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朴 당선인 공약 재원, 통상적 방법으론 마련 못해”

‘MB노믹스’ 이끈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 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입력2013-02-21 17: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선거 앞두고 정치권 ‘복지지출 청구서’ 쇄도
    • 재벌 문화와 관행, 글로벌 스탠더드 부합해야
    • 4대강 사업 10년 뒤까지 지속돼야
    • 성장률 낮아 서민이 고통…죄송하게 생각
    “朴 당선인 공약 재원, 통상적 방법으론 마련 못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감회는 깊어 보였다. 비유하자면 그는 42km 정도를 달려온 마라토너다. 이명박(MB) 정부의 인수위원회에서부터 시작해 정무수석, 국정기획수석, 고용노동부 장관을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5년 동안 ‘MB노믹스’를 주도하면서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일해왔다.

    박 장관은 2월 13일 ‘신동아’ 기자와 마주하자 “경제 살린다고 시작한 정부인데 성장률이 낮아서 서민이 고통 받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MB 정부에서 겪은 두 차례 경제위기 때문에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을 크게 아쉬워했다. 4대강 사업, 녹색성장, 공기업 개혁, 금융 선진화 등 박 장관이 주도한 각종 국정 현안이 그 자신이 임기를 마치듯 깔끔하게 마무리됐다면 그의 감회는 좀 달랐을 것이다.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 녹색기후기금 유치 등 MB 정부가 거둔 성과가 적지 않은데도 국민은 마무리 시점에 박수보다는 질타를 더 보낸다.

    하지만 0.195km를 남겨두고서도 그는 여유를 가질 수 없다. 2월 12일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추정되는 지진이 감지되자 1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실물경제와 국가신용도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다. 그는 과거 두 차례의 핵실험과 북한 관련 사건을 겪으며 국내 시장 참여자의 학습효과로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신속하게 내놓았다. 다음은 박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박춘섭 기획재정부 대변인은 이번 인터뷰가 박 장관의 마지막 공식 인터뷰라고 밝혔다.

    ▼ 1년 8개월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선거를 염두에 둔 여러 가지 ‘청구서’가 기획재정부로 물밀 듯 날아들었죠.”



    “정치권 요구 막기 힘들었다”

    ▼ 복지지출 증대나 재원 마련과 관련된….

    “그렇습니다. 복지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대의명분에는 동의하지만, 너무 단기간에 급격하게 늘리는 것은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경제 주체도 준비하고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해요. 계획된 단계를 무시하고 갑자기 세금을 올리거나 재정지출을 늘리면 경제에 큰 충격을 줍니다. 정치권의 요구를 제어하고 순화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특히 지난해는 유로존 재정위기로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아닙니까. 자고 나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어요.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강국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추락했고…. 우리는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또 인구 구조가 초고령화 사회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어 많은 재정지출이 예상되고 있어요. 그런데도 비축은커녕 무책임하게 지출을 늘리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학계와 언론, NGO 등에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많이 알려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 대한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신용등급이 모두 상향조정되는 낭보도 있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게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 정치권의 요구 가운데 끝내 못 막은 것은.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면 당사자가 상처를 받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대학등록금 반값 문제는 어느 정도 막기는 했지만 완전히 막지는 못했지요.”

    박 장관은 정치권이 대선공약으로 내놓은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정부 재정이 과도하게 투입되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 지난 5년을 돌아볼 때 가장 아쉬운 대목이라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정도의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경제체제나 여러 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공기관의 지분 매각, 금융산업 선진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 등 기본적인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하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 재정위기에 맞닥뜨리고보니 공격보다는 수비를 해서 우리 스스로 안정되는 것이 우선인 긴박한 상황이었어요.”

    금융 선진화, 공기업 매각 난항

    지나간 위기는 위기가 아닌 것으로 기억되기 쉽다. 2008년 7월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에 육박했다. 그해 가을 한미 통화스와프협약을 맺기 전에는 외환보유고에 대한 걱정이 많았고, 환율도 폭등했다. 2011년엔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이 큰 타격을 받아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거 빠져나갔다.

    ▼ 이명박 정부는 기업 친화 정책을 폈습니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은 역대 최저였고, 양극화 심화와 같은 부정적 측면도 초래됐습니다.

    “경제 살린다고 시작한 정부인데 성장률이 낮아서 서민이 고통 받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변명을 하자면, 지금은 전 세계 경제가 연결돼 있어 외부 요인을 감안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할 수밖에 없고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세계경제의 맥락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겁니다. 더욱이 지난 5년 동안 두 차례의 큰 경제위기가 있었어요. 그럼에도 전 세계 평균 수준인 2.9%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선진국들의 평균 성장률은 0.6% 정도였어요. 노무현 정부 때는 성장률이 세계 평균보다 0.5%p 낮았습니다.

    양극화 심화 문제는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악화하던 소득분배 지표들이 2010년부터 조금씩 개선됐습니다. 다만 외환위기 이후 15년간 양극화가 꾸준히 진행됐기 때문에 국민이 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양극화를 개선하기 위해 동반성장이나 공생협력을 내세우지 않았습니까.”

    재벌 불투명 경영 청산해야

    ▼ 재벌의 문제는 뭐라고 봅니까.

    “‘재벌’은 정치적 가치를 담은 용어입니다. 법률용어는 ‘대기업집단’이죠. 이들의 장점과 단점을 바르게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자본이 집중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게 대기업집단의 장점입니다. 또 이들은 어느 한쪽에서 실패해도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것으로 벌충할 수 있습니다. 기업 단위의 책임 있는 경영보다는 기업집단 중심 경영을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개별 주주의 처지에서 보면 기업집단 내 다른 기업 때문에 내 주식이 손해를 봤다는 식의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책임 전가가 발생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의사결정이 빠른 만큼 잘못된 결정이 나올 공산도 큽니다. 오너 중심으로 경도된 지배구조와 비자금 조성 등 불투명한 경영으로 지탄을 받기도 하고요.”

    ▼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대기업집단의 경영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편법으로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대기업집단의 문화와 관행이 세계 표준과 부합하도록 바뀔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최소한 시장경제와 공정한 경쟁체제를 위협하지 않을 정도의 견제장치를 법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어떤 법적 장치가 가능할까요.

    “예컨대 일감 몰아주기 관행에 대해선 과세를 강화하고, 하도급 회사에 대한 횡포나 납품단가 후려치기, 핵심 연구인력과 기술 빼가기 등에 대한 제어장치도 마련해야 합니다. 정부도 그런 방향으로 제도를 갖춰나가고 있어요. 그러나 기업이 크고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자꾸 규제하다간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싸워야 하는데, 국내에선 대기업이라 해도 글로벌시장에서 보면 평범한 선수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규제는 세계 표준에 부합하게 하는 것이 좋겠지요.”

    ▼ MB 정부의 최대 업적을 꼽는다면.

    “대한민국이 처음 발제해서 세계적 어젠다로 만든 것이 바로 녹색성장입니다. 기본 틀은 현 정부에서 갖췄습니다. 저탄소녹색성장법, 배출권거래제, 녹색성장위원회, 녹색기후기금,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등이 그런 틀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게 하려면 여러 가지 추가조치를 해야 합니다. 녹색성장정책을 통해 3만~4만 달러 소득시대로 진입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고 생각합니다.”

    ▼ 새 정부에 녹색성장 이행 의지가 있을까요.

    “박근혜 당선인 특사로 다보스 포럼에 간 이인제 의원이 국제사회에 녹색성장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으니 그대로 지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녹색성장은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전매특허이므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중요한 국가 의제로 추진해나갈 것으로 확신합니다.”

    “4대강 사업 꼭 필요했다”

    ▼ 국정기획수석으로 있으면서 4대강 사업을 진두지휘했습니다. 4대강 사업은 성공했다고 보는지요.

    “4대강 살리기는 아힘 슈타이너 유엔환경계획 사무총장이 격찬한 사업입니다. 부실시공 논란도 있었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꼭 필요한 사업이었어요. 강 생태계 복원, 맑은 물과 수변 여가 공간 확보, 재해 예방 등 다목적 차원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점은 보강하고 10년 이내에 지류, 지천까지 정비한다면 우리에게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 이 대통령 임기 내에 4대강 사업을 마무리하려고 서두른 측면도 있는 것 같은데요.

    “물 공사가 늘어져 장마철을 만나면 기껏 해둔 공사가 수포로 돌아갑니다. 또 전 유역에서 동시에 착공해야 효과적입니다. 4대강 중 한 군데를 먼저 해보고 나머지도 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랬다면 어느 특정 지역에만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해 국민적 공감을 얻기가 더 어려웠을 겁니다.”

    ▼ 이명박 정부는 신성장동력 정책에 역점을 뒀는데, 이러한 정책이 새 정부에서도 지속될까요. 특히 어떤 정책이 연속성을 갖고 추진돼야 한다고 봅니까.

    “이명박 정부에서 스마트폰, 2차전지, 해수담수화, 마이스[MICE·기업회의(Meeting), 인센티브 관광(Incentive Travel), 국제회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 등 17개 신성장동력을 설정했습니다. 앞으로 서비스 산업 중에서도 관광 쪽 콘텐츠를 많이 개발해야 합니다. 선진국에 가면 겉보기엔 별것 아닌 듯한데 감동적인 스토리와 엮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녹색산업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한데도 에너지를 과도하게 쓰고 있어요.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큰 걸림돌이 될 겁니다. 이런 전략은 새 정부의 창조경제와 연결된다고 봅니다.”

    ▼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에 소요될 135조 원의 구체적 재원 마련 방안은 있을까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당선인이 새로운 세목을 만들기보다는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와 감면 제도를 정비해서 세입 기반을 확대하려 하고 있는데 그게 바람직한 방향이긴 합니다. 다만 세출구조를 조정할 때 공약대로 4년간(2014~17년) 81조 50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통상적인 방식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근본적 재정구조 개혁과 창의적 재정 운용방식을 강구해야 합니다.”

    박 장관은 이차(利差)보전 방식을 한 예로 들었다. 이 방식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뛰어든 민간 사업자가 민간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경우 시중금리보다 낮은 정책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고, 그 이자 차이를 정부가 메워주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민간 금융기관의 돈을 활용해 정부 재정지출을 확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2013년 예산 편성 때 기획재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정부 지출을 줄이면서도 3조 5000억 원의 사업 재원을 확보했다.

    “현안에 매몰되지 않아야”

    ▼ 새 정부에 대해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요. 우려되는 부분도 있습니까.

    “눈앞의 현안에만 매몰되지 말고 긴 호흡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정치 일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해요. 예컨대 선거를 의식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선거철에는 통화를 풀고 경기를 부양해 득표에 유리한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몇 년 뒤 누군가는 그 빚을 갚아야 하고 인플레이션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그런 유혹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 퇴임 후 계획은.

    “나름대로 영광된 자리에서 가슴에 태극기 단 국가대표 선수처럼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자 했어요. 이제 결승선에 거의 도달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면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기진맥진해서 쓰러져야 하겠지요. 아무튼 그동안 제가 가진 생각을 다 내놓았기 때문에 이제는 좀 더 자유로운 일상으로 돌아가 충전하고 본업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그가 말하는 ‘본업’은 대학교수다. 박 장관은 17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하기 전 성균관대 사회과학대 행정학전공 교수였다. 8년 9개월 동안 자신을 기다려준 학교로 돌아가 빚을 갚겠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박근혜 정부 인수위 유민봉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와 같은 대학, 같은 학과 교수인데다, 행정고시(23회) 동기이기도 하다. 같은 학파 사람들이 나란히 신·구 정권에서 국정을 기획·조정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