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호

눈부신 경제성장 이끌고도 권력층 부정부패로 망신

중국 공산당 독재의 명암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2-05-23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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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시라이 사건으로 중국 공산당의 부정부패와 권력암투가 공개되고 있다.
    • 천광청 사건은 인권을 억압하는 중국 당국의 민낯을 드러내 보인다.
    • 눈부신 경제성장, 막강한 군대, 한족(漢族) 중화주의가 중국 집권세력의 기반. 그러나 공산당 일당독재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은 예전처럼 단단하지 못하다.
    일당독재가 중국의 힘이다?

    로마클럽 회원인 요르겐 랜더스는 5월 8일 ‘2052년, 향후 40년의 글로벌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에서 랜더스는 2052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의 주도권을 쥘 것이며 그 힘은 중국의 일당독재 체제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정부가 단기적인 정치적 계산과 유권자의 양분 같은 요인으로 대처를 잘 못하는 사이에 중국 정부는 민주적 절차에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고 신속하게 의사를 결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보고서가 이목을 끄는 이유는 로마클럽이 갖는 중량감 때문이다. 로마클럽은 1968년 창설 이후 각 분야 핵심 인사들이 참여해왔다.

    ‘베이징이 워싱턴 대체’ 분위기

    세계경제계에서는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가 화두다. 이 말은 타임지 기자 출신으로 칭화(淸華)대 겸임교수를 한 조슈아 쿠퍼 라모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용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대외경제 전략인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사회주의 관치경제에 기반을 둔 대외경제 전략을 말한다. 베이징 컨센서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관련이 깊다.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른 미국과 유럽이 금융위기로 허덕이는 와중에 중국 경제만 활황을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의 주인도 바뀌는 중이다. 2010년 4월 25일 세계은행은 증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 돈은 대부분 중국 쪽에서 나왔다. 이 결과 중국의 세계은행 지분은 2.77%에서 4.42%로 높아졌다. 독일을 제치고 미국, 일본에 이어 3위로 부상했다. 이 힘을 바탕으로 세계은행 부총재 자리도 차지했다. 린이푸(林毅夫) 부총재가 베이징 컨센서스의 전도사로 알려진다. “미국은 저물어갈 것이고 중국은 떠오를 것이다. 그래서 21세기 경제를 주도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린이푸의 지론이다. 미국 정부의 추천으로 총재가 된 한국계 김용 박사의 가장 주된 업무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베이징 컨센서스를 조율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렇다면 정말 베이징 컨센서스가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할까? 얼마 전까지 시계추는 베이징 쪽으로 옮겨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워싱턴의 버티기도 만만치 않았다. 확장된 워싱턴 컨센서스는 경제체제를 넘어서 정치체제의 변화까지 유도하는 내용이다. 신자유주의 경제가 가능하려면 정치 제도와 문화도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면에는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정치적 민주화를 원한다’는 가설이 자리 잡고 있다. 서유럽과 미국, 한국의 역사발전 과정이 그랬다. 반면 베이징 컨센서스는 정치체제의 변화엔 침묵한다. ‘각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 군주제를 하건 민주제를 하건 관심이 없다’는 투다.

    사회주의의 본산인 구소련이 붕괴한 탓인지 중국 정부는 자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지키는 데 일차적인 관심을 보인다. 사회주의의 국제적 확산에 열을 올리던 구소련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아직은 수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앞으로 힘이 더 커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중국식 사회주의 개혁개방 모델을 다른 나라에 이식하려들 가능성, 그 모델을 잘 따르는 국가 순으로 줄을 세울 가능성이 엄존한다고 봐야 한다.

    승천하는 용의 발목을 잡다

    그러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것 같던 베이징 컨센서스는 안방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중국 혁명 주체가 세대를 거듭하는 사이 어떻게 초심을 잃어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농민과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쳤던 그들이지만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면서 당초의 혁명정신은 온데간데없고 남은 건 권력투쟁과 이권 경쟁뿐이다. 공산당 일당독재는 이들의 기득권 유지 수단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언젠가 다른 나라에 전파해야 할 정치체제의 핵심이 내부에서 와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충칭시 서기 출신인 보시라이는 중국 당·정·군내 최대 파벌 가운데 하나인 태자당의 떠오르는 인물이었다. 혁명 1세대의 자녀들로 이뤄진 태자당은 상하이방(上海幇), 퇀파이(團派) 곧 공청단(共靑團·중국공산주의청년단)과 더불어 중국 공산당을 구성하는 3대 세력 가운데 하나다. 공산당 일당독재라고는 하지만 내적으로는 이렇게 3개 계파가 존재하는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보시라이는 권력의 정점인 정치국 상무위원 9인 가운데 하나로 임명될 예정이었다. 이런 그가 사법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몰락도 이런 몰락이 없다.

    태자당은 보시라이의 아버지 보이보(薄一波)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혁명 1세대 자녀 가운데 1명씩을 고위직에 임명해 덩샤오핑 복권에 기여한 데 대한 보상을 해주자는 아이디어였다. 초기 태자당을 이끌었던 인물은 덩샤오핑의 큰아들 덩푸팡(鄧樸方)이었다. ‘중국제일태자’로 불린 덩푸팡은 1987년 태자당 출신을 모아 캉화(康華)발전총공사를 창립했다. 국무원이 직접 관장하는 기업으로 독점 사업을 전개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덩푸팡은 중국장애인연합회 주석으로서 캉화발전총공사 수익금을 연합회 운영 자금으로 활용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1988년 덩푸팡이 금융 비리를 저지른 것이 밝혀졌다.

    덩푸팡뿐만이 아니다. 1원로 1자녀 원칙에 따라 고위직으로 진출하지 못한 원로의 자녀들은 대부분 이권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이들은 사실상 독점으로 사업을 전개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신흥부자로 변모했다. 예를 들어 화가인 덩샤오핑의 장녀 덩린(鄧林)은 작품을 고가에 판 것으로 유명하고 인민해방군 현역 장성인 3녀 덩룽(鄧榕)의 남편 허핑(賀平)은 해외 무기거래로 엄청난 재력을 쌓았다.

    보이보는 아들 가운데 누구를 고위직에 진출시킬 것인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최종 선택한 것이 2남인 보시라이였고 나머지 아들에게는 사업을 시켰다. 큰아들 보시융(薄熙永)은 1998년 국무원 산하의 광다그룹(光大集團)에 들어가 2003년 자회사인 광다인터내셔널 집행이사가 됐다. 그는 리쉐밍(李學明)이라는 가명으로 광다인터내셔널의 부총재로 재직하면서 연봉 20만 달러에 스톡옵션을 받았다. 2010년과 2011년 에 주식 1200만 주를 매각해 56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보시라이의 동생 보시청(薄熙成)은 베이징 류허싱(六合興)호텔관리공사 회장, 중신(中信)증권 이사로 재직 중이다. 막내 보시닝(薄熙寧)도 류허싱집단의 회장을 맡고 있다. 고위직에 진출한 형제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특혜 사업을 받아 신흥부자가 된 과정은 다른 태자당 집안도 마찬가지다.

    중국 권력층의 부정부패 실상

    중국제일태자 덩푸팡 비리 사건이 발생한 다음해인 1989년 봄 베이징 톈안먼 광장은 민주화 시위로 뜨거웠다. 직접적인 원인은 사상과 언론의 자유, 개인 자유의 신장, 법치주의, 당내 민주화를 추진하려다가 공산당 총서기 직에서 물러난 후야오방(胡耀邦)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태자당을 중심으로 한 특권층의 부패와 빈부격차가 시위에 기름을 부은 것도 사실이다. 시위 주도 세력의 핵심 요구 가운데 하나가 ‘태자당의 비리척결’이었다는 점은 당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톈안먼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직후 중국 공산당은 신속하게 사태수습에 나섰다. 이리하여 수립된 새로운 체제가 바로 리펑(李鵬)-장쩌민(江澤民) 체제다.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양자인 리펑은 태자당 출신이고 장쩌민은 상하이방의 좌장. 결국 과두협력 권력구조를 택한 것이다. 이 체제하에서 태자당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과 사업 정리 작업이 이뤄진다.

    덩푸팡의 캉화발전총공사도 이때 철퇴를 맞아 해체 국면을 맞고 만다. 그러나 덩푸팡이 힘을 잃는다고 해서 태자당 전체가 와해되는 것은 아니다. 태자당의 대다수는 건재를 과시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런 맥락에서 보시라이와 시진핑의 화려한 등극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에는 태자당과 더불어 태자상이라는 용어가 있다. 태자당 출신으로 사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별도로 칭하는 말이다. 최근 들어 태자상은 고위직 자녀 출신 기업인을 전반적으로 일컫는다. 중국 IT 업계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장헝(江綿恒·장쩌민 전 주석의 아들 ), 중국 내 보안 스캐너 장비를 독점하고 있는 후하이펑(胡海峰·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아들 ), 중국국제금융공사 총재인 주윈라이(朱雲來·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의 아들 ), 중국 6대 통신 기업 중 하나인 중국위성통신의 회장에 임명된 원윈쑹(溫雲松·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아들) 같은 인물이 태자상의 대표적 인물군이다.

    태자당과 태자상. 굳이 구분이 필요치 않은 이들 중국 권력층의 문제는 부정부패다. 정경유착을 넘어 정경일치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해왔기 때문에 부정부패는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보시라이 사건으로 드러난 실상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미국에 서버를 둔 보쉰왕(博迅網)은 4월 26일 “보시라이의 돈줄 노릇을 해온 쉬밍(徐明) 다롄스더(大連實德)집단 회장이 100여 명의 여성을 보시라이에게 향응 상대로 소개했고 이 중에는 유명인도 다수”라고 보도했다.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가 보시라이의 비서인 장샤오쥔(張曉軍)을 교사해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Neil Heywood)를 살해한 사건은 더 충격적이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헤이우드는 보시라이 부부가 해외로 8억 파운드(약 1조4000억 원)의 재산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적극 도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구카이라이와 불륜관계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보시라이 사건으로 중국 지도부가 권력투쟁 소용돌이에 휩싸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보시라이의 군부지지 세력에 대한 숙청이 시작된 것으로 보여 이런 관측에 힘이 실리는 것이 사실이다.

    보시라이를 자신의 후임자로 앉히려했던 태자당 출신 저우융캉(周永康)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법위원회 서기가 실각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돈다. 더불어 저우융캉이 보시라이를 지키려고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는 설도 불거지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당대표대회가 올해 10월 열리지 못하고 내년 1월 정도로 연기될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자금성보다 더 깊은 구중궁궐과 같다. 언론이나 외부인의 접근이 봉쇄돼 있다.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베이징에서 떠도는 이야기와 소문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중국 지도부 내에서 권력투쟁이 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장쩌민 전 주석이 보시라이 실각에 동의한 것으로 미뤄 중국 집권세력의 중심축인 상하이방-태자당 연합마저 깨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차기 주석 시진핑’도 불안하다

    보시라이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는 오는 10월 18차 당대표대회에서 중국의 차기 권력이 시진핑-리커창(李克强) 체제로 굳어질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태자당 출신 시진핑이 국가 주석을 맡고 퇀파이 출신의 총리가 협력하는 구조다. 퇀파이 출신의 후진타오 주석은 당초 리커창을 주석으로 밀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장쩌민의 반대로 무산됐다. 보시라이 사건 이후 후진타오 주석이 다시 리커창을 주석으로 밀어 올리고 있는 정황도 없지 않다.

    최근 중국 언론이 리커창 부총리의 유럽 방문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 역시 이런 점에서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또 상무위원 숫자를 7명으로 줄이려는 시도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도 결국 상무위원회 내 퇀파이 출신의 점유율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톈안먼 사태와 구소련 해체는 중국 공산당 내부의 단결을 불러왔다. 각 계파는 사회주의 체제 붕괴에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협력 카르텔을 구축했다. 이때 만들어진 권력구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당시처럼 중국 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고 실업률은 높아지는 추세다. 여기에 보시라이 사태로 권력층의 부패에 대한 일반 국민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제2의 톈안먼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이며 이 점이 오히려 공산당 지도부의 협력 카르텔을 공고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중국 일당독재의 근거는 덩샤오핑이 언급한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이다. 톈안먼 사태 이후 칩거생활을 하던 덩샤오핑은 1992년 초 생산력 증대에 유리한지, 종합국력 증강에 유리한지, 인민 생활수준 제고에 유리한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덩샤오핑은 이것이 바로 100년 이상 지속되어야 할 ‘사회주의 초급단계’ 중국이 해야 할 과업이라고 천명했다.

    후진타오 주석도 원자바오 총리도 이 이론을 늘 강조해왔다. 사회주의 초급단계인 중국을 이끄는 것이 바로 공산당이라는 점도 물론 빼놓지 않았다. 이에 따르면 100년! 그러니까 최소한 2048년까지는 공산당 일당독재로 가겠다는 이야기다. 로마클럽 보고서는 2052년 중국이 미국을 제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회주의 초급단계가 끝나는 2048년과 비슷한 시기다.

    신자유주의가 퇴조 기미를 보이기 직전, 곧 워싱턴 컨센서스에 여전히 힘이 실리고 있던 시절 중국은 외부에서 밀어닥치는 민주화 요구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원자바오 총리가 “정치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문화혁명이 또 발생할지 모른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원 총리는 “직접선거를 전국으로 확대해야 하고 공산당으로부터 사법부를 독립시켜야 하며 당내 민주적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언론자유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정치개혁안은 일당독재 체제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공산당 일당독재에 자유민주주의적 요소를 버무린 비빔밥 정도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보시라이 사건에 이은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 탄압 사건으로 인해 중국 내에서 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해외여행 경험이 늘어나면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반면 중국은 사회주의만으로도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어 자유민주주의와 다당제 없이 공산당 체제만으로도 민주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할 태세다.

    이제 선택은 중국 국민에게 달렸다. 그들이 공산당 지도부와 그들 가족 중심의 정경일치에 딱히 불만이 없다면 제2의 톈안먼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여서는 곤란하다고 믿는다면 완전한 자유와 권리의 보장을 택할 것이다.

    엘리트 통치의 허구성

    매년 8% 이상의 고도 경제성장, 상하이의 천지개벽, G2 등극은 중국 공산당을 떠받드는 경제적 외교적 신화(神話)이자 가장 강력한 집권 명분이다. 중국 공산당은 일종의 철인(哲人) 통치 이론에 입각해 독재를 옹호하는 경향이다. 즉, 최고로 현명하고 도덕적인 정치 엘리트들이 국민 직접선거를 능가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으로 국가를 번영으로 이끌고 있다는 주장이다.

    핵무기를 보유한 인민해방군은 안팎으로부터 공산독재를 지켜주는 단단한 하드웨어다. 여기에 한족(漢族) 중화주의는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등 내부의 분열을 억제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는 아직까지 매우 견고해 보인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를 정당화한 근거들이 오히려 반대의 근거로 돌아서게 된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산당의 가장 강력한 집권 명분인 경제성장이 주춤거리고 있다. 여러 학자는 “중산층을 두껍게 육성하지 않는 중국식 관 주도 성장모델은 곧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고 본다. 경제성장의 둔화는 실업의 증대를 부를 수밖에 없다. 지금도 계층 간, 도농 간, 동서 간 빈부격차가 극심한 편인데 격차가 더 확대될 경우 저소득층 국민이 인내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설 것이다.

    중국 공산당 최고 권부(權府)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실상은 ‘가장 현명하고 도덕적인 정치 엘리트에 의해 가장 합리적으로 통치되고 있다’는 중국 당국의 명분론이 하나의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눈부신 경제성장 이끌고도 권력층 부정부패로 망신
    이종훈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

    국회도서관 연구관

    前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 진행자

    現 아이지엠컨설팅(주) 대표

    現 시사평론가

    저서 : ‘정치가 즐거워지면 코끼리도 춤을 춘다’ ‘사내정치의 기술’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는 서로 융합돼 엄청난 시너지를 낼 만한 사안이다. 중국의 일반 국민이 부정부패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아마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안다면 극소수의 집안이 독점하는 국가적 자원을 민중에게 재분배하라는 요구가 나오지 않을 리 없다.

    중국 당국은 신문 방송 인터넷에 대한 철저한 검열과 통제로 유명하다. 그러나 세계화의 시대에 국민의 눈과 귀를 영원히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 내에서 표현 및 언론의 자유에 대한 욕구는 최근 수년간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정보와 의견의 자유로운 유통이 가능하게 된다면 이것이 중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파괴력을 가질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2048년까지 이제 36년이 남았다. 긴 세월일 수도 있고 짧은 세월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극적인 변화가 발생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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