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호

“미국 뉴욕주法 준거법으로 계약할 필요”

유로존 위기 넘는 또 다른 시각

  • 문병순| 선임연구원 psmoon@lgeri.com

    입력2012-08-22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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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별 국가 유로존 탈퇴 시 결제통화 바뀔 가능성
    • 합의 없는 유로존 해체…법적 분쟁 발생할 수도
    • 그리스 일방적 유로존 탈퇴는 EU법 위반
    • 특별법 제정으로 ‘만약의 상황’ 대비해야
    유로존 위기로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6월 말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EU 차원의 예금보장, 부실 은행 구조조정 등을 수행할 은행동맹(banking union) 설립과 은행에 대한 직접 지원 등 보다 진전된 유로존 위기 해법이 도출되긴 했다. 그러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분리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유로존 금융시장의 불안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상황이다. EU 정상회담 이후에도 투자자들은 유로화의 미래를 우려해 유로존에서 벗어나 있는 스웨덴, 덴마크, 그리고 스위스 국채를 선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의 국채 금리는 마이너스를 지속할 정도다.

    그리스뿐 아니라 EU 정부의 취약국 지원에 반대하는 핀란드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예측기관인 이코노믹 아웃룩 그룹(Economic Outlook Group)은 내년 말까지 유로존을 이탈하는 나라가 출현할 확률을 50%로 관측하고 있으며, 영국 은행들은 유로존 회원국들의 이탈을 가정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고 있다.

    결제통화 변경 가능성

    만약 유로 재정위기가 그리스 등 개별국의 유로화 탈퇴나 유로존 전체의 해체와 같은 결제통화 변경(redenomination)에까지 이른다면 기업들도 직간접적인 경제적 충격뿐 아니라 법적인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결제통화 변경은 계약의 효력, 신구(新舊) 통화 간의 결제통화 결정, 통화 가치 기준일 등과 같은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우리 기업들도 이러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기에, 유로존 결제통화 변경과 그에 따른 법적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유로 위기가 심화될 경우 유로존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 그리스와 같은 개별국의 유로존 탈퇴, 그리고 유로존 전체의 붕괴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먼저 그리스의 예를 통해 개별국의 유로존 탈퇴가 야기하는 법적 리스크를 살펴본다. 시장은 이미 그리스 탈퇴 가능성을 심각하게 인식해왔다. 2011년부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이 거론되자 투자자들은 결제통화의 변경에 대비하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 국채를 매수할 때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발행된 국채를 매수하는 것이다. 그리스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국채는 그리스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이다. 따라서 유로존 탈퇴 후 유로화가 아닌 그리스의 새로운 통화로 결제할 가능성이 있다. 또 국채 만기를 연장해 실질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반면 영국법이 준거법인 국채는 그리스가 일방적으로 유로존을 탈퇴해도 영국의 통화법(Law of Currency)과 EU법에 따라 유로화로 지급받을 확률이 높다. 투자자들이 영국법에 의한 그리스 국채를 선호하자 이 국채의 가격이 그리스법에 근거해 발행된 국채 가격의 두 배에 달하게 되었다. 지난해 그리스 국채의 94%가 그리스법, 나머지 6%가 영국법에 의해 발행되었다.

    영국법 ‘준거법’으로 활용해야

    그리스의 채무부담을 덜어주고 민간투자자의 손실부담을 높이기 위해 올해 3월 EU는 민간 보유 국채를 새로운 국채로 교환하는 채무재조정을 실시했다. 이는 민간 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국채 교환안이었는데, 새로운 국채 액면 가치의 46.5%에 불과했다. 또 채권자 과반수가 동의할 경우 그리스 정부가 채권의 조건을 변경할 수 있는 집단행동조항(Collective Action Clauses)이 포함되었다. 투자자들로서는 가혹한 조건이어서 교환이 실패할 우려도 제기됐다.

    그러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민간투자자들 대부분이 국채 교환에 응해 참여율이 84%에 달했다. 투자자들이 이런 국채교환에 응한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국채의 준거법이 영국법이기 때문이다. 준거법이 영국법이라면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한 후에도 영국법에 따라 유로화로 결제될 가능성이 높다.

    결제통화 변경에 대한 국제법상 원칙인 발권국가의 통화변경권(Lex Monetae)에 따르면, 계약에 표기된 결제통화를 발행한 나라가 통화변경권을 가진다. 즉 발권국가는 통화주권이 있기 때문에 발권국가가 통화를 변경할 경우 계약 당사자들은 해당 발권국가가 발행한 새로운 통화로 결제해야 한다. 다만 당사자들이 계약할 때 결제통화 변경 시 특정 통화로 결제하기로 합의했을 경우에는 그 합의에 따른다.

    원칙적으로 이러한 발권국가의 통화변경권은 그리스 국채에도 적용된다. 이것만 놓고 보면 그리스가 유로존을 일방적으로 탈퇴하면 그리스 정부는 ‘원칙적으로’ 그리스 통화로 원리금을 지불할 수 있는 것이다.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그리스 국채에 대해서도 발권국가의 법적 권한을 인정하는 원칙이 적용된다면 그리스 정부는 유로화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이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한 그리스 국채를 선호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영국이 EU 회원국이라는 점 때문에 그리스가 일방적으로 탈퇴한다면 발권국가의 퉁화변경권이 적용되지 않고 여전히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한 국채에 대해서는 유로화로 지불해야 한다. 그리스의 일방적 탈퇴가 EU법 위반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EU법상 유로존 탈퇴 규정은 없고 EU 탈퇴만 가능하기 때문에, 유로존만 탈퇴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는지 불확실하다. 법률가들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일방적으로 탈퇴하려면 EU에서 아예 탈퇴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보고 있으며, 대체로 그리스의 일방적인 유로존 탈퇴는 EU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 국채 교환은 그리스 정부의 부담을 크게 줄였다. 또 시장이 우려한 결제통화 변경에 따른 법적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를 불식하는 구실도 했다. 다만 국채의 준거법이 영국법으로 바뀜에 따라 그리스 정부의 실질 채무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이는 유로존 탈퇴 후 그리스 신통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로서는 일방적으로 유로존에서 탈퇴하기가 쉽지 않다. 일방적 탈퇴는 EU법 위반이기에 그리스화로 결제할 것을 요구할 수 없으며, EU무역과 금융의 중단이라는 법적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EU에 있는 그리스 자산이 동결될 가능성도 있다.

    살펴본 대로 유럽 기업들과 투자자들은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함으로써 그리스와 같은 취약국의 결제통화 변경 리스크를 헤지(hedge)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도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계약을 맺고, 나아가 결제통화는 유로존에서 탈퇴한 경우에도 유로화로 지급한다는 조항을 포함하면 어느 정도 위험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일방적 탈퇴 어려울 듯

    더구나 EU와 유로존 출범 이후 유럽 역내 통합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어서 그리스의 일방적 탈퇴는 그리스와 EU 양측에 큰 경제적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도 그리스는 금융결제와 유동성 지원 등 다양한 측면에서 EU에 의존하고 있어 일방적인 탈퇴가 쉽지 않다. EU 정부로서도 그리스 탈퇴 시 파생상품 시장과 은행 간 대량결제시스템(Target 2)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에서 큰 손실이 발생된다. 국제금융협회(Institute of International Finance)는 그리스의 일방적 탈퇴 시 Target2에서만 1500억 유로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 유로존 회원국 손실은 총 5000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EU 정부는 그리스를 최대한 지원하고, 그리스는 유로존에 잔류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탈퇴가 불가피하더라도 EU 정부와 합의한 뒤 탈퇴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그리스 같은 개별국가의 유로존 탈퇴가 아니라, 아예 유로존 자체가 해체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그리스의 탈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제적 충격과 법적 리스크가 발생한다. 유로 회원국들 간 합의에 의해 유로존이 붕괴된다면 합의에 따라 법적 문제들이 처리될 것이지만, 무질서하게 붕괴한다면 다양한 법적 문제가 발생한다.

    2011년 우리나라의 유로존 수출 비중은 7.4%로 상당한 규모다. 우리 기업에 유로화 붕괴는 간과할 수 없는 리스크다. 이러한 문제는 유럽 기업들 간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럽에 수출하는 우리 기업과 유로존에 진출한 우리 법인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먼저 제기되는 법적 문제는 계약의 이행불능이다. 결제통화 변경은 계약의 효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단순히 결제통화 변경만으로 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유로존 붕괴 그 자체만으로 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1999년 유럽 각국의 통화가 유로화로 변경되었을 때와 2005년 터키가 통화를 변경했을 때도 국제적 계약을 이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로존 붕괴 시 일부 회원국들이 외환통제를 실시한다면 계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 기업이 스페인에 수출하고 유로화로 지급받기로 했다고 치자. 계약 체결 직후 유로존이 붕괴되면서 스페인 정부가 새로운 통화 발행과 동시에 외환통제를 실시한다면 스페인 기업은 유로화와 새로운 스페인 통화 둘 다 지급할 수 없게 된다. 결제가 불가능해져서 계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계약의 효력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다음으로 유로화 자체가 사라진다면 유로존 해체 이후 어느 나라 통화로 결제할지를 결정하기 어렵다. 사전에 합의하지 않았다면 결제통화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야기될 수 있다. 예컨대 우리 기업이 독일에 유로화로 수출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후 유로존이 붕괴되어 독일이 자국 통화를 새로 발행한다면 유로화와 독일의 신통화 가운데 어느 통화로 결제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설사 유로존 붕괴를 예상해도 계약 당사자들이 어느 나라의 통화로 결제할 것인지 사전에 합의하기도 어렵다. 유로존 해체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사전 합의도 어려운 것이다.

    유로존 해체를 가정해 사전에 결제통화를 지정해도 리스크는 남아 있다. 유로화로 결제하거나 유로화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독일 신통화를 지급통화로 한다는 내용으로 계약서를 수정한다고 하더라도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유로존 붕괴 후 독일 정부가 발행하는 통화 가치가 급변할 가능성이 있으며, 현재로서는 그러한 환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도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이나 미국과 같이 아예 유로권 이외 지역의 통화를 결제통화로 선택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지만 외국통화 사용에 따른 불편이 예상된다. 이처럼 유로존 붕괴는 설사 시장이 예견할 수 있는 사건이라 하더라도 법적 문제를 대비하기 쉽지 않다. 현재 EU 내에서 결제통화로 유로화 대신 달러나 파운드를 요구하지는 않고 있지만, 상황의 진전 여부에 따라 이런 요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유럽 은행들의 선택

    유럽 은행들은 역내 통합 진전에 따라 본국에서만 영업하지 않고 유로존 각국에 활발히 진출해 있다. 이런 은행들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유로존 붕괴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몇 가지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먼저 취약국 국채와 채권에 대한 충당금 비율을 높이고 은행의 자본금 규모를 늘렸다. 다음으로 유로 각국별로 채권액과 채무액을 일치시키는 자산부채 일치(Asset Liability Matching)를 시행했다. 그리스와 같은 취약국의 채권액과 채무액을 일치시켜서 그리스에 대한 대출(채권)을 다른 나라의 예금(부채)에서 조달하지 않고 그리스의 예금이나 그리스에서 발행하는 채권으로 조달하는 것이다.

    개별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자산부채 일치는 유럽 내 자본 이동을 억제하고 취약국의 신용공급을 감소시켜 유로존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이런 부작용에 개별 금융기관과 기업 입장에서는 유로존 붕괴에 대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다음으로 취약국과 관련된 계약을 체결할 때 준거법을 영국법으로 하고, 유로존 해체와 취약국의 유로존 탈퇴 시 특정 통화로 결제할 것을 사전에 지정하고 있다. 물론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더라도 유로존 붕괴에 대한 법적 리스크를 전부 해결할 수는 없다. 영국 역시 EU 회원국이므로 영국법원은 EU의 향후 결정을 좇아 결제통화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EU 기업의 입장에서는 법률 서비스가 가장 발달한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밖에 없다.

    유로존 붕괴 시 우리 기업들도 다양한 리스크에 직면할 것이다. 이러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먼저 결제통화 조항과 준거법 조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유로존 붕괴를 상정한다면 독일처럼 통화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의 통화를 결제통화로 미리 지정할 필요가 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상정해 결제통화를 미리 지정하는 것이 계약상 쉽지는 않지만 법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상대방이 동의한다면 계약에 가치유지조항(value maintenance clause9·지급통화의 가치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금과 같은 실물이나 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결제금액의 실질 가치를 유지하는 조항)을 도입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준거법을 영국법으로 정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EU 외 지역인 미국 뉴욕 주법 등을 준거법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영국이 EU 회원국인 이상 EU의 결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EU 회원국들 간의 합의에 의해 유로존이 해체될 경우 그 합의가 우리 기업에 불리하다 하더라도 영국법원은 이를 강제할 것이다. 유로존 전체가 해체될 경우에는 영국법이 불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은 아예 영국법이 아닌 미국 뉴욕 주법을 준거법으로 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준거법을 미국법으로 선택할 경우 미국은 EU법에 구속되지 않으므로 결제통화는 일반적인 법리와 준거법 원칙을 따르게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것보다 우리 기업에 유리할 수 있다. 현재 무역과 금융계약 관행상 대부분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고 있지만 유로존 위기가 해체 수준으로 심화될 경우 미국 뉴욕 주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유로존 기업과 거래할 때 EU 역외 지역에 존재하는, 유로화로 표시되지 않은 자산을 담보로 설정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에 예치된 달러 예금을 담보로 설정해 유로존 붕괴 시 담보로 설정된 달러 예금으로 결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 물건을 사주는 유럽 기업의 입장에서 굳이 이러한 조항을 도입할 유인이 없다는 게 문제다. 특히 기존 계약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기존 계약을 변경해 이런 조항을 도입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향후 체결할 무역 계약에서는 협상의 여지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이들 조항을 도입해 결제통화 변경에 따른 위험을 줄여야 한다.

    특별법으로 ‘차별’ 방지

    우리 정부도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미국 뉴욕 주는 1997년 7월에 유로화 도입 당시 유럽 각국 통화가 유로로 변경되어도 계약의 효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특별법을 제정했다. 같은 이유로 유로존이 붕괴한다면 유로존 표시 계약이 법적으로 유효한지, 유효하다면 어느 나라의 통화로 결제되어야 하는지 등을 특별법으로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지 않고 유로화 관련 계약을 모두 영국 법원과 미국 법원의 판단에 맡긴다면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이 차별을 받을 수도 있다. 유로존 기업과 체결한 계약의 준거법을 외국 법으로 지정한다면 우리의 특별법이 효력을 미치지 못하겠지만, 준거법을 지정하지 않은 계약에 대해서는 우리의 특별법이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금융기관의 유로존 리스크, 과소평가 가능성”

    최근 금융당국은 유로존 위기와 관련해 여러 차례 외환 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행했다. 금융당국은 우리나라 금융기관과 유럽 금융기관 간의 직접적인 거래액이 크지 않아 위험 역시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2012년 4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은행의 외화 차입액 1297억 달러 가운데 유럽에서 차입한 금액은 413억 달러(31.9%)다. 액수만 놓고 본다면 크지만 이 가운데 유로존이 아닌 영국과 미국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한 금액이 크기 때문에 유로존에 대한 직접 차입액은 이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취약국인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지역에 대한 노출 비중은 3.2%에 불과하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유로존에 대한 직접적인 리스크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유로존이 해체될 경우 유럽 금융기관에 대한 거래액이 적다고 하더라도 글로벌 금융 불안과 그에 따른 간접적인 위험도 우려된다.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우리 금융기관과 미국 부실 금융기관 간의 직접적인 거래는 많지 않았지만, 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유동성뿐만 아니라 자본 규모가 위기를 감당할 수 있는지 여부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의 주요 은행들은 파산할 경우를 상정한 ‘가상 회사 청산안(living will)’을 2012년 7월 1일 제출했다. 가상 회사 청산안에 근거해, 미국 주요 은행과 금융당국은 자본이 충분하기 때문에 유로존 위기에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먼 존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유로존 해체 시 장외파생상품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과소평가했다”면서 자본을 더 확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금융당국도 존슨 교수의 견해대로 유로존 위기의 간접적인 충격을 포함한 보다 현실적인 스트레스 테스트가 필요하다. 스트레스 테스트의 결과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면 그에 적합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유로존과 직접 관련된 자산에만 충당금을 적립할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산에도 충당금을 적립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자본 확충과 관련해 전환사채의 일종인 조건부 자본(contingent capital) 도입이 필요하다. 현재 상법상 조건부 자본의 발행이 허용되는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조건부 자본의 발행을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조건부 자본을 발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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