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상처 받은 마음 ‘쉴 곳’ 생긴다

현대중공업 위안부 할머니 ‘힐링센터’ 건립 지원

  • 김지은 객원기자│likepoolggot@empas.com

    입력2012-11-21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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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중공업이 생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힐링센터’ 건립을 전격 지원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주거 형태로만 운영되던 ‘쉼터’의 부족한 점을 보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 받은 마음까지 보듬는 전문 프로그램과 미래 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이 함께 이뤄지는 새로운 치유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상처 받은 마음 ‘쉴 곳’ 생긴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자리한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현재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는 60명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이가 더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 년 전, 어린 소녀였던 그들이 백발성성한 할머니가 되고나서부터다. 그래서 그들의 호칭은 처음부터 ‘할머니’였다. 그 존재를 알고 있던 이들조차 언급을 꺼리고 숨기기 바빴던 그때, 할머니들이 먼저 스스로 용기를 냈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1992년 1월 8일, 일본 정부에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를 행진하는 ‘수요집회’를 열었다. 이후 20여 년 동안 수요집회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계속되어왔다.

    1992년 7월과 1993년 8월,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조사를 발표하며 그 존재를 인정했으나 이는 ‘법적 책임 종결’이라는 일본의 입장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1993년 3월, 한국 정부는 도덕적 우위의 관점에서 일본 정부에 대한 ‘물질적 보상 불요구 방침’을 발표했다.

    우리 모두 가해자

    젊음을 채 꽃피우지도 못한 어린 시절, 비참한 성노예 생활을 해야 했던 이들은 육체적으로도 회복이 어려울 만큼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 상흔을 평생토록 숨기고 살아냈다. “내가 위안부였다”고 떳떳이 밝히는 데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 분은 236명. 그중 생존자는 단 60명이다. “숫자는 중요치 않습니다. 지금도 자신의 가족 중 일본군위안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해 쉬쉬하는 경우가 더 많아 그 숫자가 얼마였는지는 짐작기 어려운 실정이니까요. 수요집회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계신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고 뒤늦게 용기를 내시는 분들도 있어요.” 최근 2,3년 사이에도 용기를 내어 사단법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를 찾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정대협 관계자의 이야기다.



    이들이 안고 산 건 비단 육체적 고통과 상처만이 아니다. “나 죽기 전에 사죄받으면 이 자리에서 춤이라도 덩실덩실 출텐데….” 2011년 강구에서 진행된 ‘1000차 수요집회 기념 통영·거제시민 정의의 인간띠 잇기’ 행사에 참석한 김복득 할머니의 아픈 한마디는 그들이 겪었을 정신적 충격과 상처를 대변해준다.

    20여 년 세월이 지난 지금, 그들의 존재는 여전히 정치적 이슈이자 쟁점 사안이다. 때로는 반일감정의 표상으로, 때로는 여야를 막론한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작 위안부 할머니들이 처한현실적인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생활인’으로 받아들이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들의 존재를 모르는 이는 없기에, 어쩌면 우리 사회는 또 다른 가해자일지도 모른다.

    정대협이 추진하고 있는 ‘치유와 평화의 집’(가칭) 설립 목적은 일차적으로 현재까지 정대협에 등록된 60명의 생존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치유와 재활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정대협에서는 2003년 12월, 서울 서대문에 있는 정대협 사무실 인근에 전세주택을 마련해 ‘우리집’이라는 쉼터로 개소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나면서 거주자 중심의 완전 주거 형태만 유지하게 되어 쉼터에 거주하지 않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쉼터를 통한 복지활동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치유와 평화의 집’

    ‘치유와 평화의 집’은 쉼터 거주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쉼터에 거주하지 않는 할머니들도 다른 피해자들과 교류하고 활동가들과 친교를 나누며 다른 세대들과 만날 수 있는 곳을 지향한다. 늘 두려움에 떨며 혼자서만 감내하듯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어울려 사는 삶이 무엇인지, 나아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치유하고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았음을 깨닫도록 마음의 힐링(healing)을 제공하는 것이 ‘치유와 평화의 집’의 건립 모토다.

    상처 받은 마음 ‘쉴 곳’ 생긴다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 11월 14일 현재 1048회를 맞았다.

    또 전쟁으로 상처 받고 피폐해진 여성의 삶 전체를 되돌아보려는 것이다. 국내에 생존해 있는 일본군위안부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서 여전히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삶을 보듬는 것 또한 ‘치유와 평화의 집’이 갖게 될 중요한 역할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과 잘못된 성의식을 바로잡고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정대협의 이러한 구상에 힘을 실어준 것은 현대중공업이다. 지난 8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현대중공업이 선뜻 10억 원의 기금을 기탁한 것이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숙소는 할머니들의 편안한 사적 공간으로 활용하고, 현대중공업에서 제공하는 ‘힐링센터’는 치유와 역사의 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라며 “적극적으로 나서준 현대중공업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이 위안부 할머니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중앙병원(현재 아산중앙병원)이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평생 무료 진료를 약속하고, 진료를 시작하면서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아산병원은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실시한 정기검진 결과, 당시 검진에 응했던 피해자 53명 중 35.9%인 19명이 매독균 혈청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의 후유증이 전후 반세기 동안 피해자들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이것이 여전히 피해자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결과다.

    이후로도 아산재단은 피해자 할머니들의 건강검진뿐만 아니라 질환 치료, 예방은 물론 입원과 장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료복지 서비스를 지원해왔다. 독감예방접종기간에는 직접 진료팀이 피해자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접종해주기도 했다. 1995년 무료진료를 통해 폐암 말기인 것이 확인된 고 강덕경 할머니는 치료를 시작하면서 1997년 사망할 때까지 장기간 계속된 입원과 치료 과정은 물론 장례식까지 전액을 아산병원이 지원했다. 그 외 고인이 되신 배족간·이영순·김복선 할머니 등도 아산병원에서 수년간 진료와 치료를 지원받았다. 2010년부터는 할머니들의 틀니와 치과 진료도 전액 무료로 지원했다. 올해는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위안부로 살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평생을 지내야 했던 이모 할머니가 고국으로 돌아와 아산병원에서 무료 진료를 받고 있다.

    무료 검진 서비스 등 지원

    아산병원의 무료 진료와 치료는 단순히 물질적 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게 김동희 정대협 사무처장의 설명이다. “지리적으로 접근이 편한 곳은 아니지만, 아산재단의 지원 덕분에 할머니들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어요. 어딘가 아플 때,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마음 놓고 치료받을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할머니들에겐 든든한 ‘내편’이 생긴 셈이지요.”

    뒤늦게나마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할 수 있는 애정 어린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몹시 기쁘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높고도 험하다. 기본적인 기금은 마련되었지만 부지 매입부터 건립과 프로그램 운영까지 남겨진 숙제가 산더미처럼 많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건립 계획을 세우면서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필요한 예산이 많아진 것이 그중 하나다. 단편적인 반일감정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문제를 떠올리기 앞서 우리 사회가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일지, 관심과 애정이 더욱 절실하다.

    후원계좌번호 : 국민은행 011-01-0384327(예금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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