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호

“열심히 했지만 실패한 인수위원장 100大 과제 정부서 다 퇴짜 놓더라”

김대중 정부 이종찬 前 위원장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2-12-27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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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수위서 설익은 案 마구 흘러나와 국민은 혼란
    • 인수위 구성 서둘지 말고, 인수위원으로 組閣 필요
    • 대통령은 靜觀 하며 총리 인선 등 큰 그림 구상해야
    “열심히 했지만 실패한 인수위원장 100大 과제 정부서 다 퇴짜 놓더라”

    이종찬<br>1936년 중국 상하이 출생 / 경기고-육사 16기. 소령 예편 / 중앙정보부 해외공작부국장-총무국장, 국가보위입법위원 / 민정당 원내총무, 정무1장관, 11~14대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 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장, 국정원장 역임. 현재 우당장학회 이사장.

    “대한민국 정부를 세울 때 최대 난제가 토지개혁이었다. 제헌의회에 입성한 의원의 절대 다수가 한민당원인데 그들은 대부분 지주 출신이라 토지개혁을 극력 반대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이 어떻게 했나. 광복 후 조선공산당과 결별한다는 성명은 발표했지만 그 후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고, 대일항쟁기에는 내내 공산주의 활동을 한 죽산 조봉암을 초대 농림부장관에 임명해 토지개혁을 밀어붙였다. 덕분에 6·25전쟁 때 인민군이 내려왔어도 한국에서는 농민 봉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남침을 앞두고 김일성과 박헌영이 스탈린을 찾아갔다. 스탈린이 ‘너희가 내려가면 노동자 농민들이 깃발을 들고 호응할 것인가’라고 묻자, 박헌영은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남로당이 10·1 대구폭동과 제주도 4·3사건을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월북한 후 대한민국에서는 조봉암 장관이 토지개혁을 강력히 밀어붙여 소작인들이 땅을 갖게 했다. 이런 이유로 인민군이 내려왔어도 농민들이 계급투쟁을 벌이지 않았다. 이 일로 정전(停戰) 후 김일성은 박헌영에게 잉크병을 집어던지며 ‘당신이 우리가 내려가면 무산계급이 호응해 봉기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윽박지르고 그를 숙청했다.

    조봉암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원칙으로 토지개혁을 했기에, 땅을 뺏긴 지주에게는 ‘지가(地價)증권’을 주었다. 그리고 은행에 지가증권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게 해, 지주를 산업자본가로 유도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 이 증권이 휴지가 되면서 산업자본가 육성이 무산됐다. 토지개혁과 산업화 동시 추진은 무산됐지만 아무튼 토지개혁은 성공시켰다. 그때 이 대통령이 조봉암을 기용하지 않았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당선될 때 신세를 진 세력을 기용하지 말고, 국가 발전에 필요한 사람을 찾아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초의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후 최초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안)’을 제정했고, 이 법은 2003년 2월 국회를 통과해 법률로 확정됐다. 그를 만나 인수위 운영에 대한 교훈을 들으려고 한 것인데, 그는 인수위가 아닌 대통령 당선인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부터 쏟아냈다.



    “함경도 출신 군인들은 대체로 용감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함경도 출신 군인들과 5·16을 성공시켰지만, 반(反)혁명 혐의 등을 이유로 ‘알래스카’로 불린 그들을 제거하고 경상도 세력이 중심이 된 4인 체제에 무게를 둬, 경제개발을 추진했다. 정권을 잡을 때 신세 진 사람을 내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정한 생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사람을 뽑아 활용했다. 당선인은 이러한 것을 배워야 한다.

    대통령과 CEO는 시간 여유를 갖고 상황을 바라보는 정관(靜觀)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얼리 버드(early bird·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면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처럼 새벽부터 수석회의를 주재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이 수석과 회의하면, 장관들은 수석으로부터 통보를 받으므로, 수석의 눈치를 보게 된다. 수석이 뭔가? 보좌진 아닌가? 보좌진은 대통령에게 좋은 보고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은 실정을 알지 못하고 골목대장 노릇만 하게 된다. 국가가 위기에 직면해도 바로 알지 못한다. 그리고 위기가 커지면 원인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장관만 자꾸 바꾸게 된다.

    대통령은 보좌진의 도움을 받아 부문(部門) 사령관인 장관을 직접 지휘해야 한다. 대통령은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을 운영할 줄 알아야 한다. 장관을 ‘우리 집 부엌에서 아침을 먹자’고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고 지시해야 장관들이 최선을 다하고 대통령도 현실을 제대로 알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임기와 함께 가는 장관을 만들어야 대통령은 계획한 대로 나라를 이끌 수 있다.”

    ▼ 최초의 인수위원장으로서 차기 정부 인수위 운영에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미국에서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누가 인수위에 들어갔는가. 부통령으로 당선된 딕 체니가 위원장, 국방장관을 하게 되는 럼스펠드와 국무장관이 되는 콜린 파월이 인수위원이었다. 나는 당선인에게 ‘인수위 만드는 일은 절대 서두르지 말라’는 주문을 꼭 하고 싶다. 인수위는 새 정부 출범을 코앞에 둔 2013년 2월 초에 구성해도 된다. 그때까지는 총리를 맡길 사람과 외교 국방 경제 교육 같은 큰 국정을 다룰 사실상 부총리급 장관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 다음 정부에서 일할 사람들을 정해놓고 그들로 인수위를 만들라는 것이다.

    나는 최초의 인수위원장이었지만 실패한 인수위원장이다. 내가 이끈 인수위는 수많은 공무원을 만나 차기 정부가 해야 할 100대 과제를 정리해 넘겼지만, 전부 무시됐다. 차기 정부에서 하지도 않을 일을 하느라 괜히 공무원들만 들볶았다. 차기 정부는 이러한 낭비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은 인재 찾는 데 집중해야

    ▼ 인수위 자체보다는 인수위를 운영할 당선인의 자세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차기 정부에서 큰일을 할 사람으로 인수위를 구성한다고 해도 당선인은 그 인수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란 문제에 부딪히지 않는가.

    “6·25전쟁 때 왜 많은 소위가 전사했는지 아는가. 사단장이 대대장 자리에 와 있으니 대대장은 중대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중대장은 소대장 자리로 뛰어갔다. 그러니 소대장들은 마음이 급해져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돌격하다 줄줄이 전사했다. 사단장이 할 일은 따로 있는데 대대장이 할 일을 간섭해버리니 바쁘기만 하고 실속이 없어진다.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은 절대로 바쁘게 지내지 않았다. 연말이 다가오면 도쿄(東京)로 날아가 온천을 하며, 식견 있는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새 일이 구상되면 돌아와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맡기고, 그에게서 어떻게 하겠다는 보고를 받으면 꼼꼼히 메모를 했다. 그러고는 분기가 지날 때 불러 진행된 상황을 보고 받고 기다려주었다. 어차피 연말이 되면 대차대조표가 정확히 나올 것이니까.

    반면 나와 가깝게 지냈던 모 회장은 직접 챙겼다. 그 바쁜 사람이 안 되는 회사가 있으면 달려가 사장을 밀쳐놓고 직접 지시를 했다. 그러니 사장들은 시키는 것만 하게 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 회장이 아무리 유능해도 열 사람의 머리를 당하겠는가. 삼성이 번창하고 삼성만큼 거대했던 그의 그룹이 무너진 것은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 차이였다.

    당선인은 급히 인수위를 만들어 신속히 권력을 넘겨받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조용한 산사에 들어가 5년 동안 할 일부터 구상하는 정관을 해야 한다. 모여드는 사람들을 끊고 조용한 곳에 들어가 있으면, 사람을 보는 지혜가 생겨난다. 당선인에게 필요한 것은 신속히 인수위를 만드는 것보다 그가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그 일을 해낼 사람을 신중히 찾아내는 정관이다.”

    “열심히 했지만 실패한 인수위원장 100大 과제 정부서 다 퇴짜 놓더라”

    1998년 2월 신건 인수위원(왼쪽)과 귓속말을 나누는 이종찬 초대 대통령직인수위원장.

    ▼ 국가를 이끌 제왕학(帝王學)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지금 우리 정치계에는 국가를 이끌 만큼 큰 인물들이 모이지 않는 것 같다. 정치학계도 시민정치, 정치철학 등 작은 정치학은 가르쳐도 국가를 운영하는 큰 정치학은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정치학의 영역은 줄어들고 경영학이 커졌다. 사람을 다루는 용인술은 오히려 경영학에서 많이 다루고 있다. 잭 웰치의 리더십이나 정주영의 리더십을 가르치는데, 거기에 외교 안보 복지 교육을 더하면 방금 말한 제왕학 분야가 아니겠는가. 왜 정치에 인물이 모이지 않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일본이 매우 작은 정치를 하고 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일본 정계에는 올망졸망한 졸장부들이 모여 있기에 돌파를 하지 못한다.

    일본의 경제 예측 전문가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는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당선인을 내는 소선구제가 일본 정치를 망쳤다’고 비판했다. 한 사람만 당선되니 출마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인기를 끄는 데만 집중해, 국가 비전을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우리도 선거제도 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 김대중 대통령은 큰 정치를 했는가.

    “노태우 대통령은 중국 소련과 수교하는 물꼬를 텄지만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1989년 노 대통령은 차관을 주기로 하고 제주도에서 30여 분간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났다. 그때 찍은 사진이 북방정책 상징이 됐다. 이듬해 노 대통령은 서동권 안기부장을 북한에 보내 정상회담을 타진했다. 그러자 김일성은 껄껄 웃으면서 ‘결과도 없이 사진이나 찍는 정상회담을 뭐 하려고 하자느냐’라고 물었다.

    서 부장이 ‘결과를 내면서 하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하자, 김일성은 ‘좋다. 그렇다면 고려연방제를 받아들이겠다고 해라. 고려연방제를 받아들인다면 얼마든지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했다. 고려연방제는 받아들일 수 없기에 서 부장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는 정상회담이라는 한 주제에 매달렸기에 우리가 실패한 경우에 해당한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났을 때 김정일이 주한미군 철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김 대통령은 바로 ‘지금 주한미군은 당신들과 적대적이지만, 우리가 정전체제를 끝내고 평화체제로 갈 때 중국과 일본이 우리를 넘보는 것을 막으려면 주한미군이 있는 게 낫다. 북한은 주한미군 문제에 너무 신경질적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김정일은 ‘그 말이 맞다’고 하면서 ‘그러나 쭉 반미를 해왔는데 갑자기 친미를 할 수 없다. 서서히 그쪽으로 가면서 미국과 평화조약으로 국교를 맺어야겠다’라고 하자, 김 대통령도 그렇게 하라고 동의했다. 그러한 합의가 있었기에 김대중 정부는 북한이 미국에 앞서 서방국가들과 수교하는 것을 도왔다.

    이것이 큰 정치다. 대통령이 작은 것까지 다 챙기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 아까 실패한 인수위원장이라고 자평하셨는데 이는 김대중 정부와의 색깔 차이로 인수위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는 뜻인가.

    “아니다. 지금은 김대중 정부라고 하지만, 그때는 자민련과의 공동정부, DJP 연합정권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국민회의에 합류한 사람인데 자민련에는 과거 민정당에서 같이 활동한 사람이 많았다. 김대중 당선인은 양쪽 융합을 위해 나를 인수위원장에 임명했다.

    그때 최대 문제점은 초안으로 검토되던 것들이 마구 언론에 보도되는 것이었다. 초안은 아무래도 과격할 수밖에 없고 사견에 가까운데 인수위원들이 기자들에게 흘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인수위가 국보위냐, 혁명정부냐?’ 하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때문에 5개 소위원회를 만들고 공보관을 둬, 매일 5개 소위원장과 회의한 후 거기에서 결정된 것만 공보관을 통해 발표하게 했다. 초기에 사견에 가까운 성숙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마구 발표된 것과 그것을 수습해 정리한 과제를 도출했는데, 차기 정부에서 그것이 채택되지 않은 것이 내가 인수위원장으로 실패했다는 뜻이다.”

    전두환은 통 큰 정치

    ▼ 전두환 정권 출범에도 참여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국가보위입법회의를 만들 때 입법위원을 했고, 민정당 출범 때는 초대 원내총무를 맡았다. 국보위와 입법회의는, 어떻게 보면 대통령직인수위와 성격이 비슷한 것 같다. 쿠데타로 세웠느냐 선거로 만들었느냐는 차이가 있지만.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있지만 그도 통 큰 정치를 하려했다. 나는 중위 때 박정희 소장이 만든 국가재건최고회의에 파견돼 있으면서 전두환 대위와 잠시 만나고 그 후 별다른 인연 없이 지냈다. 박정희 정부 때 나는 중앙정보부(중정)의 해외공작 부국장을 하면서 김재규 부장의 비밀 지시로 무기 거래상인 아이젠버그의 도움을 받아 베트남에 억류돼 있는 이대용 공사를 빼내는 공작을 하다 10·26을 맞았다. 중정부장이 박 대통령을 시해했으니 중정의 모든 공작은 중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공사만은 빼내와야겠기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찾아갔더니 ‘계속하라’고 해 성공시켰다. 그리고 전 사령관이 중정부장을 겸직하면서 나를 총무국장에 임명해 중정 개혁 임무를 맡겼다. 이어 민정당 창당을 맡기고 원내총무를 하게 했다. 나는 그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12·12에 참여한 것도 아닌데, 나를 쓴 것이다.

    원내총무 첫해,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려는데 야당이 반대하며 국회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목(耳目)을 피해 고재청 민한당 원내총무를 국회도서관에서 만나 이유를 물었더니, ‘대통령 동생(전경환)이 사무총장을 한다고 새마을중앙회 예산을 4배나 증액시킨 예산안을 우리는 표결해줄 수 없다. 여당이 날치기를 하려면 해라. 우리는 절대 못 들어간다’라고 했다. 그때 새마을중앙회 예산이 그렇게 늘어난 것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 청와대로 전화를 걸자 허화평 정무수석이 받았다. 그에게 용건을 밝히고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더니 한 시간 후 허 수석으로부터 ‘대통령이 예산안은 원내총무 소관인데 왜 대통령 의견을 묻느냐며 역정을 냈다’는 답신이 왔다. 그래서 ‘아, 해도 되겠구나’는 판단이 들어, 고 총무를 만나 새마을중앙회 예산을 모두 깎아버릴 테니 국회에 들어와달라고 했다. 그제야 야당이 회의장에 들어왔다. 표결에서는 부(否)표를 던졌지만, 참여 속에 한 반대였다. 5공이 만든 첫 예산안이 날치기 통과되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전 대통령은 자기 사람만 고집하지 않았다. 괜찮다 하는 이가 있으면 자기 인맥이 아니어도 광범위하게 기용했다.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려낸 김재익 경제수석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상당한 권한을 위임했다. 우리 당선인도 그러한 길을 걸어야 한다.”

    지도자는 검증 과정 거쳐야

    ▼ 대통령이 될 사람은 사람을 잘 써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알아듣겠다. 오너가 있는 기업이라면 오너가 오랫동안 중역을 관찰할 수 있기에 유능한 사람을 CEO로 쓸 수 있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는 선거로 대통령을 뽑으니 일본의 소선거구 사례처럼 인기 있는 사람이 당선 된다.

    “민주주의는 소중한 제도이지만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안철수 씨처럼 처음 나와서 바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나오지 말았으면 한다.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밑에서부터 올라오면서, 국민에게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처칠이나 드골처럼 선견지명을 갖고 소신껏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국민은 지켜보다 그를 거인(巨人)으로 보고 뽑아준다. 국회의원을 뽑는 것과 대통령을 뽑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국민은 오래 지켜볼 시간이 있으면 벼랑 끝에서도 한발을 내디딜 수 있는 이를 대통령으로 뽑게 된다.”

    인수위는 혁명정부 아니다

    이 전 원장은 “당선인은 인수위를 빨리 만들어 권력을 넘겨받는 데 집중하지 말고, 다음 정권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를 생각하고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인수위 따로, 차기 정부 따로 움직이는 것은 피해야 한다”며 당선인을 위해 이러한 사례를 들어주었다.

    “훗날 40대 일본 총리가 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는 공고 야간부만 나왔음에도 고시 출신이 즐비한 대장성(大藏省)을 잘 이끌어, 가장 유능한 대장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똑똑한 대장성 관료들을 향해 ‘이 분야는 당신이 최고’라며 맡겨놓고 정확히 결과를 챙겼기 때문이다.

    장성 교육을 시키는 미 육군의 참모대학에 들어가려면 소양시험을 치러야 한다. 소양시험에는 이러한 문제가 나온다고 한다. ‘귀하는 전 아시아를 담당하는 태평양사령관인데, 북한군 2군단이 휴전선을 돌파해 경기도 지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군 1군단의 예비대인 30사단을 동원해 돌파된 전선을 틀어막고, 3군의 예비대인 7군단으로 역습을 한다고 쓰면 탈락이다. just observe, ‘관조(觀照)하고 있겠다’고 써야 정답이다.

    한반도 상황은 한미연합사령관 차원에서 대처할 일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사령관은 전구(戰區)사령관이다. 전구사령관은 일선 사령관이 작전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못하면 바꿔주고 잘 하면 격려해주면 된다. 그것이 전구사령관의 임무다. 일선 사령관이 할 일을 전구사령관이 해버리면, 현장에서는 다급해진다.

    또 하나 예를 하나 들겠다.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의 거점을 확인해 작전할 때 오바마 대통령은 구석 자리에서 화면을 보며 특수작전 담당 장군이 현장을 지휘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그때 오바마가 가죽점퍼를 입고 설쳤다면 그 작전은 실패했을 것이다. 작전지휘관이 해야 할 일을 대통령이 나서서 하지 말라.

    다음 대통령은 이런 관점을 갖고 용인술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급히 인수위를 만들어 권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천천히 신중하게 조직해야 한다. 인수위원을 차기 정부에 장관으로 기용해 그가 목표한 정책을 이뤄나갈 수 있도록 5년 임기를 함께해야 한다. 인수위는 결코 혁명정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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