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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장롱 속 작품이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미술품 1만여 점 한국 기증한 재일교포 하정웅

  • 박은경│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장롱 속 작품이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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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절은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고교 3학년 가을에 우에노 국립박물관에서 반 고흐 전시회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열렸어요. 그것만큼은 꼭 봐야겠다 결심하고 여름방학 내내 닥치는 대로 일해서 돈을 모았어요. 근데 하필 그때가 학교 수학여행 기간과 겹쳤어요. 선생님께 거짓말을 했지요. 감기 때문에 못 간다고. 그리고 우에노행 밤 기차를 타고 전시회를 보러 갔어요.

고흐는 제가 처음으로 사랑한 예술가입니다. 그의 그림에는 그의 생애가 고스란히 드러나 마치 삶의 증거처럼 여겨졌지요. ‘사이프러스’의 격렬히 흔들리며 약동하는 선과 색채, 프랑스 아를의 태양처럼 눈부신 ‘해바라기’…. 그림 하나하나에서 전율을 느꼈어요. 그 순간 ‘나도 밝은 태양 아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롱 속 작품이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1955년 아버지 생신 기념으로 촬영한 가족사진. 하정웅 씨는 재일교포 가정의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외상 술값

하정웅은 1939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동북지방 아키타현 오보나이(현 다자와코) 마을에서 유년과 학창시절을 보냈다. 삶은 녹록지 않았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부모는 고향(전남 영암)으로 돌아가려고 가재도구를 정리해 미리 배편으로 보내고 출국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언제 출항할지 기약 없는 상황이 지속되자 결국 귀국을 포기하고 다시 오사카에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다. 가재도구 하나 없이 맨몸으로 시작해야 하는 가족의 살길은 막막했다. 그때 그의 외숙부뻘 되는 친척이 가족을 아키타로 불러들였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발전소 공사 현장의 소장인 외숙부를 도와 짐마차를 끄는 마부가 됐고, 어머니도 함께 일을 나가 자갈을 채취하고 시멘트를 운반했다.

매일 새벽 6시면 일터로 향하는 부모를 대신해 장남인 그는 동생 넷을 책임져야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갓난아기였던 막내 남동생을 등에 업고 양손에 각각 동생들의 손을 잡고 등교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도시락을 도둑맞는 소동이 벌어졌다. 체육시간에 학생들이 운동장에 나간 사이, 배가 고픈 막내가 책상 밑을 기어 다니며 도시락에 손을 댔던 것이다.

▼ 동생을 데리고 학교 가는 게 창피했겠네요.

“형편이 어쩔 수 없었으니 그렇진 않았어요. 셋째와 넷째는 얌전해서 말썽 피우는 일이 없었고 친구들도 싫어하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동생을 어머니처럼 돌봐줬고요.”

▼ 가출은 왜 했나요.

“기업들이 ‘조센징’이라고 꺼리며 취직시험 볼 기회조차 안 줬어요. 거기다 아키타에서 아버지가 겪었던 노예 같은 삶도 싫었고. 졸업식날 밤 책가방에 대충 짐을 꾸리고 교복 입은 채로 집을 나왔어요. ‘지금부터는 밝은 태양 아래 살겠다’는 마음으로 우에노행 기차를 탔어요. 도쿄에서 혼자 힘으로 인생을 개척하고 싶었어요. 두 번 다시 아키타엔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떠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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