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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스타로 만든 ‘애마부인’ 배우 인생에 독(毒) 됐다”

배우로 돌아온 원조 섹시 아이콘 안소영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날 스타로 만든 ‘애마부인’ 배우 인생에 독(毒)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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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스타로 만든 ‘애마부인’ 배우 인생에 독(毒) 됐다”
▼ 그럼 ‘가슴’ 얘기는 왜 나온 건가요.

“사실 영화 시사회 보고 좀 실망했어요. 고생고생해서 찍었는데 제가 생각한 그림이 아니더라고요. 실망감에 시사회 끝나고 동남아로 갔어요. 사진작가로 유명했던 이창남 선생님에게 ‘이제 배우의 꿈을 접어야 할 것 같다, 내 인생을 따로 찾아봐야겠다’고 했더니 ‘동남아에 스쿠버다이빙 하러 가는데 같이 갈래?’ 그러시더라고요. 거기서 한 달 있었는데 제가 사라지고 없으니 감독이 혼자 홍보하면서 저를 한국의 마릴린 먼로니, 신데렐라니, 가슴이 ‘왕대빵’만한 글래머 배우로 만들어놨더라고요.”

▼ 글래머인 건 사실 아닌가요?

“그런 표현을 쓸 정도는 아니었는데 정인엽 감독이 환상을 심어준 거예요. 인터뷰하러 가면 기자들이 저더러 ‘진짜 안소영 씨 맞아요? 근데 왜 이렇게 쪼끄매요?’ 그랬으니까….”

▼ 어쩌다 영화에 출연했나요.



“당시 정 감독은 전작 ‘불새’가 흥행에 실패해 ‘애마부인’이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될 위기에 있었어요. 저는 우리나라 최초의 극단인 ‘신협’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고요. 체형이 서구적이라 ‘마릴린 먼로의 버스 스탑’ 같은 번역극을 많이 했는데 그걸 보고 정 감독의 부인이자 연극계 선배인 김성옥 선생님이 절 애마부인 역에 추천했어요.”

▼ 노출 문제로 감독과 부딪치진 않았습니까.

“노출 자체보다는 감독이 원하는 그림과 제가 생각한 그림이 달라 마찰이 심했어요. 감독님은 자꾸 ‘엠마뉴엘 부인’의 실비아 크리스텔 같은 모습을 요구했거든요. 팽팽하게 맞섰지만 감독이 꼭 해야 한다면야 별수 있나요.”

▼ 23세의 나이에 알몸 연기에 도전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여배우는 만날 질질 짜기만 하고 외국 영화에서처럼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게 늘 안타까웠어요. 원작을 보고 ‘배우로서 내 운명을 걸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여느 한국 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줬기 때문이에요. 배우가 영화를 위해 벗을 수도 있어야죠.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개봉 전 동남아에 갔을 때도 옷을 하나도 안 걸치고 바닷속에서 사진촬영을 했어요. 같이 간 사진작가가 아니라 제가 제안했어요. ‘산호초를 배경으로 인어같이 연출한 사진을 찍고 싶다, 할머니가 됐을 때 전시하고 싶다’고.”

▼ 사진전을 열었나요.

“아직은 아니지, 할머니가 안 됐으니…(웃음). 그때 찍은 사진은 이창남 선생님이 갖고 계세요. 바닷속이 참 아름다웠어요. 산호초와 여체가 어우러진 광경은 황홀할 지경이고. 야한 느낌이 아니라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죠. ‘애마부인’도 그런 느낌을 기대하며 찍었어요. 내가 원래 새롭게 도전하는 걸 참 좋아해요.”

임권택이 ‘찜’한 배우

안소영은 1978년 청룽 주연의 ‘무림대협’으로 영화계에 데뷔해 임권택 감독의 ‘내일 또 내일’(1979)로 얼굴을 알렸다. 현진영화사 창립 작품인 ‘내일 또 내일’은 이전까지 전쟁영화만 찍던 임 감독이 처음 연출한 현대극이다. 안소영의 배역은 이덕화와 정희 사이를 훼방 놓는 부잣집 딸. 그는 “감독님이 무술영화를 찍고 있던 나를 데려다가 ‘내일 또 내일’에 무조건 출연하라고 했다”며 캐스팅 비화를 들려줬다.

“감독님과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어요. 중·고등학교 때 공부는 안 하고 만날 영화 촬영장을 쫓아다녔거든요. 중2 때 감독님을 만났어요. 감독님이 ‘아내들의 행진’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던 전북 임실까지 찾아갔죠. 감독님이 밤을 새우면 같이 새우고, 잠 깨라고 커피도 타다드리고 그랬는데. 담임선생님이 절 잡으려고 물어물어 임실까지 오셨어요. 감독님이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제발 학교 데려가서 공부 좀 시키라’고, 하하하.”

▼ 어쩌다가….

“네다섯 살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했어요. 극장 간판이 바뀔 때마다 아버지가 영화를 보여주셨어요. 정작 아버지는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해서 저를 옆에 앉혀놓고 주무셨고요. 그 덕에 자연스럽게 배우를 꿈꾸게 됐죠.”

▼ 딸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셨네요.

“현대무용과 고전무용도 네다섯 살 때부터 시키셨어요. 그때는 그런 걸 배우기가 쉽지 않았는데…. 서울 창신초등학교 2학년 때 경기 연천군으로 전학 갔는데 그때도 아버지는 그 시골로 무용선생님을 모셔다 배우게 했어요. 지금 몸매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어릴 때부터 무용을 해서예요. 아버지한테 늘 고마워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중학교를 다녔다. 방과 후에는 충무로에 있는 배우학원에 갔다. 부모는 취미생활쯤으로 가볍게 여겨 기꺼이 허락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6년간 배우학원을 다니면서 배우에 대한 열망은 더 강해졌다. 그는 대학 진학 여부를 놓고 아버지와 처음 갈등을 빚었다.

“아버지는 대학에 가서 연극영화과라도 전공하길 바라셨지만 저는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어릴 때부터 줄곧 영화에 빠져 있었고 배우학원을 6년이나 다녔으니 대학 가는 데 돈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일로 많이 싸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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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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