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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인 범죄 꾸준한 증가세 분노조절장애 정신과 상담 늘어

화 못 참는 사회, 욱하는 사람들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inmail.net

우발적인 범죄 꾸준한 증가세 분노조절장애 정신과 상담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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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인 범죄 꾸준한 증가세 분노조절장애 정신과 상담 늘어

경기 수원 20대 여성 피살사건의 범인 오원춘 씨가 수원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는 모습. 오 씨는 성폭행에 실패한 뒤 분노가 치밀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런 증상을 흔히 ‘분노조절장애’라고 한다. 하지만 의학계에 정식으로 등록된 질병이 아니어서 정확한 환자 통계가 없는 실정이다. 분노조절장애와 증상이 겹치는 부분이 많은 ‘충동조절장애’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뢰해 집계한 연도별 환자 추이를 보면 2007년 1660명이던 환자 수가 2008년 1965명, 2009년 2317명, 2010년 2917명, 2011년 3015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환자 성별을 보면 2011년 현재 남성 2490명, 여성은 525명으로 남성이 여성에 비해 4.7배나 많았다. 김병수 교수는 “분노를 술로 다스리다 알코올 문제 때문에 정신과를 찾거나,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데서 비롯된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는 이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분노 조절을 못하는 환자는 이 수치보다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어펙트포비어(affect phobia)’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살다 보면 한 번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가 있다. 어펙트포비어는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고 죄책감을 갖는 등 자신의 내면 정서와 분노를 불안해하는 증상을 가리킨다. 30대 중반을 넘긴 C 씨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차일피일 결혼식을 미루는 배경에 예비 시어머니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결혼을 방해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애써 참았다. 그러나 이후 불쑥불쑥 공포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칼만 보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두려웠다. 김병수 교수는 “C 씨의 경우 누가 봐도 화를 내야 할 상황인데 그럴 수 없으니 엉뚱한 방향으로 문제가 생겨난 것”이라며 “칼을 보면 나타나는 불안감과 공포의 밑바닥에는 자신이 분노 때문에 예비 시어머니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분노로 인한 정신과적 문제 양상은 이렇게 굉장히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이유 없이 발작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분노발작증후군’, 이유 없이 불시에 반복적으로 분노를 폭발시키는 증상은 ‘간헐적폭발증후군’이라고 한다.

사회안전망 확충

정신의학은 사람이 분노를 느끼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자존감의 상처다. “남편이 나를 배려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 같다” “원하지 않는 부서로 발령이 났다. 회사에서 나를 무시하는 느낌이다”라고 털어놓는 분노조절장애 환자의 심리에는 자존감이 상처 받은 데서 오는 분노가 깔려 있다. 둘째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는 것이다. 이는 동물적인 본능에 의한 것이다. 아내의 외도나 남편의 외도에 대해 배우자가 분노하고, 직장에서 동료가 자신의 일을 가로챘을 때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는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문제다. 원칙과 당위, 정당성이 깨지거나 손실됐을 때 사람들은 분노를 느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늘고 있는 홧김 범죄의 밑바닥에는 사회적 양극화와 소득 불균형, 불공정한 배분 같은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박형민 박사는 “범죄학에 ‘최선의 형사정책은 최선의 사회복지’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스트레스만이라도 사회가 관리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병수 교수는 “분노와 같은 문제는 개인과 사회, 양육과 학습, 개인의 기질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난다. 그중 심리적인 부분만 언급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이 보살핌의 결핍이다. 내가 누군가와 연대해 있고 돌봄을 받을 수 있으며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면 부정적인 정서가 사라져 화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분노 조절이 어려울 경우 마음을 터놓고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주변에 두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각종 형사사법 통계를 보면 우발적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80%는 이른바 마이너리티다. 권력과 학력, 경제력 등을 갖춘 사람은 분노를 협상, 설득 혹은 소송, 병원 치료 등 사회가 용인하는 방식으로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홧김 범죄를 줄이려면 마이너리티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형민 박사는 “대중이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만들고, 그에 대한 정보를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살인이나 폭력 범죄는 음주 후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을 하는 등 보다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인터뷰 | 윤대현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중년 남성 화병은 스트레스로 인한 뇌 피로증”


우발적인 범죄 꾸준한 증가세 분노조절장애 정신과 상담 늘어

정신과 전문의들은 중년 남성이 분노조절장애에 가장 취약하다고 말한다.

-화병은 왜 생기나.

“행복과 분노 등을 조절하는 ‘감성의 뇌’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화가 적게 나거나, 화가 나더라도 통제가 잘되면 괜찮은데 둘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문제가 생긴다.”

-화병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주로 어떤 사람인가?

“남자가 절반을 조금 넘는다. 20대 후반, 30대 환자도 있지만, 보통은 50~60대다. 이 연령대의 사람은 분노와 좌절이 겹쳐서 병원에 온다.”

-중년 남성 환자가 많은 이유는 뭔가?

“힘들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70년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에서 라이프 사이클이 빨라지고 제품 생산 사이클도 빨라지면서 친구조차 지속적으로 사귀기 어려워지는 정서적인 문제가 올 수 있다고 예견했다. 지금 나타나는 문제가 그렇다. 사회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뇌가 미처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피로가 오는 것이다. 특히 삶의 에너지 생성을 담당하는 ‘감성의 뇌’가 적정 속도 이상으로 혹사당하면서 생기는 증상이다. 스트레스로 뇌 피로증이 오면 불면증, 기억력 감퇴, 자극예민도가 민감해지는 증상 등이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일에도 분노가 치미는 것이다. 최근 중년 남성의 화병은 뇌 피로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의 근본 원인은 스트레스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의학계에서는 이것을 ‘생물학적 자살’이라고 부른다. 화병이 생기면 혈압과 당뇨 조절이 안 되기도 한다. 자살 역시 분노가 자기 내부로 향해 일어나는 폭력행위라는 점에서, 화병이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분노 조절 문제로 정신과를 찾는 환자가 많아진 건 언제부터인가?

“10년 전쯤부터 조금씩 변화가 감지됐다. 심각하다고 느낀 건 4~5년 전부터다. 그런데 증가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사람들이 스트레스성 뇌 피로증을 점점 더 못 견디고 있다는 증거다.”

-분노를 스스로 조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해법은 단순하다. 감성의 뇌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좋은 차, 좋은 집, 높은 지위가 성공임을 믿고 무작정 달려갈 게 아니라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가치관도 바꿔야 한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주관적인 삶을 살면서 인생의 목표를 낮출수록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이 커진다. 또 정서적인 스킨십을 하면 항스트레스호르몬(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울화증이 심해지면 뇌를 망가뜨리고 치매를 불러오며 심장병으로 죽게 만들 수도 있다. 웰 에이징을 위해서라도 40대 이전에 분노 노절 능력을 길러야 한다.”


신동아 201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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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i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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