이다. 그는 과거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김정일에게 직언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측근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제1비서와 황해북도당 책임비서를 역임한 최룡해가 제3차 당대표자회 직전 김경희, 김정은과 함께 대장의 칭호를 받은 사실은 그가 김정일 사후 김정은을 보좌하도록 김정일에 의해 오래 전부터 주도면밀하게 키워진 인물임을 시사한다.

    최룡해 핵심 실세로 급부상…장성택보다 공식 서열 앞서
    흥미로운 사실은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출된 정치국 후보위원 명단에서 최룡해의 이름이 장성택 바로 앞에 호명됐고,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도 최룡해의 이름이 장성택보다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도 장성택이 정치국 위원으로 지위가 올라갔을 때 최룡해는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되었고, 장성택이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 여전히 위원으로 남아 있는 데 비해 최룡해는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므로 제3차 당대표자회 이후 지속적으로 최룡해가 공식적으로는 장성택보다 높은 서열 또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당내 서열이 반드시 영향력의 크기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최룡해가 장성택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최룡해가 관장하는 부문은 군대이고 장성택이 관장하는 부문은 공안기관이기 때문에 각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분야가 조금은 다르다. 그리고 장성택이 김정은의 고모부로서 김정은과 특별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장성택이 최룡해보다 조금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최룡해 신임 군 총정치국장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당중앙군사위원회 모두에서 장성택보다 상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같은 배치는 김정일뿐만 아니라 김정은도 최룡해와 장성택 간에 일정한 힘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4월 초까지 군부의 최고 핵심 실세 3인은 리영호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었다. 그런데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에 임명되면서 서열 1위를 차지하고, 리영호는 2위로 밀려났으며, 김영춘은 과거보다 영향력이 작은 직책으로 옮겨가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후 최영림 내각 총리처럼 최고지도자 김정은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현지 지도라고 볼 수 있는 ‘현지 료해(現地了解)’를 시작한 것은 그가 군대에 대한 지도와 관련해 일정한 권한을 위임받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최룡해가 이처럼 핵심 실세로 급부상하게 된 것은 그가 이전에 당중앙위원회 비서로 일하면서 김정은에게 충성심과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명록 전 군 총정치국장이 군부의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처럼 최룡해도 군부의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이끌어내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철해의 부상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 결정된 2009년 초부터 김정은의 군부 엘리트 장악과 관련해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은 올해 2월 15일 인사에서 차수 계급으로 승진함으로써 리영호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같은 차수 반열에 올랐다. 김정각은 당대표자회 개최 전 다시 군부의 3대 요직(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 중 하나인 인민무력부장직을 맡았다. 북한에서 총정치국의 파워가 인민무력부의 파워보다 더 세기 때문에 총정치국 제1부국장에서 인민무력부장직으로 옮긴 것을 가지고 사실상 강등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제1부국장’직보다는 ‘부장’직이 상위의 직책이기 때문에 승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김정각이 군부 원로인 김영춘을 밀어내고 인민무력부장직에 임명된 것은 마침내 군부의 3대 요직이 김정은의 최측근 인사들로 세대교체가 완료됐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각은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승진했고, 정치국의 상무위원이 아닌 위원들 중 두 번째로 즉 김경희 바로 다음에 호명됨으로써 핵심 실세 중 하나임을 과시했다. 올해 4월 초까지만 해도 김영춘의 이름은 김정각보다 항상 먼저 호명됐으나, 당대표자회를 전후해서는 김정각의 이름이 김영춘보다 앞서 호명되고 있다.

    김정일의 유훈에 의해 김정은을 군사적으로 보좌할 임무를 부여받은 현철해 전 국방위원회 정치부장 겸 총무국장도 당대표자회 개최 전인 4월 7일 차수로 승진한 데 이어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겸 후방총국장직에 임명되었다. 제4차 당대표자회 전까지만 해도 그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직도 가지고 있지 못했으나 일약 정치국 위원으로 급부상했다.

    2009년 초 김정은이 후계자로 결정된 후 보위사령관직에서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으로 승진해 김정각 당시 제1부국장과 함께 김정은의 군부 엘리트 장악을 지원했던 김원홍도 이번 당대표자회 개최 직전 국가안전보위부장이라는 핵심 요직에 임명됐다. 국가안전보위부장직은 파워엘리트들을 비밀리에 감시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직책이기 때문에 김정일이 생시에 오랫동안 공석으로 남겨두다가 2009년 4월경에 김정은에게 직접 맡길 정도로 정권의 핵심적인 요직이다. 김정은이 이 직책을 김원홍에게 맡겼다는 것은 김원홍에 대한 그의 두터운 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원홍은 이미 제3차 당대표자회 당시 김정은의 바로 우측에 서서 그의 최측근 인사로 이목을 끈 바 있다. 현철해와 마찬가지로 제4차 당대표자회 전까지 그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직도 가지고 있지 못했으나 일약 정치국 위원으로 급부상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군령권을 행사하는 리영호 총참모장을 비롯해 군대의 핵심 지휘관 중 어느 누구도 국방위원회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에서 군대는 ‘국가(기구)의 군대’가 아니라 ‘당의 군대’이기 때문에 한국의 국방백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국방위원회가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기구는 결코 아니라는 점이 재확인되었다.

    최룡해 핵심 실세로 급부상…장성택보다 공식 서열 앞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정은은 김정일 사망 후 단 4개월 만에 군권과 당권, 국가수반직을 모두 차지하는 뛰어난 정치적 장악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고모인 김경희, 고모부인 장성택, 당과 군부의 핵심 엘리트인 최룡해·리영호·김정각·김원홍·현철해 등이 김정은을 보좌하는 지도체계도 조기에 완성됐다. 핵심 파워 엘리트들인 장성택·최룡해·리영호·김정각·김원홍 간에도 일정하게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 특정 인사가 독주할 수 없고, 김정은이 이들 위에 군림해 조정자 및 최종 정책결정권자로서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도가 확립된 것이다.

    김정은이 제1인자 지위를 대외적으로 공식화했고, 김정일의 유훈에 의해 핵심 엘리트들이 그를 보좌하는 안정적인 권력체계도 구축됐으므로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북한체제의 급변사태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북한 붕괴 대비와 조기 통일 준비를 목표로 했던 기존의 대북 정책 기조를 수정해 북한과의 대화 및 협상을 통해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비이성적인 대남 초강경 태도에 한국 정부도 똑같이 초강경 태도로만 맞설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김정은 제1비서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해 북한이 군사 도발을 감행할 명분을 약화시키고 한국에 대해 협력적 태도를 취하도록 북한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관리하는 대북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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