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新삼균주의, 서민, 평등…마의 지지율 5% 넘는다

‘이장에서 대통령까지’, 승부사 김두관

  • 손영일│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2-07-20 15: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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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삼균주의, 서민, 평등…마의 지지율 5% 넘는다

    7월 8일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결국 ‘배수의 진’을 쳤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는 7월 8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기에 앞서 “더 큰 김두관이 되어 돌아오겠다”며 6일 도지사직을 사퇴했다. 주변에선 “경선이 끝날 때까지는 도지사직을 유지하라”고 만류하는 의견이 많았지만 그는 미련 없이 물러났다. 김 전 지사는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배웠다”며 “퇴로를 열어놓는 순간 퇴로를 따라가게 된다”는 말로 대선에 임하는 각오를 드러냈다. 현직 도지사의 프리미엄을 버리고 자신의 자서전 제목인 ‘아래에서부터’처럼 바닥에서부터 대선 예비후보로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정치역정 반영, 땅끝마을 출마

    이날 해남 땅끝마을은 생활정치포럼, 모다함(모두 다 함께), 경희궁포럼 등 김 전 지사의 외곽지지단체와 지지자 5000여 명이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공식 출마 선언을 하기 한 시간 전부터 각종 문화행사가 벌어져 축제를 방불케 했다. 김 전 지사를 지지하는 사회 각계 인사들이 단상에 올라와 김두관을 연호하며 한껏 분위기를 띄웠다. 원혜영 김재윤 문병호 안민석 등 다수의 현역의원과 천정배 전 최고위원 이부영 전 의원 등도 김 전 지사의 대선 출마에 힘을 보탰다.

    단상에 오른 김 전 지사의 표정은 비장했다. 5년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예비경선에서 컷오프를 통과하지 못해 대선도전의 꿈을 접어야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의 말투에는 문재인 손학규 상임고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민주당 대선주자 ‘빅3’ 중 한 명으로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목이 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변을 토해내며 좌중을 사로잡았다. 출마 선언 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곧장 전남 강진으로 이동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과 함께 다산초당을 방문하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김 전 지사 캠프 측에선 ‘이장부터 대통령까지’란 말을 즐겨 사용한다. 1959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서 경남 남해군 고현면 이어마을 이장을 시작으로 최연소 남해군수, 노무현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야권 최초의 경남도지사 당선을 거쳐 이제는 대권 도전에 나서는 입지전적 인물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대선 출마 선언 장소 선정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김 전 지사 측은 출마 장소를 두고 해남 땅끝마을 이외에도 고향인 남해, 지역균형발전을 상징하는 세종시, 국회,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등을 두고 막판까지 고심했다. 하지만 아래에서부터 시작해 한 단계씩 올라간 자신의 정치적 역정을 가장 잘 반영하는 장소인 해남 땅끝마을을 최종 낙점했다. 여기에는 영남 출신인 자신이 호남에서 출마 선언을 해 지역화합을 이루겠다는 상징적 의미도 담고 있다. 그는 “아래에서부터, 풀뿌리 현장으로부터, 변방으로부터 동남풍을 일으켜 중앙까지 접수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에서 보듯 그의 삶의 궤적은 여러모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겹친다. 둘 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늦깎이 사회운동가의 길에 들어선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1959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김 전 지사는 젊은 시절 생활이 어려워 ‘신동아’ 외판원을 하기도 했다. 남해종합고를 거쳐 국민대에 합격했지만 입학금 28만3000원이 없어 등록을 포기해야만 했다. 어머니가 합격 소식을 듣고 빚을 내면서까지 돈을 모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하고 2년간 형과 함께 마늘농사를 지었다.

    배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영주경상전문대 행정학과와 동아대 정치외교학과를 잇달아 졸업했다. 청년 시절 재야단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서 활동하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민중당 활동을 거쳐 고향인 남해로 내려와 남해신문을 창간하고 본격적인 지역 활동에 나섰다.

    서민과 평등이 정책 핵심

    지역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으며 선거에 출마해 당선한 것보다 떨어진 경험이 더 많다는 점까지 닮았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선거에 8번 나가서 3번 이기고 5번 졌다”며 “이제 더 이상은 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1995년 36세로 남해군수에 당선돼 전국 최연소 기초단체장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연임에 성공했지만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았다.

    2004년 총선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서 낙선한 것을 시작으로,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2002년(민주당)과 2006년(열린우리당)에서 내리 고배를 마셨다. 2008년 당내 지역주의를 비판하며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했지만 또다시 낙선했다. 하지만 그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마침내 도지사에 당선됐다.

    대선 출정식에서 ‘평등국가 건설’을 출사표로 던진 것에서 보듯, 그의 정책 핵심은 ‘서민’과 ‘평등’으로 요약된다. 대선 슬로건도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국가를 향하여’로 정했다. 그는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국민을 화나게 하는 모든 기득권과 불평등한 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 일관된 주장이었다”며 “너를 이겨야 내가 사는 ‘정글의 법칙’을 버리고 네가 살아야 나도 살 수 있는 ‘숲의 법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신삼균주의’라 하는 지역균형발전, 사회균형발전, 남북균형발전 등 3대 국정운영철학을 바탕으로 5대 생활물가(유류비, 통신비,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 안정과 7대 분야 혁신정책을 제시했다. 7대 분야 혁신정책으로 △서민·중산층 기본적 생활 보장 △학비 걱정 없는 나라 △모든 사회적 자원 일자리 창출과 연계 △노후를 보장하는 나라 △새로운 분권의 시대 △한반도경제공동체 △생태·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국가체제를 제시했다.

    지난 5년간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여야를 망라해 차기 대선 주자군에서 독주를 거듭할 때 야권은 지리멸렬을 면치 못했다. 야권 지지층은 한때 분당 재보궐선거 승리를 이끈 손학규 상임고문에게 갔다가 이내 ‘문재인 대망론’에 기울었다. 하지만 이에도 만족하지 못한 탓에 ‘안철수 신드롬’이 여전하다. 그런 가운데 ‘김두관’이란 이름 석 자가 야권 지지층 사이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김 전 지사의 경쟁력으로는 △친노(親盧)이면서도 친노 프레임에 갇히지 않은 후보 △표의 확장성 △본선 경쟁력 등이 거론된다. 사실 이 세 가지는 서로 별개가 아니다. 친노 프레임에 갇혀 있지 않아 표의 확장성이 높고 그래서 박 전 위원장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야권 후보로 본선 경쟁력을 갖는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는 ‘어게인 노무현(다시 노무현)’이 아니라 ‘비욘드 노무현(노무현을 넘어)’을 주장한다. 올해 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을 노 전 대통령의 가신(家臣)이 아닌 동지라고 얘기했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의 가신이 아니다. 문재인 상임고문을 비롯한 참여정부 인사들은 국정을 주도한 분들이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육두품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힘의 관계로 보자면 나는 미약했지만 세력 대 세력으로 결합한 것이다.”

    문 고문이 2002년 국회의원·부산시장선거 출마를 거부한 것을 겨냥해 “나는 부여된 역사적 책무를 단 한 번도 회피하지 않고 어려운 싸움에 온몸을 던졌다”고 얘기한 것도 이런 자신감에서 비롯한다.

    “박근혜 꺾을 유일 야권 후보”

    이런 가능성에 주목해 많은 사람이 김 전 지사를 돕고 있다. 김 전 지사의 캠프 구성은 영호남, 동교동계, 친노, 비노(非盧)까지 스펙트럼이 넓어 ‘무지개 연합군’이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캠프는 원혜영 의원과 천정배 전 의원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는 투톱 체제가 유력하다. 4선의 원 의원은 김 전 지사의 멘토이자 캠프의 좌장으로 통한다. 원 의원은 1998년 부천시장으로 있을 때 당시 남해 군수로 재직하던 김 전 지사와 기초단체장의 모임인 ‘머슴골’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천 전 최고위원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유일하게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현역 의원이었다.

    김 전 지사를 지지하는 원내 의원은 10여 명 정도다. 캠프 대변인은 민주당 원내대변인을 지낸 전현희 전 의원이, 특보단장은 김재윤 의원(3선, 서귀포시)이 맡았다. 민병두 의원(재선, 서울 동대문을)이 전략기획, 문병호 의원(재선, 인천 부평갑)이 조직, 최재천 의원(재선, 서울 성동갑)이 정책을 각각 맡았다.

    원 의원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자치분권연구소’는 김 전 지사의 대표적인 싱크탱크다. 영남권·친노 인사인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윤승용 전 홍보수석, 김태랑 전 국회 사무총장이 참여하는 ‘생활정치포럼’도 외곽에서 김 전 지사를 지원한다.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여러 분야의 교수들을 만나 정책조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에 호남 인사들이 주축이 된 ‘희망정치포럼’과 ‘농무’신경림 시인이 대표 제안자로 나선 ‘희망네트워크-피어라 들꽃’‘두드림’‘모다함’ 등도 돕고 있다.

    하지만 그가 12월 19일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라는 커다란 산을 차례차례 넘어야 한다. 당장 8월 23일부터 시작하는 당내 경선에서 친노의 상징인 문재인 상임고문을 꺾어야 한다.

    김 전 지사 캠프 측은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 지지율을 최소 5% 이상 끌어올려야 문재인 후보를 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3%대의 지지율이 고착화될 경우 문재인 대세론이 탄력을 받으면 당내 경선은 해보나 마나이기 때문이다. 대선출마 선언을 반전의 기회로 삼았지만 ‘박근혜-안철수-문재인’ 구도가 워낙 견고한 탓에 지지율은 큰 변동이 없어 캠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김 전 지사는 7월 11일부터 수도권 지역을 돌며 지지기반이 약한 ‘수도권·2030세대·여성’을 공략하며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나섰다.

    참모진 일부는 1등 주자인 문 고문과 분명히 각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정작 김 전 지사는 당내 후보에 대한 공격에 부정적 반응이다. 김 전 지사는 “문재인 고문은 정책 콘텐츠를 놓고 경선해서 민주당의 대선 경쟁력을 높여야 할 동지이자 파트너”라고 말했다. 이에 김 전 지사의 한 참모는 “우리도 추격하는 편에선 앞서 가는 후보와 세게 붙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김 전 지사가 당내 후보에게 상처를 입히는 공격은 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1 원칙으로 내세우니 어쩔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지지율 정체가 이어지면 결국 ‘문재인 때리기’에 나설 수밖에 없을 거란 시각이 우세하다.

    반면 여권의 유력 주자인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하게 비판한다. 출마 선언에 앞서 7월 4일 국회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 4대 불가론’을 주장했다.

    “박 전 위원장은 군사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 말하는 반헌법적 인물, 이명박 정권 실정에 공동책임이 있는 국정 파탄의 주역, 독선과 불통으로 이명박 정권보다 더한 민주주의 위기를 가져올 사람, 미래 가치를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의 그림자다.”

    안철수는 연대와 극복의 대상

    新삼균주의, 서민, 평등…마의 지지율 5% 넘는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가 7월 12일 정두언 의원(새누리당)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출마 선언에서도 그는 박 전 위원장을 재벌과 특권층을 대변하는 기득권자로 규정하며 자신이 진정한 서민의 대변자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대선은 국민 아래 김두관과 국민 위의 박근혜의 대결이며, 국민을 섬기는 김두관과 국민 위에 군림하는 박근혜의 대결이다”라며 “새누리당이 정권을 연장하면 그것은 2기 이명박 정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원장에 대해선 연대의 대상이자 극복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가 “국정 운영은 한 개인이 탁월한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결국 민주당 후보가 야권 전체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 그렇게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정당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성공한 정부를 만들 수 없다는 국정철학을 기반으로 한다.

    도지사직을 중도 사퇴한 것에 대한 역풍을 얼마나 최소화하느냐는 점도 관건이다. 그가 좌고우면한다는 비판을 받아가면서까지 선뜻 출마 선언을 하지 못했던 이유도 가능하면 도지사직 임기 4년의 절반은 채워야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데 있다. 지역 내 여론이 그의 대선 출마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탓에 최소한 그래야 출마의 명분이 선다고 판단한 것. 그럼에도 일부 지역 주민들은 그가 주민에게 했던 두 가지 약속(‘당적을 갖지 않겠다’‘지사 임기를 끝까지 마치겠다’)을 모두 어겼다며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경남에서조차 대선 출마의 당위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는 대선 행보 내내 이 문제로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그의 대선 출마 선언 행사장에는 도지사직 사퇴를 비난하는 시위대와 이를 말리는 지지자들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경남 도민들은 좋건 싫건 김 전 지사의 사퇴로 경남도지사 재보궐 선거를 12월 대선과 함께 치를 수밖에 없다. 도지사 후보군이 넘치는 새누리당과 달리 민주당 등 야권은 인물난에 처했다. 자칫 경남을 여권에 내주며 PK(부산 경남)지역을 공략하려는 야권의 전략에 차질을 가져오는 단서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그가 극복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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