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호

“계급장 떼고 약점 노출하니 대박!”

공군 홍보 영상 ‘레밀리터리블’ 성공비결

  • 유희정 │피크15 커뮤니케이션 연구위원

    입력2013-04-19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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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6일 오전 7시 유튜브에 공군 홍보 동영상이 떴다. 제목은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과 ‘밀리터리(Military·군대)’를 합성한 ‘레밀리터리블’. 공군의 제설작업을 ‘레미제라블’처럼 연출한 이 동영상은 4월 11일 현재 조회수가 477만1000여 번에 달한다. 아류작도 쏟아져 나왔다. ‘레밀리터리블’이 ‘대박’을 터뜨린 데는 기획, 제작, 채널별 확산 전략을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한 공군 정훈공보팀의 공이 크다. 공군은 커뮤니케이션 분석 전문기관과 공동연구를 통해 기업과 공공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참고할 만한 성공비결 3가지를 찾아냈다.
    “계급장 떼고 약점 노출하니 대박!”

    ‘레밀리터리블’의 한 장면.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월 22일, 공군 작전사령관과의 화상통화에서 “공군 장병들이 ‘레밀리터리블’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활주로에 눈이 많이 쌓여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의 안보정책 운용에 대한 국내외의 고조된 시선을 고려한다면 참신한 소통 스타일이었다.

    이날 박 대통령이 언급한 ‘레밀리터리블’은 2월 6일 유튜브에 업로드된 지 두 달 남짓한 4월 11일 현재 조회수 477만여 번을 기록한 공군 홍보 동영상이다. 군 조직의 홍보 동영상을 두고 최고위직 리더 간에 대화가 오가게 된 것은 이 동영상의 엄청난 대중적 인기 때문이다.

    국내 유력 미디어뿐 아니라 미국 ‘뉴욕타임스’가 ‘레밀리터리블’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만큼 중독성 있는 영상이라고 평한 데 이어 CNN, BBC, 알자지라 방송 등 해외 유수의 미디어도 집중 조명했다.

    또한 ‘레밀리터리블’을 패러디한 ‘레스쿨제라블’ ‘레공대라블’ 등 2차 패러디 영상이 속속 등장해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육군은 ‘레밀리터리블’의 기획과 제작을 담당한 공군본부 정훈공보실의 미디어영상팀을 벤치마킹해 미디어홍보팀 ‘밀리미터’를 2월 중순 창단하고 패러디 영상들을 내놓고 있다.

    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요즘, 기업이나 공공기관 홍보 책임자들은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예산으로 효과적인 홍보활동을 펼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이들에게 촬영기간 3일, 실제작비용 100만 원이라는 ‘초단기·저예산’으로 완성된 ‘레밀리터리블’은 분명 눈여겨볼 만한 성공사례다. 필자가 몸담은 피크15 커뮤니케이션은 2월 8일 공군본부 정훈공보팀으로부터 이 동영상이 세계인의 뜨거운 관심을 모은 비결과 커뮤니티 형성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한 달여간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결점을 유머 코드로 전환

    “계급장 떼고 약점 노출하니 대박!”

    ‘레밀리터리블’ 포스터

    ‘레밀리터리블’은 김경신 중위가 1월 1일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나서 정다훈 중위와 이야기를 나누다 생각해낸 작품이다. 김 중위는 이 동영상의 제작자를, 정다훈 중위는 한동대 시각디자인학부와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한 경력을 살려 음악 프로듀서 겸 감독을 맡았다.

    정 중위는 배경음악에 삽입할 노랫말을 직접 만들었다. 유년기를 해외에서 보낸 덕분에 운율을 잘 살린 영어 가사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처음 해보는 배경음악 작업은 미디어영상팀원들의 의견을 참조해 수정과 보완을 거듭해나갔다. 제설 장면에 출연한 엑스트라는 지원자가 15명밖에 되지 않아 공군중앙전산소에 차출을 요청했다. 차출된 병사들을 통솔한 주임원사는 “특별출연하는 대가로 1억 원은 주셔야죠”라고 농담을 했지만, 병사들은 출연료 대신 지급한 찐빵과 어묵으로도 흐뭇해했다.

    군인 특유의 협동심과 지속적인 연습, 철저한 동선(動線) 파악 등 사전 준비에 힘입어 1월 29일 시작된 촬영은 사흘 만에 끝났다. 제작과정에서 기계적 오류가 생겨 보컬 녹음 분량을 재녹음하고, 제대로 된 그림 콘티가 없어 현장 촬영분을 거칠게 편집하는 등 어려움이 따랐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계급장 떼고 치열한 토론을 벌인 끝에 ‘군미제라블’이었던 원제는 외국인도 이해할 수 있는 ‘레밀리터리블’로 바뀌고, 지루한 부분은 가차 없이 편집됐다.

    “계급장 떼고 약점 노출하니 대박!”

    ‘레밀리터리블’ 기획과 제작에 참여한 공군 장병들. 왼쪽부터 김경신 중위, 이민정 중위, 이현재 병장, 김건희 병장(전역), 정다훈 중위.

    제작과 더불어 홍보 전략도 수립했다. 미디어영상팀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소녀시대의 ‘The Boys’ 등 케이팝(K-pop) 영상과 코오롱의 ‘감동 알바 몰래카메라’, 한국음식관광축제의 ‘뒤통수 할머니’ 등 소셜미디어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유튜브 영상을 분석하고, 확산 경로와 요인을 벤치마킹했다.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 홍보실에서 기획하는 홍보 소재는 정책 공급자의 시선에서 기획된 것이 많다. 정책 수요자인 국민이나 고객 처지에서는 일방적인 메시지라는 인상을 받기 쉽다. 공군 미디어영상팀은 ‘레밀리터리블’을 통해 이런 일방적 정보전달 방식을 극복하기 위해 결점을 과감히 드러내는 ‘모험’을 시도했다. 이는 공공업무에 관한 홍보활동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레밀리터리블’은 장점을 극대화할 때 긍정적인 홍보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제설작업의 단점을 유머러스하게 승화함으로써 더 큰 호응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공공 홍보 최초의 ‘슈퍼데스크’

    글로벌 정보업체 ‘트렌드워칭닷컴(trendwatching.com)’이 지난해 말 발표한 ‘2013 글로벌 트렌드’ 보고서는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플로섬(flawsome)’ 전략이 뜬다고 소개했다. 플로섬은 결점을 드러내 소통하는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을 지칭하는 용어로, 일부 글로벌 기업이 고객에게 친구처럼 다가가려고 도입하는 기법이기도 하다. 군의 제설작업처럼 스스로의 결점을 위트와 유머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자신의 강점은 ‘남의 입’에서, 약점은 ‘내 입’에서 먼저 나올 때 PR효과가 커진다.

    ‘레밀리터리블’ 성공사례에 담긴 또 하나의 시사점은 창의성을 독려하는 조직운영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공군본부 정훈공보실 미디어영상팀은 기획부터 사전 전략 수립, 콘텐츠 제작 및 미디어 확산과 사후 대응까지 원스톱으로 작동하는 ‘슈퍼데스크’ 체제다. 슈퍼데스크는 기업과 공공조직에서 빠르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일원화한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말한다.

    미디어영상팀은 상급기관인 공군본부의 배려로 15명으로 구성된 독자적인 팀을 꾸려 1년 전부터 자체 제작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해왔다. 한마디로 콘텐츠 생산과 확산에 대해서는 완벽한 책임과 자율권한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민간조직보다 한결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유연성은 상급기관과 실행 팀의 높은 신뢰와 확신이 있어야 발휘될 수 있다.

    미디어영상팀장 권용은 중령은 “콘텐츠의 소재와 형식에 특별히 제한을 두지 않는다. 국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팀 차원에서 자유롭게 결정한다”고 운영원칙을 밝혔다. 그는 또 “큰 방향에 대해선 팀장으로서 ‘스크린’하지만 창작영역은 철저히 실무자에게 맡긴다”며 “기획회의에서는 젊은 감각의 아이디어가 언제나 자유롭게 나오고, 30대만 되어도 제작과정에 못 낄 정도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공군은 ‘레밀리터리블’을 미래 사업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했다. 동영상에 PPL(Product Placement·간접광고)로 등장하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 포스터가 좋은 예다. 이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김경신 중위다. 김 중위는 촬영 장소인 무궁화회관에서 촬영 동선을 확인하다가, 차세대 전투기 사업 포스터를 붙여서 노출하자고 제의했다. 깨알 같은 재미 속에 ‘전투 의지’를 심어놓은 제작진의 재치가 웃음을 자아낸다.

    “계급장 떼고 약점 노출하니 대박!”

    ‘레밀리터리블’촬영 현장

    동영상 제작 과정에서 살아난 창의성은 확산 과정에서도 ‘효과’를 발휘했다. 미디어영상팀은 이 팀에서 직접 운영하는 공군 블로그 ‘공감’(www.afplay.kr)의 방문자 통계 분석을 분기별로 실시해 핵심 홍보 대상자를 직장인과 군필자 그룹으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직장인이 가장 많이 출근하는 시간대인 오전 7시에 맞춰 ‘레밀리터리블’ 동영상을 유튜브에 띄웠다. 직장인은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즐겨 본다는 분석 결과를 고려한 것이다. 또 스마트폰 화면에 적당한 자막 크기를 찾아내기 위한 사전 테스트도 여러 번 실시했다.

    소셜미디어 운영을 맡은 병사는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영상 선호 채널들을 동시에 공략해 순식간에 이른바 ‘소셜 부스팅(social boosting)’을 이끌어냈다. 소셜 부스팅은 소셜 미디어에서 광범위한 확산을 촉발시키는 초기 단계의 활성화를 일컫는 PR 신조어다.

    불황기 이끌 ‘창조 클래스’

    자율권이 보장된 조직에서 창의성이 살아난다는 점은 창조경제라는 새 정부의 국정과제와 맞물려서도 주목된다. ‘창조경제’는 현 정부가 처음 쓴 용어는 아니다. 이미 1990년 일본 노무라연구소에서 ‘창조사회’라는 보고서를 냈고, 1997년 영국 사회에서 제기된 창조경제 논의는 2001년 존 호킨스의 창조경제론으로 이어졌다.

    한국 사회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 신설로 창조경제 논의가 활발하다. 청와대와 각 부처마다 창조경제에 대한 설명이 달라 개념 정의에 혼선을 빚고 있지만, ‘미래 성장동력 창출’이라는 점에서 대체로 견해가 일치한다. 재계에서도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에 부응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부터 삼성전자를 필두로 시장 선도자로 거듭나기 위한 창조적 경영을 해왔다면서 “창조경제가 바로 삼성이 가려는 길”이라며 앞장을 섰다.

    창조경제와 관련해 2004년에 등장한 ‘창조 클래스’라는 키워드도 재조명받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계급의 부상(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이라는 책에서 창조경제에 대한 중요한 관점을 내놓았다. “미래에는 창조 클래스들이 지역과 국가 경제의 번영과 파산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창조 클래스에 속한 인재들은 엔지니어, 과학자, 공연기술자, 생명공학자, 교육학자, 건축가 등 다채로운 분야에서 발견될 것이며 소규모 기업 형태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미국에는 40만 명의 창조인재가 존재한다.”

    리처드 플로리다의 이 같은 전망을 한국 사회에 대입해본다면 앞으로 창조 클래스에 속하는 인재들은 어디서 발견될까. ‘레밀리터리블’ 제작에 참여한 공군은 모두 현역 공군 장병이다. 촬영감독은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생이고 출연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계명대 등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이 자율성과 책임감을 갖고 목표에 집중할 경우 예상을 뛰어넘는 ‘글로벌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헤리 덴트는 저서 ‘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에서 올해를 “경제의 혹독한 겨울”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경제전망이 어두운 이때 ‘레밀리터리블’은 시간과 예산을 절감한 공공 커뮤니케이션의 성공 모델을 찾는 조직의 리더와 실무자들이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할 성공사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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