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온라인 시장에선 참고 견디는 자만이 이긴다”

일본 소호 무역가 황동명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2-07-23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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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시장에선 참고 견디는 자만이 이긴다”
    “아, 대학 졸업 전에 어학연수는커녕 해외 구경이나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06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의류 유통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은 값싼 중국산 의류의 범람으로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대학 생활 내내 학자금 대출 이자 때문에 아르바이트에 시달렸다. 내놓을 만한 스펙도 없는데 지방대학 공대를 졸업하고 취업할 수 있을까 막막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지 않으면 당장 신용불량자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 그는 도서관에서 함께 토익을 공부하던 친구들과 ‘배째라 여행’을 계획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해외여행. 부산발 오사카행 배에 몸을 실은 그의 손에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단돈 16만 원이 전부였다.

    어릴 때부터 말로만 듣던 ‘보따리상’을 배에서 처음 만났다. 백발의 할머니들이 커다란 여행 가방에 한국산 김과 담배, 양주 등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좋은 한국 물건을 담아 일본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저 할머니들도 하는데 젊은 내가 못 하겠느냐”는 생각에 무작정 대학을 중퇴하고 일본 소호무역에 뛰어들었다.

    무역, 장사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다. 아는 일본어는 “곤니치와”뿐이었고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로 모은 300만 원이 전 재산이었다. 일본 중고 명품 사이트 ‘테타쿠미’와 일본 직수입 속옷 사이트 ‘니꼬걸’, 일본 수출입 무역 대행업체 ‘TH-TRADING’을 운영하며 연 매출 수십 억원을 올리는 ‘젊은 소호 무역가’ 황동명(30) 대표 이야기다.

    “할머니들도 하는데…”



    황 대표가 처음 도전한 것은 일본 운동화 수입. 나이키, 아디다스 등 한국인에게도 인기가 많은 브랜드 운동화가 일본에서 더욱 저렴할 뿐 아니라 종류도 다양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자본금으로 운동화 30켤레를 사와 국내 인터넷 오픈마켓에 올렸다. “좋은 상품이 저렴한 가격에 나오면 당연히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달 넘게 구매자가 없었다. 마케팅을 안 하니 상품이 고객에게 노출되지 않았고 자본이 부족하니 제품 종류, 사이즈가 다양하지 않은 것도 한계였다. 배달 아르바이트로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일본으로 가 더 많은 운동화를 사왔다. 작은 방에 누울 자리도 없이 운동화 상자가 쌓였다. 끊임없이 신상품을 올리며 첫 고객을 기다렸다.

    한 달 반 만에 첫 주문이 들어왔다. 고객에게 신발뿐 아니라 일본에서 사온 기념품을 정성껏 포장해 보냈다. 그렇게 고객이 한 둘 늘어났고 점차 제품도 다양해졌다. 그는 “온라인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경험, 그리고 끈기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첫 아이템으로 손해를 보지 않는 수준에서 이윤을 조금 남기고, 이것으로 일본 출장 경비를 해결하고, 판매량이 늘어 수익이 늘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순서입니다. 그런데 요즘 온라인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몇몇 성공 신화만 보고 처음부터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욕심을 부려 결국 시작 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빨리 변하는 온라인 시장에서는 역설적으로 오래 견디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최소 1년은 시장을 지켜보며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합니다.”

    일본에서 더 많은 제품을 가져오기 위해 지속적으로 현금을 확보할 길을 찾아야 했다. 황 대표가 선택한 방법은 구매 대행, 즉 오퍼상이었다. 일본 상품을 필요로 하는 한국 업체나 개인에게 그들이 원하는 상품을 대신 사다주는 것. 수많은 무역 업체, 사업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단돈 5000원만 남길 테니 우리를 통해 물건을 사라”라고 설득했다. 점차 고객이 늘어나면서 일본 출장 경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황 대표는 “구매 대행은 남보다 몇 배는 더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거나 투자를 받기 전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테리어 소품, 여성용 속옷, 유아용품, 스포츠용품 등 점차 수입 품목을 늘려가면서 사업은 안정을 찾았다. 그러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100엔에 800원 하던 일본 엔화가 2배 이상 뛰었다. 갑작스러운 환율 변동에 대부분 경쟁업체는 최대한 몸을 사렸다. 하지만 황 대표 생각은 달랐다. 그는 개인 적금, 펀드 등을 모두 해지해 공격적으로 신제품을 구비하고 신규 거래처도 늘렸다. 광고비도 두 배 이상 늘렸다. “남들이 머뭇거리거나 뒷걸음칠 때 한 걸음이라도 앞서나간다면 차이를 벌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덕에 속옷숍 니꼬걸은 인터넷 속옷 판매 선두업체로 나섰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오프라인 매장까지 열었다.

    일본은 거리가 가깝고 상품성 있는 제품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으며 한국시장과 유사한 면이 많아 소호 무역을 하기에 좋은 나라다.

    하지만 까다로운 점도 많은데 특히 “일본 비즈니스는 돈이 아닌 명함으로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용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서울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등 도매시장에서는 돈만 있으면 누구든 물건을 구매할 수 있지만 일본 도매시장은 사업자 등록증, 판매 자격증이 없으면 출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값을 높이 쳐준대도 이 제품을 한국에서 어떻게 판매할 것인지 비전을 보여주지 않으면 물건을 주지 않는다.

    일본 중고 명품 ‘뜨는 시장’

    황 대표는 “일본은 판매 파트너와 신용을 통해 시장 가격, 제품 공급 조건 등을 조정하고 단기간에 이익을 내기보다는 오랜 시간을 두고 거래하고자 한다. 그만큼 자기 제품에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일본 제품은 전 세계적으로 시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소호 무역의 첫걸음은 어떤 제품을 판매할지 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황 대표는 “사업에 망하는 첫걸음은 아이템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가 속옷 장사로 돈을 벌었다더라”라는 얘기를 듣고 ‘속옷’이라는 아이템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문이 나는 시점엔 이미 상위 10% 사람들이 벌 만큼 번 이후라는 것.

    그가 최근 집중하는 아이템은 중고 명품, 그리고 레저 시장이다. 일본에서 10여 년 전 고가 명품 바람이 불었지만 장기 경기 침체로 최근 시장에 품질 좋은 중고 명품이 쏟아지고 있다.

    황 대표는 한국의 명품 열풍에 힘입어 질 좋은 일본 중고 명품을 수입해 온라인에서 판매하고 있다. 또한 스크린 골프, 요트, 캠핑, 제트스키 등 한때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레저스포츠가 곧 한국에서도 대중화될 것으로 보고 관련 제품 수입에도 뛰어들 예정이다. 황 대표는 “한 달에 최소 한 번 이상 일본을 방문해 사회 흐름을 살피다 보면 3~5년 후 한국에 어떤 바람이 불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고 전했다.

    선정한 물품을 어떻게 판매할지도 고민거리다. 황 대표는 “남과 똑같은 생각으로 창업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예를 들어 브랜드 운동화 전문 쇼핑몰의 경우 10, 20대가 주 고객이라는 이유로 명동, 신촌 등 ‘젊음의 거리’에 점포를 내서는 승산이 없다. 커플룩, 패밀리룩을 전문으로 다루는 등 전 연령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특색을 가져야 한다. 또한 커피숍도 주 고객층이 20, 30대 여성인 만큼 머그잔과 그릇, 인테리어 소품을 함께 판매하는 것 역시 그만의 아이디어다.

    그는 “요즘 드립 커피 만들기를 가르치는 커피숍처럼, 제품과 서비스를 동시에 파는 곳이 늘어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간의 경험을 두 권의 책, ‘나는 최고의 일본 무역상이다’(2011)와 ‘사업의 성공을 발견한 사람들’(2012)에 담아냈다. 한 달에 두세 번씩 소상공인진흥원, 중소기업청, 대학 등에서 강연을 한다. 그가 노하우를 공개하는 인터넷 카페(‘일본 소무역 정보마당’)의 회원은 1만8000명 이상이다.

    2011년 7월부터는 매달 20~30명씩 ‘일본 오사카 시장 탐방단’을 꾸려 ‘실습강의’까지 한다. 이들과 함께 5박 6일 동안 일본 도매시장을 탐방하고 시장조사를 하는 것. 탐방단 구성원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학생부터 50, 60대 주부까지 다양하다.

    “온라인 시장에선 참고 견디는 자만이 이긴다”
    그의 도움으로 현재 100여 명이 창업에 성공했다. 이 중 상당수가 직장을 다니면서 온라인 사업을 하는 ‘투잡족’이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쌓아온 경험을 남과 나누는 게 아깝지 않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정보는 인터넷에 다 있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꽁꽁 숨기는 건 소용없어요. 노하우를 숨겨봤자 실력자들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들에게 정보를 주는 대신 ‘사람’을 얻으면 저에게도 이익이죠. 저 역시 맨주먹으로 사업을 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은인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렇게 제 경험을 나누다, 언젠가 실무 경험을 갖춘 무역 전문 교수가 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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