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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周遊天下 ⑥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의 이불재(耳佛齋) 주인 정찬주 소설가

  • 조용헌| 동양학자·칼럼니스트 goat1356@hanmail.net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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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史哲 서적 그득한 서실

거실 옆은 서실(書室)이다. 어림잡아 6평 공간에 불교사전을 비롯해 소설 집필에 참고가 되는 문·사·철(文史哲) 단행본과 자료가 책꽂이에 빼꼭히 꽂혀 있다. 불교와 역사, 동양 고전에 관계되는 책이 가장 많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으므로 무쇠로 만든 장작난로를 설치해놓았다. 한쪽 벽면에는 화면이 큰 컴퓨터가 있다. 이 컴퓨터로 소설을 쓰는 모양이다. 연재할 원고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갈 필요 없이 컴퓨터 e메일로 바로 보낼 수 있다.

인터넷은 화엄철학을 말해준다. 화엄은 ‘일즉다 다득일(一卽多 多卽一)’ 아닌가. 나와 세계가 바로 연결되는 구조를 눈으로 보여주는 게 인터넷이다. 소설가의 방은 이런 것인가. 서까래와 나무기둥, 그리고 한지를 바른 벽에 가득히 꽂혀 있는 책들. 그리고 컴퓨터의 인터넷.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에서 나오는 깊이와 전 국민과 연결되는 인터넷이 주는 활달함의 조화라고나 할까.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주위는 온통 청산뿐이다. 시멘트는 보이지 않는 녹색이 집을 둘러싸고 있다. 시골 야산 밑에 쓰러져가는 삼 칸 초가가 아니라, 기와를 얹은 아담한 한옥을 갖추고 공부해온 학문을 닦으면서 직업으로는 누구에게 아부하지 않아도 되는 소설가의 업을 가지고 사는 것이 행복이다. 우리는 먼지와 매연이 휘날리는 풍진 세상에서 먹고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금쪽같은 한 세상을 다 보내고 있지 않은가!

“청산에 살면서 번뇌가 없으면 그곳이 극락 아닌가? 청산에 살 수 있는 팔자는 상팔자다. 전생에 무슨 업을 쌓아서 이렇게 청산에 살 수 있는 것인가?”



“나도 먹고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설을 써야 먹고사는 것 아닌가. 49세 되던 2000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내려왔으니 올해로 12년째다. 쌍봉산 자락에 올 때는 각오가 있었다. 오로지 글만 써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긴장감 같은…. 그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방문 앞에다가 호미를 걸어놓았다. 글로 밭을 갈겠다는 각오였다. 하루종일 농부들이 호미로 밭을 일구는데, 나도 글밭을 갈아야 할 것 아닌가. 몇 년간은 방문 앞에 호미를 걸어놓았더니 방문객마다 그 호미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내려놓았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 내려온다는 것은 쉬운 결단이 아닌데…?”

“그렇다. 서울에서는 나를 100% 연소시키지 못했다. 이것저것 잡사(雜事)가 많았다. 여기저기 모임에 가야 하고, 술자리도 있고, 얼굴을 내밀어야 할 곳이 많은 삶이 서울 생활이다.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는 급박감이 들었다. 시골로 내려오니까 100% 나를 연소시킬 수 있다.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잃어버렸던 외로움을 되찾았다. 여기에 오니까 외로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선택한 고립이 너무 좋았다. 겨울에는 눈보라가 몰아칠 때가 너무 좋다. 찾아오는 방문객이 하나도 없으니까.

힌두교에서 말하는 인생의 4단계 가운데 임서기(林棲期)가 있다. 태어나서 25세까지는 학교 다니며 경전 공부를 하는 학습기(學習期)고, 50세까지는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하며 사회 의무를 다하는 가주기(家住期), 50세 이후는 집을 떠나 동네 뒷산에 원두막 같은 거처에 머무르며 홀로 명상하는 임서기(林棲期), 75세가 넘어서는 완전히 거지가 되어 길을 떠돌다 죽는 유랑기(流浪期)다. 이불재로 내려온 것은 임서기에 해당한다. 임서기는 자연이 스승이고 경전이고 벗이다. 주변 자연환경이 또 다른 경전이라는 사실을 이곳에 내려와서 깨달았다. 경전의 오의(奧義)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어떻게 보면 비장한 각오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화순으로 내려온 셈이다. 그렇지만 너무 비장한 감이 든다. 글을 쓰려면 심리적인 여백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말도 맞다. 내가 ‘다산의 사랑’이란 소설에서도 썼지만 때로는 자기를 가둘 줄도 알고, 풀어줄 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을 유배시킬 줄도 알고 해배(解配)도 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이불재에다 뼈를 묻겠다는 심정으로 왔다. 평생결제에 들어간다는 심정이었다. 지나고 보니까 들고 나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저수지도 평소에는 물을 가둬놓지만 농사철이 되면 방류한다. 때로는 방류도 필요하다.”

삶에서 배우는 오의(奧義)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쌍봉사의 암자 같은 정찬주의 산방 이불재.

정찬주는 자연에서 삶의 오의를 많이 배운다고 한다. 지난 태풍 때도 배운 것이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부니까 집 마당으로 앞산의 나뭇가지들이 날려 왔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썩은 나뭇가지들이 대부분이었다. 태풍은 숲을 설거지하는구나…. 숲을 정화하고 설거지 하는 것이 태풍이다.

땅콩 농사도 그렇다. 땅속에서 콩이 나온다는 사실이 그렇게 신기하고 기쁨을 주었다. 그래서 이름이 땅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구마도 키워보니까 이치가 깨달아졌다. 고구마는 낫으로 줄기를 잘라주어야 한다. 줄기를 쳐주지 않으면 영양분이 뿌리가 아닌 줄기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농부들에게 배운 지혜도 있다. 무는 낮에 크고 배추는 밤에 자란다는 사실이다. 무는 양(陽)이고 배추는 음(陰)이다. 농부들은 경험에서 이러한 이치를 터득했을 것이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가?”

“새벽 4시에 기상한다. 쌍봉사 새벽 종소리를 듣고 일어난다. 마당의 연못 주위를 네댓 바퀴 돌면서 정신을 가다듬는다. 그러고는 방에 들어와 집중적으로 글을 쓴다. 나는 새벽에 글을 써야 효율이 가장 높다. 아침을 먹고 다음에 좀 쉬다가 컴퓨터 앞에 앉아 새벽에 쓴 글을 퇴고한다. 점심 먹은 뒤에는 글을 쓰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들과 차를 마시고 대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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