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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인생 핸디캡은 절망 아니라 자극제”

휠체어 타는 정신과 의사 류미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인생 핸디캡은 절망 아니라 자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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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즉통

감기에만 걸려도 집에 가 쉬고 싶은 게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세상으로 뛰쳐나갔다. 고3, 가장 절박할 때 ‘그 사고’를 당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고 싶지 않은 듯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공부를 꽤 잘해 의대에 진학해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성적은 점점 곤두박질쳤다. 결국 의대에 가기엔 성적이 모자랐다. 성적에 맞춰 연세대 의생활학과에 진학했지만 재미없는 공부를 견딜 수 없었다. 결국 1년간 재수 끝에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했다. 서울대 캠퍼스는 관악산 중턱에 있어 보통 사람도 걸어 다니면 숨이 찬다. 그런 곳에서 4년간 어떻게 공부했을까. 그는 “궁즉통(窮卽通·궁하면 즉 통한다)”이라는 말로 답을 시작했다.

“수강 신청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한 게 강의실 동선과 주차 가능 여부였어요. 한 건물에서 수업을 몰아 들을 수 있게 계획하고 차를 타고 빠져나오는 거죠. 예기치 못한 상황이 있으면 그냥 수업을 빠지고요. 어차피 저는 1등이 아니라 완주가 목표였으니까.”

그렇게 4년간 휠체어, 한 번 안 타고, 목발 한 번 안 짚고 그는 학교를 마쳤다. 남자친구를 제외하고는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상태를 털어놓지 않았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떨어져 지낸 가족들과도 다리 상태에 대해 얘기해본 적 없다. 왜 먼저 장애를 말하고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누구한테 말한다고 대신 아파주는 건 아니니까요.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저 때문에 분위기가 불편해지는 건 싫었어요.”



졸업 후 취직자리를 알아보다 ‘중앙일보 기자직 시험에는 성적증명서와 기사 작성만 본다’는 사실을 알고 대뜸 지원했다. 최종단계까지 갔으나 마지막 과제 ‘등산’이 발목을 잡았다. 당연히 시험에 떨어졌고 석 달간 공부 끝에 그는 경향신문 편집기자로 입사했다. 짧은 기자생활, 그는 “불만도 만족도 아닌 상태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어느 순간 지루해서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하루도 다닐 수 없을 것 같아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그리고 수능시험에 도전했다. 어릴 적 꿈대로 의사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6개월간 수능을 준비했지만 결국 낙방. 실망했지만 여기서 다시, ‘궁즉통’이었다.

“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봤더니 의대 중에서도 편입생을 받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특히 가톨릭대 의대는 매해 10명씩 편입생을 받는데 학점, 영어, 논술로만 편입생을 뽑았어요. 저 같은 문과생도 응시가 가능했던 거죠.”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그는 가톨릭의대 본과 1학년으로 입학했다. 문과생으로서는 유일한 합격자였고 합격자 중 나이가 가장 많았다. “낯선 공부가 어렵지 않았느냐”는 말에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딜 가나 공부 잘하면서 남을 잘 도와주는 여자애들이 있어요. 전 나이도 많고, 그런 애들이랑 친해져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다시 “전 1등할 생각이 없었어요”라고 덧붙였다.

“의대생은 기본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도 한 학년 100명 중 10명은 매년 유급을 해요. 유급을 면하기도 쉽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주제를 알고 ‘저공비행’을 하기로 했어요. ‘유급만 면하자’는 거예요.”

본과 3년을 무사히 마치고 모교에서 병원 실습을 시작했다. 매번 위기가 닥칠 때마다 어찌어찌해서 잘 넘어갔으니 이번에도 잘되지 않을까 낙관했던 그에게 첫 번째 난관이 나타났다. 바로 회진이었다. 교수를 따라 병동을 걸어 다녀야 하는데 그는 발목의 통증 때문에 걷지도 서지도 못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회진 중간에 화장실에 숨어 있다 끝날 때 슬쩍 합류하는 식으로 지나갔다.

하지만 실습 중 수술실에 서서 교수의 수술 보조를 해야 할 때는 어떤 꼼수도 쓸 수 없었다. 10분 넘게 서 있자 땀이 비 오듯 흘렀고 발목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밀려들었다. ‘이러다 수술 환자에게 실수를 하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결국 그는 수술실에서 쫓겨났다. 교수는 그의 등에 대고 “너보다 외팔이가 낫다”고 소리쳤다.

저조한 성적이지만 어쨌든 실습을 마친 그는 의사고시에 합격해 의사 면허를 손에 쥐었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 인턴 기간 2년과 레지던트 3년만이 남은 상황. 하지만 그는 그해 모교 인턴 모집에서 떨어졌다. 통상 본교 출신 인턴 채용은 합격률이 99%에 달한다. 가톨릭대에서 모교 출신이 본교 인턴 모집에 떨어진 것은 전무후무한 결과였다.

결국 후기 인턴 모집에서 합격했지만 아픈 발목 때문에 한 달 만에 사표를 냈다. 다시 한 번 모교 인턴에 지원했지만 또 실패. 류 씨는 당시를 인생에 가장 힘든 시기로 회상했다. 끝없이 절망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3전4기. 마침내 한 병원에서 그를 인턴으로 받아줬다. 그리고 그는 ‘인생의 핸디캡’을 받아들였다. 난생처음 남 앞에서 휠체어를 타기로 한 것이다. 당시 산부인과 의사인 주괄 원장과의 만남이 결정적 계기였다. 주 원장은 의료사고 때문에 후천적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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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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