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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중퇴 옷가게 점원 세계 패스트패션 황제로

아만시오 오르테가 인디텍스 회장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중학 중퇴 옷가게 점원 세계 패스트패션 황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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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유행의 주기는 날로 짧아지고 기후는 변덕스러워지는데 세계 금융위기 등으로 소비자의 지갑은 갈수록 얄팍해지고 있다. 이처럼 트렌드와 멋내기에 민감하지만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딱 맞는 옷이 자라(스페인)를 비롯해 유니클로(일본), H·M(스웨덴), 포에버21(미국) 등 세계 각국 패스트패션 브랜드다.

패스트패션을 의류업계 전문 용어로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라고 한다. 비교적 싼 가격, 다품종 소량 생산을 통한 해당 시즌의 최신 유행 반영, 번화가의 초대형 매장, 자체 대량 생산시설 보유, 상품 주기의 빠른 전환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SPA 브랜드의 핵심은 ‘기획-생산-유통’ 프로세스의 수직적 통합이다. 즉 옷을 디자인한 후 생산 작업에 들어가고 그 이후 유통에 나서는 게 아니라 옷의 기획, 생산, 유통을 사실상 동시에 진행하는 작업이다. 유행을 예측하는 게 아니라 현재 거리에서 가장 유행하는 상품을 보고 이와 비슷한 여러 제품을 초고속으로 대량 생산해 늦어도 2주 안에 전 세계 점포로 투하한다.

대다수 패션 브랜드가 매해 2000∼4000종의 신상품을 내놓는 반면 자라는 무려 1만1000종의 신상품을 선보인다. 제품 교체 주기도 2주 정도에 불과하다. 새로 나온 옷이 며칠간 잘 팔리지 않으면 아무리 생산비가 비싸도 매장에서 가차없이 빼고 추가 주문을 모두 취소한다. 그러고는 유행에 맞는 상품을 새롭게 만들어 신속히 제공하니 제품의 종류가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오르테가 회장이 “우리는 유행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남의 유행을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중학 중퇴 옷가게 점원 세계 패스트패션 황제로
저가 전략의 비밀



그렇다면 패스트패션 브랜드, 그중에서도 자라는 어떻게 저가 전략을 구사해 세계 최대 의류 브랜드가 됐을까.

첫째, 사실상 ‘노 마케팅(No marketing)’에 가까울 만큼의 마케팅 비용 축소다. 대규모 매장, 자체 생산이라는 SPA 브랜드 특징은 언뜻 저가 전략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생산에 6개월이 걸리는 일반 패션 브랜드는 6개월 전에 결정된 디자인으로 만든 제품을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해 유명 스타를 내세운 광고를 제작하는 등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붓는다.

자라는 다르다. 지금 이 순간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을 만들기 때문에 굳이 대대적인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다. 오르테가 회장은 ‘광고는 옷값을 부풀리는 쓸데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자라가 새 점포를 내거나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때 신경 쓰는 것은 오로지 점포의 입지 조건과 제품의 전시 형태뿐이다. 수십억 원을 주고 할리우드 스타를 고용해 광고를 찍거나 패션 전문지며 각종 언론매체에 비싼 옷 샘플을 보내주거나 카탈로그를 만들어 뿌리지도 않는다. 인디텍스의 총 비용 중 마케팅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0.4%에 불과하다.

둘째,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재고 부담을 최소화했다. 신이 아닌 이상 6개월 후의 유행을 매번 딱딱 맞출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유행의 경향을 잘못 판단한 브랜드는 그 계절이 지나면 엄청난 재고 부담을 져야 한다. 하지만 유행이 지난 옷은 상해서 먹을 수 없는 음식과 비슷해서 아무리 폭탄 세일을 해도 이를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자라는 연간 1만1000여 종의 옷을 선보이지만 2주일에 한 번씩 전 세계 매장 물건의 70%를 교체한다.

빠른 변화는 고객의 구매욕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마음에 드는 옷을 지금 이 순간 구매하지 않으면 다음 주에 매장을 찾아봐야 그 옷이 없다는 것을 고객이 잘 알기 때문이다. 매장의 옷이 자주 바뀌니 고객이 매장을 찾는 횟수도 훨씬 늘어난다. 인디텍스의 조사 결과 스페인 고객들이 번화가에 있는 자라 매장에 들르는 횟수는 1년 평균 17회였다. 경쟁사의 3회보다 6배 이상 많다.

셋째, 물류 혁신으로 인건비 부담을 대폭 줄였다.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제조 거점을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두는 많은 의류회사와 달리 자라는 스페인 내 생산을 고집해왔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스페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생산 기지를 지으면 물류, 배송, 재고관리 등에 더 많은 돈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는 이유다. 오르테가 회장은 자라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한 1990년대 중반 갈리시아에 축구장 90개 규모의 대형 물류기지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상품을 각국의 점포별로 구분해 그 다음 주 목요일과 일요일 아침에 각국 매장에 닿을 수 있도록 한다. 당연히 제품 배송은 비행기로 이뤄진다. 경비 절감을 위해 주로 배를 이용하는 다른 회사들과 대조적이다.

의류산업은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구입을 줄이는 품목이 옷, 구두, 액세서리 등이다. 그렇지만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역설적이게도 자라의 성장에 기폭제로 작용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호황일 때 구입했던 고가 의류 대신 가격 부담이 작은 패스트패션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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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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