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농축·재처리 가능하도록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해야”

원자력학계 대부 장순흥 KAIST 교수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2-11-21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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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 게이츠도 관심 기울이는 한국의 원자력 기술
    • 파이로프로세싱은 4세대 원전 개발 위한 필수코스
    • 대선 후보, 정치 목적으로 원자력 흔들지 말라
    • 원전 직원들 윤리의식 강화해야
    “농축·재처리 가능하도록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해야”

    “파이로프로세싱으로 4세대 원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역설한 장순흥 교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 정부는 올여름 ‘2030년대까지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을 정지시킨다’는 ‘원전 제로’ 정책을 검토하다 각계로부터 비판을 받고 포기한 바 있다. 한국원자력학회장과 KAIST 부총장을 지낸 장순흥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58)와 약속한 장소에 나갔더니 먼저 만나고 있던 사람이 일어났다. 장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방황하는 일본 원자력이 가야 할 길을 찾아보기 위해 한국 원자력을 취재하러 온 일본 교도(共同)통신의 기자”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일본 원전과 정치가 화제가 됐다.

    “일본 민주당은 원전 제로를 실시 하겠다고 하면서도 롯카쇼무라의 재처리공장과 연구용 고속증식로 ‘몬쥬(文殊)’는 계속 가동하겠다고 했다. 원전 제로를 하면서 재처리공장을 가동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재처리공장이 있는 롯카쇼무라 주민의 항의 때문이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을 두려워하는 일반 국민과 재처리공장에 의지해 지역경제가 운영되는 롯카쇼무라 주민의 요구를 모두 반영하다보니 희한한 궤변을 내놓은 것이다. 교도통신 기자는 그것을 지적하며 뚝심 있게 나가는 한국 원자력을 부러워하더라.”

    ▼ 우리의 대선 후보들은 어떤가.

    “에너지원(源)은 크게 화석과 원자력, 신재생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비중이 가장 적은 것이 2.2%의 전기를 생산하는 신재생이다. 2.2%에서 수력이 1.4%, 쓰레기 소각이 0.7%를 차지하니, 순수 신재생은 0.1%밖에 되지 않는다. 순수 신재생의 비율이 이렇게 낮은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안철수 후보는 원자력은 증설하지 않고 신재생을 20%로 늘려 온실가스를 25% 줄이겠다고 했다.

    신재생을 20%로 늘리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과학을 하신 분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곤란하다. 문재인 후보는 원전을 점차적으로 줄인다는 탈핵 의지를 밝혔고, 박근혜 후보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증설에 반대한다고 했다. 두 후보가 탈핵을 주장하고 한 후보만 조건부 찬성이다. 에너지가 없으면 환경도 못 지키고 경제도 무너진다는 것을 후보들은 모르는가.”



    ▼ 에너지가 없으면 환경도 못 지킨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현대는 에너지, 환경, 경제금융이라는 3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에너지가 없으면 경제와 금융이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환경문제는 에너지를 풍족하게 쓰지 못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인류가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은 깨끗한 물을 많이 확보했기 때문인데, 이는 넉넉한 숲이 있어야 가능하다. 에너지가 부족해 나무를 온통 베어낸다면 깨끗한 물을 많이 마련할 수 없다. 에너지가 없으면 환경은 유지되지 못한다.”

    ▼ 후쿠시마 사고로 원전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이다. 이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후쿠시마 사고에서 방사선으로 숨진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방사선을 가장 많이 쬔 사람은 사고 수습에 나섰던 후쿠시마 발전소 직원들이었는데 언론의 과장된 보도로 오히려 주변 시민들이 방사능 공포에 빠졌다. 그 결과 많은 이가 집을 떠나 피난소에서 지내다가 연로하신 분이 700여 명 사망했다. 공포가 만든 피란이 더 큰 희생을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점을 분명히 알릴 필요가 있다.

    한국 원자력발전 단가는 kWh당 39원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덕분에 한국의 kWh당 전기값은 84원으로 일본 202원, 미국 115원, 프랑스 142원에 비해 월등히 낮아졌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로 원전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졌으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는 원전 운용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해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지역 주민들의 수용성이 높아지도록 끊임없이 원자력을 설명하며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 국내외 원자력 안전기관으로부터 지속적인 검증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맹목적인 부정과 두려움에 빠지는 것은 합리적인 대안 도출을 막는다. 우리 국민도 한국 원자력을 질타하기에 앞서 에너지 안보를 위해 애쓰는 원전인들을 격려해주었으면 한다.”

    ▼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만난 것으로 아는데.

    “지난 8월에 만났다. 그는 ‘화석에너지는 온실가스를 생산해서 문제다. 원자력과 신재생만 온실가스를 생산하지 않는데 신재생은 너무 비싸다. 태양광발전은 태양이 뜨지 않는 밤에는 하지 못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배터리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 전 세계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배터리에 저장해도 10분 만에 다 소모돼버린다’고 하더라.”

    빌 게이츠도 한국 원전에 관심

    “농축·재처리 가능하도록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해야”

    올해 8월 빌게이츠 회장(왼쪽)의 초대를 받아 한국 원자력의 실력을 설명한 장순흥 교수.

    ▼ 어떻게 만났나.

    “그는 한국 원자력의 역동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2009년 MIT가 10대 유망기술로 선정한, 60년 이상 핵연료를 장전하지 않고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진행형 원자로(TWR· Traveling Wave Reactor)에 관심이 많았다. TWR은 고속증식로의 일종으로 우라늄 농축이나 재처리가 필요없는 핵연료를 사용한다. 그러한 연구를 하려면 한국과 협조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 것 같다.”

    ▼ 요즘 원자력계 관심은 4세대 원전인 고속증식로에 쏠려 있다. 간단히 설명해달라.

    “우라늄이라고 해도 모두 핵분열을 일으키진 않는다. 자연계에 0.7%만 존재하는 우라늄 235만 핵분열을 일으킨다. 그러나 스스로 핵분열을 하지 못하고, 3% 정도로 농축한 다음 인위적으로 중성자를 쏴줘야 핵분열을 일으킨다. 중성자를 쏴주지 않아도 핵분열을 일으키게 하려면 90% 이상으로 농축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핵무기다.

    자연계에서 99.3%로 존재하는 것은 우라늄 238이다. 핵연료는 우라늄 235를 3% 정도로 농축하고, 238은 97%로 줄인 것이다. 이러한 핵연료가 핵분열하면 우라늄 238 가운데 일부가 중성자를 붙잡아 플루토늄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것이 바로 국제사회가 금지하는 재처리다.

    고속증식로는 사용후핵연료를 원자로에서 꺼내는 재처리 과정 없이, 새로 만들어진 플루토늄도 바로 핵분열에 들어가게 한다. 그렇게 하면 이론적으로는 97%를 차지하는 우라늄 238도 모두 핵분열 시킬 수 있으니, 핵연료의 수명이 현저히 길어진다. 인류는 자연계에 99.3%로 존재하는 우라늄 238을 사용할 수 있게 되니 한동안 에너지원 개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현인(賢人)’ 빌 게이츠의 관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TWR을 바로 개발할 수는 없고, 프랑스와 일본에서 연구해온 소듐(나트륨) 고속증식로부터 개발해야 한다. 소듐 고속증식로에 장전하는 핵연료는 한국이 오랫동안 연구해온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으로 만들 수 있다. 빌 게이츠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나를 불러 한국의 원자력 능력을 물어본 것이다.”

    ▼ 그러나 프랑스와 일본이 만든 연구용 소듐 고속냉각로에서는 폭발 사고로 방사능이 누출됐었다.

    “고속증식로는 액체금속인 소듐(나트륨)을 1차 냉각재로 사용한다. 소듐이 핵분열한 핵연료에서 일어난 열을 받아 증기발생기 안의 관을 지나면서 관 밖에 있는 물(2차 냉각재)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그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그런데 관이 훼손돼 소듐과 물이 접촉하면 폭발 사고가 일어난다. 소듐이 핵연료와 접촉했으니 폭발하면서 방사능 오염이 일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소듐 냉각재를 하나 추가하려고 한다. 핵연료를 접촉해 열을 받은 소듐은 관을 흐르며 관 밖에 있는 소듐(2차 냉각재)이 열을 받게 한다. 이 소듐이 증기발생기의 관 안을 흐르며 관 밖의 물(3차 냉각재)을 끓여 증기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2차 냉각재 소듐은 핵연료와 접촉하지 않았으니 물과 접촉해 폭발해도 방사능 오염은 일어나지 않는다.

    2차 냉각재 소듐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고속냉각로의 안전성은 매우 높아진다. 경수로는 1차 냉각재인 물에 150기압을 가하지만 고속증식로는 그럴 필요가 없어 오히려 안전하다.”

    ▼ 파이로프로세싱은 미국에서 먼저 연구한 것 아닌가.

    “미국의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는 1979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로 카터 대통령이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시키는 바람에 함께 중단되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이 부활시키고 있으니 미국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난해 양국은 10년간 공동 연구에 합의해, 올해 초부터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원들이 미국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에 가서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안의 플루토늄은 스스로 핵분열하지 않는데, 스스로 핵분열하는 조건을 찾아내는 것이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해 자연적으로 핵분열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플루토늄 추출은 재처리에 해당하기에 재처리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미국산 사용후핵연료를 잘라 연구하기로 했다.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이 개발되면 한국에 공장을 지으려고 한다.”

    ▼ 그래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파이로프로세싱을 재처리로 규정하지 않았는가.

    “국제원자력기구는 재처리에 대해 다시 규정해야 한다. 의학계에서 쓰는 방사성 동위원소는 사용후핵연료에서 뽑아내는 것이므로, 국제원자력기구 시각대로라면 동위원소 추출도 재처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는 재처리로 보지 않는다.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않는 파이로프로세싱을 재처리로 보는 것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막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고준위 줄이는 파이로프로세싱

    ▼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한 공동 연구는 내년에 결론 내야 하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로 이어진다. 시민단체들은 “한국도 평화 목적의 농축과 재처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한국의 핵주권을 주장한다.

    “현재 한국은 막대한 양의 사용후핵연료로 고통 받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폐기물로 보고 영구처분한다면 2100년에는 서울시 동대문구만한 면적의 암반지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파이로프로세싱 등을 한다면 고준위 폐기물을 최대 100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방사성 독성도 1000분의 1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 미국도 사용후핵연료 문제로 고통받고 있으니 파이로프로세싱을 같이 연구하게 된 것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안전협정(safety guard)을 준수한다면 평화 목적의 재처리는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한미원자력협정은 이를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파이로프로세싱 등으로 고준위 폐기물을 줄일 수 있도록 평화 목적의 재처리는 할 수 있다는 쪽으로 협정 내용을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을 하려면 핵연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농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도 세계 원자력 3강인 한국이 평화 목적의 농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으니 한미협정은 한국의 평화 목적 농축도 허용하는 쪽으로 개정돼야 한다.”

    원전 직원 윤리의식 강화해야

    ▼ 그러한 주장은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위배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지금은 농축 우라늄 값이 너무 싸서 재처리할 필요도, 한국이 따로 농축 공장을 지을 필요도 없다고 한다.

    “비핵화선언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농축과 재처리를 금지한 것이다. 비핵화선언을 했을 때도 한국은 연구용 원자로와 상업용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었으니 평화 목적의 재처리와 농축을 하는 것은 비핵화 선언 위반이 아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 때문에 곤란하다면, ‘한국은 평화 목적의 농축은 할 수 있으나 국제관계를 고려해 유예할 수 있다’는 단서를 붙이면 된다.”

    ▼ 최근 터진 원전 부품 비리 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그 사건은 원전 부품을 국산화하는 과정에서 업자와 원전 직원의 윤리의식이 부족해서 일어났다. 국산화라는 좋은 뜻으로 시작했다가 잘못된 결과를 낳은 경우다. 이 사건은 해외의 부품 보증서를 납품업체가 발급받게 했기에 일어났으므로, 한수원이 직접 발부받게 하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 이 사건으로 원전 부품 국산화가 중단돼서는 안 된다.”

    ▼ 영광 3호기의 제어봉 안내관에서 미세 균열이 발견된 사건은 어떻게 보는가.

    “제어봉이 제때에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원자로가 과열될 수 있다. 안내관에 발생한 균열로 제어봉이 원자로에서 빠져나오려면 안내관에 원주(圓柱)방향으로 균열이 발생해야 한다. 이번 균열은 축방향 균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생했지만 축방향 균열은 해외에서 빈번히 일어났다.

    영광 3,4호기는 최초의 한국형 원전이다. 모델이 된 원전의 출구 온도를 30도 가량 높였기에 원자로의 응력 부식이 증가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어 지속적으로 관찰해왔었다. 두 번째 한국형 원전인 울진 3, 4호기는 안내관의 재료를 바꿈으로써 안전성을 강화했다. 이런 식으로 관찰을 계속하면서 개선해오고 있으니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영광 3호기의 안내관은 임시 보강 용접만 해도 원전 수명 기간에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으로 여의치 않다면 원자로 헤드를 교체하면 된다. 이러한 결정은 지속적인 관찰을 하면서 내릴 것이다. 국민이 염려하는 것만큼 위험한 상황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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