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호

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MB 살던 가회동 한옥 불법 숙박업

  • 배수강 기자│bsk@donga.com

    입력2012-08-20 1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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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옥 홈스테이 간판 달고 불법 ‘료칸’ 영업
    • 히노키탕, 유카타(浴衣) 갖춘 한옥 부티크 호텔
    • 1박에 200만 원 훌쩍 넘어…국악 공연도
    • 주인 “청와대, 감사원, 국세청 직원도 자주 와요”
    • 주민들 “가회동 곳곳 요정·호텔 불법 영업”
    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취운정 전경(왼쪽). 이명박 대통령이 기거했던 안방은 ‘왕의 기운이 서린 터’로 소개한다. 객실에는 히노키 욕조가 설치됐다.

    8월 1일 오후 서울에 첫 폭염경보가 발령됐지만 서울 종로구 가회동은 여느 때처럼 외국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헌법재판소 위 돈미약국 골목길에서 의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70대 할머니의 부채질도 빨라졌다. 기자가 가회동 31번지 일대에 대해 물을 때였다. 폭염보다 가회동의 ‘이상한 변신’에 더 열이 나는 듯했다.

    “기자 양반. 밤에 여기 와봐요. 두세 집 중 한 집은 빈집이야. 10년 사이 원주민들은 다 나갔고 지금은 대여섯 가구밖에 없어. 예전엔 동네 사람들이랑 함께 김치도 담그고 꽃구경도 갔었는데 요즘은 그런 재미가 없어. 주민들이 나가고 새로 집을 산 부자들은 밤에 높으신 양반들 접대하느라 동네가 시끄러워. 무슨 잔치를 하는지 음식물 쓰레기나 양주병도 많이 보이고…. 하여튼 동네가 참 이상하게 돼버렸어.”

    7월 25일과 8월 6일 저녁 기자가 찾은 가회동 31번지 일대는 적막했다. 골목 안은 캄캄했고, 집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열대야였지만 기자가 확인한 40여 채의 집 중 절반가량은 계량기가 멈춰 있었다. 10여 채는 계량기만 돌아갈 뿐 불빛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낮에는 카메라를 손에 든 ‘출사족(야외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가회동 31번지는 밤이 되면 스산한 ‘유령마을’이 됐다. 불이 켜진 한옥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변질되는 가회동 31번지

    기자는 7월 초부터 가회동 31번지 일대를 취재하면서 주민들로부터 한 가지 공통된 증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주민이 떠나고 외지인들이 산 한옥 대부분은 별장으로 쓰이는데, 이 중 몇몇 집은 불법 접객 영업을 한다는 것이다. 검은색 세단 3, 4대가 줄지어 골목길을 오르고, 조직폭력배폭처럼 도열해 인사하는 무리도 종종 목격된다고 했다.



    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취운정과 이 대통령의 관계를 소개하며 손님을 모으는 일본의 여행 사이트.

    주거지역인 가회동 31번지 일대에서는 일반음식점업이나 유흥주점을 열 수 없다. 북촌지구단위구역 내에서도 규제가 가장 엄격하다. 제1종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받더라도 그 용도는 한옥어린이도서관이나 마을회관, 한옥서당 등으로 엄격히 규제한다. 2010년 1월부터 북촌지구 내 14개 용도구역을 세분화한 지구단위계획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MB)이 청와대로 이사하기 직전까지 전세로 살았던 가회동 한옥(취운정·현재의 31-53번지)도 이 근처라는 데 관심이 끌려 주변을 탐문했다. 주민들의 목격담도 있었지만 직접 취운정을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취운정 직원: “누구세요?”

    기자: “‘한옥체험살이’ 간판 보고 왔는데요.”

    직원: “지금은 손님이 있어서 둘러볼 수 없어요.”

    기자: “그렇군요. 그럼 어떤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나요?”

    직원: “체험프로그램요? 없어요. 숙박업만 해요. 전화 예약 후 찾아오세요. 구경시켜 드릴게요.”

    며칠 뒤에도 문의했지만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 대통령이 살던 한옥 출입문 2곳에는 ‘취운정(翠雲亭)’ ‘한옥체험살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한옥체험살이(홈스테이)를 운영하면서도 여느 업소와 달리 ‘예약을 해야 들어올 수 있다’는 직원의 답변에 뭔가 이상하다는 의문이 들었다.

    ‘한옥체험살이’는 국내외 관광객을 위해 종로구가 추진하는 홈스테이 사업 브랜드다. 2009년 관광진흥법이 개정되면서 한옥체험업이 신설됐는데, 한옥체험업 운영자 중 신청자를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한옥체험살이 인증을 내준다. 관광객이 일반 가정에서 숙박을 하면서 한국 생활풍습과 문화를 익히는 게 목적. 따라서 한복 입기, 떡 만들기 같은 한 종류 이상 전통문화 체험프로그램과 샤워시설 등 편의시설을 갖추면 된다. 종로구 관내 한옥체험업소 70곳 중 54곳이 한옥체험살이 간판을 달았다. 숙박업을 한다면서 굳이 전화 예약 후 방문하라는 이유는 오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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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운정 직원의 말대로 며칠 뒤 기자는 전화로 방문 예약을 했다. 매니저라고 밝힌 직원은 “보통 (취운정을 찾는) 손님 중 80%가량은 외국 손님이고 내국인은 대부분 유명인들이 찾는다”며 “‘왕기(王氣)’ ‘황제 기운’을 받으려는 손님이 많다”고 자랑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에서 퇴임할 무렵인 2006년 6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약 20개월간 이곳에서 살았다. 당시 언론은 “평소 친분이 있던 인사동 D한정식 이모 사장이 권유했다”며 “부유한 ‘강남 이미지’를 벗고, 선거 캠프인 안국포럼이 위치한 곳과 가까워 가회동으로 이사를 했다”고 보도했다. 종로구는 이 대통령이 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지역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고 나서 새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자 주인 이 사장은 안채(연면적 190.66㎡)와 별채(36.36㎡)를 리모델링했다. 리모델링한 집에는 ‘푸른 구름이 머무는 정자’라는 뜻의 취운정 간판을 달고 2011년 9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취운정은 ‘한옥 부티크 호텔’로 여러 매체와 여행정보 사이트에 소개됐는데, 한옥건축가 조정구 씨와 유명 도예가, 정원사가 리모델링에 참여해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았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 당선으로 유명해진 ‘대권 명당’이 ‘한옥 호텔’로 변신한 것이다. 그러나 가격과 음식 판매에 대한 기사는 없었다.

    “고위층 인사들 자주 들러요”

    8월 1일 기자는 외국 손님 접대가 잦은 지인과 함께 취운정을 찾았다. 대문을 들어서니 왼쪽에 이 대통령이 살았던 본채가, 오른쪽으로 두 개의 별채가 보였다. 건물 가운데는 작은 정원이 꾸며져 있다. 안방과 대청방, 사랑채, 별당채 4개 객실이 마련돼 있었다. 각 방에는 자개장과 고가구가 한옥의 우아함을 더했고, 벽장 창호문에는 민화를 붙여 포인트를 줬다. 이 대통령이 기거했던 안방에는 그가 쓰던 병풍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벽장이 있다. 그러나 각 방 욕실에는 일본 전통 욕탕인 히노키탕이 설치됐고, 옷장에는 유카타(浴衣) 두 벌이 걸려 있었다. 객실 찻잔 세트에는 일본산 녹차 티백이 놓여 있었다. 객실 미니바에는 각종 수입 맥주와 음료(각 1만 원)가 채워져 있었다. 한국문화 체험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직원은 “사장님이 오랫동안 일본에서 료칸(旅館)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료칸 영업’을 한다”며 “‘왕기’도 받고 료칸 체험을 하려는 사람들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숙박 가격은 ‘용침소(龍寢所)’로 통하는 안방이 1박에 159만5000원, 안방과 이어진 별당채는 132만 원, 독립 공간인 사랑채는 99만 원이었다. 부가세 10%와, 2인 기준으로 석식·조식을 포함한 가격이었다. 1명이 추가되면 30만 원을 더 내야 한다. 다음은 직원과의 일문일답.

    ▼ 손님이 많나요?

    “알음알음 손님이 와요. 8월 22일까지 2주간은 방이 (예약손님으로) 다 차 있으니 이후에 오셔야 해요. 물론 주차장도 있고요.”

    ▼ 주로 어떤 분들이 오나요?

    “한국 손님 중에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죠. 청와대나 감사원, 국세청 분들이 와요. 얼굴이 알려진 분들이어서 조용히 만찬을 즐기죠. 국세청에서는 외국 세무 관계자들이 한국을 찾으면 모시고 와요. 최대 20명이 함께 식사할 수 있어요. 어떤 회사는 통째로 빌려서 1박 2일 워크숍을 했어요.”

    그는 “헌법재판소 관계자들과 대기업 A사 임원, M대학 이사장도 자주 온다”며 “대학 이사장은 며칠 뒤에 온다고 예약했다”고 말했다. “저녁이 되면 검은색 세단 여러 대가 골목길을 오른다”는 주민들의 말이 떠올랐다.

    ▼ 식사만 해도 되나요?

    “그럼요. 식사만 하면 가격을 좀 올려 받아요. 보통은 요청하는 수준에 맞춰드려요. (1인당) 20만, 30만 원짜리로 해달라면 거기에 맞춰줘요. 숙박하시는 분들은 10가지 정도 한식 요리를, 만찬만 하면 14가지 요리가 나와요. 사장님이 매일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 최고 좋은 식재료를 사가지고 와서 요리를 해요. 예술이에요.”

    ▼ 술은요?

    “외국 손님들에게는 막걸리를 권해요. 한국 손님들에겐 (증류소주인) ‘화요’를 주로 내놓고요. (밸런타인) 17년산(위스키)도 있어요.”

    ▼ 공연도 한다고 했죠?

    “여류 명창 수제자들이 와요. 3,4명이 한 팀인데 식사할 때 창도 하고 가야금 연주도 해요. 20대 초중반의 어린 친구들도 있고요. 35만~50만 원 정도 잡으면 돼요.”

    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대문에는 ‘한옥체험살이’ 간판이 걸렸지만 방에는 일본 유카타(浴衣)가 갖춰져 있다. 유카타를 입고 산책하는 손님.

    “압구정 현대백화점에서 사와요”

    ▼ 공연 후 따로 (팁을) 챙겨드려야 하나요?

    “영감님들은 따로 팁을 주시더라고요(웃음). 공연하는 어린 친구들한테서 젊은 기를 받아가는가 봐요. 아무래도 어린 친구들이 생기도 있고, 흥도 좋죠.”

    직원은 “20대 초중반의 ‘앙증맞은’ 언니들에게 팁을 주면 더 재밌는 공연을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화 중간 중간에는 이 대통령 얘기도 했다.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 취운정을 찾아와 이 사장에게 만남을 주선해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안방에 이불을 깔아놓은 것도 취운정에 들른 사람이 잠시 누워서 ‘왕기’를 받으라는 의미라고 했다. 일본 손님들은 왕기를 받기 위해 안방에서 얼굴 쪽으로 손바람을 낸다고 했다. 그가 건넨 취운정 팸플릿에는 ‘대통령을 낳은 터’ ‘왕가의 기운이 서린 터’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일종의 ‘MB 마케팅’이었다.

    ▼ 한옥체험살이 간판이 있던데, 식사와 공연이 가능한가요?

    “일반인에게는 장소를 공개하지 않아요. 한옥호텔이고 숙박업이니 간판을 걸어뒀죠. 간판 보고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이 많은데요, 그래도 안 열어요. 예약을 해야 문을 열어줘요.”

    ▼ 취운정 홈페이지에는 가격을 고지하지 않았던데요?

    “가격 (사이트에) 올리면 문의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 왜요. 비싸서요?

    “그럼요(웃음). 대통령이 살던 집에서 대통령처럼, 왕처럼 모시니 한번 경험해보세요.”

    서울시 지원받아 불법영업?

    취운정의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 등에 따르면 이 사장은 2001년 1월과 3월에 이웃한 53번지와 119번지 두 채를 약 6억5000만 원에 구입했다. 서울시로부터 지원금 1억 원을 지원받아 수선을 했고, 이후 53, 119번지를 합쳐 31-53번지로 건축물 지번을 변경했다. 2010년 들어 건물 리모델링을 하면서 지하층(51.82㎡)을 증축해 건축물 사용승인을 받았다. 지하층은 전용조리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사장은 취운정 인근에 또 다른 한옥을 매입해 수리를 준비 중이다. “사람마다 주머니 형편이 다르니까, 1박 숙박비로 20만~40만 원대의 저렴한 한옥 호텔을 운영하기 위해 리모델링 중”이라고 직원은 말했다.

    취운정 홈페이지에도 보이지 않던 취운정 요금은 일본의 한 여행 홈페이지에 나와 있었다. 이 홈페이지는 안방 10만6383엔(약 154만 원), 대청방 9만9291엔(약 143만 원) 등 4개 객실 가격과 함께 5000~1만 엔가량 할인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동시에 ‘한국의 대통령이 거주한 품격 있는 한옥’이라며, 출신지 등 이 대통령에 대한 자세한 인적 사항도 실려 있다. 이 같은 모객 행위는 한옥체험업 취지와도 맞지 않다.

    기자는 8월 6일 저녁에 다시 취운정을 찾았다. 이날은 지인과 함께 ‘손님’ 자격으로 취운정을 찾았다. 직원은 한복을 입고 손님을 맞았다. 별채인 사랑채를 예약했지만 예약 손님이 없어 안방과 이어진 대청마루에서 식사를 하라고 했다. 식사는 전복구이, 참치회, 게장, 구절판 등 10여 가지 한식이 코스 요리로 나왔다. 음식마다 꽃과 나뭇잎 등으로 한껏 멋을 냈다. 맥주 작은 병(330ml) 1병은 1만 원. 직원이 추천한 ‘화요’ 1병은 5만 원이었다. ‘17년산’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주문하지 않았다.

    공연은 명창의 제자라는 중년의 국립창극단 단원 1명이 흥을 돋웠다. 며칠 전 직원이 말한 ‘앙증맞은 언니들’은 스케줄이 맞지 않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약 30분간 가야금 연주와 판소리 몇 소절을 했고, 함께 따라 해보라며 선창을 하기도 했다. 지방 공연을 하고 와서 목이 쉬었다는 그는 요청이 들어오면 공연을 한다고 했다. 1명이어서 공연비는 30만 원이었다.

    취운정의 이러한 업태는 엄밀히 말하면 ‘관광유흥음식점업’ ‘호텔업’에 해당한다. 관광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관광유흥음식점업은 ‘식품위생법령에 따른 유흥주점 영업 허가를 받은 자가 관광객이 이용하기 적합한 한국 전통 분위기의 시설을 갖추고 그 시설을 이용하는 자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노래와 춤을 감상하게 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가회동 31번지는 역사문화미관지구이면서 동시에 북촌지구단위계획 중 주거지역인 북촌1구역이어서 이 같은 영업을 할 수 없다. 종로구 도시개발과·보건위생과 관계자의 말이다.

    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식사는 10여 가지 한식이 나왔다. 35만~50만 원을 내면 국악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MB 집안과는 얘기도 안 해요”

    “한옥체험업 등재 여부를 떠나 손님에게 음식과 술을 팔면 일반음식점 등으로 별도 영업신고를 해야 한다. 주류 판매를 하려면 관할 세무서장 면허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신고 불법 영업이다. 특히 31번지 일대에서의 한옥체험업은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공익 목적일 경우만 운영할 수 있다. 사적 영업행위는 불법이다.”

    한 세무공무원은 “취운정의 업태는 기타서비스업(한옥체험업)이 아니라 준요정업, 유흥주점업으로 업종코드를 부여하는 게 맞는 거 같다”고 말했다.

    다시 취운정 대청마루. 식사가 끝날 무렵 지하 조리실에서 음식을 하던 이 사장이 인사를 했다.

    ▼ 음식을 보고 손님들이 좋아하겠어요.

    “그럼요. 내국인 손님 중에는 만찬을 준비해달라는 요청이 워낙 많아요. 요즘은 특별한 분 이외에는 하지 않고, 숙박하는 분들 중심으로 운영해요.”

    ▼ 방에는 유카타가 있더라고요.

    “네. 입고 식사하고 산책하시라고 일부러 만들어놓은 걸요. 유카타 입고 돌아다녀도 괜찮아요.”

    ▼ 혹시 이 대통령도 온 적이 있나요?

    “아뇨. 예전에 인사동 D한정식집에 자주 왔죠. 전세금 문제 이후로 그 집하고는 안 봐요.”

    이 대통령의 전세계약은 2008년 6월 만료됐지만 새 임차인이 들어오지 않았다. 전세(10억 원)와 매매(50억 원) 모두 찾는 이가 없어 전세금 반환이 미뤄지고 있다고 언론에 보도됐지만, 취운정 직원은 60억 원에 내놓았다고 했다. 비싸게 내놓아 계약이 늦어진다는 보도도 나왔다. 따지고 보면 취운정 전세가는 2년 전보다 3억 원, 매매가는 10년 전보다 1000%가량 올랐다.

    ▼ 전세금 시비가 있었나보군요.

    “전세가 나가야지 전세금을 돌려주잖아요. 이 대통령 짐은 (2008년) 5월까지 여기 그대로 있었는데, (2008년 2월) 취임하자마자 전세금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전세도 안 들어오고 팔리지도 않아 괴로웠어요. ‘세무조사를 받는다’는 둥 별 얘기가 다 나왔죠.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대통령이 살았으니 금방 집이 나갈 줄 알았거든요. 그래도 말이라도 ‘순리대로 하라’고 했으면 덜 섭섭했겠죠.”

    ▼ 전세금은 따로 마련해줬나요?

    “안 줬으면 살아남았겠어요? 청와대 들어가시더니 왜 그 ‘문고리 비서’ 있잖아요(최근 구속된 김희중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이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이 자꾸 전세금을 재촉하기에 ‘집이 나가지도 않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건 사장님 사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위에서 영부인이 다그치니까 그랬겠죠. 결국 다 돌려드렸지만 (이 대통령 내외가) 덕을 베풀지 않더군요.”

    ▼ 사장님 추천으로 이사하지 않았나요?

    “처음엔 기(氣)가 좋아서 왔다는데, 교회를 다녀서 그런지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사 오시기 전에는 오만 데서 풍수 좀 본다는 지관들이 집을 살펴보러 왔어요.”

    기자는 식사를 마치고 31번지 일대를 천천히 산책했다. 가끔 여행 가방을 끌고 어디론가 향하는 여행객 외에는 사람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적막하다 못해 스산했다. 돌아와 한옥에서 히노키탕에 몸을 담그고 유카타를 입고 누우니 기분이 참 묘했다.

    다음 날 아침은 순두부와 된장국, 채소샐러드, 단호박 주스가 조식으로 나왔다. 1박 2일 이용료는 사랑채 방값(부가세 포함 99만 원)과 공연비(30만 원), 맥주값 등 모두 139만 원이었다.

    31번지 일대에서 이 같은 영업행위를 하는 곳이 비단 취운정뿐은 아닌 듯하다. 기자는 31번지 일대를 취재하면서 예전 가회동에 살았던 주민으로부터 사진 4장을 입수했다. 사진 속에는 깔끔한 웨이트리스 복장을 한 여성이 골목길에서 음식을 나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31번지 일대 한옥들 비슷한 영업

    “한 무리의 남자 손님들에게 음식을 접대하는 모습이다. 앞집에서 만든 음식을 웨이트리스가 인근 윗집으로 옮기는 것을 목격했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데 웨이트리스를 고용해 옷 제대로 입히고 음식 서빙하지는 않는다. 2001년 ‘북촌가꾸기 사업’ 시행을 전후해 한옥에 투자하려는 여성들이 대거 몰려왔는데, 이들은 이웃에 살면서 가끔 이런 ‘협업’을 한다.”

    기자는 사실 확인을 위해 해당 집을 찾았으나 집주인을 만날 수 없었다. 이 주민이 말한 북촌가꾸기 사업은 주민들이 한옥을 서울시에 등록하면 시는 수리비와 건축비용을 지원(현재 보조금 6000만 원, 융자금 4000만 원)하고 세금감면 혜택을 주는 대신 일정 기간 철거를 금지해 한옥을 보존하자는 게 핵심 내용이다. 당시 한옥 보전 상태가 좋은 가회동 31번지 일대는 한옥특별관리구역(S1)으로 지정됐다.

    주민들 사이에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2층 한옥을 만든 뒤 요정 영업을 한다는 소문이 2006년부터 나돌았다고 한다. 가끔 민원을 제기해도 담당 공무원은 ‘파티’가 끝난 다음 날에 행정지도를 해 음식·주류를 판매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무허가 식품접객업소에 대한 단속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었다.

    “너무나 조용하던 동네에서 어느 날부터 아침저녁 손님들의 가방 끄는 소리에 술판과 고성방가, 쓰레기 무단투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밤에 막걸리를 판매하는 것도 직접 목격했다. 손님들은 집 앞에서 담배를 피워 담배연기가 고스란히 집으로 들어온다. 주택가에서 주민은 고려하지 않고 이럴 수 있나.”

    실제 종로구청 민원사이트에는 이 같은 내용의 민원이 올랐지만, 구청 답변은 주민들의 주장과 비슷하다.

    “(해당 민원을 일으킨 집을 조사해보니) 홈스테이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행정처분이 곤란하다. 향후 숙박업 영업 발생 시 관련법에 의거 조치하겠다고 통보했다. 현장 확인 결과 막걸리 판매 사실은 없었다.”

    불법 현장 단속의 어려움은 이해하더라도, 사실 이러한 불법 영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해당 구청의 잘못이 크다. 종로구는 한옥체험살이 가정마다 등급을 정해 이용가격을 정해놓았다. 객실요금표를 비치하지 않거나 등록한 영업범위를 벗어난 경우, 기준가격을 넘은 이용료를 요구할 경우 등 행정처분 기준을 담은 ‘한옥체험살이 운영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안’을 만들었다.

    구청 관계자는 “규칙이 제정되지 않았지만 규칙안을 준용한다. 체험살이 신청을 하면 실사를 통해 등급을 매겨 자율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운정에 대해 묻자 “지난해 등급 분류가 끝난 뒤 신청을 해 등급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등급도 부여하지 않았는데 자율규제를 한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답변이었다.

    문제는 또 있다. ‘신동아’ 취재 결과 취운정은 전통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3000만원의 관광진흥기금을 신청해 선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통음식 체험과 고가구, 공연 프로그램을 하겠다고 기금을 신청한 것인데, 문화부와 관할 구청이 불법 영업을 하는 곳에 세금을 지원하는 꼴이 됐다. 문화부 관계자의 말이다.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한옥체험업을 신설했는데 불법 영업을 하면 확인 후 기금 지급을 취소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한옥체험업을 편의시설업에서 이용시설업으로 바꿔 규제하려고 현재 법제처에서 법리 검토 중이다.”

    취운정 사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종 손님을 초대해 만찬을 한 적은 있다. 주무시는 분이 손님을 모시고 와서 만찬을 해달라고 해 준비해준다. 술은 식사를 하면서 한두 잔 마시는 거지 술을 파는 것도 아니다. 숙박 가격은 2명에 100만 원이다.”

    “전통문화 알려야 하잖아요”

    기자가 취운정에서 숙박한 사실을 전하자 ‘전통문화’를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는 고급 한옥호텔이 필요하지 않나. (일본) 교토(京都)에는 일본 문화를 알리는 시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예전부터 북촌을 작은 교토처럼 만들고 싶었다. 구청에도 우린 고가(高價)로 한다고 이미 말했다. 그래서 일본 여행사가 손님을 모아오면 (여행사에) 수수료를 주고 한옥체험을 시킨다. 취운정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호주에서도 문의 전화가 온다. 법과 규정만 지적하지 말고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는 것을 인정해달라. 사실 손님은 그렇게 많지 않다. D한정식집에서 돈 벌어 취운정 직원 월급 줄 정도로 손님은 적다. ‘손님이 많다’고 한 것은 영업 전략 차원이었다.”

    유카타는 한옥체험업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선 “(기자가) 잘못 본 거다. 유카타가 아니라 한복이다”고 했다. 기자는 이 사장과 직원의 녹음 파일을 다시 풀었다. 2명 모두 유카타라고 했다.

    가회동 31번지가 ‘야누스 동네’가 된 이유
    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한옥 멸실 후 신축공사를 하는 모습.

    가회동 31번지는 ‘북촌(北村)’ 중에서도 한옥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옛 한양의 중심부로, 예부터 양반과 고관대작, 학자, 왕족이 살던 곳이었다. 청계천과 종로의 북쪽 동네라는 뜻에서 조선시대부터 북촌으로 불렸다.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고급 주거지였고, 대표적인 한옥 밀집 지역이었다. 주민들은 가회동 31번지가 낮과 밤이 다른 ‘야누스 동네’가 된 이유를 ‘북촌가꾸기 사업’에서 찾는다.

    이 사업은 2001년 12월 서울시가 종로구 사간동 가회동 계동 등 전통한옥 밀집지역을 역사문화미관지구로 공고하면서 본격 시작됐다. 한때 1500여 채였던 한옥이 900여 채로 줄자 서울시는 2001년 ‘한옥등록제’를 뼈대로 한 북촌가꾸기 사업을 시작했다. 한옥을 등록하면 서울시가 수리비와 건축비용을 지원해 수선할 수 있도록 하고, 수선할 때도 규정된 수선 방식에 따르게 해 원주민들이 스스로 한옥을 보전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세금감면 혜택을 주는 대신 일정 기간 철거를 금지해 북촌을 역사문화자원으로 환경정비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외부 투기꾼이 대거 몰려들었다고 한다.

    “2000년경부터 느닷없이 한옥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수십 년간 규제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당시 평당 100만, 200만 원에 집을 파는 원주민도 허다했다. 원주민은 규제가 풀리는지도 잘 몰랐다. 한옥을 산 외부인들은 북촌가꾸기 사업 지원을 받아 새로 2층 한옥을 지었다. 집값은 3배 이상 뛰었다. 투기였다.”

    그동안 언론도 여러 차례 이 문제를 지적했다.

    “한옥을 매입해 보존하겠다는 강남 아줌마들 중에는 고위층 인사와 가족들이 포함돼 있었다. 가회동 31번지 전체 71가구 중 31가구(43.7%)의 주인이 가회동에 살지 않는다(한국일보 2009년 11월 2일자).”

    “가회동 31번지 일대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2000년대 초반에 북촌한옥마을 주인이 대거 바뀌었고 2005년까지 손 바뀜이 격렬해졌다. 2000년을 기점으로 부유층의 유입이 시작됐다(시사저널 1170호).”

    ‘신동아’는 가회동 인근에서 미술관 큐레이터를 한 K씨를 통해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0, 2001년엔 가회동 한옥이 주요 화제였다. 미술관장님 친구들이 모이면 ‘가회동 일대가 규제가 풀려 곧 개발된다’며 ‘서울에서 마지막 부동산 투자 기회’라고 얘기했다. 멀리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 북촌, 특히 가회동 31번지 일대의 집을 몇 채씩 사놓으라고 했다. 머잖아 인사동처럼 땅값이 오를 거라는 얘기였다. 오래지 않아 실제 그렇게 됐다.”

    현재 가회동 주택은 좁은 골목 안 집도 평당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가회동 일대 한옥마을은 3.3㎡당 평균 3000만~5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가회동 일대 집값은 2001년부터 오르기 시작해 2003년경 3.3㎡당 1000만 원을 넘었다는 게 주민들의 전언이다. ‘대통령 프리미엄’이 있다고 하지만 매매가만 놓고 보면 취운정은 10년 사이 1000%가량 올랐다.

    상당수 새 주인이 서울시로부터 수선비를 지원받아 한옥을 새로 지으면서 전통한옥은 많이 사라졌다. 서울시가 발행한 북촌가꾸기 기본계획에는 구체적인 한옥 수선 방법 등이 상세히 소개돼 있지만, 기존 한옥을 허물고 콘크리트로 1층 건물을 지은 뒤 담장 위로 드러난 2층만 한옥(목재)인 ‘기형적인 한옥’도 등장했다. 단란주점과 사무실 등을 운영할 수 있는 제2종 근린생활시설을 허가받은 한옥도 여러 채 등장했다. 매입자들은 세금혜택 지원을 받아 한옥을 수선하면서 자산 가치를 높였지만, 한옥특별관리구역인 가회동 31번지는 낮과 밤이 다른 ‘야누스 동네’로 전락했다. 31번지 일대 주택이 외관상 한옥을 유지한 것은 그나마 소득이었다.


    [‘취운정’ 관련 반론보도문]

    본지는 2012년 9월호 「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제하의 기사에서 취운정의 각 방에 유카타가 걸려있고 욕실에는 일본 전통 히노키탕이 설치되어 있으며, 저녁식사와 주류 및 공연 등을 제공하는 것은 불법 영업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취운정 측에서는, 취운정에 걸려 있는 옷은 고전한복집에서 제작한 개량한복이고, 욕실에 설치된 히노키탕은 편백나무소재로 만든 욕탕으로 일본 전통과 무관하며, 저녁식사, 주류 및 공연 등은 한옥체험업의 일환으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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