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호

시험 D-14부터 ‘에너지 드링크’ 쌓아놓고 공부, 고카페인 ‘붕붕드링크’ 직접 제조도

대한민국 중딩의 ‘카페인 다이어리’

  • 지수민│중학생 eomminssun@naver.com

    입력2012-05-23 15:0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시험 D-14부터 ‘에너지 드링크’ 쌓아놓고 공부, 고카페인 ‘붕붕드링크’ 직접 제조도

    시험에 대한 부담감으로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밤샘 공부를 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 중딩이다. 초딩도, 어른들도 우리를 ‘무서운 중딩’ ‘질풍노도 중딩님’‘무개념 중딩’이라 한다. 더 자주는 ‘*중딩’이라 불린다. 태풍이 불 때 중심의 ‘눈’은 평온하다고 하는데, 중딩이 왜 우리나라에서 제일 무서운 종족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친구들을 보면 생각도 많이 하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어른들 눈에 우리가 전반적으로 ‘무개념’해 보이기 때문에 ‘무서운 중딩’이라고 부르지 않나 싶다. 생각 없는 초딩은 귀엽게 봐주고, 눈앞에 닥친 입시 생각만 해서 애늙은이가 된 고딩은 안쓰럽게 보는 것 같다. 이에 비하면 중딩은 키와 덩치는 어른들만큼 커서 징그러운데, 고등학생들처럼 체념한 듯 공부나 하면서 살지는 않기 때문일 거다.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기에 중학생은 너무 어리고, 미래의 뭔가를 진지하게 계획해보기에도 너무 젊다. 사실은 뭘 걱정하고, 뭘 해야 할지 막연하다는 것이 제일 큰 걱정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말할 때 욕도 많이 하는 것 같다.

    나는 중딩의 하이라이트라는 ‘중2병’을 지난해에 거치고 이제 막 중3이 됐다. ‘중2병’은 일종의 신종 사춘기다. 자신은 세상의 진실을 알고 있지만, 가장 고독하고 불운한 운명이어서 어쩔 수도 없다고 느껴서 우울, 가출, 자살 같은 말을 블로그나 싸이월드에 남용한다. 한마디로 ‘눈 먼 사람들의 세상에서 자신만이 눈뜨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살짝 팔꿈치로 쳐도 지구 밖으로 날아갈 수도 있는 종족이 중딩이다. 이렇게 말하니 나도 무서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무서운 중딩들도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 바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다. 수업 시간에 떠들고 토요일에 슬쩍슬쩍 화장하고 놀러 다니는 중학생들도 시험일정이 발표되면 눈이 쑥 들어가고 공부하는 모드로 전환된다. 빼먹은 노트 필기도 빌려서 채우고, 오답노트 만드느라 분주해진다.



    2학년을 생각해보면, 그때까진 내놓고 공부를 포기한 애들은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3학년 중간고사가 다가오면서 시험 따위 신경 안 쓴다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겉으론 다들 웃어넘기지만 속으로는 약간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그런 친구들을 바라본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나머지 대부분은 더 긴장해서 이번 시험은 꼭 잘 봐야지, 라고 다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험이 2주쯤 남으면 여기저기 친구들의 수첩에 D-14라는 글자가 쓰이고 깨알같이 알차게 공부 계획표를 만든다.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번 중간고사를 앞두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A가 독서실에 등록했는데, 분위기가 살벌하게 조용하다며 공부가 아주 잘된다고 한다. 나도 엄마를 졸라 독서실에 등록했다. 독서실은 새벽 2시까지 운영한다고 한다.

    카페인 ‘빠는’ 이유

    시험 D-14부터 ‘에너지 드링크’ 쌓아놓고 공부, 고카페인 ‘붕붕드링크’ 직접 제조도
    새벽 2시까지 본전을 뽑기 위해서 내가 준비한 것, 바로 에너지드링크다. 에너지드링크는 이번 시험 비장의 무기다. 에너지드링크는 무개념 중학생들도 봐주지 않고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잠을 쫓아주는 신비의 음료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에너지드링크에는 카페인과 타우린이 듬뿍 들어 있어서 내 친구들 대부분이 시험 시간에 잔뜩 사다놓고 밤새 ‘빤다’. 이런 음료는 마신다고 하기보다 ‘빤다’고들 한다. 왠지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카페인 성분을 잠깨는 약으로 생각하면 마신다기보다, 빤다고 하는 게 더 실감나는 것이다.

    앞으로 2주, 새벽 2시까지 독서실을 이용하려면 매일 마시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열 캔 이상은 있어야 한다. 비싸기 때문에 용돈의 압박도 심해진다. 어떻게든 부모님을 설득해서 돈을 타내야 한다.

    에너지드링크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수입산 R 제품이다. 가격은 250ml 한 캔에 2900원이나 한다. 그래도 제일 효과가 세기 때문에 친구들도 모두 사고 싶어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이렇게 비싸다고 편의점 주인이 설명해주셨다.

    R을 두 캔 사고 비슷하지만 조금 싼 국산 에너지음료 H를 세 캔 샀다. 꼭 필요한 순간에 R을 마시기로 했다.

    캔은 둘 다 똑같은 파랑과 빨간색으로 돼 있어서 국산이 유사품처럼 보인다. R은 겉에 에너지드링크라고 쓰여 있지만 처음 봤을 땐 공업용품 같았다. 자동차 정비소 같은 데서 쓰는 기름통 같다고 할까,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독특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TV광고를 자주 보다보니 어느새 친숙한 느낌이고, 좀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강남이나 홍대 앞 클럽에서 많이 마신다고 하니 뭔가 더 특별한 것 같다. 불꽃이 그려진 또 다른 국산 B 캔도 의미심장하다.

    내가 에너지드링크를 처음 마셔본 건 지난 기말고사 막판이었다. 친구가 처음 보는 음료캔을 갖고 와서 한 모금 마셔보라고 했다. 외국에서 클럽에 가는 사람들이 밤새 놀기 위해 마시는 음료인데, 우리나라에선 작가들이나 대학생들이 밤새 글을 쓰기 위해 마시는 음료라고 했다.

    알고 보니, 많은 친구가 시험 기간에 박카스를 마시면서 공부하고 있었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B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박카스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했다. 박카스에도 카페인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매일 밤 10시에 학원이 끝나고 학원 숙제까지 하려면 거의 매일 새벽 1시까지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종종 박카스를 마시는 것 같다.

    ‘붕붕드링크’ 제조법

    박카스를 이용하는 붕붕드링크라는 것도 있다. 이온음료에 과립형 비타민 C와 박카스를 섞어서 제조하는 수제 에너지드링크다. 에너지드링크의 기본인 카페인과 타우린이 몸에 흡수가 쏙쏙 되도록 이온음료에 섞는다고 한다. 과립형 비타민 C를 넣는 것은 강한 신맛이 이온음료의 느끼함을 없애주기도 해서지만, 그래도 몸에 뭔가 좋은 걸 마신다고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어쨌든 나와 내 친구들 중에 붕붕드링크를 직접 제조해 먹는 애들은 본 적이 없다. ‘에너지드링크 사서 마실 돈이 없는데 급박하게 필요한 사람이나 마감에 쫓기는 가난한 작가들이 마시는 것’이라는 게 우리 사이에서 붕붕드링크에 대한 평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지금도 미국에 살고 있는 고모가 잠시 한국에 오셔서 같이 식사를 할 때 “미국 청소년들도 시험 공부할 때 에너지드링크를 많이 마시느냐”고 물어봤다. 고모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트럭운전사들이 밤새 운전을 할 때 마시거나 젊은 애들이 클럽에서 밤새울 때나 마시는데, 젊은 애가 술과 함께 마시다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며 “너는 어리니까 그런 거 마시지 말라”고 하신다. 내 얘기에 충격을 받은 듯한 고모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랴. 시험날은 다가왔고, 벼락치기라도 해야 하는 것을. 어른들도 어쩔 수 없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운다고 하지 않나. 공부를 안 한 친구도, 평상시에 공부만 하는 친구도 시험 기간엔 잠을 줄여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에너지드링크 몇 캔을 보충하기로 했다. 헐. 이렇게 음료수가 많은데, R이 없다.

    주인아저씨가 “요즘 시험기간이라 다 팔렸는데, 물건이 없는지 들어오지 않는다. 수입품이라 들어오다 안 들어오다 한다”고 미안해하신다. 약국에서도 에너지드링크(뇌충전 드링크라고 광고한다)를 파는데, 너무 비싼 데다 정말 ‘약’을 먹는 것 같아서 단념했다. 서둘러 아파트 상가의 슈퍼마켓으로 갔다. 국산 B만 달랑 두 캔이 남아 있다. 여기도 시험 보는 아이들이 메뚜기 떼처럼 지나간 모양이다. 마지막 두 캔을 사들고 나왔다. 얘들아, 미안! 근데 시험기간엔 좀 나눠 먹자꾸나.

    중간고사는 3일 동안 치러졌다. 첫날, 아직은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밤 10시까지 공부하다 갈등을 겪는다. 결정의 시간이 왔다. 곧 무서운 수마가 찾아올 것이다. 잠이 찾아오기 전에 카페인을 먹어둬야 한다. 커피를 마실까 생각했지만, 카페인이 너무 많아지면 몸에 나쁠 것 같아 에너지드링크를 한 캔 마셨다.

    커피믹스도 에너지드링크 못지않게 잠 깨는 데 효과적이다. 그런데 엄마가 절대 커피믹스를 마시지 말라고 한다. 카페인이 들어 있고 프림과 설탕이 잔뜩 들어 있어서 키도 크지 않고 비만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드링크에 대해서 엄마는 잘 모르기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오르진 않았다. 나도 엄마의 잔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커피믹스는 몸에 나쁠 것 같고, 카페인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은근히 드는 것이다. 그에 비해 콜라와 이온음료, 생수 사이에서 파는 에너지드링크를 마실 때는 그런 두려움이 덜하다.

    졸음이 사라지는 순간

    시험 D-14부터 ‘에너지 드링크’ 쌓아놓고 공부, 고카페인 ‘붕붕드링크’ 직접 제조도

    커피와 카페인 과립 형태의 인스턴트커피. 카페인은 졸음을 예방하고 두뇌 운동을 촉진하는 장점이 있지만 과잉 섭취했을 때는 두통과 위궤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밤 11시가 되니, 꾸벅꾸벅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냥 자버리고 싶다. 그 상태로 10분쯤 억지로 책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한순간에 졸음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아침에 일어나 잠이 깨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정말 누군가 찾아오는 것이다. ‘왔구나!’하고 낄낄 웃었다. 엄마가 봤으면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미쳤나보다라고 생각하셨을 텐데. 새빨간 황소가 커다란 머리로 졸음 귀신을 밀어내는 장면이 보이는 것 같다.

    약효가 듣지 않을까봐 걱정했는데 역시 비싸게 산 음료수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 상태로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했다. 가족들은 모두 잠든 것 같고, 나 혼자 끙끙대고 있노라니,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온다. ‘중2병’은 시험 기간에 종종 재발한다.

    자고 싶기도 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벼락치기를 하고 있을 친구들을 카카오톡 단체 채팅으로 불렀다.

    5명이 답을 보냈다. 친구들 모두 에너지드링크를 한 캔 이상 마셨다고 한다. 한 친구는 5캔을 마셨다고 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정말이냐, 괜찮으냐고 하니, 그 친구는 책상 위에 에너지드링크 캔으로 탑을 쌓아서 사진을 찍어 보냈다. 친구들이 마시는 에너지드링크는 종류도 다양했다.

    처음 들어본 이름에, 캔 디자인만 봐도 무시무시한 음료도 있다. 약국이나 수입식품 파는 가게에서 샀다고 했다. 돈을 아끼려고 박카스와 에너지드링크를 섞어 마시는 친구도 있다. 다들 비슷한 상황인걸 보니 안심됐지만, 저래도 괜찮을까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다. 특히 다이어트하느라 위장이 안 좋아져 늘 속이 쓰리다며 보건실에 자주 가는 C가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불안했다.

    한 캔만 마셔서 금세 약효가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새벽 5시까지 잠들지 않고 벼락치기를 해냈다. 1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복습을 하는데 눈이 떠지질 않고 몸에 힘이 없었다. 이러다가 시험을 망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뜨거운 물에 커피믹스를 대충 섞어 환자가 약 먹듯이 마셨다. 커피 맛을 음미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커피 광고가 생각나 피식 웃었다.

    기분 나쁜 빨간색

    첫날 시험을 보고 오전 11시쯤 집에 왔다. 내일은 지옥의 시간표. 암기과목이 2과목이나 들었다. 잠깐 자고 일어난다는 것이 시계를 보니 밤이었다!

    패닉 상태에 빠지긴 했지만 어제 새벽 5시까지 깨어 있는 데 성공한 나에겐 미묘한 자신감이 있었다. 밤샘 준비를 위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아파트 앞 편의점에서 만나자고 카톡을 보냈다. R은 이 편의점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R은 없었다. 다른 편의점에서 국산 에너지드링크를 나는 한 캔, 친구는 두 캔을 샀다.

    처음 마셔보는 에너지드링크. 문득 궁금해져서 컵에 따르니 빨간색 시럽 같은 물이 나왔다. 순간 흠칫했다. 몸에 정말 나빠 보였다. 문득 ‘여기 뭐가 들었길래 그렇게 잠이 싹 달아나게 해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몸에 나쁜 성분이 많아서 기분만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깨알같이 씌어 있는 성분표를 읽어보았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천연 카페인과 타우린이란 성분이 보였다. 카페인이 잠을 달아나게 해준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작 뭔지는 모른다.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카페인: 커피나 차 같은 일부 식물의 열매, 잎, 씨앗 등에 함유된 알칼로이드의 일종. 다량을 장시간 복용할 경우 카페인중독을 초래할 수 있다. 카페인중독은 짜증, 불안, 신경과민, 불면증, 두통, 심장 떨림 등을 포함한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수반한다. 또한 오랫동안 다량을 복용하면 위궤양, 미란성식도염, 위식도역류질환 등을 야기할 수 있다.

    인스턴트 커피 한 잔(150ml)에는 60~108mg, 콜라 한 잔(150ml)에도 45.6mg이 들어 있다. 박카스 한 병에는 30mg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온음료에도 들어 있다고 하니, 집에서 만드는 붕붕드링크도 꽤 센 에너지드링크가 된다.

    하지만 정작 궁금한 R에 카페인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열심히 블로그를 뒤지니, 박카스의 5배라는 말도 있고, 2배가 좀 넘는 80mg이란 말도 있었다. 다른 에너지드링크에 카페인 80mg 함유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추측한 것이 아닐까 싶다.

    좀 놀란 것은 R이 지금처럼 팔리기 전에는 ‘마약 음료’로 판매 금지됐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우리나라에서는 카페인 함량을 낮춰 판매하게 됐다는데, 여전히 카페인 용량은 비밀인 모양이다. R 등 에너지드링크에는 ‘고카페인 음료’라고 표시돼 있다.

    ‘고카페인 음료’라는 말은 1ml 당 0.15mg 이상 카페인이 들어 있는 음료에 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에너지드링크 작은 캔이 250ml이므로 최소한 37.5mg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커피 한 잔에 비교하면 그다지 많은 양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한 약사 선생님의 블로그를 보니 얘기가 다르다.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먹을 수 있는 진통제 같은 약에도 50mg 정도의 카페인밖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 먹었다는 각성제 ‘타이밍’ 한 알에도 겨우(?) 50mg의 카페인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약사 선생님은 카페인 50mg의 약물도 의사 처방이 있어야 하는데, 카페인이 훨씬 많이 포함된 음료를 청소년들이 마구 사 마실 수 있는 건 문제라고 했다. 예전에 “우리 세대는 시험 공부 때문에 각성제를 먹었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옛날사람들이라 건강에 대한 개념이 없었겠지”라고 은근히 무시했는데 오늘날 중딩들이 이런 점에서도 더 무개념한 건 아닌가 싶었다.

    하루에 카페인을 얼마나 섭취해도 되는지 궁금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내놓은 기준을 보니 성인은 400mg, 임산부는 300mg인데 청소년은 몸무게 1kg에 2.5mg이다. 절대 비밀 내 체중을 곱해보니 나는 에너지드링크 한 캔에 박카스 한 병까진 괜찮을 거 같다. 그러나 말라깽이 전교 1등은 에너지드링크 한 캔도 다 마시면 안 될 것이다. 또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에는 카페인을 버터에 섞어 빵에 발라 먹고 죽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말 죽을 수도 있을까.

    대한민국 중딩의 사정

    타우린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동물에는 하등에서 고등동물까지 널리 분포돼 있으며 특히 사람과 포유동물의 인체 내에서는 주요 장기인 심장, 뇌, 간 등에 다량 함유돼 있다. 혈압의 안정화 및 뇌졸중의 예방에 도움이 되고 각종 혈관계 질환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고 나와 있다. 몸에 좋은 성분인 듯하지만, 고혈압이나 뇌졸중을 앓고 있는 중학생이 많진 않을 것이므로 그다지 고마울 것도 없다.

    우리 집 고양이 사료에도 타우린이 듬뿍 들어 있다. 고양이가 가끔 미친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게 이것 때문은 아닐까?

    그나저나 R의 카페인 함량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이번 시험의 마지막 날이다. 체력의 한계에 이른 듯하다.

    너무 졸려서 좀 이르지만 저녁 6시에 에너지드링크 한 캔을 마셨다. 그리고 새벽 1시에 강력한 놈으로 한 캔을 다시 마셨다. 하지만 몸이 피곤해서인지, 첫날처럼 카페인이 나의 뇌에 확 뛰어들어오는 한순간은 없었다. 그냥 잠이 오지 않았고 깨어 있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카페인에 대한 걱정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세 시간쯤 자고 눈을 뜨자마자 커피믹스를 한 잔 마시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평소에 아침을 잘 먹지 않지만, 시험 볼 때 기운이 없으면 안 된다는 엄마의 잔소리에 우유에 사료(콘플레이크)를 말아 먹었다. 엄마가 커피믹스 빈 봉투를 보고 또 잔소리를 했다. 누가 좋아서, 맛있어서 마시느냐고 하니, 엄마가 아무 말씀도 못하신다. 그보다 카페인이 많이 들어 있는 에너지드링크를 밤새 두 캔이나 마셨다는 걸 알면 뭐라 하실까.

    공부와 시험이 ‘죄’다.

    아슬아슬하게 시험을 치렀다. 정신만 차렸다면 틀리지 않았을 주관식 문제를 틀린 것이 아쉽지만 시험이 끝난 것이 기쁠 따름이다.

    긴장이 풀어져 멍하다. 하지만 죽지 않고 시험 치른 걸 축하해야만 한다. 친구들과 영화 ‘어벤저스’를 보기로 했다. 기운내서 영화 보고 돌아다니려면 에너지드링크 한 캔 먹어줘야 할 것 같다.

    편의점에 가니 주인아저씨가 R이 들어왔다고 반갑게 맞아주신다. R 캔에 ‘고카페인’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다시 한 번 호기심이 발동한다. 캔의 뒷면을 보니 소비자 상담 전화번호가 있다. 망설이다 전화를 했다. 친절한 언니가 받기에 “언니, 이 음료 한 캔에 카페인이 얼마나 들어 있나요?”라고 물었다. 언니는 굉장히 당황한 듯했다.

    “아, 잘 모르겠는데. 찾아볼게요.… 캔에 표시가 안 돼 있어서 잘 모르겠어요. 아마 커피 한 잔 정도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한번 다시 찾아볼게요. 커피 한 잔의 카페인 양. … 70mg이라고 나오네요.”

    “네에. 언니, 이런 거 학생들 마시면 위험하진 않나요?”

    “외국에선 카페인이 센데요, 한국에선 카페인 용량을 줄여서 만들어서 괜찮아요.”

    캔을 따서 한 모금 마시니, 탄산이 짜릿하게 올라와 잇몸이 알알하다. 소비자상담센터에서 괜찮다고 한다. 죽기야 할까. 카페인 좀 흡수하고, 심장이 좀 빨리 뛰고, 밤새 잠을 자지 않아 키가 덜 자라고, 좀 뚱뚱해진 대도 무슨 상관있을까. 시험 성적이 나쁘면 정말로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중딩의 운명이란 생각을 하자 중2병이 다시 도져 우울하다.

    이 글 때문에 어른들이 에너지드링크와 중딩들이 큰 문제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로서는 에너지드링크가 고맙기만 하다. 그 어떤 어른도 에너지드링크만큼 대한민국 중딩의 사정을 잘 이해해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학술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