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망한 트로이文明이 그리스 지배했다

‘일리아스’에 그려진 적과의 동침

  • 김헌 | 서울대 HK연구교수·고전학

    입력2012-11-20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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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리아스’의 저자 호메로스는 그리스 전사 앞에 ‘사람의 얼굴을 한’ 트로이인을 세워두고 전쟁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냐고 묻는 것 같다.
    • 소아시아인은 문명의 교차로에서 만난 그리스인에게 인간 내면의 고귀함을 일깨워준다.
    망한 트로이文明이 그리스 지배했다

    터키 트로이市에 세워진 조형물 ‘트로이 목마’.

    프랑스 소설가 레몽 크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은 ‘일리아스’이거나 ‘오디세이아’다.”

    두 작품은 모두 호메로스의 서사시로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일리아스’는 천하의 싸움꾼 아킬레우스가 활약하는 전쟁 이야기다. 책을 펴는 순간부터 분노와 격정으로 씩씩대는 건장한 사내들이 피 터지게 싸운다. 수많은 전사가 죽고 죽이는 잔혹한 장면이 작품 전체에 차고 넘친다. 한편 ‘오디세이아’는 최고의 지략가 오디세우스의 모험 이야기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10년 동안 지중해 세계 곳곳을 헤매고 다니다 어렵사리 귀향에 성공해 집안에 쌓여 있던 문제를 깨끗이 해소하는 그의 이야기는 모든 모험 이야기의 원형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크노의 말대로라면 서양의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은 전쟁 또는 모험의 이야기다. 그리고 문학이 인간 삶의 모방이요 재현이라면 우리 삶 자체가 모험과 전쟁의 연속이란 말이다. 사실 그렇다. 우리는 매일 아침 집을 떠나면서 모험을 시작해 하루 종일 크고 작은 각종 전투를 치른 다음 저녁이 되면 지친 몸을 이끌고 귀향하듯 귀가한다. 사랑조차 전쟁 같다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삶과 문학에서 모험과 전쟁 이야기를 빼면 할 말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전쟁과 모험은 사람들의 삶을 형성하며 인류의 역사는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험과 전쟁의 누적이다. 따라서 큰 전쟁과 중요한 모험은 역사의 획을 긋는다. 문명이라는 것도 모험과 전쟁의 계기를 빼고 이야기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전쟁은 두 진영의 충돌이며 모험은 한 진영의 다른 진영에 대한 모색과 침투를 의미하므로 전쟁과 모험은 문명의 충돌이든 융합이든 흡수든 정복이든 두 문명권의 교류를 낳는다.

    아시아 vs 유럽



    서양에서 가장 많이, 가장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전쟁은 아마도 트로이 전쟁일 것이며, 그런 성격을 갖는 모험의 전형을 세운 인물은 트로이 전쟁의 공신이던 오디세우스일 것이다. 두 작품의 배경인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세기경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동맹군 사이에 10년간 벌어졌는데, 그리스의 여러 나라가 대규모 연합군을 이루어 에게해(海) 건너편에 있는 트로이로 쳐들어가면서 일어났다고 한다. 트로이는 ‘일리온’이라고도 불린 터라 서사시 제목이 ‘일리아스’가 된 것이다. 지금의 터키가 차지하고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는 예나 지금이나 ‘소아시아(mikra Asia)’라고 하는데,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이다. 그러니까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건, 요즘의 지정학적 개념으로 보면 아시아 대 유럽의 전쟁인 셈이다. 그것은 당시 그리스 사회를 지배하던 ‘미케네 문명’과 트로이에 깊은 영향을 끼친 ‘히타이트 문명’ 사이에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문명의 충돌이라고도 할 만하다.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은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었고, 그의 동생이며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가 2인자였다. 이들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꽃피어난 청동기 중심의 미케네 문명의 주역이다.

    이 문명의 존재를 처음으로 캐낸 사람은 독일의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이었다. 그는 아가멤논의 무덤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발굴한 황금 가면을 아가멤논의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출토된 다양한 황금 장신구와 청동 무기,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자기 등은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가졌을 법한 부와 힘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특히 미케네 궁전 벽에 그려진 이륜마차 그림은 그 궁전의 주인들이 전쟁터에서 위세를 떨쳤고, 그리스 본토와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해나갈 수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흥미로운 것은 미케네 벽화에 그려진 이륜마차가 미케네의 발명이 아니라 아나톨리아 반도를 거쳐 그리스로 유입된 것으로서 아나톨리아 반도 내륙 깊숙한 곳에 터를 두었던 히타이트 문명권을 대표하는 무기였다는 사실이다.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동맹군 전사들은 말 등 위에 직접 타지 않고, 대신 마차를 타고 전투에 임한다. 전투 방식이 같다는 것은 두 문명권 사이에 어느 정도의 교류가 있었음을 전제한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전차의 역할이다. 전사들은 그것을 타고 전장을 헤집고 다니며 적을 무찌를 법한데 도무지 그런 기동성과 파괴력을 보여주는 대목이 없기 때문이다. 전사들은 자기 진지로부터 마차를 타고 폼 나게 전쟁터로 달려가지만 정작 격전지에 도착하면 마차에서 내려 창과 칼로 싸운다. 그러니까 이륜마차는 전투의 수단이 아니라 운송의 수단인 셈이다.

    누가 더 야만스러운가?

    아마도 호메로스는 마차의 전투적인 용도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앞이 안 보이는 맹인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살던 시대에는 그 마차의 용도가 잊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메로스는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지 않은 채로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실 그가 그려내는 시간과 공간의 상당 부분은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작품에서 그리스와 트로이는 서로를 낯선 존재로 느끼지 않는다. 호메로스는 이미 두 지역이 하나의 문화권, 단일한 문명권으로 묶인 이후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두 진영은 서로에게 낯선 존재들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리스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감대는 같은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바르바로스(barbaros)인’이라고 부르고 ‘헬라스 말을 쓰는 자신들(Hellenes)’과 다른 존재로 여겼다. 바르바로스는 나중에 ‘야만성’을 뜻하는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되지만 원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이 ‘바르바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중국인을 ‘쑤알라 쑤알라’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던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트로이인에 대해 바르바로스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마치 두 진영이 같은 말을 사용하는 듯이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동맹군 사이에는 통역 없이도 서로 말이 잘 통하는 것처럼 서술돼 있다. 하지만 두 진영이 하나의 언어를 썼을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트로이인들은 분명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는 바르바로스였다.

    그런데 양 진영의 주요 인물이나 그들의 회의장 분위기를 비교해본다면 그리스인보다는 오히려 트로이인이 훨씬 더 신사적이고 인간적이다. 언어가 아니라 야만성의 기준으로 본다면 트로이 쪽보다는 오히려 그리스 쪽이 더 포악하고 그야말로 야수에 가까워서 ‘바르바로스’라는 말에 더 어울릴 지경이다. 이 사실은 전투의 최절정인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연합군의 최고 전사며 헥토르는 ‘트로이의 성벽을 지키는 자’라는 별명을 가진 트로이 동맹군의 보루다. 두 영웅의 결투는 곧 트로이 전쟁 전체의 운명을 결정할 판이다. 열세에 놓여 있던 그리스 군이 아킬레우스의 활약으로 전세를 뒤집고 트로이 군을 몰아붙이는 장면이 ‘일리아스’ 제22권에 나온다. 헥토르는 자기 병사들을 모두 성 안으로 안전하게 들여보낸다. 병사들이 모두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헥토르는 마침내 적의 수장 아킬레우스와 일대일로 맞선다. 인간적이며 희생적인 지휘관의 모습이다. 아킬레우스도 다른 병사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고 홀로 헥토르에게 다가선다. 하지만 그것은 동료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적의 최고 전사를 무너뜨리는 영광을 다른 이가 넘볼 수 없게 하려는 다소 이기적인 의도에서였다.

    잔혹한 전사

    최후의 결전이 시작되기 전에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일종의 신사 협상을 제안한다. 적으로서 서로 싸우긴 하되 서로를 존중해 승리자는 패자의 무구를 벗긴 후에 시신에 모욕을 가하지 않고 온전하게 돌려주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그럴 맘이 없다. “사자와 사람 사이에 맹약이 있을 수 있는가? 늑대와 새끼 양이 한뜻이 될 수는 없다. 둘은 언제나 적의를 품는 법. 나와 너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우리 둘 사이에 맹약이란 있을 수 없다. 그대는 이제, 대담한 전사가 되라. 그대는 곧 내 전우들의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보상하게 될 것이다.” 헥토르의 제안은 신사적이고 인간적이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전사다운 것은 아니었다.

    전사란 적과 타협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아킬레우스는 철저히 전사였고 늑대고 사자였다. 반면 헥토르는 매우 인간적이며 새끼 양처럼 유약해 보인다.

    마침내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에게 달려들어 목구멍에 창을 밀어 넣는다. 헥토르는 단 한 방에 쓰러진다. 대결은 깨끗하고 간결했다. 사자가 인간을, 늑대가 새끼 양을 무참하게 쓰러뜨렸다. 전사의 일방적 승리다. 인간다운 헥토르는 전사의 치명적인 일격에 무참히 쓰러졌다. 아킬레우스가 던진 말은 잔혹하다. “헥토르, 난 너보다 훨씬 강하다. 이제 개떼와 새떼가 너를 찢게 될 것이다.” 헥토르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부탁한다. 시신을 개나 새가 뜯어먹게 놔두지 말고 트로이로 돌려보내달라고. 하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너를 직접 저며 날로 먹고 싶다”라고 아킬레우스가 답했으니 말이다.

    헥토르가 죽자 아킬레우스는 그의 무장을 벗겨냈고 다른 그리스인들이 달려들어 시신을 난도질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두 발의 뒤꿈치에서 복사뼈까지를 뚫어 소가죽 끈으로 꿰어 묶고 전차에 매단 뒤, 전차를 몰아간다. 헥토르의 시신은 땅에 끌리며 구름 같은 먼지를 일으킨다. 적을 최악의 상태로 잔혹하게 모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 최고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실체다. 그는 강력한 전사로 우뚝 서 있고 헥토르는 나약한 인간으로 짓밟혀 있다.

    이 장면에서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모습은 문명과 야만의 대립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이때 야만의 이미지는 그리스인 아킬레우스의 것이며 ‘바르바로스’였던 헥토르는 오히려 세련되고 신사적이며 그래서 ‘문명스럽다’.

    호메로스가 그려준 트로이인들의 반응도 인간적인 연민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헥토르가 죽었으니 더 살아 무엇 하겠냐며 어머니 헤카베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통곡하고, 아버지 프리아모스도 지금 당장 나가 헥토르의 시신을 구해오겠노라 울부짖는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인 안드로마케도 달려와 애곡한다. 과부가 된 자신과 고아가 된 아들 아스튀아낙스가 맞게 될 고통과 괴로움을 한탄하는 것이다. 그들의 울부짖음은 헥토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전투에 참가해 죽어간 모든 전사 아버지의 울부짖음이요, 어머니의 통곡이며, 아내의 비탄이다. 아킬레우스가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전사의 모습으로 서 있는 맞은편에 헥토르는 너무도 인간적인 감정과 지독하게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부각되고 있다. 호메로스는 과연 누굴 진정한 영웅으로 보여주려고 했을까? 철저한 전사로서 슬픔과 고독 속에 우뚝 서있는 아킬레우스인가? 아니면 인간으로 쓰러져 사랑하는 이들의 슬픔과 애탄의 대상이 되어버린 헥토르인가? 그리고 누가 더 문명의 이름에 걸맞은 모습인가? 누가 더 야만스러운 모습인가?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투스는 트로이 전쟁이 헬라스인(그리스인)과 바르바로스인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라고 규정하면서 트로이인을 바르바로스의 원조로 꼽는다. 그의 눈에 트로이인은 수년간 그리스 세계를 괴롭힌 페르시아인과 다를 바 없다. 타자이며 적대적인 존재다. 페르시아 전쟁을 기록한 헤로도투스는 ‘역사’에서 그리스를 자유의 수호자처럼 묘사했지만, 페르시아인은 바르바로스로 그렸으며 신이 정해준 몫과 정의를 무시하고 무례한 폭력을 일삼는 야만적 무리로 묘사했다. 그리고 폭력적인 지도자 밑에서 지내는 일반 백성을 자유도 모르는 노예와 같은 존재로 평가했다.

    평화 갈망하는 민중

    하지만 호메로스는 헤로도투스와는 사뭇 다른 관점을 드러낸다. ‘일리아스’에서 그는 그리스 영웅들의 무공과 활약을 그리면서 그들의 강력함과 승리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전쟁에 잘 어울리는 거칠고 잔혹한 모습 또한 묘사한다. 따라서 호메로스가 그리는 그리스 전사들의 모습 속에는 문명이 추구하거나 적어도 명분으로 내거는 반전(反戰)과 평화의 갈망을 찾기 힘들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불멸의 명예를 추구할 만큼 무모하고 동료들의 파멸에 눈도 깜짝 않을 수 있으며 재물에 대해서도 탐욕스럽다. 심지어 ‘일리아스’ 제2권에서는 보잘것없는 일개 졸병이 나서 최고 사령관인 아가멤논을 욕하기도 한다. 문명사회에서 볼 수 있는 질서와 상호 존중의 미덕을 결여한 것이다.

    상황은 이렇다. 전쟁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트로이성이 함락될 기미가 없자 아가멤논은 병사들에게 전쟁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그 제안은 병사들의 마음을 떠보려는 거짓말이었다. 지도자가 꼼수를 써서 민중을 우롱하는 모습은 분명 문명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은 갑자기 활기를 띠며 전쟁을 당장이라도 그만두겠다는 듯이 무구들을 내던지고 함선으로 뛰어들어 귀향을 준비한다. 병사들은 영웅들의 전쟁놀음에 신물이 났던 것이다. 호메로스는 아무 소득이 없이 돌아가도 전쟁만 끝나면 좋다는 마음을 묘사하면서 민중이 갖고 있던 반전과 평화에 대한 열망을 고스란히 노출시킨다.

    호전적인 영웅들

    하지만 일반 병사들의 평화와 종전(終戰)에 대한 열망은 곧 호전적인 영웅들에 의해 저지된다. 이때 호메로스는 영웅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항의한다. “아가멤논 왕이여! 그대는 정말 욕심쟁이요. 우리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으려는 것이오? 우리는 돌아가겠소. 돌아갑시다.” 그런데 민중의 숨어 있는 열망을 대변해 아가멤논을 공격한 인물이 하필 테르시테스였다. 수다스럽게 아무 말이나 지껄여대는 호사꾼, 그리스인들 가운데 가장 못난 자, 호메로스는 우람한 아가멤논을 공격하기 위해 일그러진 모습의 그를 연단에 세운 것이다. 그는 정말로 아가멤논과 영웅들의 호전적인 격정을 공격하려고 했던 것일까? 호메로스는 감히 테르시테스 따위가 최고의 사령관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듯이 그가 처참하게 묵살당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계략에 뛰어난 오디세우스가 그를 강력하게 저지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어림없다. 네가 감히 백성들의 목자를 능멸해? 내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오디세우스는 손에 쥔 막대로 테르시테스의 등과 어깨를 내리친다. 그런데 병사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테르시테스가 그들의 입장과 욕망을 대변한 셈인데 그들은 영웅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오디세우스에게 환호했고 입을 모아 그를 칭찬하니 말이다.

    오디세우스는 입을 연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갈 수는 없다. 이렇게 오랫동안 싸웠건만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은 치욕이다. 제우스신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10년째 되는 해에 승리를 주신다는 전조를 기억하라. 우리들의 명성은 영원할 것이다.” 멋진 이야기다. 하지만 그건 영웅들의 논리며, 불멸의 명성도 영웅들만의 몫이다. 거기에서 민중은 소외돼 있다.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영웅의 전형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호전적이고 이기적이며 탐욕스럽다. 자신들의 영원한 명성과 지속적인 권위와 권력을 위해 민중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모습이지 않은가? 호메로스는 다소 희극적인 분위기 속에서 테르시테스를 좌절시키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서사일 뿐이다. 이면에서 호메로스는 영웅들의 전쟁 이데올로기에 대해 뼈 있는 비판을 하고 있는 셈이다. 호메로스가 보여주는 트로이 전쟁의 모습은 매우 중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의미의 중층 속에서 트로이에 대한 경멸이나 반감보다는 오히려 그들에 대한 존중과 존경과 흠모의 향기도 풍겨나는 듯하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이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동쪽의 트로이인들 땅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인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한 사건이 전쟁이 발단이었단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그리스인들과 바르바로스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여자 납치전이 배경이 됐다고 한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맨 처음 바르바로스인 포이니케인들이 배를 타고 무역을 하기 위해 그리스 땅에 온 적이 있는데, 이때 이오를 납치했다. 그러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그리스인들은 포이니케로 몰려가 에우로페 공주를 납치했다. 현재 스코어 1대 1. 동점골에 성공한 그리스인들은 역전을 노리며 콜키스로 가서 메데이아 공주를 납치했다. 그로부터 한 세대 뒤 바르바로스의 역습이 시작되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였다. 그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한 것이다. 그러면 결국 2대 2 무승부다. 그렇다면 그리스의 다음 수는 무엇일까?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인들의 반응에 어이없어 한다. 그들에 따르면 아시아 측 사람들은 자신들의 여인들이 납치된 것을 대수롭잖게 여겼던 반면, 그리스인들은 스파르타 여인을 하나 빼앗겼다고 대군을 일으켜 아시아로 쳐들어가 파리스의 도시를 궤멸시켰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트로이

    그러나 트로이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 여자 납치 경쟁보다 훨씬 낭만적이고 신화적인 방식의 설명이 있다. 이 설명은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제우스가 눈독을 들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제우스는 테티스를 함부로 범하지는 못했다. 테티스를 아껴서가 아니라 테티스가 낳은 자식이 아버지를 압도하고 하늘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신탁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자신도 아버지를 압도하고 권좌에 올랐는데, 여신 하나를 잘못 건드렸다가 낭패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제우스는 결국 테티스를 포기했고 인간인 펠레우스에게 주었다. 둘의 결혼식은 성대하게 열렸고, 신들이 모두 초대됐다. 그러나 에리스(불화) 여신만이 초대받지 못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에리스는 결혼 잔치 한 가운데에 황금사과 하나를 던졌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황금사과를 본 많은 여신 가운데 헤라와 아테네 그리고 아프로디테가 사과의 주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제우스는 셋 중 하나에게 황금사과를 주면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 두 여신의 원한을 살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심판을 맡지 않았다. 그 대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겼다.

    낭만적인 청년, 파리스

    이것이 화근이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황금사과의 주인으로 판정했다. 황금사과를 얻은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파리스에게 보답으로 넘겨줬다. 그러나 헬레네에게 이미 남편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가 바로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였다.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파리스는 헬레네를 매혹시켜 트로이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러자 메넬라오스는 발끈했다. 그가 그리스 전역의 동맹군을 모아 트로이를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파리스와 헬레네의 불장난 같은 사랑이 트로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불길의 근원이었다. 파리스는 전쟁과 파멸의 위험을 무릅쓰고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호메로스는 전쟁의 원인이 되는 신화를 ‘일리아스’의 첫 전투 장면 속에 세련되게 녹여 넣었다. 제3권이 시작되면서 트로이 평원에 정렬한 그리스 군대와 트로이 군대는 전면전을 치를 기세로 서로를 향해 다가선다. 이때 트로이인들 사이에서 파리스가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그에 맞서 그리스인들 사이에선 메넬라오스가 나선다.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1 대 1 맞대결이 이루어질 찰나다. 이 둘은 누구인가? 바로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이다. 헬레네를 빼앗긴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를 데려간 파리스. 그들은 헬레네를 걸고 승패를 가리려고 한다. 이때 트로이 성벽의 탑 위로 전쟁의 장본인인 헬레네가 등장한다. 두 사람의 결투를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성벽 위로 걸어오는 헬레네를 본 트로이인들의 반응이 가관이다. “비난할 게 없어요. 트로이인들과 그리스인들이 저와 같은 여인을 두고 기나긴 시간 동안 고통을 겪었다 해도 말이오. 놀랍소.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니, 죽음을 모르는 여신을 꼭 닮았구려.” 헬레네의 미모에 모두 넋이 나가 10년간 목숨을 걸고 고통스럽게 전쟁을 치렀던 과거가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뭐에 홀려도 단단히 홀린 듯하다. 호메로스는 아름다운 여자를 두고 10년간 전쟁을 벌인 두 진영을 심미주의자들인 양 낭만적으로 그려내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신화를 걷어내고 전쟁이 발발한 이유를 현실적으로 서술한다. 조직적인 해적이었던 그리스인들이 당시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중계무역으로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트로이를 침략했다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의 물질적 욕망이 전쟁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여자 때문에 싸웠다는 것은, 설사 그런 이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쟁의 명분을 위한 핑계일 뿐이었을 것이다. 호메로스 역시 그러한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아가멤논의 탐욕으로 인해 그리스가 트로이와 불행한 전투에 휩싸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호메로스는 아름다운 여인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줄 아는 낭만적인 청년 파리스에게 트로이 전체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트로이인의 심미적인 취향과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시켰다. 트로이인에 대한 호메로스의 호의적 시선은 ‘일리아스’ 제24권에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다.

    적과의 동침

    헥토르는 아킬레우스가 가장 사랑하는 전우 파트로클로스를 죽였고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헥토르를 죽인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친구를 잃은 슬픔과 분노를 말끔하게 씻어낼 수가 없다. 모두들 돌아가 달콤한 잠을 즐길 때도 아킬레우스는 몸을 뒤척이며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리며 애를 태운다. 벌떡 일어나 바닷가를 거닐며 슬픔을 가라앉히려고도 한다. 그래도 가라앉지 않으면 전차에 헥토르를 매달고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세 번이나 돌며 분노를 삭인 후에 돌아오곤 한다. 헥토르의 시신을 먼지 속에 처박아두어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을 가하는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이렇듯 잔혹한 행위를 열이틀 동안 반복했다. 참다못한 아폴론은 신들의 회의에서 마침내 불만을 터뜨린다. “헥토르는 신들에게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트로이의 부모와 아내에게 돌려주어 장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아킬레우스는 사자 같은 자이며 동정심도 수치심도 없는 자입니다. 그는 분에 못 이겨 대지의 여신을 욕보이고 있습니다. 도가 지나칩니다.” 마침내 신들은 헥토르의 귀환을 결정한다. 신들의 뜻에 따라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는 아들의 시신을 찾아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간다. 그것은 목숨을 건 시도다. 적진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괴된 그리스의 야만

    어두운 밤, 전쟁의 함성은 가라앉아 잠들어 있고, 적군과 아군의 구별은 어둠 속에 지워진 시각,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그리스의 전사 아킬레우스의 막사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조용히 아킬레우스 곁으로 가 두 손으로 무릎을 잡고 그의 손에 입을 맞춘다. 깜짝 놀라는 아킬레우스에게 프리아모스는 비장하게 말을 꺼낸다.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라, 아킬레우스. 그는 사랑하는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고대하고 계시리라. 그러나 나는 참 불행한 자다. 쉰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전쟁에 모두 죽었으며 도성과 백성을 지키는 헥토르도 그대 손에 죽었다. 나는 그 아이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수없이 많은 몸값을 가지고 왔다.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나를 동정하라. 난 참 끔찍한 짓을 하고 있다. 내 아들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모두가 잠든 밤,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 터울인 두 사람은 더 이상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적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두 명의 인간이었다. 전사의 무장을 벗고 둘은 함께 울 수 있었다. 무장 속에 감춘 인간을 꺼내놓고, 실컷 울 수 있었다. 호메로스는 적과 아(我)를 잊은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마지막 장면에서 극적으로 보여준다.

    아킬레우스가 프리아모스에게 말한다. “노왕께선 참으로 많은 불행을 참으셨습니다. 슬픔의 고통은 마음속에 누워있도록 하시지요. 견디십시오. 가슴속 깊이 애통해하지는 마십시오. 슬퍼해도 어르신의 아들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법. 도로 살려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전에 다른 불행을 겪게 될 것입니다.”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가 몸값으로 가져온 물건을 받아들이고 헥토르의 시신을 깨끗하게 수습한 뒤 수레에 실어주었다.

    그리고 직접 식사를 준비해 프리아모스에게 대접했다. 식사를 마친 프리아모스는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열하루의 휴전을 제안했고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의 오른손 손목을 꼭 쥐며 안심시키고 이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잠자리에 들었다. 극적인 적과의 동침.

    이 장면은 적과 아의 구별 속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 장면으로 가득 한 ‘일리아스’에서 가장 낯선 장면이다. 난폭한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이 고급스러운 문명을 이룩한 유서 깊은 트로이 세계를 만난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다. 전쟁의 승리자는 그리스 연합군이었다.

    하지만 트로이인들의 연륜과 수준 높은 문명은 거친 야수와도 같은 그리스인들을 변화시켰다. 적과 아의 구별 속에서 잔혹하게 활약하던 전사 아킬레우스가 마침내 인간 내면의 고귀함을 획득한다는 것. 대전환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호메로스는 거친 그리스 전사들의 옆에 신사를 떠올리게 하는 트로이인들을 세워두고 진정한 승리자가 누구냐고 묻는 것만 같다. 로마가 그리스 땅을 점령했지만 그리스가 로마의 정신을 정복한 것처럼, 그리스는 트로이를 정복하고 파괴했지만 트로이의 문명이 그리스인의 야만적인 정신세계를 파괴하고 인간의 세계를 그리스에 이식시켜 새로운 문명을 잉태하게 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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