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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라이벌

엑손모빌 vs 로열더치셸

에너지산업 양대 파워

  • 김창덕 |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drake007@donga.com

엑손모빌 vs 로열더치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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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손모빌 vs 로열더치셸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발표한 ‘2012년 미국 500대 기업’ 중 매출 1위는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이었다. 최근 발표된 ‘2013년 미국 500대 기업’에서 엑손모빌은 월마트에 밀려 2위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2012년 회계연도에 이 회사는 4207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리는 동안 무려 448억 달러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자사가 2008년 세운 기록인 452억 달러에 이어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임직원은 7만6900명. 1인당 평균 매출액과 순이익이 각각 547만 달러, 58만 달러가 넘는다.

이런 대단한 기업을 위협하는, 아니 어느 면에서는 이 회사를 뛰어넘은 존재가 있다. 영국 주식회사지만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 로열더치셸이다. 미국에 엑손모빌이라는 맹주가 있다면 유럽에는 로열더치셸이라는 슈퍼스타급 에너지 회사가 있다. ‘포춘’에 따르면 로열더치셸의 지난해 매출액은 4672억 달러로 엑손모빌보다 많았다.

록펠러의 ‘작품’

엑손모빌의 시작은 18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석유왕’ 존 D 록펠러가 그해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정유, 수송, 판매 관련 업체들을 통합하면서 몸집을 불려갔다. 1882년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40여 개의 정유·수송회사를 거느리며 초대형 에너지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거대 기업은 30년 후 산산조각이 났다. 1890년 의회를 통과한 미국 내 반(反)독점법이 발목을 잡았다. 미 연방 대법원은 1911년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하고 회사를 해체하라고 명령한다.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결국 34개 기업으로 갈라진다.

창업자 록펠러는 이 가운데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만 맡았다. 이 회사는 흔히 ‘저지 스탠더드’로 불렸다. 이 회사가 나중에 엑손이 된다. 저지 스탠더드는 1919년 남미 사업에 진출했고, 이듬해엔 최초의 상업적 정유제품인 이소프로필알코올을 생산했다. 1928년에는 중동 원유 수입권을 확보했고, 1948년엔 아라비안 아메리칸 오일 컴퍼니의 지분 40%를 인수하는 등 중동 원유시장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회사명을 ‘엑손(Exxon)’으로 바꾼 것은 1972년이다.

뉴욕에 거점을 둔 ‘뉴욕 스탠더드 오일’도 1911년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에서 떨어져 나온 34개 기업 중 하나였다. 이 회사는 훗날 모빌오일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뉴욕 스탠더드 오일은 ‘스코니’라는 이름을 쓰다 1931년 베큠 오일과 통합해 스코니-베큠이 됐다. 이 회사는 1950년대에 ‘스코니-모빌 오일’로 재탄생했다. 모빌은 이 회사 판매제품의 브랜드였다. 그런데 모빌의 인지도가 계속 높아지자 1966년 사명을 아예 ‘모빌 오일’로 바꾼다.

이렇듯 한 몸에서 분리된 두 개의 회사는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며 20세기 말까지 함께 성장했다. 그러던 1999년 11월, 세계 석유시장 1위를 지키던 엑손은 세계 4위 모빌오일을 전격 인수했다. 에너지 기업의 황제 엑손모빌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엑손이 치른 흡수합병 금액은 무려 835억 달러에 달했다. 그때까지 석유산업계에선 유례가 없는 최고의 인수비용이었다. 한층 막강해진 엑손모빌은 세계 최대 석유회사의 입지를 다졌다.

런던 골동품 가게서 태동

로열더치셸의 출발점이나 다름없는 쉘은 200년 전 영국 런던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시작해 성장한 기업이다. 창업자 마르쿠스 새뮤얼은 이 가게를 열어두고 극동 지역으로부터 조가비를 사와 패션 소품을 공급하는 일을 했다. 아들인 마르쿠스 주니어와 샘은 수입 및 수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고, 사업은 점차 번창했다. 1886년 내연기관이 발명되면서 운송 연료의 수요가 급증했다. 새뮤얼 형제는 증기선 몇 척을 빌려 아예 석유를 대량 수송하는 일을 맡았다. 이들이 처음으로 띄운 유조선 ‘뮤렉스(Murex)’의 첫 항해는 석유 운송에 혁신을 몰고 왔다. 이 유조선은 1892년 수에즈 운하를 횡단한 최초의 유조선으로 기록돼 있다. 형제는 1897년 회사 이름을 ‘쉘 운송·무역 회사’로 바꿨다.이 회사는 중동에서 활동하던 중 네덜란드 국적의 에너지 회사인 로열더치페트롤리엄과 만난다. 당시 전 세계 오일 시장을 장악하던 스탠더드 오일에 맞서기 위해 이들은 1907년 로열더치셸그룹으로 합병한다.

1920년대 후반 로열더치셸그룹은 전 세계 원유의 11%를 생산하고 유조선 수송량의 10%를 차지하며 세계 최대 석유 회사 자리를 꿰찼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로열더치셸그룹은 세계적인 경제부흥 바람을 타고 본격적으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로 사업을 적극 확장했고, 1947년에는 멕시코 만에서 처음으로 상업적 가치가 있는 해상 석유광구를 시추하는 데 성공한다. 세계대전 종전 10년 뒤인 1955년 로열더치셸그룹이 전 세계에서 시추하던 광구는 300개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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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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