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기고

질풍노도의 격동시대 뚫고 거울 앞에 서다

대선 뒤흔든 대한민국 50대의 자화상

  • 고승철│소설가 koyou33@empas.com

질풍노도의 격동시대 뚫고 거울 앞에 서다

2/4
전교 1등 휴머니스트 박재완 군

질풍노도의 격동시대 뚫고 거울 앞에 서다

50대들은 “우리 세대의 불안감과 억울함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선택하게 했다”고 말한다.

미술교사는 실기준비물을 갖고 오지 않은 학생에게는 점수를 낮게 줬다. 빈곤한 학생은 학교 매점에서만 파는 그 준비물을 사기 어려웠다. 미술교사가 커미션을 먹고 그런 잡다한 준비물을 강요한다는 것쯤은 어린 학생들도 잘 알았다. 해마다 6·25 때면 반공 웅변대회가 열리는데 참가자들은 두 팔을 벌려 부르르 떨며 “김일성 도당을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고 이 어린 연사, 온몸 바쳐 맹세합니다!”라고 절규했다.

개발도상국을 돕기 위해 온 미국 평화봉사단 소속 영어교사가 기억에 떠오른다. 금발 백인인 그는 가끔 영어 수업에 들어와 발음을 교정해줬다. 사과를 보여주며 뭐냐고 묻기에 학생들이 경상도식 영어로 “애펄”이라고 대답하자 “애뽀우”라고 바로잡았다. 중2 수학여행을 서울로 갔다. 청진동의 여관방에서 한 방에 30여 명이 함께 잤다. 이불과 베개가 모자라 잠을 설쳤다. 광화문 앞 정부종합청사 등 고층빌딩을 보고 ‘촌놈’들은 놀랐다. 조악하게 인쇄된 음란소설인 ‘꿀단지’와 ‘동굴초’가 남학생 사이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수업시간에 읽다가 선생님에게 들키면 뺨을 얻어맞고 뺏겼다.

중3이 되자 고입 ‘공부 전쟁’이 시작됐다. 필자 세대는 중입, 고입, 대입 시험을 치러야 했다. 지방 중소도시인 마산에서 우등생들은 부산, 서울, 대구 등의 명문고교로 진학했다. ‘대도시 유학’을 하려면 경제력 뒷받침도 필요했다. 3년 내내 거의 전교 1등을 독차지한 박재완 군(기획재정부 장관)은 부산고에 갔다. 박군은 가난한 열등생에게도 친절한 휴머니스트였다.

필자는 마산고에 진학했다. 부산고, 경남고 등 메이저리그로 공부 고수들이 몰려갔기에 마이너리그인 마산고에서는 여유 있게 지낼 수 있었다. 절친한 중학교 동기생이 집안 형편이 어려워 마산상고에 들어갔다. 의리를 지키려 한동안 그 친구와 함께 주산학원에 다녔다. 주산학원에서 인문고 학생은 나 혼자였다.



고등학생 때는 육체적으로 가장 왕성한 시기다. 홍콩 배우 이소룡이 주연한 영화 ‘용쟁호투’가 히트하면서 청소년들은 줄줄이 무술 배우기에 나섰다. 필자도 근질거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해 합기도와 복싱을 수련했다. 복싱에는 약간의 재능이 있는 듯했다. 고교 야구가 큰 인기를 끌어 결승전 중계 때는 너도나도 TV 앞에 앉았다. 김봉연은 홈런을 잘 때렸고 군산상고는 역전승에 능했다. 라디오에선 조영남의 ‘딜라일라’,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 남진의 ‘가슴 아프게’,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등 인기가요가 흘러나왔다. 윤정희, 문희, 남정임 등 여배우 3명은 ‘트로이카’를 형성해 전성기를 구가했다.

교련이 고교 이상 학교에서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됐다. 북한의 남침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란다. 장교 출신 교련교사가 군복을 입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들도 얼룩덜룩한 개구리 무늬의 교련복 차림으로 목총을 들고 각개전투를 익혔다. 때때로 진짜 총을 받아 분해 결합하는 연습을 했다. 여고생들은 간호병 역할을 맡았다. 학생들은 외출할 때 사복 착용이 금지됐다. 영화관, 빵집에도 마음대로 못 다녔다. 남녀 학생이 빵집에서 만나다 합동 규율단속 교사에게 걸리면 정학을 당했다.

카트린 드뇌브의 매력

영화감상은 월말고사가 끝나는 날 학교가 지정한 극장에서 단체관람을 하는 것으로 때워야 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려면 단속 교사에게 걸릴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몰래 본 영화 가운데 루이스 브뉴엘 감독의 ‘세브린느’가 기억에 남는다. 학대를 당하며 성적 쾌감을 얻는 마조히즘 장면은 10대 소년에게는 충격이었다. 주연 배우는 최고 미녀로 손꼽히던 카트린 드뇌브. 세월이 흘러 필자가 파리특파원으로 일할 때 그녀와 조우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길거리 곳곳에서 확성기를 통해 “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세!” “잘살아보세!”라는 노래가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왔다. 쓰레기 청소차가 새벽에 거리를 달릴 때도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하는 새마을운동 노래를 틀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돼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다녀온 사람들이 “버스 안내양이 비행기 스튜어디스 못잖게 예쁘더라”고 떠들며 자랑했다.

‘공부벌레’ 고교생들은 ‘성문종합영어’와 ‘수학의 정석’을 몇 번 뗐니 어쩌니 하며 명문대에 진학하려는 야망을 키웠다. 일본 도쿄대 입시문제를 번역 출판한 책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서울대 입시의 제2외국어에서 독일어보다 불어가 유리하다고 판단한 교장이 서울대 불문과, 서울대 불어교육과를 갓 졸업한 ‘서울내기’ 교사를 채용했다. 우리는 그 총각 선생님들로부터 불어뿐 아니라 ‘서울문화’를 전수받았다. 멋진 패션의 옷을 입은 그들의 인기가 높아지자 일부 ‘꼰대’ 선생님들은 시샘했다.

이수훈 군(전 동북아시대위원장, 극동문제연구소장)과 이봉조 군(전 통일부 차관)은 둘 다 키가 180cm가 넘는 장신으로 교실 맨 뒤에 나란히 앉아 열심히 불어를 익혔다. 고입 때 수석 합격했던 이재영 군(남양인터내셔날 고문)은 여전히 성적이 좋았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돋보인 이화섭 군(KBS 보도본부장)은 눈빛이 형형했다. 그림을 잘 그렸던 노화욱 군(전 충북 정무부지사)과 임창섭 군(하나대투증권 대표이사)은 나중에 각각 미술 이외의 분야로 진출했다.

김지하 ‘오적’ 베껴 쓰며…

필자는 현실문제에 조금씩 눈을 떠가면서 수험서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러 신문과 ‘신동아’ ‘사상계’ 같은 잡지를 읽으며 우국지사(憂國之士)가 돼갔다. ‘사상계’가 김지하 시인의 담시(譚詩) ‘오적’을 실었다는 이유로 폐간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입시 준비에 몰두하는 친구들은 시국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오적’ 시를 공책에 베껴 쓸 때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서울에는 반(反)정부 기류가 심상찮다는데 지방 중소도시 시민들은 시국 문제에 둔감했다. 3선 개헌으로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박정희에 대한 비판이 들끓을 때 교장은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훈화를 되풀이했다.

2/4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질풍노도의 격동시대 뚫고 거울 앞에 서다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