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호

전문건설사 압박하는 ‘건설기계 대여금 지급보증제’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입력2013-05-23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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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련 법안 6월 19일부터 시행
    • 건설기계 대여 시장 8조 원, 체불금 3000억 원
    • “보증 수수료, 하도급사가 떠안을 수밖에”
    • “대여금 상습 체불 원청사, 하도급사 불이익 줘야”
    전문건설사 압박하는 ‘건설기계 대여금 지급보증제’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공사 현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외환위기를 벗어나면서 건설경기가 반짝 살아난 2000년대 초. 건설기계를 가진 이들은 잠시 ‘갑(甲)’ 노릇을 했다. 오라는 공사 현장은 많은데 건설기계는 한정돼 있었기 때문.

    그러나 건설 경기가 쇠락하기 시작한 2005년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장비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그럼에도 건설기계 등록대수는 꾸준히 늘어 2005년 32만 대에서 지난해엔 39만 대를 넘어섰다.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로 인해 장비 가동률은 50% 이하로 떨어졌다.

    최근에는 저가낙찰로 경영이 악화된 일부 건설업자들이 고의로 부도를 내거나 잠적하는 경우도 있어 건설기계를 대여하고도 대여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건설기계 대여자 중엔 건설기계를 1대만 보유한 경우가 많아 대여금 체불은 곧 생계위협으로 이어진다.

    “대여금 체불되면 패가망신”

    25t 덤프트럭을 운행하는 한 건설기계 노조원은 “흔히 원청사를 ‘갑’, 하도급업체를 ‘을’이라고 하는데, 건설기계 대여자는 ‘을’보다 못한 ‘병(丙)’쯤으로 보면 된다”며 “하도급업체가 공사계약 이행을 포기하고 부도를 내면 건설기계 대여금은 못 받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2억 원 가까이 하는 트럭 할부금으로 매월 300만 원이 들어가고, 기름값만 하루 25만~30만 원이 든다”며 “여기에 타이어 교체비용 등 유지비까지 합하면 최소 매월 1000만 원이 들기 때문에 대여금이 서너 달 체불되면 패가망신하게 된다”고 말했다.



    건설기계 대여금 체불 사례가 빈발하자 국회는 관련법 개정에 나섰다. 주승용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9월 4일 건설기계 대여금 지급보증을 뼈대로 한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건설기계대여금 지급보증제도(이하 대여금 지급보증)는 원도급자 또는 하도급자가 건설기계 대여자와 건설기계 대여계약을 체결하면 보증기관이 그 대금의 지급을 보증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법안은 발의된 지 석 달 보름 만인 지난해 12월 18일 속전속결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이 이처럼 빠르게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데는 주승용 의원이 국회교통위원장이라는 점이 한몫했다. 개정안 통과 이후 국토교통부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해 올 2월 18일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라 대여금 지급보증 시행일이 6월 19일로 다가왔지만 전문건설협회와 전문건설조합 등 관련업계는 입법예고된 대여금 지급보증이 현실과 동떨어진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과도한 보증 대상 △현실과 거리가 먼 보증금액 산정기준 △불합리한 보증 면제 대상 등이 그것이다. 입법예고 후 업계의 개정 요구가 빗발치자 국토교통부는 건설기계 대여자가 계약이행을 상호보증토록 하는 상호보증제를 수용해 5월 3일 재입법 예고했다. 그럼에도 업계는 “과도한 보증 책임 등 본질적인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며 추가 개선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원청사-하도급사 상호 보증을”

    대여금 지급보증과 관련해 전문건설업계는 ‘과도한 보증 책임’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는다. 한 전문건설 관계자는 “건설기계 대여금 체불 방지를 위한 지급 보증 대상에 공공공사는 물론 민간공사까지 포함시켜 전문건설사들이 막대한 보증 비용을 떠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대여금 지급보증법안은 건설기계 대여자와 계약을 체결한 원도급사 또는 하도급사가 보증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건설기계 대여 시장의 현실을 감안하면 지급보증 부담은 하도급사인 전문건설사에 집중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건설기계협회 관계자는 “타워크레인이나 기중기처럼 단가가 높고 장기간 대여하는 장비는 원청사와 계약을 맺기도 하지만, 불도저 굴삭기, 덤프트럭 같은 대부분의 건설장비는 하도급자와 계약을 맺고 공사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건설기계 대여 보증 시장의 규모를 8조 원, 이 가운데 체불금액은 3000억 원 규모로 추산한다. 건설기계 대여금의 약 4%가 체불돼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건설공사에 대여금 지급을 보증하려면 수수료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이 추정한 대여금 지급보증 평균 수수료율은 4.33%에 달한다. 전문건설 관계자들은 “건설경기가 위축돼 저가입찰이 보편화한 마당에 건설기계 대여금 지급보증 수수료 부담까지 전문건설사가 떠안게 되면 손해가 불가피하다”고 호소한다.

    공공공사의 경우 수수료율을 신용도 AAA를 기준으로 책정하는데, 전문건설업체는 평균 신용도가 BB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신용도 차이에 따른 수수료 차액을 전문건설업체가 떠안아야 한다는 것. 민간공사에서도 보증서 발급 비용이 하도급 계약에 포함되지 않으면 보증 수수료 전액을 전문건설업체가 부담하게 될 공산이 크다. 한 전문건설사 대표는 “영세 건설기계 대여업체를 보호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불공정한 하도급 대금 지급 관행 개선 없이 이 제도를 도입하면 전문건설사들이 공사대금을 못 받은 상황에서도 대여금 지급을 보증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건설업계가 대여금 지급보증에 난색을 표하는 것은 하도급 대금지급 보증률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직적 체계로 이뤄진 건설산업의 특성상 발주자에서부터 원수급자, 하도급자, 2차 협력사인 건설기계 대여자에게까지 원활하게 건설공사 대금이 전달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문제는 건설기계 대여자와 주로 계약을 체결하는 하도급사가 공사에 참여하고도 대금을 제때 못 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전문건설업 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민간공사의 하도급 대금 지급보증서 교부율은 평균 49.1%에 불과했다.

    더욱이 민간공사의 경우 건설공사 원가에 건설기계 대여금 지급보증 수수료를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 G건설의 P대표는 “공사 대금이 제때 지급되는 공공공사는 몰라도 대금 지급 여부가 불투명한 민간공사까지 건설기계 대여금을 무조건 보증하라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서울의 Y건설 대표도 “원청사에서 공사 대금을 못 받는 바람에 대여금을 못 주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며 “공사 대금의 흐름을 이해하면 모든 공사에 대여금 지급보증을 하라는 게 얼마나 불합리한 얘기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혀를 찼다. 그는 “대여금 지급보증을 강제하기 전에 원청사와 하도급업체의 상호 보증을 의무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하도급업체는 계약이행 보증을 하고, 원청사는 대금 지급 보증을 하면 2차 협력사인 건설기계 대여자에 대한 대여금 지급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공사부터 적용해야”

    현행법에는 하도급 2차 협력사를 보호하기 위해 포괄대금 지급보증과 임금 지급보증 제도 등이 마련돼 있다. 임금지급 보증은 원수급자와 하도급업자가 보증 의무자로 돼 있고, 보증 대상은 공공공사에 한정돼 있다. 포괄대금 보증은 원수급자가 보증 의무자이며 보증 대상은 공공공사 중 최저가 공사 낙찰률 하위 10%로 규정돼 있다. 전문건설 관계자는 “건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마련된 포괄대금 및 임금 지급보증 제도는 건설업계의 현실을 감안해 제한적으로 운용하고 있는데, 건설기계 대여금 지급보증 제도만 모든 공사에 적용하는 것은 형평이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에는 “기존 제도들에 비해 건설기계 대여금 보증 정도가 지나쳐 건설업계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제도 시행 이후 부작용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임금 및 포괄대금 지급보증과 마찬가지로 건설기계 대여금 지급보증도 공공공사에 먼저 적용한 뒤 단계적으로 민간공사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한 전문건설사 대표는 “공공공사는 민간공사보다 공사대금 수령이 안정적이고 보증수수료의 원가반영이 쉬워 제도가 빨리 정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증기간 2개월 단축 필요”

    건설기계 대여자 측도 대여금 지급보증제 도입을 환영하곤 있으나 속으로는 ‘법 따로 현실 따로’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오희택 건설기계노동조합 대외협력실장은 “지급보증제 도입으로 일 시키고 돈 안 주는 횡포를 막는 법이 생긴 것은 다행이지만, 하도급사들이 높은 보증수수료 부담 때문에 보증을 기피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지급보증이 체불을 근본적으로 막는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하도급 대금 지급 확인제도(일명 알리미 서비스)가 있어도 체불은 발생하고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상습적으로 체불하는 원청사나 하도급사에 PQ(입찰자격심사제도) 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체불을 막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대여금 지급보증 기간에 대해서도 업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국토교통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따르면 대여 계약기간이 4개월 이하면 대금 전액, 4개월을 초과하면 4개월에 해당하는 대금을 보증금액으로 규정했다. 4개월은 하도급 대금 지급보증과 같은 기간이다.

    그러나 건설기계 임대차 계약은 일반 하도급 계약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기한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건설정책연구원 관계자는 “하도급 대금 지급보증 기한을 4개월로 규정한 것은 제도를 도입한 1996년 당시의 건설업계 관행을 감안한 측면이 크다. 그때는 기성금(업체 신용도와 공사 진척도를 고려해 일부 미리 지급하는 발주액) 지급주기 1개월에 3개월 어음으로 수령하는 일이 많아 이를 모두 수렴하기 위해 4개월로 정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 건설기계임대차 표준계약서는 ‘건설업자는 건설기계 대여금을 60일 이내에 지급’하고, ‘건설기계 대여금은 현금 지급을 원칙’으로 규정했다. 즉 건설기계 대여금은 최단 1일부터 최장 2개월 이내에 현금으로 수령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돼 있다. 이 때문에 전문건설업계는 공정위 표준계약서를 근거로 “건설기계 대여금 지급보증 금액을 일률적으로 4개월로 하기보다는 현실에 맞게 2개월로 단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4개월도 짧다’는 반론도 있다. 건설기계협회 관계자는 “신도시 개발과 같은 대규모 공사에서는 4개월 이상 장기간 장비 임대차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4개월만으로는 장기계약에 따른 대금 지급을 보증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보증기간을 4개월 이하로 줄이려면 장기계약에 따른 보증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4개월의 보증기간을 표준계약서대로 2개월로 단축하는 것뿐 아니라 보증기간 하한선도 신설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짧게는 하루 이틀 대여하거나 길어도 열흘 이내 계약까지 모두 보증하라는 것은 서류 발급 등 행정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대여금 지급보증제를 보름 미만의 초단기 계약에까지 적용하려면 보증서를 발급받아야 할 건설업체는 물론 보증 업무를 취급하는 기관의 행정 부담도 크다”며 “제도를 원활하게 운용하려면 15일 이하의 건설기계 임대차계약에 대해서는 보증을 면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보증 면제 규정 비현실적”

    2011년 기준 전문건설공제조합의 계약보증은 21만3471건. 하지만 입법예고된 대로 대여금 보증제도가 전면 시행되면 총 보증건수는 40만 건 이상으로 폭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업계는 건설기계 가동률이 평균 47.4%로 한 달 평균 15일가량 가동되는 점을 들어 15일 이하 임대차계약은 보증을 면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대여금 지급보증 면제 규정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입법예고안 시행규칙은 발주자가 건설기계 대여업자에게 대금을 직접 지급하기로 합의하거나 국내 2개 이상의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회사채평가 A 이상의 등급을 받은 경우, 그리고 1건의 건설기계 대여 계약금액 200만 원 이하를 보증서 발급 면제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건설 관계자는 “회사채 A등급 이상의 종합건설업체는 30여 개사에 불과하다”며 “더욱이 전문건설업체는 여기에 해당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보증면제 조항은 있으나마나”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200만 원 이하인 보증 면제금액 기준도 상향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소규모 금액은 당사자 사이에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보증과 같은 번거로운 행정절차를 거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전문건설조합 측은 “건설기계협회의 체불 자료에 따르면 500만 원 이하 금액 체불률은 4.9%에 불과하다”며 “500만 원 이하로 우선 시행한 뒤 단계적으로 면제금액을 인하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건설기계노조 측은 정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보증면제 금액을 높이면 그 금액 이하의 대금은 체불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 대금 후려치기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 노조 관계자는 “대여금 체불을 막으려면 보증금액 하한선을 없애야 한다”며 “보증면제 금액을 정해놓으면 그 금액만큼 제하고 대금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대여금 보증제 시행일(6월 19일)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관련업계는 이처럼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제각각의 개선안을 요구하고 있다. 영세 건설기계업자 보호라는 제도 도입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업계의 현실을 최대한 반영한 절충안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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