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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이종상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

“공사비로 후쿠시마 골프장 회원권 받고 살아 남겠나”

종합건설업체 불공정행위에 직격탄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공사비로 후쿠시마 골프장 회원권 받고 살아 남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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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에 일거리 줄게’라는 약속은 지켜지나요?

“그런 약속은 믿을 게 못 되지만 ‘을(乙)’ 입장에선 그 말을 믿고 일을 할 수밖에 없어요. 약속을 한 사람이 인사발령이 나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경우가 허다해요.”

▼ 계약방식의 문제점은 그렇다고 해도, 계약 후 공사비는 받잖아요?

“….”

테이블에 놓인 물 잔의 물을 반쯤 마시고 잠시 천장을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꼭 그렇지도 않아요. 원도급자는 공사비를 현금으로 받아도 하도급자에게는 2~4개월 어음으로 지급해요. 그럼 어음할인료를 줘야 하잖아요? 원도급자가 ‘와리’를 떼먹으니 하도급업체는 연간 8350억 원의 금융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고 있습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실태조사 결과입니다. 최근 한 원청업체는 일본 후쿠시마 현 골프장 회원권을 하청업체 공사비로 지급하기도 했어요. 당장 임금, 자재대금 줘야 하는데 원전사고 난 지역의 골프장 회원권이 말이 됩니까. 아파트 공사해준 전문건설업체 117개 사는 700억 원 상당의 공사비를 미분양 아파트로 대신 받았습니다. 이러니 전문건설업체가 살아남겠어요? 공사비로 받은 아파트는 시중가보다 더 낮게 내놓아야 팔리잖아요? 결국 공사비는 더 줄어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죠. 공사비 회수가 늦어지면 임금체불 등 자금압박은 더 심해지죠.”

일본말 ‘와리(わり)’는 10분의 1을 뜻하는 단위 ‘할(割)’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선 돈을 바꿔주는 사람이 중간에서 가져가는 어음할인료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예를 들어 한 달 기간이 남은 10만 원짜리 어음을 현금으로 바꾸면 할인료 1할을 제하고 나머지 9만 원만 현금으로 주는데, 이때 1만 원의 금융비용(할인료)을 전문건설업체가 떠안는다는 게 이 이사장의 설명이다.

사실, 도급의 폐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발주자-원도급자-하도급자의 구조에서 전문건설업체는 종합건설사의 하도급을 받아 철근콘크리트, 실내건축, 배관, 창호 등 세부 공정별로 공사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전문건설업체는 원도급자인 종합건설업체의 종속기업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법, 불공정 거래는 여전하다는 게 공제조합 이종광 기획팀장의 설명이다.

실제 원청업체 A사는 하도급 입찰 시 고의로 유찰시킨 뒤 3,4회 재입찰해 23억 원에 하도급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18억6000만 원에 수의계약 체결을 강요해 이를 관철시켰다. B사는 257억 원에 하도급을 했지만 용지보상비와 민원처리비, 산재 공상처리비 등 60여억 원을 하도급 가격에 포함시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와리’ 떼고 보험료 전가

“공사비로 후쿠시마 골프장 회원권 받고 살아 남겠나”

이종상 이사장은 “종합-전문업체는 한국 건설업의 두 바퀴”라고 강조한다.

▼ 건설보증기관들이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을 하지 않나요? 공정거래위원회에선 표준하도급계약서 사용을 권장하잖아요?

“전문건설협회가 2005~09년 건설보증기관들의 지급보증 발급현황을 조사했더니, 전체 하도급계약 건수(38만2983건, 4000만 원 이상 기준) 대비 계약이행 보증건수 비율은 93.68%에 달했어요. 반면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건수(13만7055건) 비중은 35.79%였어요. 왜냐? 원청업체들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도급사의 계약이행보증서를 모두 받아 챙겼지만, 원청사의 의무인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는 발급해주지 않아요. 전문업체들은 원청사 눈치 보느라 보증서 달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해요. 그러니 원도급자가 부도나면 전문업체도 문 닫을 수밖에요. 공사해놓고도 공사비를 못 받아요. 동반부실이 되는 거죠.”

▼ 표준하도급계약서는요.(표준하도급계약서는 하도급거래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공정행위를 규제할 수 있도록 계약조건을 표준화한 계약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표준계약서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표준하도급계약서 사용 비율이 예전보다는 높아졌어요. 표면적으로는 하도급계약 투명성이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계약조항을 변경해 표준계약서 계약조건을 무력화하는 경우가 많아요. 추가공사나 설계변경 시 공사대금 증액 조항을 뺀다거나 직원의 4대 보험료를 하도급자에게 전가하는 거죠. 물가변동 시 공사대금 증액지급 조항을 삭제하는 식이에요. 무늬만 표준하도급계약서인 경우가 많아요.”

이 이사장의 설명을 들으며 기자는 많은 생각을 했다. 종합건설업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수천 쪽에 달하는 설계도면과 물량내역서 등을 이해한 뒤 지반 등 시공여건을 검토하고 용지 보상과 주민 협의를 수행해야 한다. 시공 과정에서 수많은 하도급과 전문 인력을 수급해야 하고 적기에 장비도 조달해야 한다.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져야 약속된 준공 일자를 맞출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공정 관행은 분명 불협화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만족할 만한 연주회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불공정 관행이 만들어진 데는 전문건설업체의 책임도 있다. 각종 인허가 비리나 정치권 비자금 문제, 날림 공사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도 상존한다. 그동안 이러한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얼마나 했던가. 이 이사장이 기자의 생각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건 인정합니다. 한국 건설이 한강의 기적을 이뤘지만, 비리의 온상이라는 비난도 함께 받았죠. 원도급자 욕을 하면 ‘×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탓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게다가 (원도급자) 욕을 하면서도 하도급자는 일을 받아야 하니까 적당히 타협해온 것도 사실이고요. (하도급자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반발하려고 하면 그 다음 날 원도급자가 일거리를 더 주니까 없던 일로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런데요, 그런 일은 경기가 좋았을 때의 얘기입니다. 지금은 임계점입니다. 폭발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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