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호

소련보다 늦게 출발 그러나 다탄두로 역전승

미국의 미사일

  • 정홍철 / 스페이스스쿨 대표 wrocket@chol.com

    입력2012-08-28 09:1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은 국가 안보 차원뿐만 아니라 우주 개발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미국의 ICBM은 액체 추진제 미사일에서 시작해 고체 추진제 미사일로 변모했고 이 기술은 직간접적으로 우주발사체에 전용되었다.
    • 국가 운명을 걸고 소련과 벌인 개발 경쟁에서 먼저 성과를 내기 위해 미국의 과학기술을 총동원한 것. 파괴의 무기이자 우주 개발을 가능케 한 두 얼굴을 가진 미국의 ICBM 개발사를 살펴본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독일로부터 단거리탄도미사일인 V-2 관련 과학자와 기술자를 확보했지만 탄도미사일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했다. 명중률이 낮은 탄도미사일보다는 기존의 장거리 폭격기를 훨씬 값싸고 믿을 만한 무기로 평가했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탄도미사일 개발은 지지부진했다.

    1946년부터 미 공군은 장거리 미사일 연구를 시작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미사일의 추진 장치는 로켓이 아닌 공기흡입식의 램젯(ramjet) 엔진이었다. 연료의 연소를 돕는 산소를 몸체에 지니고 비행해야 하는 로켓에 비해 주위의 공기를 이용하는 제트엔진은 효율성이 좋아 장거리 비행에 적합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북미항공(North American Aviation)사의 MX-770, 이른바 ‘나바호(Navaho)’ 프로젝트다.

    하지만 복잡한 구조로 인해 개발이 쉽지 않았는데 문제는 램젯이 아닌 로켓엔진에 있음이 발견됐다. 나바호의 램젯 엔진은 마하 3의 환경에서 작동해야 한다. 이러한 속도를 내려면 나바호에는 보조 추진장치로 로켓엔진을 붙여야 했다. 이 때문에 나바호를 만들려면 보조 추진장치인 로켓엔진을 먼저 완성해야 했다.

    북미항공의 로켓다인 사업부는 V-2 로켓을 토대로 나바호를 위한 여러 로켓엔진을 개발했다. 12년간 계속된 나바호 프로젝트는 1958년 탄도미사일에 밀려 중단됐다. 그러나 보조 추진장치로 개발된 로켓엔진 기술은 다른 로켓 개발에 전용돼 ICBM과 우주발사체 개발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6·25 계기 탄도미사일 개발 박차



    소련보다 늦게 출발 그러나 다탄두로 역전승

    미 공군이 최초로 연구한 장거리미사일 나바호. 램젯의 나바호는 개발이 중단됐지만 나바호를 이륙시키기 위해 개발한 액체 로켓엔진은 ICBM에 전용되었다.

    나바호에서 파생된 로켓엔진 기술은 미 육군의 레드스톤 단거리미사일에 가장 먼저 이용되었다. 레드스톤은 6·25전쟁 발발 후 핵탄도미사일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미국이 개발한 최초의 핵미사일이다. 6·25전쟁은 미국 미사일 개발에 ‘터닝 포인트’ 역할을 했다.

    V-2의 미국판이라 할 수 있는 레드스톤은 2t의 핵탄두를 사거리 800km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 그러자 원거리 공격을 하는 공군이 반발해 사거리가 320km로 축소되었다. 이 마찰을 계기로 320km 이하는 육군, 이상은 공군이 작전하는 영역으로 정리됐다. 미국에서 ICBM 개발은 공군의 고유 영역이 되었다.

    사거리가 짧은 레드스톤으로 소련을 위협하려면 소련과 멀리 떨어진 미국에 배치할 수는 없었다. 유럽에 배치해야만 했다. 그러나 유럽에 배치된 레드스톤은 미국에 있는 것처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운영할 수 있는 대륙 간 비행 장거리탄도미사일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었다.

    미 공군은 제트추진을 하는 나바호 사업 외에도 MX-774 계획으로 로켓추진용 장거리탄도미사일의 가능성을 연구하다 1947년 중지한 바 있다. 6·25전쟁 직후 공군은 장거리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MX-1593 계획을 추진했지만, 이 사업의 우선순위는 낮았다.

    1953년 소련이 수소폭탄 시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은 인식을 바꿨다. 소련에 맞설 군비 증강을 하려면 최우선으로 ICBM을 가져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의 미사일은 유도시스템이 발전하지 못해 명중률이 매우 낮았다. 하지만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수소폭탄을 탄두로 달아 발사하면 명중을 시키지 못해도 적의 전략시설을 제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공군이 주도한 ICBM 개발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이 주춤하고 있던 1957년 10월 소련이 ICBM인 R-7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1호 인공위성을 쏘아올림으로써 미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소련과의 ‘미사일 갭(missile gap)’을 메우는 것이 가장 화급한 일이 되었다. 미국은 기존의 로켓 기술을 총 집합하고, 개발하고 있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생산해 긴급 배치했다. 2~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완성한 IRBM이 공군의 ‘토르(Thor·천둥의 신, 전쟁의 신)’와 육군의 ‘주피터(Jupiter)’다.

    토르 IRBM은 1.4Mt의 위력을 가진 수소폭탄 탄두를 달고 영국에서 모스크바를 타격할 수 있었다. 이때의 원형 공산오차(탄두의 절반이 중심에서 빗나가는 정도)는 2km 정도였다. 미국은 1958년부터 토르 IRBM 60기를 영국에 긴급 배치했다. 토로는 미국이 ICBM을 개발해 본격 배치에 나서는 1963년부터 퇴역하게 된다.

    미 육군이 레드스톤의 발전형으로 개발한 주피터 IRBM은 사거리가 2400km에 달했다. 주피터는 개발 후 공군으로 넘겨져 1959년부터 45기가 이탈리아와 터키에 배치되었다. 소련은 터키와 이탈리아에 배치한 주피터에 자극받아 1962년 미국의 턱밑인 쿠바에 그들의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했다.

    그에 대해 미국이 강력히 대응함으로써 핵전쟁을 뜻하는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것 같은 전운이 감돌았다. 이 쿠바위기는 소련이 쿠바에 대한 핵미사일 배치를 포기하고 미국은 이탈리아와 터키에 배치한 주피터 IRBM을 철수하면서 마무리됐다. 미국이 소련 인근 국가에 배치한 IRBM을 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본토에서 모스크바를 때릴 수 있는 ICBM을 개발해 실전 배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쿠바위기가 진행될 때 미국은 미국 최초의 ICBM인 아틀라스를 완성했다.

    1세대 ICBM, 아틀라스·타이탄

    소련보다 늦게 출발 그러나 다탄두로 역전승

    미 ICBM의 원조 아틀라스. 혁신적인 로켓임에도 군사용 미사일로는 부적합해 조기에 퇴역했다.

    ICBM은 사거리 5500km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가리킨다. 이 미사일을 개발할 때 가장 큰 문제점은 탄두의 중량이다. 1950년대 초 미국이 최초로 실험한 수소폭탄의 무게는 62t이나 되었다. 이렇게 무거운 폭탄은 탄두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1~3t 정도로 줄여야 했다. 미국이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수소폭탄의 경량화였다.

    1951년의 연구에서, 3t의 탄두를 9260km까지 운반하려면 544t의 추력을 가진 48m 길이의 대형 ICBM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ICBM 개발에는 10년 이상이 소요된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연구해보자 탄두 중량의 경량화가 예상보다 빠를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1953년 미국은 ‘1960년쯤에는 1메가톤의 폭발력을 가진 680kg의 수소폭탄 탄두(열 핵탄두)를 개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틀라스’로 명명한 ICBM 개발 계획이 본격화했다.

    1954년 미국은, 아틀라스의 제원을 1.3t의 탄두를 달고 1만190km를 비행하며, 길이는 25m, 추력은 160t으로 잡았다. 사업을 시작할 때에 비하면 요구성능은 절반 정도로 줄었지만, 개발기간까지 줄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틀라스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기술 개발이 선행돼야 했다.

    미사일이 대륙 간을 날아가려면 초속 7km란 놀라운 스피드가 필요하다. 이 속도를 내려면 아틀라스에 탑재하는 로켓은 기존 로켓과는 다른 기법으로 제작해야 한다. 우선 가벼워야 한다. 가볍게 만들수록 로켓의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지기 때문이다. 로켓은 몸체 안에 연료(RP-1이란 고순도 등유)와 산화제(액체산소)를 싣고 발사된다. 발사되는 순간부터 전체 중량의 70~80% 이상을 차지하는 연료와 산화제가 빠르게 소모된다. 이 때문에 로켓은 더욱 빠른 속도를 낸다. 속도가 붙는 것이다.

    아틀라스 개발의 책임자인 카렐 보사르트(Karel Bossart)는 로켓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추진제(연료와 산화제) 탱크에 주목했다. 항공기 전문가인 그는 보강 구조물이 없는 얇은 스테인리스 스틸만으로도 추진제 탱크의 외피를 충분히 튼튼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았다. 요즘의 맥주캔처럼 내부에 가스를 채우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 스틸-풍선형으로 불리는 이 방법은 당대 최고의 로켓 전문가인 폰 브라운도 성능을 의심할 정도로 혁신적인 것이었다.

    다음으로 로켓을 다단계로 만드는 것에 주목했다. 하나의 로켓으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을 때는 2개 이상의 로켓을 병렬로 연결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를 위해서는 ‘단 분리’와 고고도에서의 2단을 점화하는, 당시로서는 어려운 기술이 요구되었다. 아틀라스는 스틸-풍선형으로 제작한 가벼운 몸체 때문에 3개 엔진 가운데 2개를 비행 중에 분리해 버리는 다이어트를 해도 충분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아틀라스는 병렬로 로켓을 연결하지 않았다. 로켓 3개를 옆으로 묶었다. 지상에서 발사할 때 아틀라스는 3개 로켓엔진을 모두 점화한다. 그리고 비행을 해, 추진제가 상당 부분 소모되면, 2개 로켓엔진을 분리해버린다. 아틀라스는 1개 로켓엔진만 달고 목표물까지 날아가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으나 지금 보면 조금은 이상한 ‘1.5단 분리’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아틀라스의 추진제로는 V-2나 그것을 미국형으로 만든 레드스톤에서 사용한 ‘알코올+액체산소’보다 성능이 좋은 ‘케로신(RP-1)+액체산소’ 조합으로 선택했다. 액체산소는 다루기가 어렵고 장기 보관할 수 없는 단점이 있지만 엄청난 가속력을 낸다는 결정적인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엔진 개량과 유도장치의 개발이 지지부진해 일정은 계속 연기됐다. 아틀라스 개발에만 목을 맬 수 없는 공군은 대안을 찾아야 했다.

    소련보다 늦게 출발 그러나 다탄두로 역전승

    장기 보관이 가능한 액체 추진제를 가진 타이탄-2. 가장 오랫동안 실전에 배치되었던 ICBM이다.

    미국은 아틀라스의 백업용으로 보수적인 기술을 이용한 타이탄 ICBM 개발을 동시에 진행했다. 타이탄의 첫 번째 모델인 타이탄-1은 2단형으로 케로신+액체산소를 사용한다. 추진제 탱크는 기존 방식으로 제작한 평범한 ICBM이었다. 그럼에도 타이탄의 긴급 개발은 쉽지 않았다.

    아틀라스는 1957년부터 다양한 버전을 생산해 무려 158회 시험발사했다. 타이탄-1이 1959년부터 57회 시험발사를 한 다음에 개발 성공 판정을 받았다. 초기 발사 성공률은 아틀라스가 69%, 타이탄-1이 67%를 기록했다.

    아틀라스-A, B/C 다음에 아틀라스-D가 완성됐다. 1959년부터 긴급하게 실전 배치된 아틀라스-D는 1.5단형 액체로켓으로 길이는 23m, 직경은 3m, 중량은 118t, 사거리는 1만4000km, 원형 공산오차는 1400m에 달한다. 아틀라스-D는 1.4메가톤 위력의 W-49 열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었다. 1962년 실전 배치된 타이탄-1은 길이 31m, 직경 3m, 무게 105t, 사거리 1만km의 2단형 액체 로켓으로 3.75메가톤 위력의 W-38 열핵탄두를 탑재했다.

    1세대 ICBM은 반(半)지하 사일로나 지하 사일로에 보관되었다. 하지만 장기 보관이 어려운 액체산소 때문에 실효성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ICBM은 연료를 주입하는 데 15분 이상이 걸리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밖으로 끄집어내 발사해야 하므로, 소련의 선제공격에 맞서 반격하는 데 30분 이상이 걸렸다.

    소련의 공격에 즉각 대응하려면 지하 사일로에서 바로 ICBM을 발사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이탄-1 개발 초기부터 엔진 개발을 맡은 에어로제트(Aerojet)는 특수한 추진제를 연구했다.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저장성 추진제나 별도의 점화장치 없이 자동 점화되는 자발 착화성(hypergolic) 추진제 개발이 그것이었다.

    에어로제트는 케로신 대신에 아에로진50(UDMH +히드라진), 액체산소 대신에 사산화질소의 사용을 검토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저장성 추진제를 사용하는 타이탄-2가 개발됐다. 타이탄-2는 버튼만 누르면 지하 사일로에서 60초 내에 발사가 가능했다. 1963년부터 54기가 실전 배치된 타이탄-2는 길이 31m, 직경 3m, 무게 154t, 사거리 1만5000km의 2단형 액체 로켓으로 당대 최고의 파괴력인 9메가톤 위력의 W-53열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추진제에도 문제가 있었다. 독성과 부식성으로 유지보수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 것이다. 추진제 누출로 사일로가 큰 손상을 입어 폐쇄되는 사고도 일어났으므로 ICBM 추진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었다. 해답은 액체가 아닌 고체에서 찾아야 했다.

    고체 ICBM으로 세대교체

    미국의 ICBM에 큰 변혁을 가져온 고체추진제 기술 도입은 1950년대 중반 해군에서 시작되었다. 해군은 육군이나 공군에 비해 탄도미사일 기술 도입의 필요성을 늦게 깨달았다. 해군은 육군 폰 브라운 팀의 도움을 받아 육·해군 공용의 주피터 IRBM 개발에 참여했다. 그러나 곧 주피터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졌다. 파도가 세차게 치는 해상에서 주피터에 액체산소를 주입해 발사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위험하고 취급하기 어려운 것은 액체추진제만이 아니었다. 액체 로켓에 내장된 많은 밸브와 배관, 탱크도 고장 날 수 있었다. 해군은 전투함보다는 잠수함에 미사일을 탑재하길 원했다. 잠수함은 적진 가까이 접근할 수 있고 노출되지 않으니 소형 미사일을 발사해도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길이 18m에 무게가 50t이나 되는 주피터 같은 대형 액체 미사일은 잠수함 탑재에 적합하지 않았다.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위한 최적의 추진제는 고체추진제다. 고체로켓은 밸브나 배관 등 고장이 날 부품이 적고, 연료도 장기간 보관할 수 있으며 점화와 동시에 발사할 수 있다. 하지만 고체로켓 기술은 걸음마 단계였다. 당시의 고체추진제에는, 산화제인 과염소산 암모늄에 연료이면서 결합제인 폴리설파이드(polysulfide) 폴리머를 결합해 연소실에서 특별한 모양으로 굳힌 ‘복합추진제’가 있었다. 산화제와 연료 구실을 하는 니트로셀룰로오스와 니트로 글리세린를 이용한 ‘더블베이스추진제’도 있었다.

    그러나 둘의 성능은 액체추진제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1950년대 초 고체추진제의 성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화학적 발견이 있었다. 폴리우레탄(polyurethane)을 결합제로 사용하고 소량의 알루미늄 가루를 첨가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복합추진제와 더블베이스추진제를 혼합한 ‘복합 더블베이스 추진제’도 개발되었다. 고체추진제의 성능이 50% 정도 향상됐다.

    그러나 그것으로 고체추진 SLBM은 완성될 수 없었다. 로켓의 방향을 조정하는 추력 방향 조종 기술, 원하는 속도에 도달했을 때 추력을 중단하는 기술, 높은 연소열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녹지 않고 작동할 수 있는 노즐 제작, 작고 성능이 좋은 유도장치 개발 등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사거리 2000km의 폴라리스 SLBM 개발은 1957년부터 본격화되었다.

    폴라리스는 1960년 처음으로 잠수함 발사에 성공했다. 그해 11월 폴라리스 A-1이 조지 워싱턴급 핵추진 잠수함에 실려 작전 임무에 들어갔다. 조지 워싱턴급은 탄도탄을 탑재하는 스킵잭급 공격형 핵추진 잠수함을 급히 개조한 것이었다. 1962년부터 생산된 폴라리스 A-2는 처음부터 전략 핵추진 잠수함으로 제작된 이산 알렌급에 탑재되었다.

    그 후 개량을 거듭하면서 폴라리스의 성능과 파괴력, 명중 정밀도 등이 향상되어갔다. 폴라리스에 이어 포세이돈 SLBM을 개발해 실전 배치하고, 지금은 대형인 트라이던트 SLBM을 배치해놓고 있다. 고체추진제 미사일에 대한 해군의 노력이 ICBM 개발을 전담하는 공군에도 영향을 미쳤다. 공군은 1958년 액체추진제 ICBM인 아틀라스와 타이탄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고체추진제 ICBM인 미니트맨(Minuteman) 개발을 진행했다.

    다탄두화, 이동화

    소련보다 늦게 출발 그러나 다탄두로 역전승

    유도조종기술의 향상으로 1기의 ICBM에 여러 개의 탄두를 싣는 MRV 방식이 개발되었다.

    액체추진제 미사일은 보통 2단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미니트맨은 추력이 떨어져 3단으로 만들었다. 미니트맨은 1, 2단에는 복합추진제를, 3단에는 복합 추진제와 더블베이스 추진제를 혼합한 복합 더블베이스 추진제를 사용했다. 미니트맨의 가장 큰 장점은 제작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었다. 미니트맨은 구조가 복잡하고 부품이 많은 액체 미사일에 비해 제작비가 적게 들었다. 1962년부터 실전 배치된 사거리 9260km의 미니트맨-1은 타이탄-2(길이 33m, 무게 150t, 직경 3m)에 비해 모든 것이 절반(길이 16m, 무게 30t, 직경 1.5m)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사일로도 작아졌다. 적은 인원으로 발사할 수 있었기에 운용과 관리비도 크게 줄어들었다.

    타이탄-1은 1기를 발사하는 데 6명의 인원이 필요했지만 미니트맨-1은 10기를 2명이 발사할 수 있었다. 미니트맨이 실전 배치되자 액체산소를 사용하는 아틀라스와 타이탄-1이 1965년 가장 먼저 퇴역했다. 저장성 추진제를 사용한 타이탄-2는 1986년까지 배치돼 있다 퇴역했다. 타이탄-2 퇴역으로 미국에서는 액체추진제를 쓰는 ICBM은 모두 사라졌다.

    실전 배치 초기 ICBM은 1기의 미사일에 1개의 핵탄두만 실었다. 이때의 ICBM은 명중 정밀도가 낮았다. 광범위한 면적의 도시를 공격할 수는 있어도 적의 ICBM 사일로나 지하에 설치된 적군 사령부를 공격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에 따라 명중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개의 핵탄두를 동일한 목표물에 투하하는 다탄두 재돌입 운반체(MRV·Multiple Reentry Vehicle) 방식이 도입되었다.

    ‘재돌입 운반체’는 대기권으로 나갔던 탄두부가 대기권으로 재돌입할 때 발생하는 열과 충격으로부터 핵탄두를 보호하는 원추형 특수 캡슐을 말한다. 이캡슐이 없으면 탄두는 대기권에 들어오면서 폭발해버린다. 북한도 재돌입체를 개발해야 ICBM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 1기의 ICBM에 여러 개 탄두를 싣는 다탄두화로 개별 재돌입 운반체의 크기가 작아져 조종 정밀도가 높아졌다. 다탄두 방식은 SLBM인 폴라리스 A-3에 처음으로 채택되었다. 1964년 실전 배치된 폴라리스 A-3는 200킬로톤의 W-58 열핵탄두 3개를 탑재하고 4630㎞의 거리를 비행할 수 있었다.

    그 후 유도제어 기술이 발전하자 한 개의 목표를 타격하는 다탄두 방식과 다르게 여러 개의 목표를 별도로 타격하는 다탄두 독립목표 재돌입 운반체(MIRV·Multiple Independently Targetable Reentry Vehicle) 방식이 개발되었다. 다탄두 독립목표 재돌입 운반체는 각각의 목표를 공격해야 하므로 운반체에 별도의 조종장치를 붙였다. 탄두 중량을 줄였기에 MIRV 방식의 탄두는 폭발력이 작아졌다. 최초의 MIRV 방식 ICBM은 미국의 미니트맨-3다. 1970년에 배치된 미니트맨-3는 길이 18m, 직경 1.7m, 무게 35t, 사거리 1만3000km, 원형 공산오차 200m의 3단형 고체로켓으로 170킬로톤의 W-68 열핵탄두 3개를 탑재했다. 탄두는 대기권 밖에서 방향 조정을 할 수 있도록 액체추진 로켓이 설치된 포스트-부스트단(post-boost stage)을 장착했다.

    MIRV 방식의 ICBM 한 기는 여러 기의 ICBM 역할을 할 수 있기에 MIRV 개발이 늦었던 소련을 제치고 미국은 우위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MIRV 방식은 기술이 아닌 정치적인 문제로 위기를 맞았다. 1962년 쿠바위기를 겪으며 미국과 소련은 핵전쟁을 막는 정치적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한쪽이 기습공격을 당하더라도 살아남은 전력으로도 충분한 보복을 할 수 있는 ‘상호확증파괴(MAD)’체제를 유지하는 한, 양국은 끝없는 군비확장 딜레마에 빠진다는 것을 안 것이다.

    ICBM 감축 협상

    소련보다 늦게 출발 그러나 다탄두로 역전승

    현재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ICBM인 미니트맨. 장기 보관이 가능하고 즉시 발사할 수 있는 고체 추진제를 사용하는 미니트맨은 제작 및 유지 관리비도 저렴해 2030년까지 활약할 예정이다.

    미국과 소련은 1967년 쌍방이 보유한 전략무기의 상한선을 규제하는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1971년 미소 정상회담에서 결실을 본 1차 제한협정(SALT-1)에 따라 미국의 ICBM은 1000기, SLBM은 710기로 제한되었다. 이 협정은 전략핵무기의 수량만 문제 삼고 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2차 제한협정을 위한 협상에서는 ‘질의 제한’도 의제에 올랐다. 1979년 합의된 SALT-2는 미소 모두 다탄두 ICBM을 820기로 제한하기로 했다.

    그해 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이에 항의해 1980년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고, 레이건 대통령이 전략방위구상(SDI)을 추진함으로써 SALT-2는 이행되지 못했다. 미국과 소련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이런 와중에 레이건 대통령이 전략무기의 수량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대폭 삭감하자는 ‘전략무기감축회담(START)’을 제안했다. 우여곡절 끝에 협상이 시작됐으나 소련이 무너지고 난 뒤인 1994년 타결됐다. START-1 조약 발효로 미국의 ICBM은 1600기, 탄두 수는 6000개로 제한되었다.

    START-1이 발효되자 미국은 ICBM의 절반을 차지하던 미니트맨-2 450기를 1990년 폐기했다. 사일로는 폐쇄하거나 일반에 매각했다. 그 후 타결된 START-2는 MIRV와 중량급 다탄두 ICBM의 전량 폐기를 규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미니트맨-3를 단일 탄두로 바꿔나가게 됐다.

    미국은 소련 측의 ICBM도 다탄두화함에 따라 소련의 기습공격으로 미국 ICBM이 괴멸될 것을 우려해, 소련 ICBM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이동식 ICBM인 피스키퍼(Peacekeeper)를 연구하게 된다. 길이 22m, 직경 2.3m, 무게 96t, 사거리 9600km, 원형 공산오차 120m에 10개의 다탄두를 가진 3단형 고체로켓인 피스키퍼는 1986년부터 실전 배치되었다. 그러나 START-2에 따라 2005년 모두 퇴역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20배에 달하는 파괴력을 가진 피스키퍼용 W-87 열핵탄두(300킬로톤 위력)는 미니트맨-3에 탑재되었고, 피스키퍼용 발사체는 오비탈 사이언스 사의 우주발사체인 미노타우르-4 발사용으로 전용되었다. 피스키퍼가 포기한 이동성에 관한 연구는 1980년대 중반에도 이어졌다. 핵심은 일반 도로로도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소형화하는 것. 이에 소형 대륙간탄도미사일(SICBM)이란 새로운 개념의 ‘미지트맨(Midgetman)’이 개발되었다. 미지트맨은 소련의 SS-24(선로 이동)나 SS-25(도로 이동) ICBM에 맞서 개발된 것이기도 했다.

    미지트맨은 길이 14m, 직경 1.17m ,무게 13.6t, 사거리 1만1000km의 3단형 고체로켓으로 475킬로톤의 W-87-1열핵탄두를 가지고 있었다. 미지트맨을 실은 차량은 기지에 있다가 위기가 고조되면 미국 전역으로 흩어져 적의 감시망을 벗어난다. 미지트맨은 마틴 마리에타가 개발해 1991년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미지트맨 SICBM도 미소 양국의 핵무기 감축 협상으로 1992년 개발이 취소되고 말았다.

    START-2 협정의 일부는 미국의 탄도탄 요격미사일조약(ABM) 탈퇴로 이행되지 못했다. 미-러 양국은 2001년 ‘전략공격무기감축협정(SORT·Strategic Offensive Reduction Treaty)’을 맺고 2011년에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맺어 다시 전략무기를 줄였다.

    현재 미국은 450기의 미니트맨-3에 500발의 탄두를 탑재해 운용하고 있다. 250기는 1개의 탄두를, 200기는 1~2개의 탄두를 장착하고 있는 상태다. 비록 40년 전에 탄생했지만 미니트맨-3는 유도장치와 추진기관 교체 등의 수명연장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ICBM으로 거듭나고 있다. 미니트맨-3는 2030년까지 미국 ICBM의 대표 역할을 할 예정이다. 미 공군은 2030년 이후 미니트맨-3를 대체할 새로운 ICBM 개발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