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호

“적도 밑 인도네시아에 한국 발사장 짓자”

인터뷰 | 김승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 이정훈 /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12-08-28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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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은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 수소로켓인 H-2를 개발했으나 막대한 발사비용 때문에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이유가 없다. 한국은 안전성과 경제성이 높은 케로신+액체산소 로켓을 개발하고 이를 다양하게 조합해 여러 발사체를 만들어 머지않아 열릴 우주관광+우주산업 시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ARI)의 김승조 원장(62)은 서울대 항공공학과 졸업 후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미국 텍사스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항공우주 분야의 전문가다. 귀국 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11년 6월 항우연 제8대 원장으로 부임했다.

    김 원장은 어려운 항공우주 분야를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특기가 있다. 이 때문에 오래 들어도 지루하지 않고 이해하기도 쉽다.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도 그의 특징이다. 그는 과학자 특유의 ‘연구를 위한 연구’에 집착하지 않는다. 기초적인 연구도 중요하지만, 한국은 후발국인 만큼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내는 실용연구를 중시하자는 것. 그와 나눈 대화 가운데 한국의 우주 개발과 관련해 귀 기울여야 할 부분을 발췌해 정리한다.

    ▼ 왜 우리는 일본만큼 우주 개발을 하지 못하고 있는가?

    “적도 밑 인도네시아에 한국 발사장 짓자”
    “일본은 미군정이 끝난(1952년) 직후 도쿄대 이토카와 교수 주도로 우주 개발을 시작했으니 60년의 역사가 쌓여 있다. 그러나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인지 미국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미국 NASA(항공우주국)의 특징이 무엇인가. 냉전기 소련과의 경쟁에 이기기 위해 우주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한 곳 아닌가. 그 결과 다양한 발사체를 만들었지만 경제성 있는 발사체는 만들지 못했다. 상업성을 따지지 않고 연구한 탓이다.

    일본은 초거대국인 미국과는 사정이 다른 데도 상업성을 따지지 않고 연구하는 NASA 모델을 따랐다. 대표적 사례가 기술적으로는 최첨단이지만 상업성면에서는 문제가 있는 H-2의 개발이다. H-2는 제작과 발사비용이 너무 비싸 대신 H-2A를 만들었지만, H-2A도 경제성이 적다. 위성을 올리는 것이 우주 개발의 1차 목표라면, 가장 좋은 기술이 아니라 가장 싸게 위성을 올리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국민 세금을 아끼고 외국 위성을 발사해줌으로써 돈도 벌 수 있을 것 아닌가. 일본은 잘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일본은 잘하고 있는 게 아니다”

    ▼ 몇 해 전 나고야에 있는 미쓰비시 중공업의 H-2 제조공장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때 생산 책임자가 “세계에서 수소로켓을 만드는 나라는 미국과 프랑스 일본뿐”이라며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정지위성을 올리려면 힘 좋은 수소로켓 발사체가 유리한 것 아닌가.

    “H-2 발사체의 전체 무게는 500t에 달하는데, 1단인 수소로켓의 추력이 100t 정도다. 이 정도 힘으로는 H-2 발사체를 띄울 수 없기에 주위에 여러 개의 고체로켓 부스터를 붙였다. 일본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가 만들어지기 전 미국 기술을 도입했기에 추력 제한을 받지 않고 고체로켓을 만들 수 있었다. H-2 1단에 붙이는 고체로켓 부스터의 추력이 280t 정도다. H-2는 이러한 부스터를 두 개 이상 붙였기에 우주로 올라가는 것이다. H-2 1단에서 큰 힘을 내는 것은 수소로켓이 아니라 고체로켓인 부스터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수소로켓과 고체로켓 부스터는 고가(高價)이기에 H-2는 값비싼 발사체가 되고 말았다.

    “적도 밑 인도네시아에 한국 발사장 짓자”
    기술적인 한계로 당분간 더 큰 추력을 내는 수소로켓 개발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기술적으로 쉽고 가격도 저렴한 케로신+액체산소 로켓을 만드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이를 미국의 스페이스X사가 입증했다. 스페이스X사는 추력 65t의 케로신+액체산소의 멀린(merlin)엔진을 개발하고, 이 엔진 9개를 묶어 1단, 1개로 2단을 구성한 ‘팰콘(falcon)-9’ 발사체로 우주왕복선을 대신해 국제우주정거장까지 물품을 보냈다. 우주왕복선도 수소로켓을 사용하는데, 스페이스 X사는 3분의 1 가격으로 우주왕복선이 하던 일을 수행했다.

    스페이스X사는 팰콘-9 1단 좌우에, 9개의 멀린 엔진을 묶은 팰콘-9 1단을 부스터처럼 붙이고, 그 위에 멀린엔진 1개로 2단을 만든 ‘팰콘-헤비(heavy)‘를 제작해 정지위성을 쏘아 올리겠다고 했다. 사업은 이렇게 해야 한다. 로켓은 추력이 작을수록 만들기 쉽다. 대량 생산하면 제작비도 낮아지니 한 종류를 개발해 다양하게 활용하는 게 경제적이다. 항우연은 스페이스X사를 벤치마킹하려고 한다. 수소로켓을 만들어놓고 값비싼 제작·발사 비용 때문에 마음고생하는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길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똘똘한 75t 로켓으로 모든 것 해결”

    ▼ 그런 말을 들으면 추력 75t 엔진 개발을 전제로 하는 KSLV-2 사업은 상당히 장밋빛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늦어지고 있다. 잘되고 있다면 늦춰질 이유가 없을 텐데….

    “이 엔진 개발을 놓고 말이 많았다. 애초에는 러시아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공동 개발하기로 했는데, 러시아가 자국 기술보호를 이유로 난색을 표해 난관에 부딪혔다. 그에 따라 ‘30t 추력의 엔진을 만들어 지상실험까지 해봤으니, 이 엔진도 자력으로 만들자’는 결정을 내리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그때 이 엔진의 추력을 ‘60t으로 하자’‘70t으로 하자’로 논쟁하다, 어렵게 75t으로 개발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동시에 ‘항우연이 과연 이 엔진을 개발해낼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2008년 기획재정부는 타당성 조사에 들어가 ‘사업의 필요성은 인정되나 기술 확보 수단이 부족하다’며 예산 배정을 거부하려고 했다. 그로 인해 또 밀고 당기는 게임을 하다, ‘먼저 나로호 발사를 성공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75t 엔진을 개발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런데 2009년, 2010년 나로호 1, 2차 발사가 실패해 수행하지 못하다 2011년 간신히 개발이 재개됐다.

    힘든 과정을 거쳐온 만큼 우리는 75t 엔진을 가장 경제적이고 안정적으로 개발하고, 이것으로 KSLV-2를 제작해 가장 저렴한 가격에 위성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반드시 ‘똘똘한 로켓’을 개발해 대한민국을 우주산업을 수행할 중추국가로 만들 것이다.”

    ▼ 나로호 1차 발사도 계속 늦어졌다. 왜 그랬는가.

    “나로호 사업을 하기 전 한국은 러시아와 우주기술보호협정을 맺고 양국 국회 비준을 받기로 했다. 우리 국회 비준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러시아는 기술 보호를 이유로 반대 여론이 형성돼 비준이 늦어졌다. 그리고 항우연은 흐루니체프 사와 계약을 맺었는데, 나로우주센터 공사 등에 차질이 생겨 또다시 사업이 늦어졌다. 우주 개발은 처음 도전하는 분야라 애초 계획한 대로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 실패한 나로호 1, 2차 발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3차 발사에 올리는 위성은 어떤 것인가.

    “실패했기 때문에 제작에서 조립, 발사, 관제 그리고 사고 조사까지의 전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실패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기에 75t 로켓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알게 됐다. 1차 발사에서 바로 성공했다면 그러한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3차 발사에 탑재하는 위성은 1, 2차 발사 때 실었던 과학기술위성-2호를 토대로 설계한 나로과학위성인데 상당한 과학장비를 탑재한다.”

    “우주 개발은 정권과 무관해야”

    ▼ 케로신+액체산소 로켓으로 ICBM을 만들 수 있는가?

    “못 만든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은 주로 고체로켓을 쓴다. 액체를 쓴다면 상온(常溫)에서 저장할 수 있는 액체를 써야 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만든 V-2 로켓은 액체산소를 썼고 북한의 ‘노동’과 ‘대포동’은 상온저장성 액체를 사용했다. 산소는 극저온인 섭씨 영하 183도 이하에서 액체가 되는데, 이러한 극저온 상태는 오래 유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발사하기 직전에 로켓에 주입한다. 무기는 바로 쏠 수 있어야 하는데, 케로신+액체산소 로켓은 그렇게 할 수 없다. ICBM에는 값은 매우 비싸지만 상온에 둘 수 있는 고체연료 로켓을 탑재한다.”

    ▼ 추력 75t 로켓과 KSLV-2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 것인가. 일본과 중국은 그들이 만든 위성과 우주선에 자국의 역사와 신화 속 인물 이름을 붙인다. 우리는 KSLV-1을 우주센터가 들어선 외나로도 이름을 따서 나로호로 명명했는데, 이는 국민을 하나로 묶는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는 접에서 아쉽다. 동북공정을 통한 중국의 역사 왜곡이 자심한데 그에 맞서는 명명을 하면 어떤가. 75t 엔진은 ‘단군’, KSLV-2는 ‘해모수’ 식으로….

    “좋은 생각이다. 우주 개발을 통해 국민을 하나로 묶는 국가 대전략이 있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는 하늘을 숭배한 민족이니 하늘과 이어준 역사 속 인물 이름을 붙이는 것을 검토해보겠다.”

    ▼ 일본은 H-2를 개발한 뒤 상업적으로 운영할 회사로 미쓰비시를 지정했다. 추력 75t의 로켓 개발에 성공하면 이 로켓과 발사체 제작을 담당할 업체는 누가 되는가.

    “대한항공이나 한국항공우주산업,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 같은 회사들이 원하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쟁 입찰을 통해 그중 한 회사를 결정하지 않겠나 싶다.”

    “인도네시아와 공동보조”

    ▼ 나로우주센터는 발사각이 좁지 않은가. 나로호 발사만 의식하고 지었기에 덩치 큰 KSLV-2 발사에는 부적합하다. KSLV-2보다 훨씬 큰 정지위성 발사체 발사까지 고려한다면 제주도에 새 발사장을 지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도로 건설을 포함해 많은 돈을 들여 나로우주센터를 지었는데, 왜 제주도에 중복 투자를 하는가. 물론 미국의 시론치나 프랑스의 쿠르 발사장 예에서 보듯이, 정지위성 발사체는 적도 근처에서 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다면 우리도 적도 발사장을 구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인도네시아는 수마트라와 보르네오 등 여러 섬이 적도에 걸쳐 있다. 이러한 인도네시아가 우리의 항공우주 개발에 관심이 아주 많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생산하는 T-50도 도입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한 인도네시아에 발사장을 지어 우리와 인도네시아가 같이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

    ▼ 인도네시아는 스페인과 함께 CN-235 수송기를 개발해 생산하는 등 나름대로 항공산업을 장려해온 나라다. 그러나 우주 개발은 한 적이 없는데 우리의 파트너가 될 수 있겠는가.

    “항공우주산업을 하려면 전후방산업이 발전해 있어야 하는데, 인도네시아는 이 부분이 취약하다. CN-235를 생산하면서 그것이 문제란 것을 알았다. 반면 한국은 전후방산업이 탄탄하고 항공우주산업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니, 파트너로서는 우리만한 나라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T-50을 구입했고, 한국형 전투기 KFX 사업도 같이 하겠다고 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관계자들이 우주 개발에 도전하기 위해 자국에 발사장을 지어 우리와 공동 운영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비공식적으로 해온 적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발사장을 지어 공동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우리는 프랑스의 쿠르 발사장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한국에서 생산한 발사체는 배나 항공기에 실어가면 되니까.”

    우주 개발서도 대도약을

    ▼ 위성 사업은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아리랑-5호는 국산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는데

    “아리랑-5호에 탑재할 레이더영상(SAR)위성은 이탈리아의 알레니아에서 사왔지만 다음부터는 이 장비를 우리가 제작한다. 적외선위성(아리랑-3A호)도 최초의 것은 외국에서 제작하지만 다음부터는 우리가 만든다. 위성 제작에서 중요한 것은 탑재체(장비)를 실을 본체(bus) 제작이다. 본체에 카메라를 실으면 관측위성이 되고, 통신장비를 실으면 통신위성이 된다. 여러 탑재체를 잘 실을 수 있는 본체를 만들어놓으면 다양한 주문에 대응할 수 있다.

    위성이 필요한 기관은 많다. 군은 물론이고 방재 업무를 하는 곳, 해양관측을 하는 곳, 기상관측을 하는 곳 등등…. 이러한 수요에 맞춰 다양한 탑재체를 실을 수 있는 본체를 만들어놓고 위성을 싸게 발사해주면 외국 수요도 끌어올 수 있다. 올 연말까지 항우연은 100kg에서 3.5t에 달하는 60여 종의 위성을 실을 수 있는 본체 10여 종을 소개하는 카탈로그를 제작해 국내외 예상 수요처에 보내려고 한다. 이미 중동과 중남미 동남아 국가에서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후발국인 한국이 우주 개발을 할 경쟁력 있다고 보는가.

    “엔지니어들은 자기 방식대로 하려는 고집이 있다. 우주 개발의 최선진국은 미국인데, 미국의 최고 엔지니어들은 오래된 방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놀랄 만큼 발전한 현대 기술을 외면하고 젊을 때 배운 익숙한 방법만 쓰려고 하는 것인데, 이는 사람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발국이 후발국에 추월당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우주 개발은 정밀기계, 첨단 소재, 정보통신(IT), 전자기술 같은 전후방산업이 발전해 있을 때 본 궤도에 오른다. 요즘 동물을 보기 위해 아프리카로 여행하는 사람이 많은데, 같은 이유로 우주여행을 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주호텔을 만들고 왕복선 같은 우주비행기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산업 개척은 창의력 있는 사람들이 잘하는데, 한국은 이 분야에 강점이 있다. 전후방산업도 발전해 있으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우주 개발에서도 퀀텀 점프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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