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호

“유민봉(靑 국정기획수석) 너무 한심…경제도 안보도 걱정스럽다”

脫 ‘원조 친박’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3-04-17 14:2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유민봉(靑 국정기획수석) 너무 한심…경제도 안보도 걱정스럽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 여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의 청와대 만찬이 있던 4월 9일. 새누리당 인사들은 부랴부랴 개인적인 저녁약속을 취소하느라 애를 먹었다. 청와대가 대통령 주재 비공개 만찬이 있다는 사실을 당일에야 알렸기 때문. 특히 참석자 가운데 일부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간담회 일정을 통보받고 어이없어했다.

    당 지도부에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1급 비서관이 당일, 그것도 문자메시지 하나 덜렁 보내서 만찬에 참석하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의원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지도부에 간담회 일정을 통보한 청와대 참모는 정무수석실 김선동 정무비서관 등이었다. 김 비서관은 초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김 비서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정이 갑자기 잡혀서) 내가 당일 전화를 드렸다. 본인과 통화가 안 되면 보좌진에게 했고, 그다음에 문자를 남겼다”고 해명했다. 김 비서관의 전화를 미처 못 받고, 보좌진에게서도 보고를 못 받은 채 문자메시지만 확인한 경우라면 화를 낼 만한 상황이었다.

    당일 소집됐지만 이날 만찬 간담회에는 당에서 황우여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단, 이한구 원내대표, 당 소속 상임위원장 등이 거의 전원 참석했다. 유일한 불참자는 국회 국방위원장인 유승민 의원이었다. 유 의원은 “임플란트 시술 등으로 요즘 몸이 좋지 않아 불참했다”고 말했다.

    사소한 의전 미숙?



    유 의원은 4월 11일 열린 박 대통령과 국회 국방위, 외교통일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의 만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외통위원장인 안홍준 의원 역시 불참했다. 이에 대해 유 의원과 안 위원장 측은 “지도부 만찬 때 상임위원장들이 나갔기 때문에 상임위별 회동에는 초청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유 의원은 지도부 만찬에 나오지 않아 초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연락 받은 바 없다”고 했다.

    이번 일은 사소한 의전 미숙으로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초반부터 여당과 청와대가 충돌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과거 정권 초기에는 여당과 청와대 간 사소한 마찰은 있었지만 한동안 밀월 기간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과 조각(組閣), 청와대 인선 과정에서 잔뜩 뿔이 난 여당 일부에서 새 정부 출범 한 달여 만에 청와대를 공격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첫 당·정·청 회의가 열린 3월 30일 상황은 당-청 간 파워게임의 전초전 성격이 짙다. 특히 유승민·한선교·김재원 의원 등이 청와대를 매섭게 질타했다. 박 대통령과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호흡을 맞춰온 ‘원조 친박(親박근혜)’들이 새 정부 들어 국정 컨트롤타워에 앉은 ‘신참’들에게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라”고 혼내는 모양새였다. 압권은 ‘친박계의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유 의원이었다.

    “잘할 것 같지 않아요”

    “유민봉(靑 국정기획수석) 너무 한심…경제도 안보도 걱정스럽다”

    4월 5일 법무부·안전행정부 업무보고회의 직전 김동연 총리실 국무조정실장과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이정현 정무수석(왼쪽부터)이 담소하고 있다.

    회의에서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 및 국정방향을 설명하며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어록과 인수위 활동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묶어 “대통령 철학이고 국정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유 의원은 “지금 뭐하자는 거냐. 그런 에피소드가 어떻게 국정철학이냐. 빨리 끝내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유 의원은 또 “여당 의원들에게까지 이렇게 전도하듯이 하는데, 어떻게 국민과의 소통이 잘될 수 있겠느냐. 지금 대통령 지지도가 41%로 추락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오늘 회의는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전략을 찾아내는 회의가 돼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인사 문제부터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했다”며 “결정적으로 유승민 의원이 쓴소리를 하면서 다른 의원들도 눈치를 보지 않고 할 말을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귀띔했다. 다른 참석자도 “유 의원이 쓴소리 한번 잘했다는 의원이 많았다”고 전했다.

    유 의원의 생각을 듣기 위해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1호 인사(대통령직인수위 첫 인사)에 대해 한마디했는데 안 고쳐지는 것을 보고 입을 닫았다”고 했다. 또 “대한민국 보수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가슴 아프다”고도 했다. 4월 12일 유 의원과 통화를 했다. 그는 “요즘은 언론 인터뷰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 당·정·청 회의에서 유민봉 수석을 거세게 몰아세웠는데요.

    “개인적으로 유 수석을 전혀 모릅니다. 그때 처음 봤죠. 선입관 같은 게 있을 수 없는 상황인데 그날 이야기하는 거 보니 너무 한심하고… 그렇게 해서야 이처럼 중대한 시기에 경제도 안보도 뭐가 제대로 되겠는가라고 생각했죠.”

    ▼ 당 지도부 만찬에는 왜 가지 않았나요.

    “몸도 아프고….”

    ▼ 몸도 마음도?

    “하하.”

    “유민봉(靑 국정기획수석) 너무 한심…경제도 안보도 걱정스럽다”

    3월 30일 열린 첫 당·정·청 워크숍에서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 정홍원 국무총리,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왼쪽부터)가 손을 맞잡고 있다.

    ▼ 지도부 만찬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당일 문자메시지로 받았나요.

    “김선동 비서관이 바뀐 번호로 전화를 건 것 같은데, 받지 못했더니 문자가 왔어요. 연락한 셈이죠.”

    만찬에 나오라는 통보 방식에 화가 나서 불참한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였다.

    ▼ 만일 지도부 만찬에 참석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요.

    “이야기 좀 하고 싶었지만, 안 갔는데 뭐….”

    ▼ 새 정부 인사가 마무리됐는데요.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등에 대한 1호 인사 이후에) 여전히 계속 그러네요. 인사만 봐선 잘할 것 같지 않아요. (박 대통령이) 모든 부분에서 성공해야 되는데, 일단 1기 내각 구성과 청와대 비서진 인선이 거의 마무리됐으니 얼마나 해낼지 지켜봐야죠. 팀이 다 짜였으니 그 팀으로 가보는 수밖에 없겠죠.”

    ▼ 당분간 여당보다는 청와대가 독주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봐야죠.”

    “대통령이 그리 무섭나…”

    ▼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여당이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합니까.

    “여당은 청와대와 거리를 유지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역대 여당을 보면…청와대 뒤치다꺼리하고, 하수인 역할 하다가 결국은 여당까지 같이 망하는 걸 봐왔지 않습니까. 대통령과 여당이 서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게 필요해요. 그렇게 하려면 지금의 당 지도부로는 어림도 없죠. 당 대표, 원내대표, 최고위원들이 청와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야당이 뭐라고 비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잘못을 시정하는 역할을 해야죠. 잘하면 도와주고, 잘못하면 견제 역할을 할 때 청와대와 여당이 모두 좋아집니다.”

    ▼ 지금 여당 지도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보나요.

    “집권 초반에 힘든 일이긴 하죠. 중·후반기로 가면 차기 대선후보군이 나타나면서 자연스럽게 (역할을) 하게 됩니다. 초반인 지금 죽 쑤는 건 그냥 대통령 입만 쳐다보다가 그렇게 되는 거죠. 현 지도부가 다 좋은 사람이긴 한데 역할 수행하는 걸 보면 참 답답해요. 지금도 당 안에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제법 있어요. 그런데도 당 대표에게 쓴소리 한마디 없이 끌려가니까….”

    실제로 지금의 황우여 대표 체제는 ‘약체 지도부’라는 평가를 받는다. 당내에서는 “황 대표가 ‘아무 것도 안 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선보이고 있다”는 혹평까지 나온다. 여기다 5월에 실시되는 신임 원내대표 경선의 유력 후보인 최경환·이주영 후보도 친박이다.

    ▼ 당의 분위기가 왜 그렇게 됐을까요.

    “당 지도부가 좀 정신 차려서 잘했으면 좋겠는데, 대통령이 그리 무서운가봐요 다들…(웃음).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박 대통령의) 성격이 차갑고 무섭기는 하죠. 그렇지만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뽑는 것도 아니고, 물론 공천에 영향을 많이 미쳤지만 2016년 총선 때 현 대통령이 공천을 할 것 같지는 않고, 그런데 의원들이 뭘 그렇게 무서워하는지…(웃음).”

    이런 지적과 관련해 대선 때 선대위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전직 재선 의원도 동감을 표시했다. 그는 “지금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관료화해 있다. 정부 부처의 차관, 국장급처럼 군다, 정치인이 아니다”며 “앞으로도 ‘박근혜 카리스마’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할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유 의원은 “이제 친이, 친박은 없어졌지만 어느 당에나 있을 수밖에 없는 주류, 비주류는 있는데, 비주류가 목소리를 좀 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 유 의원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몇 번 그러니까 청와대에선 상당히 경계하면서 등한시하는 건 물론이고, 일부에선 저를 깎아내리려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자기 장사 한다”는 식의 말도 나오고요. 그런 말 들을 때는 ‘아휴, 내가 뭐 대단한 장사하려고…아이고, 입 좀 다물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사실 누가 저에게 ‘깃발을 들고 앞장서라’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오해까지 받으면서 하는 건 피곤한 일이고 저도 고민이 많습니다.”

    “소통은 형식보다 내용”

    첫 당·정·청 회의에서 청와대를 겨냥한 쓴소리가 쏟아진 이후 박 대통령은 ‘식사 정치’로 여·야 모두와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 만찬(4월 9일), 국회의장단 만찬(10일), 국회 국방위·외통위 소속 여당 의원 만찬, 민주통합당 지도부 만찬(12일)이 이어졌다. 야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는 “그동안 인사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했다.

    여당 지도부와 만나서는 참석자들이 “당이 쓴소리를 해도 대통령이 잘 받아들여달라”고 하자 박 대통령이 “앞으로 모든 사안에 대해 당의 말을 많이 듣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박 대통령은 또 “당 사람들이 보고 싶어 상사병이 났다”며 친근감을 표시했고, 황우여 대표는 “우리가 상사병이 났다”고 장단을 맞췄다.

    박 대통령은 국회 상임위별로 회동을 하면서 식사 정치를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김선동 정무비서관은 “대통령이 국회 존중 차원에서 정치권과 소통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은 대화형이다. 그런 흐름을 지금 보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정무라인도 여의도 정치와의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이정현 정무수석과 김선동 비서관은 새누리당 초선 의원 모임인 ‘초정회’가 4월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월례 조찬간담회에 참석해 정치 초년생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이 수석은 “(소통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을 달게 받겠다. 앞으로는 당·청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도록 시스템을 고쳐나갈 테니 의원들이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또 “오늘 여기에 오는 것을 대통령에게 다 보고드렸고,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하고 소통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유승민 의원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대통령과 정치권의 소통은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박 대통령이 부쩍 친(親)여의도 행보를 보이는데요.

    “대화를 자꾸 해야죠. 그런데 문제는…지도부와의 첫 만찬 때 갔다 온 분들 말을 들어보면, 청와대 가서 밥 먹고 덕담만 하다 왔다던데요? 그런 대화가 굳이 필요할까요? 대통령도 바쁘신데…. 의원들도 문제죠. 대통령이 싫은 소리 싫어하시니 눈치를 봤는지 몰라도…. 대통령의 국정운영이나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고 안보도 심각한 상황에서 2시간 동안 대화 내용이 온통 덕담 위주로 간 것, 그게 소통인지 모르겠어요.”

    유 의원은 “언론보도만 보면, 지도부가 ‘쓴소리도 잘 들어달라’ 그런 말을 했다는데, 실제로는 깊은 이야기는 거의 안하고 밥만 먹고 덕담, 농담만 하다 온 것 같더라”고 했다.

    대다수 새누리당 의원이 입조심을 하는 가운데 유 의원에 이어 입바른 소리를 내기 시작한 의원이 또 한 명 있다. 여당의 ‘입’인 이상일 대변인이다. 기자 출신으로 대선 후보 경선과 본선 때도 박근혜 후보의 ‘입’ 노릇을 했던 그는 각종 논란에 대해 연일 강성 논평을 내며 청와대를 공격하고 있다.

    3월 25일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자 브리핑을 통해 “도대체 인사 검증을 어떻게 했기에 이런 일이 잇따라 발생하는 것인지 청와대는 반성해야 한다. 인사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뿐 아니라 부실검증의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문책을 해야 한다”고 서슴없이 문책론을 제기했다.

    고위층 별장 성접대 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이 대변인은 “건설업자가 벌인 문란한 파티에 참석한 인사로 법무차관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국민 눈에 더욱 한심하게 비친 것은 청와대의 허술한 인사검증”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은 “야당은 비판만 하면 되지만 여당 입장에선 대통령과의 신뢰감을 바탕으로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오죽하면 저런 소리 하겠나’ 싶을 때 생산적인 대화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당청 갈등 3대 변곡점

    “유민봉(靑 국정기획수석) 너무 한심…경제도 안보도 걱정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3월 15일 청와대에서 여당 대표단과 회동하고 있다.

    3·30 당·정·청 회의에서 1차 폭발한 당-청 갈등은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면서 일단 진정됐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상 여당과 청와대는 정치적 고비마다 충돌하게 돼 있다. 여론에 민감한 정당과 국정운영이 우선인 청와대의 처지가 다른 까닭이다.

    당의 원조 친박들이 당·정·청 회의를 통해 청와대 참모진을 성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원조 친박들이 겨냥한 실제 타깃은 박 대통령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여당이 4·24 재·보궐선거와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 등을 앞두고 대중적 인기가 떨어진 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었다.

    향후 당·청 충돌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3대 변곡점은 올해 9월 정기국회, 내년 5월 새누리당 전당대회, 내년 6월 지방선거다.

    1차 변곡점인 9월 정기국회 때 박근혜 정부 첫 국정감사가 실시된다. 여기서 야당 못지않게 여당 의원들도 정부를 향해 날을 세울 수 있다. 특히 새 정부가 표방한 창조경제, 민생경제와 연결돼 여당의 비판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 추세로는 올 하반기까지 경기침체가 이어질 전망이고, 이 경우 여당에서 ‘정부 책임론’이 제기될지 모른다. 새누리당이 보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요구하면서 정부와 청와대를 때릴 가능성이 있다.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의 법제화 문제도 뇌관이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다. 당연히 청와대는 이를 지키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당 국회의원들은 기득권 보호 차원에서 법제화에 제동을 걸 것으로 예상된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기초단체장에 대한 공천이 폐지되면 후보가 난립해 지역사회가 분열되고, 지방토호들이 ‘돈 선거’를 하게 될 뿐 아니라,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초단체장을 견제할 장치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지역구 당원협의회 위원장인 의원들이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에 대한 공천권을 쥐고 그들을 통제하려는 속셈도 있다.

    2차 변곡점은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를 새로 뽑는 내년 5월 전당대회다. 친박 핵심으로 복귀한 김무성 전 원내대표 세력과 정몽준 전 대표, 이재오 의원을 중심으로 한 옛 친이(親이명박)계, 또 김문수 경기지사 세력 사이에 당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

    내년 5월 전당대회는 6월 지방선거 직전에 열린다. 이 때문에 공천권 행사와 관련해 미묘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지금대로라면 현재의 황우여 대표체제가 공천권을 행사하고 바로 물러나야 한다. 따라서 전당대회 출마 예정자들이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충돌할 수 있다. 황우여 체제는 박 대통령의 친정체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지금 새누리당의 모습은 과거 2002년 박근혜 부총재가 이회창 총재에게 당의 민주화를 요구했던 때보다 더 사당(私黨)화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내년 전당대회 시점에 차기 대권을 노리는 당의 중진들이 박 대통령 중심의 획일적 당 운영에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주목되는 인물이 김무성 전 원내대표다. 4·24 부산 영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그는 국회에 재입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당권 도전은 기정사실화한다. 부산 지역의 한 언론인은 “김 전 원내대표가 당권을 노리면서 박 대통령을 등에 업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독자 세력화를 모색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당내에 ‘김무성계’가 형성되는 기류마저 감지되고 있다. 이전에도 많은 당료가 그를 ‘무대’(무성이 대장)라고 부르며 따랐다. 김 전 원내대표는 부산 영도 재선거에 중앙당의 지원 제의도 뿌리치고 ‘조용한 선거’를 치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뜻과 상관없이 현장 자원봉사에 나선 정치권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한 전직 중진 의원도 영도에 상주하며 선거를 돕고 있다고 한다.

    잠재적 당권 도전자들

    5월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할 최경환 의원은 3월 중순 홀로 영도를 찾아 김 전 원내대표를 만났다. 재·보선과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여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두 인물의 의미 있는 회동이었다. 최 의원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선배로 모시며 가깝게 지냈다. 이번에 선거에 출마했기 때문에 격려 차원에서 방문해 식사만 하고 헤어졌다. 특별한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MB계 군기반장’으로 불리던 이재오 의원도 대선을 전후해 숨을 죽이고 있지만 내년 당권 경쟁을 의식한 듯 서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것도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서다.

    이 의원은 4월 10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해야지,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하면 안 된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하려고 국회에서 청문회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당이 해야 할 국회 고유의 일인 정치개혁 부분에 대해 청와대의 눈치만 보거나 대통령 심기를 살펴서는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없다”고도 했다.

    3선인 유승민 의원도 잠재적 당권 도전자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년 전당대회에 나갈지는 미정이지만, 어차피 당에서 승부를 봐야 정치적으로 ‘넥스트(next)’가 있는 거 아니냐는 생각은 분명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최고위원도 하다 말았고, 그것도 단일성 집단지도부 체제에서 홍준표 대표와 같이 하느라고 별 의미가 없었다.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당을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한번 이끌어가보고 싶다는 포부를 당연히 갖는 것 아니냐. 당이 나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할 때다 싶으면 주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내년 전당대회인지에 대해선 조금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2011년 7·4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후보에 이어 2위를 기록하며 최고위원이 됐다. 3위와의 표 차이도 컸다. 그러나 그 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뒤 박근혜 위원장이 이끄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면서 지도부가 해체됐다.

    박 대통령이 당 대표를 역임할 때 비서실장을 지냈지만 새 정부에 비판적인 유 의원이 당권에 도전할 경우 청와대의 적극적인 대응은 불가피하다. 한 정치평론가는 “아마도 유 의원이 나서면 주류 측에선 ‘유승민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친박, 비박(非朴)에 상관없이 강력한 대항마를 내세워 지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럼에도 유 의원이 당권을 잡으면 사사건건 당과 청와대가 충돌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유 의원만이 아니라 현재 거론되는 정몽준 전 대표, 김문수 지사, 이재오 의원 가운데 누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청와대로선 만만하지 않다. 따라서 청와대가 황우여 대표에 이어 또 다른 ‘관리형 대표’ 후보를 내세울 수도 있다.

    ‘박근혜 차별화’

    당-청 충돌의 3차 변곡점은 내년 6·4 지방선거다. 공천권 행사를 둘러싼 청와대와 여당의 은근한 힘겨루기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선거전에 본격 돌입했을 때에는 여당 후보들이 박근혜 정부와 차별화에 나서는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저조한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경우다. 정치분석가들은 향후 경제전망, 남북관계 등을 볼 때 갈수록 박 대통령의 지지율 회복이 어려워질 것이란 예측을 내놓는다.

    여권은 내부 소통 및 협력 강화를 위해 ‘당·정·청 정책협의회’를 구성했다. 연초와 9월 임시국회 전에 연간 두 차례 ‘고위 당·정·청 워크숍’을 정례적으로 개최한다는 복안이다. 3월 30일 첫 모임에서 새어나온 마찰음은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멈추게 했다. 그러나 당장 예상되는 3대 변곡점을 거치면서 언제든 당-청 갈등은 재연될 수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