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공짜 점심 실시 며칠 만에 다른 직장 알아보라니”

올 연말 한국서 철수 200명 해고 충격의 야후코리아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2-11-21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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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인터넷 사용자 특성 외면…회생 기회 놓쳤다”
    • 고용유지 노력 없이 ‘칼 같은 정리’에 직원들 불만
    • 근속연수 불인정 등 조건 불리…6개월치 위로금 주고 “끝”
    • 포털 업계 불황 겹쳐 직원들 재취업은 ‘한겨울’
    “공짜 점심 실시 며칠 만에 다른 직장 알아보라니”

    마리사 메이어 야후 CEO(오른쪽 위). 서울 강남구 포스코 사거리에 자리한 야후코리아 사무실.

    10월 19일 금요일 오후 2시가 좀 지난 시각. 야후코리아(대표 이경한) 직원 2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만에서 건너온 로즈 짜오 아시아 총괄수석부사장과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 변호사, 그리고 외국인 안전요원 4명도 와 있었다. 발표를 하는 짜오 부사장의 요지는 간단했다. 오는 12월 31일을 기점으로 한국 사업 철수. 그는 “여러분은 재능 있는 인재이므로 금방 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공짜 점심 일주일 만에…

    모두에게 시쳇말로 ‘멘붕’이 왔다. “15년간 일궈온 회사를 5분 만에 접어버렸다”는 허탈한 탄식도 나왔다. 두어 시간 뒤 이 소식이 속속 보도됐고, 직원들 휴대전화는 가족, 지인, 거래처 사람들로부터 온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사업 철수란 초강수는 뜻밖이었다. 직원 A씨는 “일부 구조조정 발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지, 아예 셧다운을 통보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주말 사이 해프닝도 벌어졌다. 발단은 사업 철수 발표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사 메이어 CEO가 전 세계 직원에게 보낸 e메일. ‘이번 FYI에선 옥토버페스트를 기념하니 머그컵 하나씩 챙겨오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야후코리아 직원들도 이 e메일을 받았다.

    지난 7월 ‘구글 스타’ 메이어가 전격 영입된 뒤 야후에는 두 가지 ‘구글스러운’ 정책이 도입됐다. 하나가 공짜 점심이고, 다른 하나는 매주 금요일 오후 메이어가 본사 직원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Friday FYI(For Your Information)’라고 불리는 이 모임은 전 세계 야후 직원들을 상대로 생중계된다. 공짜 점심 정책에 따라 야후코리아 직원들도 회사 근처 5개 식당에서 무료로 점심을 먹게 됐다. 직원 B씨는 “공짜 점심을 먹은 지 일주일 뒤에 해고 통보를 받은 셈”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메이어의 ‘옥토버페스트 메일’에 대해 야후코리아의 한 직원이 ‘좀전에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야후에 온 지 얼마 안 된 당신에게서 옥토버페스트 운운하는 메일을 받으니 씁쓸하다’는 취지의 글을 FYI 게시판에 올렸고, 이에 메이어 CEO는 “이해해달라”는 답변을 보내왔다고 한다.

    야후꾸러기 앞날 ‘깜깜’

    주말이 지나고 야후코리아 직원들은 세브란스 패키지(severance package·정리해고 후 지급되는 퇴직금)를 통보받았다. 전 직원에게 퇴직금 외에 6개월치 급여를 더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단, 조건이 붙었다. △(사업 종료일인) 12월 31일까지 성실히 업무를 수행한다 △향후 회사를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 △본인은 이 계약에 자발적으로 사인했음을 밝힌다. 회사는 11월 7일까지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직원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사전 논의가 없었던 안인 데다 다른 국가로 옮겨가는 등의 고용유지 방안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위로금 산정에 근속연수를 고려하지 않은 점도 도마에 올랐다. 직원들은 여러 개선사항을 요청하며 본사 임원들과 전화 회의도 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야후코리아는 사원복지 일환으로 직원에게 최대 2000만 원까지 무이자로 대출해준다. 올 연말까지 이 대출금을 갚아야 할 처지의 직원들이 대출금 상환기한 연장을 요청했지만 이 역시 수용되지 않았다.

    B씨는 “한 번도 적자 난 적 없는데도 언론에는 야후코리아가 망해서 문 닫는다는 식으로 보도된 게 무척 자존심 상했다”며 “직원 몇몇이 메이어 CEO를 비롯한 본사 임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한국 직원들의 자존심을 고려해 정정 보도자료를 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답변조차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A씨는 “법적으로 구제받을 방안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외국회사가 사업을 철수한다는데 현지 직원이 어쩔 도리가 없었다”며 “결국 직원 대부분이 회사가 제시한 대로 세브란스 패키지에 사인한 상태”라고 전했다.

    “공짜 점심 실시 며칠 만에 다른 직장 알아보라니”
    한편 야후는 11월 9일 한국 사업 철수로 최소 9400만 달러(약 980억 원)의 손실을 입게 됐다고 공시했다. 감가상각비가 8700만 달러, 직원 퇴직금이 500만 달러, 임대차계약 종료 비용이 200만 달러다.

    1994년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생 데이비드 필로와 제리 양이 개발한 야후는 포털의 선구자란 평가를 받는다. 야후는 1997년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당시 많은 이가 야후코리아를 통해 인터넷 세상에 입문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야후코리아보다 한 해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다음커뮤니케이션(다음)과 국내 검색 시장을 양분하면서도 우위를 차지했다.

    국내 포털업계를 선도하면서 야후코리아는 IT인력 양성소 역할도 했다. 야후코리아에서 인터넷 및 포털산업에 대한 노하우를 익힌 인력들이 NHN, 다음 등 포털 업체를 비롯한 인터넷산업 전반으로 퍼져나가 중추 구실을 했다. 최휘영 NHN비즈니스플랫폼 대표이사, 김정우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이사, 허주환 다음 에듀엔터 본부장 등이 야후코리아 출신이다.

    하지만 2000년 네이버가 등장하면서 야후의 검색 점유율은 꾸준하게 떨어졌다. 후발주자 네이트에도 밀렸고, 최근에는 점유율이 1% 밑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자회사 오버추어코리아가 국내 검색광고 시장을 독점했기 때문에 야후코리아는 건재할 수 있었다. IT업계에서는 지금의 네이버, 다음을 만드는 데 오버추어코리아가 상당히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오버추어코리아가 주도적으로 확장해나간 검색광고 매출이 디스플레이광고 매출과 함께 포털 수입원의 두 축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 NHN이 네이버 검색광고 독자 운영을 선언했고, 다음도 내년부터 자체적으로 검색광고를 운영하겠다고 밝히면서 오버추어코리아와 야후코리아의 앞날은 어두워졌다.

    야후 본사의 사정도 어렵긴 매한가지다. 2011년 매출은 49억8400만 달러(약 5조4350억 원)로 전년 대비 20% 이상 급감했다. 최근 5년 새 주가는 40% 폭락했고, 온라인 광고 시장점유율은 8%로 떨어졌다. 실적 악화를 이유로 CEO도 자주 교체됐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맵, 구글어스, 스트리트뷰, iGoogle 등을 성공적으로 이끈 구글 부사장 마리사 메이어가 CEO로 깜짝 영입됐다.

    메이어의 야후는 한국 사업 철수를 전격적으로 결정한 듯하다. 철수가 먼저고 사업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는 나중인 모양새다. 야후코리아 홍보 담당자는 “메일, 메신저 등 서비스의 존속 여부를 본사와 논의 중”이라며 “조만간 정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버추어코리아 관계자는 “제휴사나 광고주와의 관계 정리 방안에 대해서도 지금 본사와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야후코리아는 서울 강남 포스코사거리에 있는 JS타워에 전월세로 입주해 있는데, 계약기한은 내년 8월까지로 8개월 먼저 방을 비우는 셈이 됐다. 이런 경우라도 임차료는 계약기간까지 지불해야 하는데, 야후는 그 비용으로 200만 달러(약 22억 원)를 예상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업 철수에 야후코리아 직원들이 당혹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간 추진했던 프로젝트가 모두 중단됐기 때문이다. 야후코리아가 선보인 성공작 중 하나는 어린이 전용 포털 야후꾸러기다. ‘어린이에게 안전한 인터넷 놀이터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2000년 서비스를 개시한 야후꾸러기는 이후 미국 야후와 일본 야후에 역수출됐고, 국내에서도 네이버 ‘쥬니버’, 다음 ‘키즈짱’ 등 유사한 어린이 포털이 속속 나오는 자극제가 됐다.

    “공짜 점심 실시 며칠 만에 다른 직장 알아보라니”

    2011년 12월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야후코리아의 송년파티에서 직원들이 장기자랑을 펼치고 있다. 한때 500명이 넘었던 야후코리아 직원은 현재 200명 안팎으로 줄었다.

    대안 중심 조직개편

    야후코리아는 야후꾸러기 매각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사업 철수로 없던 일이 돼버렸다. 직원 C씨는 “한국 키즈 서비스의 트래픽은 미국의 25배, 일본의 10배 규모”라며 “매각을 통해 어떻게든 야후꾸러기를 살려보려 했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미국 본사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야후꾸러기를 살릴 방안을 제시했는데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버추어코리아는 다음과의 검색광고 대행 계약 연장이 무산된 이후에도 기술 이전 등 다각도의 협력 방안을 다음과 논의해왔다. 오버추어코리아 관계자는 “그러나 사업 철수로 모든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3%까지 떨어졌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9%까지 올라왔다. 페이지뷰도 2003년과 비교해 150%가량 상승했다. 주춤했던 야후 사업 전략의 동력은 과감한 ‘선택과 집중’이었다. 고객이 원하는 콘텐츠는 다 소화한다는 관점에서 40개까지 늘었던 서비스를 4개로 집중했다. 전면 페이지·뉴스·검색·키즈(야후꾸러기)에 70% 자원을 쏟아 부으면서 오히려 네티즌의 호응을 받았다….

    - 전자신문 2008년 1월 28일자, ‘야후코리아, 겨울잠서 일찍 깨나’ 중

    위 기사에서 보듯 야후코리아에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야후코리아 대표였던 김진수 맥그로힐에듀케이션코리아 대표는 “메인페이지, 뉴스 등에서 사용자 행동을 분석해 서비스 개선에 반영함으로써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회생 가능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 대표는 “본사 정책에 따라 조직이 각 국가 단위에서 대륙 단위로 확대되면서 한국 사용자 특성에 맞춘 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야후는 상품(product), 즉 검색·메일·메신저 등을 담당하는 조직을 미주·유럽·아시아태평양 단위로 묶었다. 한국 검색팀이 아시아태평양 검색팀 내로 들어가는 식이었다. 한국이 속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본부는 대만에 위치했다. 이런 조직 개편에는 각 국가로 쪼개진 기능을 합침으로써 자원 중복을 줄이자는 취지도 있었다. 야후코리아 전 직원인 D씨는 “각 나라에서 일 잘한다는 사람들은 대만으로 불려갔고, 업무 영역이 겹친다는 이유로 구조조정도 일부 있었다”고 전했다. 역시 전 직원인 E씨는 “한국 소비자의 특성이나 치열한 국내 경쟁 상황을 본부에 이해시키는 게 점차 어려워졌다”며 “야후코리아 경쟁력이 약화된 데는 이런 조직적 한계에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아무리 대단한 글로벌 기업이라도 현지화를 소홀히 하면 성공할 수 없음을 기억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현지화 소홀이 ‘덫’ 됐다

    메이어 CEO는 야후 안팎으로 “모바일에 집중해야 한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야후가 앞으로도 인원을 절반가량 줄일 것” 이란 추측성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 사업 철수도 야후 스스로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듯 ‘더 강력한 글로벌 비즈니스를 수립하는 데 자원을 집중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지난 15년간 야후코리아에 몸담았던 사람들까지 이렇게 무 자르듯 명쾌할 순 없는 노릇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야후코리아 사람들은 “투자를 해서 살리든, 아니면 매각을 하든 기업가치가 좀 더 높았던 때 결정했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과연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적이 있는가” 하는 반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연말까지 자리를 지키며 사업 정리를 해야 하는 현 직원들은 “우리 손으로 쌓아올린 서비스와 제휴사와의 관계를 우리 손으로 허물어야 한다는 게 마음 아프다”고 토로했다.

    페이스북에는 야후코리아 OB 모임 페이지가 개설돼 있다. 요즘 여기 회원들은 후배들의 새 직장을 알아봐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야후코리아의 마지막 직원들은 짬짬이 이곳저곳 면접 보러 다니거나 삼삼오오 모여 창업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 불황에 포털업계 구조조정까지 겹쳐 이도저도 만만치가 않다. 이제 야후코리아는 역사에 묻히고 추운 겨울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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