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호

무기력한, 너무나 무기력한 반기문의 유엔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의 성공과 좌절

  •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

    입력2012-05-23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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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소극적 태도는 서구 언론이 반기문 때리기에 나서는 빌미가 되곤 한다. 조용한 외교, 침묵하는 외교로는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
    • 반 총장의 리더십과 내부 범죄와 비리로 골머리를 앓는 유엔을 들여다봤다.
    무기력한, 너무나 무기력한 반기문의 유엔
    유엔(UN)은 70년 동안 인류의 분쟁사와 함께해왔다. 탄생 자체가 제2차 세계대전 때문이다. 1942년 1월 ‘연합국 선언’을 통해 유엔이라는 국제기구가 태어났다. 국제연합은 원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유엔은 국제적 안보 공조, 경제개발 협력 증진, 인권 개선을 통해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쟁을 막고 외교로 갈등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트뤼그베 할브단리(노르웨이·1946~1953) 초대 사무총장부터 현재 반기문 사무총장까지 지금껏 8명의 리더가 유엔을 이끌어왔다. 2011년 7월 15일 남수단이 가입하면서 유엔 회원국은 193개국으로 늘었다.

    첫 전투는 6·25 전쟁

    유엔은 그간 크고 작은 분쟁에 개입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둘러싸고 일어난 제1차 중동전쟁 때 파견된 국제연합 휴전감시단이 유엔 평화유지군(UN peace-keeping force)의 시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가 휴전위원회를 설치해 중재에 나섰다. 유엔군이 처음으로 실제 전투에 나선 것은 한국의 6·25 전쟁이다. 유엔군 4만670명이 한반도에서 전사했다. 부상자는 10만4282명에 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유엔을 탄생시켰다면 이스라엘-아랍 전쟁, 6·25 전쟁은 유엔의 위상을 강화했다.

    평화유지군은 분쟁 당사국이 원할 때 안보리 의결을 거쳐 파견된다. 사무총장이 사령관을 임명하며 경비는 유엔이 부담한다. 평화유지군의 역할은 평화 유지 업무에 국한해 있다. 무력행사도 자기 방어의 경우로 제한된다. 평화유지군은 개인화기, 장갑차 등으로 경무장한 군대다. 파란색 베레모가 공식 복장이다. 분쟁지역 주민은 파란 방탄조끼와 헬멧을 평화의 상징으로 인식한다.

    최근 중동 및 아프리카에서 분쟁이 빈발하면서 평화유지군이 교전에 가담하는 예가 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에서 정전을 감시하는 유엔군의 경우에는 사상자가 빈번하게 나오기로 악명 높다.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엔 현재 1만2000명의 평화유지군이 주둔해 있는데, 이들은 이스라엘에도 레바논의 헤즈볼라에도 환영받지 못한다. 헤즈볼라는 미국과 강대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군대라고 여긴다. 이스라엘은 평화유지군이 헤즈볼라를 돕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5월 27일 레바논 남부 항구도시 시돈에서 유엔 차량이 폭파되면서 이탈리아 출신 평화유지군 1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숨진 평화유지군을 추모하는 ‘유엔평화유지군의 날’에 발생해 충격이 더 컸다. 2007년 7월에도 레바논에서 차량 폭탄 테러로 스페인 출신 평화유지군 6명이 숨진 적이 있다. 유엔군이 순찰을 돌 때 아이들이 돌과 달걀을 던지기도 한다. 특히 헤즈볼라가 점령한 마을에서는 유엔군에 대한 반감이 극도로 크다.

    앞서 언급했듯 이스라엘도 유엔에 호의적이지 않다. 2007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 키암에 주둔한 평화유지군 막사를 폭격해 유엔 감시단원 4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폭격으로 숨진 감시단원은 오스트리아, 캐나다, 중국, 핀란드 출신이다. 이스라엘은 사상자 구조작업을 진행하는 도중에도 폭격을 멈추지 않아 구조대원마저 부상을 당했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이번 공격은 명백하게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그러자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아난 총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군의 오폭이었으며 결코 의도적으로 공격한 게 아니다”라고 변명했다. 이날 포격을 두고 이스라엘이 유엔을 향해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는 평가가 많다. 평화유지군이 헤즈볼라 편에 설 경우 이스라엘은 유엔군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유엔의 골칫거리다. 올해 2월 2일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에레즈 검문소에서 반기문 총장은 중동에서 가장 모욕적이라는 ‘신발 투척’을 당하는 봉변을 당했다. 50여 명의 시위대는 반 총장이 탄 차량 창문을 두드리며 이동을 막았으며 일부는 신고 있던 슬리퍼를 던지며 유엔을 비난했다. 시위대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억류한 팔레스타인 수감자의 가족과 친척. 이들은 반 총장이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재소자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고 비난했다.

    이렇듯 팔레스타인은 유엔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지역이다. 2009년 1월 이스라엘이 유엔이 가자지구에서 운영하는 학교 세 곳을 무차별 공격해 팔레스타인 사람 40여 명을 죽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초등학교를, 더구나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를 폭격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라마라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 운동가 아흐메드는 “반 총장 취임 후 이스라엘의 공격이 더욱 과감해졌다. 그것은 반 총장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루는 탓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면서 “이스라엘이 유엔 건물도 폭격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반기문의 소극적 태도

    반 총장의 소극적 태도는 서구 언론이 반기문 때리기에 나서는 빌미가 되곤 한다. 미국의 격월간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는 2009년 6월호에 ‘어디에도 없는 남자 : 반기문은 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제이콥 헤일브룬 에디터는 이 글에서 “기후변화와 테러,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국제적 이슈에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절실한데도 반 총장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역대 유엔 사무총장 가운데 가장 무능한 인물”이라고 반 총장을 비판하면서 “핵 확산 위협이나 국제 난민 문제에 대담한 연설로 여론을 조성하지 못했고, 결국 유엔을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반 총장을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자 세계를 누비는 ‘관광객’이라고 비꼬기까지 했다. 반 총장이 지금껏 지켜온 스타일은 ‘외교관으로서 책임은 피해가면서 할 일은 하고 있다고 생색을 내는 한국식 외교습관’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선지 반 총장은 서구 기자들에게 ‘미끄러운 뱀장어’라는 달갑잖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분쟁이 벌어지는 현장과 관련해 과감한 해법을 제시하던 과거 사무총장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반 총장이 유엔을 이끌게 된 것은 미국의 전폭적 지원 덕분이다. 2006년 그가 사무총장직 경선에 출마했을 때,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가 “그의 당선이 미국에 유리하다”고 본국에 보고했다는 내용이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비밀 외교전문에 나온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반 총장을 “미국 정부와 미국의 가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천성적으로 미국의 모든 것에 동조적이다”라고 보고했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과 주한미군 기지 문제 등에 있어 반 총장이 미국에 언제나 도움이 됐다면서 그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면 미국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엔과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코피 아난 당시 총장이 대량 살상 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삼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려는 미국에 수차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엔 분담금의 22%를 내고 있는 미국을 아난 총장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미국은 자신들이 마음먹은 대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유엔과 승강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시간과 인력을 낭비했다. 미국에 우호적인 반 총장을 당선시키면 일하기가 수월하다고 판단했을 소지가 적지 않다. 유엔은 중립적으로 분쟁을 중재해야 하는데 친미 성향의 총장이라는 꼬리표가 반 총장에게 붙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도 반 총장은 미국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반 총장은 매우 부지런하고, 사려 깊으며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직책 중 하나인 유엔 사무총장직의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얀마에서의 성공

    위키리크스가 반 총장과 관련해 충격적 내용을 폭로한 적이 있다. 미국이 반 총장과 중국 러시아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 대표를 상대로 비밀 정보 수집을 해왔다는 것이다. 2009년 힐러리 클린턴 장관의 이름으로 미국 외교관들에게 전달된 비밀 지침은 반 총장의 유엔 경영 및 의사 결정 스타일과 사무국에 대한 영향력은 물론 반 총장 측근의 신상에 대한 상세한 정보 수집을 요구했다. 이 내용이 공개되자 한 유엔 관료는 “친미적인 사무총장이 미국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고 평가했다. 반 총장은 이에 대해 공식 성명을 내지 않았지만 ‘라디오프리유럽’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이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 누구라도 기분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불쾌감을 표하면서 “모든 회원국은 유엔의 순수성과 특권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명시한 유엔 헌장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을 간접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자신을 도청하고 감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미국을 향해 평소 반 총장 스타일대로 ‘조용하게’ 항의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 총장 스타일이 약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기문식 해법으로 접근한 곳 중 성공한 사례로 미얀마가 있다. 탄 쉐 장군이 이끄는 군정은 2007년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해 큰 비난을 받았다. 미얀마 군정은 유엔을 향해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다.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 사흘 뒤 반 총장은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해 특사를 파견했다.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 특사는 인권 유린 실태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야당 인사들과 대화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미국과 영국은 미얀마에 대한 안보리 제재를 원했지만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반 총장이 직접 미얀마를 방문해 사태 해결에 나섰다. 그는 탄 쉐 장군과 두 시간가량 회담을 했다. 정치범을 석방하고 이듬해 치를 총선을 공정하게 관리하라고 요구했다. 미얀마 정부는 태풍 니기리스가 미얀마 전역을 휩쓸어 국민이 기아에 허덕이는 데도 유엔의 원조마저 거부했다. 반 총장은 긴 설득을 통해 미얀마에 원조물품이 들어가도록 했다.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더 몸 달아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유엔의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미얀마 정부는 지난해 수치 여사를 오랜 가택연금 상태에서 풀어주었다. 올해 4월 1일엔 수치 여사와 그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선거가 끝난 후 미얀마를 방문한 반 총장은 비로소 수치 여사와 만났다. 이를 두고 ‘기다리다 어부지리로 성과를 얻은 운 좋은 총장’이라는 삐딱한 시선도 있으나 반 총장이 자신의 스타일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인내심, 조용한 외교로 상징되는 반기문식 해법이 분쟁지역에는 걸맞지 않다는 평가가 더 많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09년 보도한 ‘항목별로 점수를 매긴 반기문식 해법’에 이런 시각이 잘 담겨 있다. 반 총장은 전 세계적 기후변화와 식량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는 10점 만점에 8점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러시아 앞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이유로 ‘강자 앞에서의 진실성’ 항목에서 3점을 얻는 데 그쳤다. ‘조직 관리 능력’ 항목에서는 간부들과의 소통이 부족하고 그들의 전문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2점을 받았다. 4개 항목의 평균점수는 4.75점에 불과했다. 아랍 언론도 반 총장의 리더십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한다. ‘알 자지라’는 ‘조용한 외교인가, 침묵하는 외교인가’라는 제목의 2009년 7월 1일자 인터넷판 기사에서 “비판자들은 반 총장이 21세기 유엔 사무총장이 해야 할 역할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썼다. 알 자지라는 또 뉴욕시립대 토머스 바이스 교수의 말을 빌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침묵하는 외교”라고 혹평했다.

    침묵하는 외교

    실제로 유엔이 난관에 봉착한 시리아 사태의 경우 그동안 반 총장이 해오던 스타일인 인내심을 발휘하는 조용한 외교가 통하지 않고 있다. 유엔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사이 시리아에서는 1만 명 넘는 사람이 죽어나갔다.

    유엔의 해결책을 기다리던 시리아 시위대는 총을 직접 들고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과 싸우고 있다. 유엔은 그간 두 차례에 걸쳐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한 유엔 결의안을 안보리 표결에 부쳤다. 하지만 두 번 모두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도대체 유엔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라는 탄식이 나왔다. 70개 국가가 ‘시리아의 친구들’이라는 모임을 구성해 사태를 해결하려 했으나 이 역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유엔으로서는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유엔이 꺼낸 회심의 카드가 전 사무총장 코피 아난이었다. 아난 전 총장은 유엔 및 아랍연맹의 공동 특사 자격으로 시리아를 방문해 4월 12일을 시한으로 삼은 휴전을 제의했다. 정부군과 반군은 4월 2일 코피 아난 유엔 특사의 평화안을 수용해 4월 10일까지 이 지역에서 철군을 완료하고 4월 12일 오전 6시를 기점으로 전면 휴전하기로 합의했다. 유엔이 해결책을 마련한 듯 보였으나 아난 전 총장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다. 시리아는 유엔의 제안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시위대를 계속 공격했다. 반 총장은 “시리아에서 유혈 사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정부군이 중화기를 사용하고 있어 경악스럽다”고 비난했다. 시리아 정부는 “반 총장은 편파적인 사람이며 그의 발언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반 총장이 시리아에서 사용할 카드가 남아 있기는 한 건지 우려하는 시각이 팽배한 상황이다.

    성범죄 저지르는 유엔군

    평화유지군은 분쟁 종식 이후 `완충’ 역할을 하던 과거와 달리 분쟁이 치열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분쟁지역에 배치된 평화유지군은 현재 11만 명에 달한다. 사상 최대 규모인데도 분쟁지역 수가 늘면서 유엔군 병사 숫자가 크게 모자란 상황이다. 유엔은 ‘병사의 질’에 상관없이 숫자 채우기에 바빴다. 사상자가 늘면서 선진국은 병력 차출을 꺼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신규 병력의 대부분을 개발도상국 출신으로 채우고 있다.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출신 병사가 전체 평화유지군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다. 이들은 유엔의 숭고한 정신보다는 잿밥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유엔은 군인 1명당 매달 988달러를 지불한다. 이에 덧붙여 복지 수당도 지급한다. 모국에서는 한 달 평균 150달러 정도를 버는 파키스탄 군인의 경우 유엔군으로 나가면 월급이 6배 넘게 느는 것이다.

    병사의 질이 낮다보니 평화유지군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성범죄가 특히 유엔의 골칫거리다. 2007년 서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 파견된 730명 규모의 모로코 평화유지군 대대가 임무 수행을 정지당하는 일이 있었다. 부대원 14명이 현지 여성과 아동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아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유엔은 이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했다. 모로코 정부 역시 성폭행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이들을 무혐의 처리했다. 당시 이 사건을 취재한 필자는 모로코 정부 관리들에게 “문화의 차이에서 빚어진 오해”라는 해명을 들어야 했다. 코트디부아르 여성들이 먼저 성관계를 요구해와 모로코 병사들이 어쩔 수 없이 응해준 일종의 자선활동이었다는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진 유엔군의의 성범죄는 경악할 정도다. 2004년 콩고 주둔 평화유지군 병사들이 미성년자를 포함한 현지 여성을 성폭행했다. 피해 여성이 200명이 넘었다. 피해 소녀들은 유엔 병사가 건네준 음식 때문에 이들과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배고픔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파견된 병사들이 성관계를 요구하며 내민 것은 달걀과 빵이었다. 소녀의 부모들도 음식을 얻기 위해 유엔군과의 성관계를 장려했다. 유엔군에 의한 성범죄는 해마다 늘고 있는 실정이다.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2009년 서아프리카 베냉의 미성년 소녀를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이 음식을 받거나 잠자리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유엔군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밝혔다. 수단에서도 어린이 성 착취라고 할 수 있는 유엔군의 추태가 이어지고 있다. 유엔군의 성범죄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일어나는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유엔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덮어두기 급급하기 때문이다.

    유엔군이 파병지에서 무기 밀매에 나서 구설에 오른 적도 있다. 2007년 아프리카 콩고에서 반군에게 무기를 판매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 유엔군으로 근무 중인 파키스탄 대대가 콩고 북동부 몽발루 금광 지역에서 금과 무기를 맞바꾸는 거래에 나섰다. 반군을 진압하고자 파견된 유엔군이 그들과 한패가 된 꼴이다. 유엔이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했지만 조사단 직원이 오히려 현지 주둔 유엔군에게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이권 개입하고, 뇌물 챙기고

    유엔은 회원국이 낸 분담금으로 운영된다. 분담금을 측정하는 기준은 각 나라의 국민총소득(GNI)이다. 유엔이 예산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이 평화유지군을 비롯한 안보 관련 사업이다.

    평화유지군의 몸집이 비대해지면서 각종 비리가 일어나고 있다. 평화유지군이 조달하는 장비와 관련해 세계 각국에서 유엔 직원과 공급업체 간 부정부패 사슬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7월 발생한 평화유지군 장비 납품과 관련한 뇌물수수 사건은 평화유지군의 지저분한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군 장비를 생산하는 아머 홀딩스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대행사에 지급한 커미션 중 일부가 유엔 직원들에게 뇌물로 제공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행사에 돈을 건넸다. 대행사는 유엔 내부 정보를 파악한 뒤 납품 계약을 따내면서 뇌물을 건넸다. 한 전직 유엔 관리는 “장비 납품과 관련한 비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엔군이 주둔하는 지역이 주로 후진국이다 보니 내부 고발이 나오거나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적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유엔은 9년에 걸친 신탁통치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2008년 코소보에서 철수했다. 언론은 코소보에서의 임무 수행을 끝낸 유엔을 칭찬했다. 코소보 역시 독립을 선포하면서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런데 신탁통치 종료 사흘 뒤 유엔 코소보 행정기구 재정국장 예메니 나빌이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그가 횡령한 돈은 4만 유로가량이었으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코소보 출신 유엔 관리들이 빼돌린 돈이 엄청난 것으로 드러났다. 횡령 및 유용한 돈이 적발된 것만 4700만 유로에 달했다. 이들이 이렇게 엄청난 액수를 빼돌릴 수 있었던 것은 코소보에서 이뤄진 재건 사업 이권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건설업자에게 지불하는 금액을 부풀리는 수법이 주로 사용됐다. 유엔이 코소보에서 철수하는 순간 이들의 범죄는 사실상 묻혀버렸다. 비리의 주역들이 외국으로 달아나버린 것. 유일하게 기소를 당한 인사인 나빌 재정국장도 코소보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유엔 아프리카경제위원회(UNECA)에서 일한 유엔 직원들이 미국 비자를 불법으로 발급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챙긴 사건도 있었다. 이들 역시 재건 사업 입찰 과정에 개입해 이권을 챙겼다. 이 사건 조사를 맡은 위원회는 에티오피아와 미국 사법당국에 비자 불법 취득 건을 조사하라고 권고했지만, 두 나라 모두 이 사건을 올바르게 조사하지 않았다.

    유엔이 현대사에 끼친 긍정적 영향은 상당하다. 코소보는 세르비아계의 인종청소로 인해 1992년부터 피에 물든 비극의 땅이었다. 유엔의 개입으로 코소보 독립이 이뤄졌으며 내전이 종식됐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식민 지배를 받던 동티모르는 유엔이 주관한 분리 독립 찬반투표를 통해 독립국가가 됐다. 필자는 파란 베레모를 쓰고 동티모르 땅을 밟던 유엔군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동티모르인은 유엔군 병사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려고 몰려들었다. 군인들은 그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레바논에서 현지인에게 달걀을 맞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순찰을 돌던 스페인 병사의 모습도 뇌리에 남아 있다. 이런저런 문제로 잡음이 그치지 않지만 유엔은 20세기 인류가 만들어낸 위대한 성과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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