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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 개발 36년 한길 LG트롬 美 점유율 1위 주역

LG전자 첫 고졸 출신 조성진 사장

  • 송화선 기자 │ spring@donga.com

세탁기 개발 36년 한길 LG트롬 美 점유율 1위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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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용량 드럼세탁기의 탄생

세탁기 개발 36년 한길 LG트롬 美 점유율 1위 주역

미국 드럼세탁기 시장에서 LG전자는 5년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더 큰 성과는 이 모터 덕분에 세탁기 용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불 등 큰 빨래가 많은 한국 실정에 딱 맞았다. 해외에서도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에는 5kg 이상의 드럼세탁기 제품이 드물었다. 이후 LG전자는 초대용량 제품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2012년 미국 시장에 출시한 세계 최대 용량 21kg 드럼세탁기(모델명 WM8000)는 미국 최고 권위의 소비자 정보지 ‘컨슈머 리포트(Consumer Report)’ 에서 평가 1위 제품으로 선정됐다.

조 사장은 이번에도 멈추지 않았다. 또 한 번, 신기술 개발에 도전했다. 2005년 출시된 ‘스팀 트롬’ 세탁기도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LG전자에 따르면 조 사장이 이 기술 연구에 뛰어든 건 2003년 무렵부터다. 해외 출장 중에 바지가 자꾸 구겨지는 데 불편함을 느끼다가 뜨거운 김이 서려 있는 샤워실에 걸어두니 주름이 펴지는 것을 보고 착안했다고 한다. 2년여의 연구 끝에 세계 최초 듀얼 스팀 드럼세탁기가 나왔다. 스팀을 이용해 때를 불려 세탁함으로써 세탁력은 높아지고, 전기와 물 사용량은 각각 51%, 38%씩 줄었다. 시장 반응은 역시 뜨거웠다. 세계가 움직였다. 2003년 2.3%에 불과했던 LG 세탁기의 북미 시장 점유율은 2006년 14.3%로 뛰어올랐다. 2007년 초에는 미국 드럼세탁기 시장 1위에 올랐다. 단일 국가로는 세계 최대 규모 가전시장인 미국에서 현재 LG전자는 5년째 드럼세탁기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2012년까지 6년 연속 1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도 뒤따랐다. 2006년 당시 산업자원부는 조 사장의 ‘스팀 세탁 기술’을 ‘대한민국 10대 신기술’로 선정했다. 생활가전 분야 기술이 ‘신기술’로 선정된 건 이때가 처음이다. 2007년에는 세탁기 사업 분야에서만 3년간 60억 달러 상당의 글로벌 매출을 달성해 국가 산업 발전과 국가 경쟁력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동탑산업훈장도 받았다.

조 사장의 스팀 기술은 이후에도 꾸준히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2012년에는 ‘스팀트롬 알러지케어’로 발전해 LG전자의 주요 드럼세탁기 제품에 적용되고 있다. 이 기술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물질인 집먼지 진드기 등을 효과적으로 제거해주는 것으로, 한국천식알레르기협회(KAF·Korea Asthma Allergy Foundation)와 영국알레르기협회(BAF·British Allergy Foundation) 등의 인증을 받았다.



어쩌면 조 사장의 삶에서 진짜 ‘신화’는 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최고의 세탁기 엔지니어가 된 것,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가 금성사에 입사할 무렵 우리나라의 세탁기 보급률은 채 1%가 안 됐다. 관련 기술도 전무했다. 당시 한국 전자회사가 하는 건 일본 부품의 조립에 불과했다. 조 사장은 오랜 기간 자신의 업무는 일본에 가서 머리 숙이고 기술을 베껴오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전자회사가 모여 있는 일본 오사카를 하도 드나들어 지금도 오사카 사투리가 강한 일본어를 쓴다. 도쿄에 가면 곧잘 ‘오사카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다.

‘세탁기 기술 독립’의 꿈

세탁기 개발 36년 한길 LG트롬 美 점유율 1위 주역

1998년 LG전자가 터보드럼 세탁기를 출시한 뒤 낸 언론 광고.

이런 상황에서 그는 ‘신기술 개발’을 꿈꿨다. 기술 도입 중 알게 된 일본 지인들에게 술을 사주며 친분을 쌓아 비밀리에 세탁기 생산 라인을 구경했다. 그들을 한국에 초청해 경주 등을 관광시켜주며 노하우를 듣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불국사, 첨성대 등의 연혁을 모두 외운다고 한다. 조 사장의 말처럼 “기술 한 터럭이라도 귀동냥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 시절이었다.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자 비로소 자신의 소신을 회사에 밝혔다.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LG전자에 따르면 조 사장은 세탁기설계실 근무 시절 ‘일본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독자적인 기술로 일본을 뛰어넘든지 새 영역을 찾아 일본을 비켜나가자는 내용이었다. 이후 통돌이와 DD모터와 스팀드럼세탁기 등이 차례로 세상에 나왔다. 첨단 기술에 세련된 디자인까지 더한 LG세탁기는 이제 미국·유럽 등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일본 세탁기는 국내외 시장에서 LG전자의 적수가 되지 못한 지 오래다.

조 사장은 2001년 LG전자 최초의 고졸 출신 상무로 승진했을 당시 “이 직책이 회사가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2005년 세계 최초의 듀얼분사 스팀 드럼세탁기 개발을 통해 세탁기의 새 역사를 쓴 뒤 2007년 세탁기사업부장인 부사장으로 승진했을 때는 “승진해서 기쁜 것보다 세탁기 부문에서 계속 일할 수 있어서 안도했다. 한동안 다른 부문으로 발령이 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오직 ‘세탁기에만 미쳐’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실제로 그는 세탁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뒤 사내 다른 사업부로 옮길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TV나 휴대전화 같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일해보면 어떠냐는 제안도 받았다. 그러나 조 사장은 자리를 지켰다. 옷을 벗지 않은 상태에서 빛으로 빨래를 할 수 있는 세탁기나 휴대전화와 연동해 작동하는 스마트 세탁기 등의 첨단 기술이 세탁기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어떤 명문대 출신도 이루지 못한 ‘외제보다 좋은 국산’의 역사를 앞장서 일궈냈다. 최근에는 세탁하기 힘든 양복이나 외투를 보관해두기만 하면 냄새와 세균이 제거되는 ‘LG 트롬스타일러’를 출시해 세탁기의 영역을 한층 넓히기도 했다.

이제 조 사장은 36년 만에 세탁기에서 벗어나 냉장고, 청소기 등 가전제품 전반을 총괄 경영하게 된다. 1978년 금성사의 고졸 신입사원 초임은 월 11만300원이었다. 그렇게 입사해 일본 기술을 배웠던 그가 샐러리맨의 신화로 우뚝 선 것이다. LG전자 전통적 주력 분야인 HA사업본부를 조 사장이 어떻게 이끌어갈지 주목된다.

신동아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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