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배우 겸 ‘뷰티 전도사’로 제2 전성기 유진

“30대의 꿈은 건강한 출산 입양해서라도 넷은 키워야죠”

  • 김지영 기자 │ kjy@donga.com

    입력2013-03-21 0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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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겸 ‘뷰티 전도사’로 제2 전성기 유진
    결혼이 연예활동의 걸림돌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 요즘 연예계를 주름잡는 주연 여배우 중엔 결혼한 이가 적잖다. 그 가운데 30대의 대표주자로 걸그룹 SES 출신 배우 유진(32)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동료배우 기태영(35)과 결혼한 유진은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으로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해 20%대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케이블채널 온스타일의 미용정보 프로그램 ‘겟 잇 뷰티’와 MBC ‘스타 오디션-위대한 탄생 시즌 3’(이하 ‘위탄’)에서 재기발랄한 진행으로 인기를 끌면서 섭외 1순위 MC로 떠올랐다.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유진의 재발견”이라는 호평이 끊이지 않을 만하다.

    3월 1일 ‘위탄’이 막을 내려 여유가 좀 생길 것으로 예상했으나 ‘백년의 유산’ 촬영이 거의 매일 진행돼 하루 서너 시간밖에 못 자는 형편이었다. ‘신동아’와 인터뷰한 3월 6일 오후에도 서울 상암동에서 드라마 촬영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그런 사정을 배려해 인터뷰 장소를 그 부근 호텔로 잡았다. 그게 고마웠는지, 아니면 본디 약속을 잘 지키는지는 모르겠으나 유진은 인터뷰 시간에 맞추느라 겨우 두 시간을 자고 나왔단다.

    “끝장 드라마 아닌데…”

    ▼ 드라마 출연은 ‘제빵왕 김탁구’(2010) 이후 3년 만인데, 연기 공백이 길었던 이유가 있나요.

    “대본은 계속 들어왔는데, 딱히 입맛에 맞는 작품이…. 제작사에서 원한다고 다 할 순 없고, 저한테 딱 맞는 작품을 만나기도 쉽지 않거든요.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연기를 오래 쉬었네요.”



    ▼ ‘백년의 유산’은 입맛에 딱 맞았나요.

    “시놉(synopsis·드라마의 개요. 줄거리)이 재미있었어요. 캐릭터도 지금껏 못 해본 거고, 50부작짜리 드라마는 처음이라 느낌도 새로웠어요. 가장 길게 찍은 게 ‘제빵왕 김탁구’였는데 그 작품도 30회로 종영했거든요. 원래 장편드라마가 미니시리즈에 비해 체력적으로 편한데, 대본이 늦게 나와서 좀 힘들어요. 대본 나오면 바로바로 찍어야 해서 쉬는 날이 없거든요. 거기다 다른 프로도 하고 있어서 시간 안배하기가 쉽지 않아요.”

    ‘백년의 유산’에서 그는 며느리를 괴롭히는 시어머니와 마마보이 남편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이혼을 선택한 여주인공 민채원으로 나온다. 민채원은 100년 전통의 맥을 잇는 국수 명가의 외손녀이자 영양사로 새로운 삶을 산다.

    ▼ 초반에 ‘끝장 드라마’라는 비판이 일었는데.

    “뉴스는 인터넷으로 종종 검색하는데 드라마 홈페이지 게시판엔 안 들어가요. 그래도 끝장 드라마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어요. 연기하면서 한 번도 그런 생각 해본 적이 없어요. 초반에 나온 고부갈등이나 마마보이 남편과의 트러블이 중심 내용은 아니거든요. 100년 전통의 가업을 잇는 국숫집 이야기가 큰 줄기라 그런 얘기가 들려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며느리를 정신병원에 가두는 장면은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끝장 드라마로 비칠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요.”

    ▼ 아무리 연기라도 그런 지독한 시어머니나 마마보이 남편을 대할 땐 스트레스를 받지 않나요.

    “촬영장 분위기가 좋아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아요. 설정이 극단적이라 재미있기도 해요. 시어머니 역을 맡은 박원숙 선생님이 연기를 워낙 맛깔나게 하시니까. 만날 얻어터지고 질질 짜기만 했다면 엄청 스트레스 받았겠지만 못된 시어머니와 팽팽하게 맞붙는 장면도 있거든요.”

    ▼ 뺨 맞고 머리채 잡히는 장면이 실감나던데 다치진 않았나요.

    “다 요령껏 하시니까…. 안 그러면 머리카락 다 뽑히겠죠. 화면으로 보면 긴장감이 넘치지만 저희끼리는 그런 장면 찍고 나면 웃고 박수치고 그래요. 연기가 리얼하니까 보고 있으면 굉장히 웃기거든요.”

    ▼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는 누군가요.

    “박원숙 선생님도 재미있고, 마마보이 역을 하는 최원영 오빠도 유머러스해요. 근데 60세 독신남으로 나오는 박영규 선생님이 최고예요. 웃음을 몰고 다니는 분이죠. 국숫집 며느리들도 활달하고 발랄해서 촬영장이 늘 화기애애해요. 국숫집 세트가 여의도 MBC에 있는데 국숫집 마당은 강화도라 다들 가기 싫어해요. 너무 추워서(웃음).”

    ▼ 체력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특별한 건 없어요. 보약도 안 먹고 운동도 못하고 있어요. 비타민 챙겨 먹는 정도예요.”

    ▼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극 중 민채원을 연기하기가 수월할 것 같아요.

    “정말 그래요. 결혼하면 남편은 물론 시댁 식구와도 가족이 되잖아요. 그러면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삶을 체험하게 되고요. 그게 연기에 많은 도움이 돼요. ‘내가 민채원이라면?’ 하면서 민채원의 처지를 떠올리면 이해가 잘 되더군요. 저라도 그런 마마보이 남편과는 못 살 것 같아요. 아니, 그런 시어머니를 둔 남자랑은 결혼을 안 하겠죠. 연기는 나이를 먹을수록, 많은 경험을 쌓을수록 폭넓고 깊어지는 게 아닌가 해요.”

    “남편 키스 신? 이해하죠”

    ▼ 유진 씨의 실제 시어머니는 어떤 분인가요.

    “인자하고 수더분하세요. 같이 살진 않지만 시댁이 가까이에 있어서 종종 찾아뵙는데, 그걸로 스트레스 받은 적은 없어요. 전 오히려 가끔 시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근데 우리 드라마에서처럼 아들에 대한 집착이 심해 며느리를 정신병원에 넣는 시어머니가 실제로도 있대요.”

    ▼ 남편은 마마보이 아니죠?

    “당연 아니죠. ‘오빠’도 드라마 보면서 분개해요. 누구보다 남편 김철규한테. ‘남자가 어떻게 저러냐’면서, 하하.”

    유진은 2009년 MBC 드라마 ‘인연만들기’에 출연하면서 남편 기태영을 처음 만났다. 이 드라마가 중신을 서준 셈이다. 2년 남짓 교제하다 2011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배우 겸 ‘뷰티 전도사’로 제2 전성기 유진

    2011년 5월 ‘유진´s 겟잇뷰티’를 출간한 유진.

    ▼ ‘닭살 부부’라면서요?

    “연애할 때나 지금이나 깨가 쏟아진다면서 놀려요. 통화는 자주 안 해요. 촬영할 때는 문자로 얘기해요.”

    ▼ 기태영 씨와 어떻게 가까워졌나요.

    “드라마가 끝나갈 때 오빠를 만났어요. 오빠가 내성적이라 친해지는 데 오래 걸렸어요. 친해지기 전엔 마음을 확 여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벽이 있었어요. 그 작품도 30회까지 갔는데 조금씩 친해지다가 막바지에 가서야 휴대전화 번호를 교환하고 메신저로 대화하기 시작했어요. 대화하다보니 오빠를 새롭게 알게 되고 마음이 통하는 게 느껴졌어요.”

    ▼ ‘내 남자’가 될 거라는 느낌이 오던가요.

    “제가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이었어요. 조금씩 마음이 끌렸지만 ‘이 사람이라면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죠. 연애를 오래하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깊어진 것 같아요.”

    ▼ 특히 어떤 면에 끌렸나요.

    “오빠는 가정적인 남자예요.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고 술 많이 마시고 그러질 않아요. 저도, 오빠도 술을 안 해요. 좀 고지식한 편인데 그게 좋았어요. 저는 외국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개방적이죠. 그렇지만 해선 안 되는 건 확실히 절제해요. 오빠도 그렇고요. 부부간에도 지킬 건 지켜야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애할 때는 ‘나쁜 남자’를 많이들 좋아하던데 전 그래본 적이 없어요. 오빠는 정말 나만 바라볼 것 같고 아이들한테도 아주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사람 같지 않게 그런 면을 가진 게 정말 신선했어요.”

    ▼ 집에서도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나요.

    “연애할 때부터 입에 붙어서 다른 호칭을 못 쓰겠어요. 오빠는 절 ‘여보’라고 불러요. 전 아직 ‘여보’가 어색한데 오빠는 그게 편하고 좋은가봐요.”

    ▼ 남편의 키스 신을 보면 질투 나지 않나요.

    “저도 배우인데 이해하죠. 제가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질투를 많이 했겠죠. 저희는 동등한 처지라서 각자 작품 하면서 애정 신 찍더라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요. ‘오빠, 왜 그렇게 키스신이 많아?’ 하고 장난삼아 질투하는 척하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심각해진 적은 없어요. 저도 작품 들어가면 애정 신을 안 할 수 없잖아요(웃음).”

    유진의 가족은 그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괌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자리 잡은 큰아버지가 제안한 이민이었다.

    ▼ 외국 생활에 잘 적응했나요.

    “장난꾸러기는 아니었어도 무척 활달했어요. 학교에서도 친구들을 리드하는 스타일이었고. 근데 이민 가기 직전에 사춘기가 찾아왔어요. 그때 좀 조용해졌죠. 손들고 발표하고 하는 게 유치해 보여서 시크한 척하고…. 팝송을 들은 것도 그때부터예요.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엄마와 면담하면서 ‘유진이가 되게 성숙해진 것 같다’고 하셨대요. 그럴 때 괌에 갔지만 잘 적응했던 것 같아요. 영어를 못 알아들어 처음 1년쯤은 좀 힘들었지만.”

    SM과의 인연

    ▼ 가수 데뷔는 어쩌다 하게 됐습니까.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룹 HOT가 괌으로 공연하러 왔어요. HOT의 강타, 장우혁 오빠를 무척 좋아해서 얼굴 한번 보려고 공항엘 갔는데 HOT 매니저가 통역을 좀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통역도 하고, 쇼핑할 만한 곳도 안내하고 그랬죠. 쇼핑센터 앞에서 이수만 선생님도 우연히 보게 됐고요. 그때 선생님이 제 연락처를 받아 가셨는데 얼마 후에 연락이 왔죠. 한국에 오디션 보러 올 수 있겠느냐고. 그래서 엄마랑 한국에 와서 오디션을 봤어요.”

    ▼ 연습생 생활은 얼마나 했죠?

    “1997년 초에 오디션 보고, 그해 여름 SM이랑 전속계약하고, 그해 겨울에 데뷔했어요. 속전속결이었죠. 요새는 연습생 생활을 몇 년씩 하는데 전 5~6개월 했을 거예요.”

    ▼ 가수를 꿈꾸고 있었나요.

    “늘 꿈꿨죠. 노래하고 춤추는 걸 무척 좋아했거든요. 또 해외에 있으면 가요에 애착이 더 가요. 향수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한국 드라마도 괌에 살 때 더 많이 본 것 같아요. 매주 비디오를 빌려 봤어요. 그게 우리 가족의 큰 기쁨이었어요. 드라마 보면서 ‘나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 SES 세 멤버 중 유독 인기가 많았는데, 다른 멤버들이 시샘하진 않았나요.

    “저희는 그런 거 없었어요. 요즘 아이돌그룹은 멤버들 간에 질투가 심하다고 하던데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노래로만 먹고살 수 없으니까 개인활동을 많이 시키는데, 예능 프로에 나가 잘하면 다행이지만 못하면 도태되잖아요. 그러니 서로 시기할 수 있죠. 가수가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것만으론 부족한 현실이 안타까워요. 저희 때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어서 셋이 굉장히 친했어요. 지금처럼 걸그룹이 많지도 않았고 원조라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한 가족이라는 유대감이 있었고.”

    ▼ 데뷔하자마자 스타덤에 올랐는데 인기가 부담스럽진 않던가요.

    “방송국에 갈 때마다 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지만 부담 느낄 정도로 인기를 실감하진 못했어요. 사무실에서도 큰 기대를 안 했어요. HOT는 대박이 났지만 여자그룹이 과연 인기를 끌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죠. 근데 앨범 반응이 좋아서 좀 놀랐어요.”

    “멤버들 합의로 SES 해체”

    SES의 SM 전속기간은 5년이었다. 2002년은 세 멤버가 전속계약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운명의 해였다. 그때까지 SES는 5장의 앨범을 냈고 모두 좋은 반응을 얻어 재계약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멤버들은 그해 그룹 해체를 결정했다.

    “사무실에서 제시한 계약조건이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었어요. 그것도 SES를 놓고 재계약을 시도한 게 아니라 각자 따로 불러 얘기했어요. 늘 그게 문제가 되잖아요. 그래서 다 흩어지고…. 안타까운 점은 당시 이수만 선생님이 미국에 계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얼굴을 볼 수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밑에 계신 사장님이 저를 가장 먼저 불러 얘기했는데 제가 생각했던 조건이랑 안 맞아서 재계약을 거절했어요. 그랬더니 제가 재계약을 안 해서 SES가 해체되는 것처럼 기사가 났어요. 지금도 서운해요.”

    ▼ 다른 멤버들도 재계약을 원치 않았나요.

    “조건이 안 맞는데 재계약을 할 수 있나요. 회사에서 SES로 계속 활동하는 것을 전제로 재계약을 추진했다면 어느 정도 양보했을 거예요. 저희에게 해체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각자 활동할지, 함께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기였어요. 저희 생각은 50대 50이었는데 회사가 셋이 같이 가게끔 도와주지 않았어요.

    회사에서 그렇게 나오니 저희끼리 합의해서 각자 미래를 위해 헤어지기로 결론을 냈어요. ‘여기서 멋있게 헤어지자,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게 헤어지는 게 SES의 이름을 빛내는 길’이라면서. 저 때문에 해체된 게 아니에요. 멤버들 간에 오해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대중에게 잘못 알려진 게 속상했어요. 그때 이수만 선생님이 계셨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 각자 개인활동을 하면서도 프로젝트 그룹으로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다들 어렸고 기획사도 달라서 셋이 뭔가를 도모하기가 힘들었어요. 근데 이제는 다 컸고 멤버들이 모여 그룹 활동을 추진할 만한 여건은 되죠. 그래서 저희는 함께 활동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유진은 2000년 고려대 사회어문학부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해 불어를 전공했다. 하지만 그 무렵 재외국민 선발학생 부정입학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연예인 특례입학도 도마에 올랐다. 수사과정에서 그가 한국에서 다닌 외국인학교가 학력인가를 못 받는 학교로 밝혀지자 고려대는 입학허가 취소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유진은 입학허가 취소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이겨 고려대에 재입학했다. 그는 “우리 교육법이 되게 웃기더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 외국인학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법이 저의 괌 시절 학력을 인정받을 수 없게 돼 있었어요. 제 학력이 괌에 이민 간 때인 초등학교 5학년으로 끝이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을 갈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유학 가면 외국에선 다 받아주는데 외국에서 학교 다닌 건 우리나라에서 인정을 안 해준다니 어처구니없었어요.

    그나마 저는 1년을 다녔기 때문에 재입학할 수 있었는데 2001년 외대에 들어간 슈랑 앤디는 입학이 취소됐어요. 그 친구들 잘못도 아닌데 참 안타까웠어요. 그 뒤에 법이 바뀌어서 지금은 외국 학력을 다 인정해주는 걸로 알아요.”

    ▼ 불문학을 전공학과로 택했는데, 원래 불어에 관심이 많았나요.

    “영문과에 가려고 했는데 제가 입학한 해부터 학부제로 바뀌어서 사회어문학부에 들어갔어요. 그러다 2학년 때 과를 선택하려니 영문과는 지망생이 많아 성적이 좋아야겠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하고 불어를 배우려고 불문과를 선택했죠. 근데 불문과에서는 어학이 아니라 문학을 가르치더라고요. 지금은 좀 후회스러워요. 문학엔 크게 관심이 없었거든요.”

    ▼ 전공학과를 다시 선택한다면.

    “어학을 더 깊이 배울 수 있는 외국어대 영어과를 가면 좋을 것 같아요. 고려대를 2년 다녔는데 진짜 힘들었어요. 결국 졸업을 못했어요. 연예활동으로 바빠서 출석률이 나빴거든요. 연극영화과였다면 연기하고 노래하는 게 다 성적에 반영되지만 불문과는 연예활동과 상관없잖아요. 그래서 과제 다 내고 시험 봐도 출석률이 안 좋으면 학점이 안 나와요.”

    ▼ 졸업을 못해 아쉽지 않나요.

    “학과를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휴학했어요. 휴학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자동 제적됐고요. 언제든지 다시 갈 순 있지만 생각은 없어요. 다들 ‘졸업을 하면 좋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는데 제 인생 커리어에서 대학 졸업장이 그리 중요할 것 같지 않아요. 연극영화과라면 어떻게든 졸업했을 거예요. 연기자로 활동하다 훗날 강단에 설 수도 있으니까.”

    “노래, 연기 다 잘하기는…”

    배우 겸 ‘뷰티 전도사’로 제2 전성기 유진

    1997년 유진(가운데)은 걸그룹 SES로 데뷔했다. 왼쪽은 바다, 오른쪽은 슈.

    ▼ 2002년에 출연한 ‘러빙 유’가 연기 데뷔작인가요.

    “SES로 활동할 때부터 연기 제의가 계속 들어왔어요. 지금은 그룹 하면서 각자 재능을 살려 개인활동도 하지만 당시엔 그런 예가 없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도 들어왔지만 저 혼자 따로 활동하는 게 내키지 않아 모두 거절했어요. 그러다 그룹이 해체되고 나서 처음 들어온 작품이 ‘러빙 유’였어요.”

    ▼ 가수 출신인 데도 연기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데, 연기 공부를 한 적이 있나요.

    “안 했어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연기한 거예요. 욕 안 먹은 것만도 다행이죠. 지금 보면 낯 간지러워요. 자연스럽게 한 부분도 있지만 감정 신은 엉망이었어요. 억지로 눈물 짜고…. 연기 테크닉도 없고 감정이입도 할 줄 몰랐으니까요. ‘가수가 무슨 연기?’ 했다가 큰 실수 안 하니까 괜찮게 봐주셨을 거예요.”

    ▼ 상대역 박용하 씨가 잘해주던가요.

    “많이 도와줬어요. 연기 조언도 해주고 촬영에 잘 적응할 수 있게 이끌어줬어요. 갑자기 세상을 떠나 좀 뜻밖이었어요. 참 밝은 사람이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예상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랑 작품 한 건 한참 전이라 아련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요.”

    현재 그는 배우 겸 MC로 활약하고 있다. 또 간간이 드라마나 영화 삽입곡을 부르고 동료가수의 노래에 피처링으로도 참여한다. 연기, 노래, 진행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일은 뭘까.

    “지금은 연기예요. 두 번째 작품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는 SBS 드라마였는데, ‘러빙 유’ 이후 2년 만이었어요. 그 사이 가수 활동을 했고요. 그때 연기에 재미를 느껴 푹 빠졌죠. 연기와 노래를 병행하려 했는데, 솔로 2집을 내면서 찍다보니 하나에 몰두하기도 힘들었어요. 배우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고 출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선택받는 직업이에요. 시놉도 선택돼야만 받을 수 있어요. 언제 작품이 들어올지 모르는데 앨범을 내면 이도저도 제대로 못 하겠더라고요. 연기한다고 앨범 만들어놓은 걸 1년 뒤에 풀 수도 없고. 결국 어느 순간 무대를 포기하게 되더군요.”

    ▼ 지금도 포기 상태인가요.

    “연기를 하고 있지만 음악을 무척 좋아해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쳐서 클래식은 당연히 좋아하고, 교회를 다녀서 성가나 합창곡도 좋아하고, 팝송과 가요도 좋아해요. 음악의 힘은 정말 대단해요. 영화건 드라마건 음악이 없으면 앙금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죠. 음악에 대한 그리움이 늘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음악 작업도 하고 싶어요.”

    -‘위탄’ 진행하면서 신선한 자극을 받았겠네요.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서 어릴 때부터 재능을 발굴해 키울 수 있게 됐어요. 일찍이 될성부른 아이들은 키우고, 안 될 아이들에겐 미리 얘기해줘서 다른 길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진행할 때마다 놀랐어요. 한국 사람들, 왜 이렇게 노래를 잘해? 하고요. 아무튼 무대를 즐기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 출연한 드라마가 대부분 큰 사랑을 받았는데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우선 내용이 재미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캐릭터를 봐요. 캔디 같은 캐릭터가 주로 들어와서 그런 역을 많이 했어요. 다양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성형수술 이해 못했는데…”

    ▼ 악역은 어때요.

    “썩 내키진 않아요. 어떤 캐릭터든 마음으로 이해해야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악역은 진심으로 공감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공포영화에도 도전해봤는데 그때도 힘들었어요. 무서워서 떠는 게 너무 싫었어요. ‘제빵왕 김탁구’ 때도 살짝 우울한 역이었어요. 시청률은 50%에 육박했지만 촬영장 가는 게 즐겁지 않았어요. 캐릭터에 빠져서 우울한 기분을 떨치기 힘들었어요.”

    ▼ 호흡이 가장 잘 맞았던 상대배우는.

    “오빠(남편 기태영)랑도 잘 맞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 상대역이었던 지성 오빠예요. 그 작품에 워낙 몰두했었고 지성 오빠와 연기할 때도 죽이 잘 맞았거든요. 지성 오빠는 연기도 잘하고 상대가 잘 적응할 수 있게 맞춰줘요. 카메라 앞에서 서로 배려하면서 찍었던 기억이 나요.”

    ▼ 롤모델이 있다면.

    “가수 할 땐 엄정화 언니가 부러웠어요. 정화 언니가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데 계속 열정적으로 가수활동 하고, 마음씨도 예쁘고 순수하거든요. 지금은 ‘제빵왕 김탁구’에 이어 ‘백년의 유산’도 같이 하는 전인화 선생님이 부럽고 존경스러워요. 연기도 잘하시고 자기관리도 열심히 하시거든요. 가정에도 충실하고, 미모도 출중하잖아요. 요즘 얼굴에 손대는 분이 많은데 그러시지도 않고…. 저도 선생님 나이 됐을 때 그만큼 고왔으면 좋겠어요.”

    ▼ 얼굴에 손대고픈 충동을 느끼나요.

    “아직은 안 해봤지만 30대가 되니 성형하는 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돼요. 외모에 초연할 수 없는 여배우잖아요. 어릴 땐 성형하는 게 이해가 안 됐는데, 주름이 자꾸 늘면 뭐라도 하고 싶을 것 같아요. 요즘은 간단히 할 수 있잖아요. 나이 들면 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 보기 드문 자연 미인인데,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은.

    “코요. 눈은 제 것보다 만든 눈이 더 예쁜 것 같아요(웃음).”

    ▼ 슬럼프를 겪어봤나요.

    “제 성격상 그럴 수가 없어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편이거든요. 아마 신앙이 없었으면 연예인으로 사는 게 힘들었을지도 몰라요. 믿음이 있으니까 성공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이 없어요. 그게 다른 사람 눈에는 열정이 없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부와 명예를 향해 악착같이 달려가면 인생이 무의미해질 것 같아요. 욕심은 끝이 없잖아요. 그걸 채우려고 달리다보면 인생도 일도 즐길 수 없어요. 저는 현재가 가장 소중해요.”

    “푼수 연기 도전하고 싶어요”

    유진은 미용정보 프로그램 ‘겟 잇 뷰티’를 4년째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뷰티 전도사’로 불린다. ‘겟 잇 뷰티’를 진행하며 얻은 정보를 모아 2011년 출간한 같은 제목의 책은 초판 3만 부가 금세 다 팔려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프로 진행하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몰랐던 미용정보도 얻을 수 있고, 여자들끼리 수다 떠는 게 재미있어요. 정말 평범한 여자들을 만날 수 있고, 그분들과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아요.”

    ▼ 뷰티 전도사로서 ‘신동아’ 독자에게 한 수 조언한다면.

    “아무래도 남성 독자가 많겠죠? 요즘 피부 관리에 관심을 갖는 남성이 많아졌어요. 고무적인 현상이죠. 남자도 피부 관리가 필요하거든요. 간단히 할 수 있는 방법은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거예요. 자외선은 피부 노화의 주범이니까 계절, 날씨에 상관없이 외출할 땐 꼭 발라야 해요. 오빠(남편 기태영)도 통 관리를 안 했었는데 저를 만나고 기초관리하면서 피부가 좋아졌어요. 거울로 자기 얼굴 보며 감탄할 정도로.”

    ▼ 기초 관리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아침저녁으로 세안 잘하고 스킨, 로션 외에 에센스와 영양크림도 좀 발라주고, 자외선 차단제를 꼬박꼬박 챙겨 바르면 돼요. 평소에는 기초관리만 잘해도 놀라운 피부 변화를 실감하실 거예요.”

    ▼ 일을 안 할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냅니까.

    “여가가 나면 여행을 가요. 해변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발리와 신혼여행 갔던 유럽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영화도 자주 봐요. 오빠도 저도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외식은 가끔 하는데 나가기 번거로우면 집에서 밥 해먹어요. 요리하는 거 좋아해요. 요리책 보고 하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요(웃음).”

    ▼ 가계부도 쓰나요.

    “신혼 초엔 썼는데 바빠지니까 못 쓰겠더라고요. 저희 부부는 돈 관리를 같이 하는데 앞으로는 오빠한테 다 맡길까 싶어요. 오빠가 저보다 더 꼼꼼하고 재테크도 잘하거든요.”

    ▼ 평소 연예인들과 자주 어울리나요.

    “늘 정해져 있어요. SES 멤버들하고 ‘야채파’(1990년대에 활발히 활동한 여자 아이돌 가수들이 만든 친목 모임) 멤버들이요. 슈, 박지윤, 소이, 간미연 씨 등이 야채파 식구인데 그 친구들과 어릴 때부터 만나왔어요. 다들 제 또래고 같은 시기에 활동해서 얘기가 잘 통해요. 각기 야채 이름을 딴 별명이 있어요. 전 얼굴이 길쭉한 고구마를 닮아서 고구마로 불려요(웃음).”

    ▼ 연예인이 안 됐으면 뭘 하고 있을까요.

    “어릴 땐 피아니스트가 꿈이었어요. 괌으로 이민 가면서 형편상 못 배웠어요. 피아노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해야 하잖아요. 고등학교 때는 미술 배워서 미대 가려고 했어요. 가족이 전부 예체능 방면에 소질이 있어요. 특히 엄마는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하세요. 대학에서 불어교육학을 전공하셨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성화에 못 이겨 선택한 길이에요. 부모님과 동생은 지금도 괌에 살아요. 저 보러 가끔 오죠.”

    ▼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역은.

    “재미있고 푼수 같은 역이요. ‘브리짓존스의 일기’에서 르네 젤위거가 연기한 여주인공 같은. 그런 역을 못 해봤는데 맡겨만 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로맨틱 코미디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지금까지는 역경을 딛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역을 많이 했으니 이제는 좀 더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 30대에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건강하게 출산하는 거요. 다들 빨리 낳으라고 난리예요. 서른둘에 결혼했으니까 제 또래에 비하면 빠른 편이지만, 아이 키우려면 체력도 있어야 하잖아요. 30대가 되니 체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느낌이에요. 서둘러야겠어요.”

    ▼ 몇 명이나 낳으려고요?

    “마음 같아선 힘 닿는 대로 낳고 싶은데 체력이 안 따라주면 입양해서라도 가족을 늘리고 싶어요. 내가 낳은 아이든, 아니든 아이가 네 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동생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런지, 형제가 많고 가족이 북적이는 게 부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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