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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치욕의 날, 是日也 放聲大哭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⑦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치욕의 날, 是日也 放聲大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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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인권위는 선진국인 미국·일본에도 없다. 그런 기관을 왜 우리가 가져야 하는가? 이만하면 우리나라 인권도 크게 신장된 것 아닌가? 인권위를 두는 것 자체가 인권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증거가 된다”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생떼도 썼다. 이런 것이 어느 정도 수용되는 분위기였다. 모든 국가기관이, 거침없이 쓴소리를 쏟아내는 인권위를 몹시 불편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이른바 ‘좌파정부’의 말잔치에 식상한 대중의 정서에 편승해 인권위는 손쉬운 공격의 표적이 됐다.

인수위는 정부조직 조정안을 입안하기에 앞서 각 기관에 대고 현황 보고를 요청했다. 그러나 인권위에 대해서는 요청해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자발적으로 전달하러 직원을 보냈다. 한 젊은 검사가 서류의 접수를 거부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실로 안하무인이었다. 승강이 끝에 박형준 당시 인수위원이 “그냥 두고 가라”는 말을 남겼다.

2008년 초,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는 새 정부조직의 윤곽을 발표했다. ‘과도한 위상’의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당초에는 ‘고충처리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 등과 통합해 하나의 위원회로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밀실작업이라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 인권위가 독립기관이라는 주장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않았다. 스위스 제네바의 인권고등판무관의 서신이 인수위 위원장 앞으로 도착했다. 판무관실 고위직이 밀사 자격으로 날아와서 인수위 담당 간사를 은밀하게 만났다.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변경하면 국제사회에 독립성 침해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시민사회가 크게 분노했다. 야당도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와도 만났다. 이회창 당시 선진당 대표도 조용하게 뜻을 전해왔다. 결국 일종의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지고 인권위는 원래대로 존속시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여성부와 통일부를 폐지하려던 당초의 안도 수정했다. 문제의 3개 위원회는 국민권익위원회로 통합해 국무총리 직속으로 두도록 했다. 일단 한숨을 돌렸다. 당시 박재완 인수위 팀장은 인권위가 독립기관인 점을 고려해, 일반 행정기관과는 다른 별도의 업무 기준을 적용할 여지를 남겨주었다. 비교적 유연하게 국제사회의 동향을 반영하려고 애쓴 것이다. 내심 고맙게 생각한다.

2008년 5월 2일 시작된 촛불집회가 날로 세를 얻어가고 있는 때였다. 느닷없이 감사원이 인권위에 대한 직무감사를 실시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인권위 사상 최초의 직무감사였다. 2007년 12월 행정안전부(행안부)의 결산감사가 있은 직후라 지극히 이례적이었다. 5월 21일, 감사관 7명이 예비조사를 실시했고 6월 2일부터 10일간 17명이 투입돼 세밀한 감사를 했다.

감사원 특별감사



인권위도 직무의 독립성을 침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 실무진 사이에 독립성의 범위를 두고 약간의 승강이가 있었다. 김칠준 당시 인권위 사무총장의 정교한 법리에 감사관이 대체로 설득당했다. 감사원도 인권위가 통상의 행정기관이 아닌, 독립된 기관이라는 대전제는 인식하고 있었다. 열흘에 걸친 세밀한 감사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성과’가 없자 감사를 4일 더 연장했다. 그들 사이에 난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후일 전해 들은 뒷이야기다. 정말로 인권위가 맑은 곳이라는 게 감사관들의 평가였다는 것이다. 감사를 마치고 떠나면서 인사차 들른 책임자의 언행에서도 이런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한 신문은 감사원의 이례적인 직무감사 결정을 5월 16일 부산대에서 열린 나의 강연에 대한 반응으로 평가했다. 그때 나는 “대학생도 인권과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다. 일반 국민이 누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받는다”고 했다. 청중의 질문에 헌법학자의 상식으로 답했던 것이다. 물론 시사적인 함의가 있었다.

불편한 진실은 오래도록 변치 않았다. 정부의 모든 기관은 인권위를 경원시했다. 이명박 당선자의 인수위 부위원장이던 김형오 의원이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법에 의해 인권위는 대통령과 국회의장에게 정기적으로 업무보고를 하도록 돼 있다. 김 의장은 국회 운영에 대해 나름대로 청사진과 소신을 갖고 있었다. 2년 재임 기간에 개헌과 국회의 상시개설 제도를 추진하겠다는 야심을 밝혔다. 2012년을 기점으로 대통령의 임기 4년, 중임제를 도입해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를 같은 해에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헌 논의는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 말기에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모든 정당이 합의한 사항이기도 했다. 헌법학회 회장의 경력을 가진 나도 김 의장의 열의에 찬사를 보냈다. 나는 국회에서 인권위의 소속 상임위가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로 돼 있는 것이 마뜩잖았다. 법사위는 전통적으로 검사 출신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또 법원행정처, 법무부와 함께 배속돼 있어 인권문제를 법의 잣대로만 판단하는 경향이 농후했다. 그래서 운영위원회로 옮기고 싶었다. 그곳은 여야 원내대표가 당연직으로 참여하기에 국정 전반의 차원에서 정치적인 타협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외국에서는 인권위가 의회에 소속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업무의 독립성이 침해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의회는 여야가 공존하는 민의의 대변기관이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일리 있는 이야기라며 즉시 수용해주었다. 검사 출신의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유연하게 받아주었다. 홍 대표는 인권위의 업무에 대해서도 당파적 차원을 떠나 중립적 원칙을 지키려 애써 주었다. 고맙게 기억하고 있다.

인권위 무력화 작전

2008년 10월 27일, 인권위는 촛불집회 의견서를 발표했다. 언론이 난리를 쳤다. 누차 설명했지만 인권위는 경찰이 본 피해에 대해서는 구제할 권한이 없다. 그것은 경찰과 검찰의 몫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권위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다룰 수 있을 뿐, 공권력에 ‘대한’ 침해는 관할권 밖이다. 그때 이상득 의원의 발언이 보도됐다. “시위대에 맞아가면서 촛불난동을 진압한 경찰의 행위를 인권침해라고 말하다니. 그런 인권위가 어떻게 이 정부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라며 그는 분노했다고 한다. 그해 국정감사와 업무보고는 시종일관 인권위에 대한 융단폭격으로 일관했다. 몇몇 여당 초선의원이 청와대와 사전 교감했던 정황이 감지됐다. 야당의원은 인권위를 옹호함으로써 더욱 정쟁의 양상을 띠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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