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국정원女 vs 女수사과장 ‘대선 개입’ 공방전

“경찰이 본질 벗어난 수사 계속” (국정원女) “국정원이 허위사실 흘려 수사 방해”(女수사과장)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입력2013-02-21 1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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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女 vs 女수사과장 ‘대선 개입’ 공방전
    ‘신동아’ 2월호는 국가정보원의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 사건으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 김모(29) 씨의 육성을 단독으로 공개했다. 김 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누가 나를 미행하는 것 같아 깜짝깜짝 놀라요. 늘 불안하고요.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북한의 대남 사이버 심리전을 방어하는 일을 했습니다. 북한을 찬양하는 잘못된 글이 마구잡이로 번져나갈 경우 이에 대해 사이버 공간에 북한을 정확하게 알리는 글을 올리기도 했고요.”

    ‘신동아’ 출간 후인 1월 31일, 김 씨가 그간 밝힌 적이 없는 새로운 사실이 ‘한겨레’신문을 통해 알려졌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 씨가 11개 아이디로 작성한 글의 내용을 보면, 야당 대선 후보 및 국회의원을 비판한 글 10건, 4대강·제주해군기지 등 사회 쟁점에 대해 정부와 여당을 옹호한 글 25건 등 91건의 게시 글 대부분이 정치·사회·남북·경제 분야를 다뤘다. 김 씨가 제주해군기지 건설 찬성, 4대강 입장 옹호, 북한 비판 등 몇몇 특정 주제에 대해 동일한 입장을 드러내는 글을 반복적으로 올린 것도 확인됐다. 11개의 아이디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대단히 의도적으로 지속적이며 체계적으로 활동한 것이다.”

    “게시 글은 신념에서 비롯한 것”



    김 씨는 “내 업무는 사이버 공간에서 종북 글을 추적하는 것”이라고 말했으나 야당 대선 후보 및 국회의원과 관련된 글은 종북 세력 추적과는 관계가 없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다음과 같이 재반박했다.

    “게시 글의 작성, 찬반 클릭 등의 활동은 내가 견지하고 있는 국가 정체성 및 체제 수호에 대한 신념에서 비롯한 것이다.”

    ‘신동아’는 김 씨의 것으로 알려진 ID로 3개 사이트를 확인했다. 김 씨가 올린 글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탈북자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삐라 살포다’ ‘삐라 살포가 멍청한 짓이면 북한이 저러고 나오겠나?’ ‘NLL 반대하는 사람도 있나요?’ ‘최근 북한군이 귀순하는 이유는 식량보급체제가 배급제에서 자급자족으로 바뀌어서다’….

    이러한 글은 “북한을 정확하게 알리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는 증언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 씨의 주(主)임무는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북한의 대남 심리전과 국내 인사의 종북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그런 김 씨는 이런 글도 올렸다.

    ‘국보법 없애면 안 되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대한민국을 ‘남쪽 정부’라 부르는 사람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는 판인데 국보법마저 폐지하면 대한민국이 남아나겠나’ ‘신변안전 보장 강화에 대한 약속이 없으면 관광을 재개할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은 너무도 당연한 거 아닌가? 금강산 한번 가보고 싶기는 하지만 목숨 걸고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특정 후보의 이름을 거론하진 않았으나 야당 후보(이정희, 문재인)의 주장을 비판한 것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으로서, 그것도 정보기관 요원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이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친북 인사들이 인터넷에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북한 찬양활동을 하는 것은 감시해야 한다. 체제 수호적인 내용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정치 개입 의도였다면 야당 후보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공격해야 하지 않나.”

    김 씨가 인터넷에 올린 글 중 대선 후보를 ‘비방’했다고 볼 만한 것은 찾기 어렵다. 적극적으로 해석해 대선에 개입했다고 볼 만한 글은 ‘남쪽 정부’ ‘금강산’ 관련 글 등 4건 정도가 전부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사건의 본질이 대선 개입→국내 정치 개입으로 바뀐 측면도 있다.

    국정원법 3조 1항에 따르면 국정원은 국외정보, 국내보안정보(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 작성 배포 권한을 갖는다. 국내 정보 수집 대상을 대공과 방첩 등으로 한정했지만, ‘좌파’ 혹은 ‘종북’ 꼬리표를 달면 대공과 방첩의 범주로 해석할 수 있어 자의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김 씨가 쓴 게시 글 중에도 안보활동에 속한다고 할 수도, 정치활동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는 글이 있다.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국정원의 대북 심리전단이, 한국인이 올리는 인터넷 게시 글을 모니터링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은 논쟁적 사안이다. 그 과정에서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가 올린 글에서도 본연의 임무와 무관하게 수위는 낮지만 국내 정치에 개입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글이 여럿 있다. 경찰은 김 씨 글의 위법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국정원법 제9조는 ‘원장·차장과 그 밖의 직원은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그 직위를 이용하여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규정한다.

    “수사과장이 편향된 수사 했다”

    김 씨는 얼마 전부터 출근하기 시작했으며 공황장애 증상을 치료하려고 아직도 병원에 다닌다. 김 씨는 “경찰이 본질에서 벗어난 무리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본다. 문재인 후보를 비방했다는 민주당 고발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경찰이 수사를 마무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자신이 주거 침입, 감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민주당 인사들을 고발한 사건은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 씨는 2월 5일 자신의 인터넷 ID를 언론에 제공한 인터넷 사이트 관리자와 이 ID를 이용해 기록을 열람한 ‘한겨레’ 기자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또 수사과정 중 ID를 확인한 경찰 관계자도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넘긴 정황이 있어 고소하려 했으나 소장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국정원에서는 “여자 수사과장이 사소한 부분까지 뒤지면서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 “언론에 수사 내용을 흘리는 것 같다”는 주장이 나온다. 수사 책임자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수사 책임자이던 권은희(39)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권 과장은 2월 4일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전보발령이 났다. 수사 발표 등만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손을 뗀 것이다.

    권 과장은 사법시험 43회 출신으로 2005년 경찰공무원(경정) 특별채용에서 8.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권 과장은 ‘신동아’ 2005년 4월호 인터뷰에서 “경찰이 외부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고 내부적으로 자긍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2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할 수 있는 수사 역량을 동원해 댓글을 찾아내고 수사를 해온 권은희 과장을 도와야 한다. 윗선의 압력에도 소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권 과장은 역사에 비춰 본인 스스로 잘못된 일에 가담하고 싶지 않다고 밝힌 것이다.”

    “잘된 수사다, 최선 다했다”

    권 과장은 2월 15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조사 중인 사건인데다 다른 서(署)로 옮긴 상황이어서 수사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전보 조치의 이유와 관련한 질문에도 “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를 잘 했다,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고 말했다. 권 과장은 지금껏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다음은 권 과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축소 수사 논란도 있었다. 열심히 했나.

    “열심히가 아니라 잘했다. 내가 최선을 다한 만큼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 권 과장이 특정 언론에 정보를 넘겼다는 식의 주장이 흘러나온다.

    “계속 그런 식으로 뒤에서 허위사실을 흘리기에 공식적으로 코멘트하는 순간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혹시 (국정원이) 공식적으로 그런 발언을 했나.”

    ▼ 공식적인 것은 아니다.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그간 국정원이 그런 식으로 말을 흘리는 것에 일절 대응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수사를 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에 대응하다보면 수사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국정원의 태도는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옳지 못한 것이다. 수사를 방해한 부분에 대해 그간 얘기를 안 해왔다.”

    “국정원은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는 등 법적 조치가 없는 상황인데도 컴퓨터와 노트북을 임의로 제출했는데, 경찰이 당초 약속과 달리 대선 개입 문제뿐 아니라 이것저것 다 들여다봤다’고 주장한다.

    “하나하나 발끈해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더구나 지금은 타서(수서경찰서)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필요한 시기가 되면 얘기하겠다. 국정원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리 수사는 잘 진행됐다.”

    ▼ 부당한 간섭이나 외압이 있었나.

    “말을 안 하는 게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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