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호

‘손톱 밑 가시’ 뽑고 지하경제 끌어내라

경제 1, 2 분과

  • 이상훈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입력2013-01-22 16: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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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톱 밑 가시’ 뽑고 지하경제 끌어내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및 소상공인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의 축하박수를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경제 5단체장’과 만났다. 대선 캠페인 기간 대선 후보가 경제단체장을 만나는 일만큼 자연스러운 일도 없다. 언론에서도 의례적인 만남 정도로 여기고 크게 보도하지 않았다.

    경제 5단체장 중 유일하게 중소기업계를 대표하는 중소기업중앙회에서만 회장 대신 부회장이 참석했다. 경제 5단체장 모임에선 대개 전경련이나 대한상의가 좌장 노릇을 맡기 때문에 중기중앙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행사 말미에 발언 기회를 얻은 송재희 중기중앙회 부회장은 “나중에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소상공인도 따뜻한 경제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기업 생태계를 잘 구성해달라”며 “거창한 정책보다는 손톱 밑에 깊이 박혀 있는 작은 가시를 빼시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참석자 그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지만, 박 후보는 조용히 수첩과 볼펜을 꺼내 송 부회장의 말을 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행사를 취재한 언론매체 중 머니투데이 등 일부 경제전문 매체에서만, 그것도 기사 맨 마지막에 한 줄 걸치듯 이를 언급했다. 그렇게 묻혔던 ‘손톱 밑 가시’가 2013년 새해 벽두를 가르는 최대의 화두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후 중소기업계와 박 당선인의 교감은 갈수록 깊어지고 커져갔다. 지난해 12월 26일,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은 경제계에서는 처음으로 중기중앙회를 찾아 회장단과 손을 맞잡았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 모두가 당선 이후 대한상의나 전경련을 먼저 찾았지만 박 당선인은 중기중앙회가 먼저였다. 이 자리에서 박 당선인은 “경제를 살리려면 중소기업이 먼저 잘돼야 한다.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고 그래서 (중기중앙회를) 제일 먼저 왔다”고 말했다.

    최대 화두는 ‘중소기업 살리기’



    박 당선인이 인수위 전체회의를 처음 주재한 1월 7일엔 “중기중앙회 분들을 만나면 계속하는 얘기가 ‘이런저런 정책보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 하나 빼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 말이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고 언급했다. ‘손톱 밑 가시’가 경제분과는 물론 인수위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박 당선인이 말하는 ‘손톱 밑 가시’란 대체 뭘까. 이명박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 언급했던 ‘전봇대 규제 뽑기’와는 어감부터 다르다. 이 대통령의 ‘전봇대 뽑기’가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굵직굵직한 규제를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라면 박 당선인의 ‘손톱 밑 가시’는 밖에서 보기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해당 기업 처지에선 회사의 생사(生死)를 가르는 방해물이다. 이제까지 정부가 기업계의 건의를 받아 숱하게 기업 규제 개선을 한다고 나섰지만, 정작 중소기업들이 느끼는 ‘손톱 밑 가시’는 여전하다는 문제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업무보고가 처음 시작된 1월 11일, 경제분야 업무보고는 중소기업청이 테이프를 끊었다. 중기청 개청 이래 유례없는 ‘대사건’이었다. 중기청은 경제 2분과 담당이지만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 홍기택 중앙대 교수 등 경제 1분과 인수위원들도 전원 참석했다. 당선인의 핵심 국정과제로 떠오른 ‘중소기업 살리기’를 먼 산 바라보듯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업무보고 후 인수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 당선인 측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당선인은 기업인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정책을 원한다. 그런데 가져온 업무보고를 보면 전부 기금 조성, 부처 승격, 세금 감면 같은 것들이다. 이제까지 중소기업들이 예산이 부족해서, 세금을 덜 깎아줘서 발전을 못 했을까? 늘 해오던 대로, 지금껏 관계부처가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정책들을 이번 기회에 해보자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정말 중소기업인들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가시 뽑기 못지않은 경제분과의 또 다른 핵심과제는 박 당선인의 복지정책을 뒷받침할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다. 재원 마련은 크게 각 부처의 예산 절감과 세입(稅入) 확충으로 나눠볼 수 있다. 예산 절감은 기획재정부가 주요 재정사업의 성과와 유사·중복 여부를 대대적으로 점검해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재원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핵심은 세입을 얼마나 늘리는지에 있다.

    급선무는 복지 재원 마련

    세입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증세(增稅)가 주로 활용돼왔다. 박정희 정부가 부가가치세를 신설하거나 노무현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를 새로 만든 게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감세( 減稅)정책을 기치로 내걸었다. 세금을 깎아줘 기업의 활력을 높이면 생산이 늘어나 세수(稅收)가 늘어난다는 이른바 ‘낙수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박 당선인은 증세에 줄곧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왔다. 당선 후에도 “법인세를 인상하는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 당선인의 세수 확보책 핵심은 지하경제를 양지(陽地)로 이끌어내 정당한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연간 1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불법 석유 유통시장을 엄단하고, 예식장 대형음식점 골프연습장 등 탈세 가능성이 큰 대형업종과 변호사 의사 변리사 등 고소득 전문직 소득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이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핵심은 결국 세정당국이 얼마나 많은 과세 자료를 확보하느냐에 있다. 국세청이 가장 탐내는 것이금융거래 자료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고액현금 거래자료(CTR)가 대표적이다. FIU가 보유한 CTR 자료 규모는 200조 원에 달한다. FIU가 이 자료를 국세청에 제공하면 고액 금융재산을 가진 이들의 거래가 낱낱이 국세청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된다. 국세청은 이 자료를 확보할 경우 최소 연간 4조 원가량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국세청이 ‘빅 브러더’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검찰에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존폐 논란이 불거지는 데 비해 ‘국세청의 중수부’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폐지해야 한다는 소리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복지재원 확보의 간판이 될 국세청의 기를 꺾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지금도 국세청의 고압적인 세무조사가 기업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런 마당에 국세청에 더 큰 힘이 실리게 될 경우 과연 국세청이 자정(自淨)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 국세청에 몸담았던 한 경제부처 고위관료는 이렇게 말한다.

    “보수-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역대 대통령마다, 그리고 국세청 스스로가 세무조사를 정치적 목적에 따라 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세청은 국세기본법에 따라 어떤 기준에서 누구를 어떻게 세무조사하는지 숨기고 있다. 자신들의 정보는 꽁꽁 숨기면서 다른 기관과 개인의 정보는 낱낱이 들여다보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세정 당국에 힘을 실어주기 전에 이 문제부터 짚어봐야 한다.”

    ‘경제민주화’ 어디까지 실현될까

    대선이 끝난 뒤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는 다소 사그라진 게 사실이다. 당선인의 언급도 크게 줄었고 인수위원 인선 면면을 봐도 경제민주화 논의를 이끌 만한 인물을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인수위가 경제민주화라는 화두에서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이미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 살리기’의 일환으로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공약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 등을 주장하고 나섰다. 검찰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형량을 강화해 횡령 등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인수위 경제분과에선 경제민주화의 수준을 어디까지 가져갈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대선 기간에 비해 다소 힘은 떨어졌지만 중요한 국정과제로 추진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는 방안 등이 주된 내용이다. 다만 박 당선인이 ‘중소기업 살리기’에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상황에서, 대기업에 대한 추가적인 규제를 마련하는 것보다는 중소기업 살리기 정책을 골자로 경제민주화의 큰 틀을 짤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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