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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장롱 속 작품이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미술품 1만여 점 한국 기증한 재일교포 하정웅

  • 박은경│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장롱 속 작품이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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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일본을 찾아온 오승윤 작가와 미술관장에게 그는 212점의 그림을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 과연 작품을 기증받을 수 있을지 몰라 잔뜩 긴장하고 있던 두 사람은 너무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이 미처 예상치 못한 대규모 기증을 제시한 데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전시는 적어도 분기마다 작품을 바꿔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시실 규모에 맞춰 한 번에 50점의 그림을 걸려면 적어도 200점 이상은 갖춰야 해요. 그 정도면 여러 가지 조합으로 새로운 전시를 얼마든지 기획할 수 있으니까요.”

▼ 많은 작품을 준비하느라 힘들지 않았나요.

“오래전부터 하나하나 수집해서 가지고 있던 그림들을 내놓은 거지, 일부러 기증하려고 따로 수집하진 않았어요.”

▼ 그림 수집은 언제부터 했습니까.



“1960년대 중반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회화전이 열렸어요. 그게 일본에서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첫 전시회였어요. 그때 한국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고 한국과 일본 작가 컬렉션을 시작하게 됐어요.”

▼ 언제 그림을 수집할 만큼 여유가 생겼나요.

“1963년에 결혼을 했는데 그때 부조금으로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쥘 수 있었어요. 그걸로 도쿄 북쪽 사이타마현에 있는 가와구치에서 조그만 가전양판점을 열었어요. 4평짜리 가게였고 그 뒤에 살림집이 딸려 있었죠. 그런데 그때 도쿄올림픽을 한 해 앞두고 컬러TV가 보급되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가게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돈을 좀 벌었어요. 그리고 부동산 임대업을 시작했는데 그게 시기를 잘 탔어요.”

오랜 세월 차곡차곡 수집한 그의 컬렉션은 광주시립미술관을 시작으로 부산 등 국내 공공미술관에 7000점이 기증됐다. 부모의 고향인 전남 영암에는 2500점의 그림이 기증돼 ‘영암군립河미술관’에서 빛을 보고 있다. 순종황제와 영친왕·이방자 여사의 자료와 역사적 사료 기증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그가 국내에 들여온 컬렉션은 1만 점이 넘는다. 일일이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다.

반 고흐 일본展의 충격

“장롱 속에 숨겨놓은 작품은 그 가치를 상실한다”는 철학을 가진 하정웅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역 내 미술전람회 때 학교 대표로 작품을 출품해 1등상도 여러 번 받았다. 가난한 집안 장남에 ‘조센징’이라는 멸시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맞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희망을 던져준 게 그림이었다.

“미술은 경계도, 민족도, 차별도 없고 오로지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세계였어요. 그림으로 상을 받았다는 건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거죠. 그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화가가 될 결심을 한 그는 아키타공업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 미술부를 직접 만들었다. “요즘은 제품에도 예술이 필요한 시대다. 미학이 없는 공고는 시대에 뒤떨어진다”며 학교 측을 설득했다. 이후 아키타현 8개 고교미술부연합회 회장 직에 올랐다. 하지만 졸업과 함께 화가의 꿈을 접어야 했다. 성적이 전교 3등 안에 드는 ‘집안의 기둥’ 장남이 그림에 빠져 지내자 어느 날 어머니가 “그림 그려서 제대로 입에 풀칠하고 사는 위인을 본 적 없다”며 스케치북과 물감, 붓 등을 모조리 들고 나가 강물에 던져버렸다.

▼ 포기가 쉽게 되던가요.

“부모님은 소학교(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분들이에요. 그래서 늘 ‘배우지 못한 사람은 소나 말처럼 육신을 움직여 먹고살 수밖에 없다. 내 자식들만큼은 반드시 공부시키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어요. 어머니는 우리 5남매를 공부시키기 위해 전쟁을 치르다시피 했죠. 오사카에서 도쿄를 오가며 쌀 암거래를 하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하고, 산지에서 직접 농산물을 떼다 팔거나 탁주를 만들어 팔았어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고통을 모두 지켜봤으니 좌절감이 들었지만 그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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