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거름이 많으면 나무가 죽어요 아들딸도 나무와 같습니다”

육사에 7억 기부한 편동수 장군 부부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입력2012-07-20 15: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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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열 논란 행사 주인공은 전두환 아닌 편동수
    • 육사발전기금은 하나회 놀이터 아니다
    • 보은(報恩)하려 10년 전 기부 시작
    “거름이 많으면 나무가 죽어요 아들딸도 나무와 같습니다”

    편동수 박수애 부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30년 넘게 군대 밥을 먹은 한 인사가 6월 13일 전화를 걸어왔다.

    “언론이 장님 코끼리 만지듯 보도하는 바람에 반듯한 길을 걸어온 선배마저 도매금으로 넘어갔어요. 선배가 마음이 아플 겁니다. 그날의 주인공은 전두환이 아니라 편동수예요.”

    편동수(79) 예비역 소장. 생소한 이름이다.

    “생도 욕보인 행위”

    6월 8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정호용 전 내무부 장관과 함께 육사발전기금 200억 원 달성 기념행사에 참석한 후 열병식을 관람했다. 생도들이 ‘우로 봐’를 할 때 전 전 대통령이 거수경례로 답했다. 이 일이 알려진 후 여론이 부글거렸다. “내란 수괴가 사열을 한 것은 생도를 욕보인 행위”라는 비판이 나왔다.



    편 전 소장은 이날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사열대에 서 있었다. 전 전 대통령(육사 11기) 보다 세 기수 아래다. 지금껏 7억 원이 넘는 재산을 육사에 기부했다. 육사발전기금 사상 최다 액수 기탁자. “육사발전기금은 하나회 놀이터”라는 비아냥거림마저 나왔으니 속이 상했을 법도 하다. 전 전 대통령이 육사에 낸 발전기금은 1000만 원.

    7월 6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그의 집을 찾았다. 109㎡(33평) 아파트는 소박하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낡은 가구가 창을 넘어 들어온 볕을 받아 빛난다. 그가 서가에서 책 한 권을 꺼내온다. 10년 전 아내와 함께 펴낸 수필집이다. 표지가 누렇게 바래 있다.

    “아내가 오래전 쓴 글에서 ‘거목에 사는 파랑새 한 쌍’이라는 제목을 따왔어요.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 빛나던 문장인데, 내 삶에서 거목은 국가와 군대를 의미했어. 파랑새는 우리 부부를 뜻했고.”

    부인 박수애(77) 씨는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문사(文士)다.

    “나는 내 인생이 파랑새 한 쌍이 울창하고 단단한 거목 속에서 사랑과 행복을 일구는 것이라고 믿고 살았어요. 거목이 폭풍우, 회오리를 막아줬어요. 살날이 얼마 안 남았잖아. 나라와 군대에 보은해야 해요.”

    은혜를 갚는단 말이 귀에 들어와 박힌다. 부부는 검박하게 살았다. 집안 가구 대부분이 남이 내다버린 것을 집어온 것이다. 방을 돌면서 주워온 가구를 자랑하는 노(老)장군의 얼굴이 꾸밈없이 수수하다. 부인 박 씨가 대화에 끼어든다.

    “군인이 무슨 돈이 있겠어요. 기부하니 장군 출신이라 돈이 많은가보다 그러는데, 그렇지 않아요. 어저께 남편 동기생 부부 여럿이 모였어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탓에 애꿎은 사람이 늘 욕먹는다는 한탄이 나왔습니다. 보도가 이상하게 나와 정말로 서운했어요. 전 전 대통령과 한 묶음으로….”

    남편이 그만하란 표정을 짓는다. 아내가 멈칫하다 말을 잇는다.

    “14기 동기생들 사는 것을 보면 집 한 칸 구한 게 재산의 거의 전부인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아들 결혼할 때 집 팔아 전세 얻어준 장군 집도 수두룩하고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랑 엮어서 그렇겠거니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닌가요?”

    박 씨가 박봉을 모아 돈 불린 얘기를 20분 넘게 했다. 채소, 과일 살 때 흠이 있는 것만 골랐다. 비틀어진 오이는 온전한 것의 5분의 1 가격이다. 썰어서 요리하면 똑같다. 호박, 감자도 마찬가지다. 고추도 딴 지 오래된 것만 구입했다. 값이 싼 고추를 필요할 때마다 구입해 당일에 해먹는 게 이득이다. 남이 5만 원 쓸 때 1만 원이면 족했다고 한다.

    “지금도 마트에 가지 않아요. 가락시장에서 흠 있는 놈을 구입합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 군인 봉급은 형편없었다. 베트남전이 도움이 됐다. 1년을 다녀오면 작은 아파트 한 채 살 돈을 벌었다. 남편은 맹호부대 소속으로 1년씩 두 번 베트남에서 근무했다. 남편이 전장에서 벌어온 돈으로 아내는 흑색·백색전화를 구입해 전화기 임대업을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남편 월급보다 아내 소득이 더 많았다.

    기부는 은혜 갚는 일

    “거름이 많으면 나무가 죽어요 아들딸도 나무와 같습니다”
    10년 전 ‘파랑새 부부’는 ‘거목’에 보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박 씨는 ‘육사신보’에 보낸 글에서 이렇게 썼다.

    “육사에 발전기금을 내는 것은 은혜를 갚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빈곤할 때 육사가 있었기에 가난한 시골청년이 대학교육을 받았고, 장교가 그것도 엘리트 장교가 됐다고 생각하면 보은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흡족할 순 없겠지만 남은 생 나눔을 실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파이팅 대한민국! 아자 아자, 육사여!”

    부부는 편 전 소장의 고희연(古稀宴)을 취소했다. 그러곤 육사에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매년 500만원씩 10년간 기부했다. 돈은 우수 생도들이 외국에 나가 견문을 넓히는 데 쓰였다.

    “육사 다닐 적 미국 육사(West Point) 생도 여럿이 태릉에 왔습니다. 동맹국 육사를 살펴보고자 찾아왔다더군요. 녀석들이 입은 스트라이프 들어간 정복이 정말로 멋있었어요. 우리 생도들이 웨스트포인트를 견학 가는 날이 올까 싶더군요. 1971년 미국 육군대학으로 연수를 갔습니다. 대형 마트 구경을 갔는데, 카트를 끌면서 쇼핑을 해요. 대한민국이 이렇게 살려면 100년은 걸릴 것 같았습니다. 베트남에 갔더니 미군이 고지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전투를 해요. 국군은 C-레이션(미군 전투식량)만 물리도록 먹었거든요. 채소가 그리워 풀을 뜯어먹고 그랬어요. 은퇴하고 나서 해외여행을 많이 했습니다. 어느 날 ‘살날이 얼마 안 남은 내가 볼 게 아니다. 육사 생도가 봐야 한다. 젊고 패기 있으며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가 1950년대 태릉을 찾아온 웨스트포인트 생도처럼 더 큰 세상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뒤로 외국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어요. 대신 생도들을 위해 기부했습니다. 육사를 졸업하면 소대장으로 임관합니다. 사병이 가장 많이 접하는 게 소대장이에요. 반듯한 초급 장교를 키우는 일에 일조하고 싶었습니다.”

    “성공이 아니라 행복에…”

    부부는 지난해 또 다른 결심을 했다. ‘죽을 때 돈 가져갈 것도 아닌데, 이참에 정리를 시작하자.’ 기부처를 고민했다. 결론은 다시 육사였다. 서울 서초구의 시가 7억 원 상당의 상가를 육사발전기금으로 내놓은 것. “상가를 팔지 말고 임대료를 받아 아버지, 할아버지가 육사를 나온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도와주라”는 조건을 달았다. 상가에서는 매달 150만 원씩 월세가 들어온다. 해마다 300만 원씩 6명을 돕기로 했다. 부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누군가 ‘편동수·박수애 장학금’을 받을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면서 매년 1명씩 숙명여대 학생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가 “쓸데없는 말을 뭣 하러 하느냐”고 남편을 핀잔한다.

    ▼ 아들, 딸이 섭섭해하지는 않았습니까.

    부부는 2남 1녀를 뒀다. 손주는 7명. 아내가 답했다.

    “며느리가 ‘어머니, 잘하셨어요. 자랑스러워요’라고 말하더군요. 다들 끼니 걱정 없이 잘삽니다. 거름이 많으면 나무가 죽어요. 아들딸도 똑같습니다. 자식에게 줘봐요. 나무가 잘 자라겠어요. 저는 자식을 잘 키우고 싶어요. 아이들 대학공부까지 시킨 부모라면 한 번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거름이 많으면 나무가 죽어요 아들딸도 나무와 같습니다”

    1990년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의 90회 생일에 참석한 편동수 박수애 부부(왼쪽). 부부의 젊은 시절 모습.



    남편이 대화에 끼어든다.

    “육사 생도는 멸사봉공(滅私奉公)해야 합니다. 군문(軍門)에 들어서면서 나라에 생명을 바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안 죽었잖아. 죽기로 한 맹세를 못 지킨 거야. 약속 못 지켰으니 다른 방식으로 보은해야지. 기부는 사랑이야. 정체성 확립이기도 해. 대한민국 뿌리를 확실하게 박는 게 정체성 확립이야. 기부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표시야. 대한민국에 충성한다는 뜻도 포함돼 있어. 근검, 절약해야 해. 먹는 것도 1식 3찬, 1식 5찬만 해야 해. 시장에서 밥 사먹을 때도 5000원, 7000원이면 족해. 이 책상, 저 책장 다 주워온 거야. 사람들이 내다버리는 멀쩡한 가구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아내가 남편 하는 말이 못마땅한지 웃는 얼굴로 면박을 준다.

    “쓸데없는 얘기하지 말고 물어보는 것만 대답해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데, 당신이 왜 강요를 해요.”

    부부가 티격태격한다.

    ▼ 외람된 말씀이지만 어르신들 사는 모습이 재밌어 보입니다.

    “살면서 제일 행복한 일이 아내를 만난 거요.”

    부인이 살포시 웃는다.

    “그다음이 장군이 됐을 때고. 손자 봤을 때는 이 정도면 인생이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잘사는 비결 일러줄까요? 성공을 제일로 여기면 안 돼. 행복에 초점을 맞추면 욕심이 줄어 마음이 편해. 그렇게 살아보세요. 만사형통(萬事亨通)할 수 있어요.”

    “엉뚱하게 육사 향해 손가락질”

    ▼ 생도들이 ‘우로 봐’ 할 때 전 전 대통령이 단상에서 거수경례를 한 것을 두고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사정이 어쨌든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이 사열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사소한 일에 호들갑을 떨었다고 생각해요. 그 자리 모인 사람 중 제일 선배인데, 어떡해. 또 전직 대통령이잖아.”

    그는 전 전 대통령은 반란의 수괴로 처벌받은 사람이면서 전직 대통령인 양가(兩價)적 존재라고 강조했다.

    “대통령 취임식 때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초청받잖아요. 전직 자격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현직을 만나기도 하고요. 다 같이 사열했는데, 우리는 박수만 쳤어요. 전 전 대통령이 자기 판단으로 거수경례를 한 겁니다. 육사가 잘못했다고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언론이 엉뚱하게 육사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 1980년대 하나회 출신 인사들이 잘나갈 때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았습니까.

    “나는 당파 짓는 것 싫어해. 군인은 당파 짓을 해서는 안 돼.”

    부부는 그린벨트에 땅을 사 10년 넘게 작은 농장을 운영했다. 편동수의 ‘수’, 박수애의 ‘애’를 따 수애원이라고 불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수애원 터에 보금자리주택을 짓는 바람에 농장이 수용됐다. 부부는 2009년까지 매달 한 번씩 육사 생도를 수애원으로 초청해 파티를 열었다. 이때만큼은 서울 강남의 유명한 정육점에서 쇠고기를 사왔다. 생도들은 박 씨를 어머니처럼 여겼다. 아내의 육사 사랑이 남편 못지않다. 정복 입은 생도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뿌듯해진단다. 부부는 상가를 육사에 기증하면서 집을 145㎡(44평)에서 109㎡(33평)로 줄였다. 지금 사는 아파트도 정리해나갈 방법을 찾고 있다. 사망 후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서약도 했다. 군인연금 덕분에 먹고사는 일은 걱정 없다.

    부부는 “대단한 일, 떠벌릴 일을 한 게 아니다. 면구스럽지 않게 기사를 써달라”고 하면서 ‘신동아’ 8월호가 발간되면 둘째 아들에게 한 권 보내달라고 말했다. 차남은 편재필 육군 준장(육사 40기). 후배이자 아들에게 아버지이자 선배가 걸어온 길이 담긴 기사를 보여주고 싶은 것 같았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낡은 가구가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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