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호

“점쟁이 못 믿겠다 해놓고 만나면 설레니 그게 내 운명”

‘운명, 논리로 풀다’ 펴낸 이영돈 채널A PD

  • 구미화 │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입력2013-05-23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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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널A 인기 프로그램 ‘이영돈 PD의 운명, 논리로 풀다’가 책으로 나왔다. 사주, 궁합, 관상, 굿을 대하는 일반인과 역술인의 태도를 논리적으로 분석했다.
    • 많은 역술가를 인터뷰하고, 관찰 카메라와 뇌파 분석 등 과학적 실험도 병행했다. 이영돈 PD는 “직업적으로는 역술인들의 논리 모순을 찾아내려 애쓰지만,
    • 개인적으로 자기 운명을 걸고 역술인을 만날 땐 한없이 말려든다”고 털어놨다.
    “점쟁이 못 믿겠다 해놓고 만나면 설레니 그게 내 운명”
    채널A 이영돈(57) PD(제작담당 상무)는 사주가 평범하지 않을 것 같다. PD로는 드물게 연예인 못지않은 인지도를 자랑하고, 직장도 여러 번 옮겼다. KBS에 입사했으나 그만두고 호주로 떠났다가 귀국해 SBS에 둥지를 트는가 싶더니 다시 KBS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은 종합편성채널(종편) 채널A에서 제작담당 상무로 프로그램 제작을 책임지고 있다. 남이 무심코 받아들이는 것들에 의문을 갖고 파헤치는 프로그램들을 주로 만들어온 터라 많은 시청자의 지지를 받았지만 송사(訟事)에도 적잖이 시달렸다. 직급은 임원인데, 궁금하고 확인하고 싶은 게 많아 여전히 현장을 누비는 ‘못 말리는 PD’다.

    “바쁘게 살 팔자래요. 그건 맞아요.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직책에 상관없이 일을 만들어서 하니까.”

    그는 인터뷰 이틀 전엔 전생(前生)을 알아보러 다녀왔고, 인터뷰 다음 날엔 프로포폴 투약을 체험해 볼 예정이며, 며칠째 간헐적 단식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모두 과학적으로 그 실체나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이 이용하고 의존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들이다. 이 PD는 이런 소재들을 파고들어 5월 20일부터 방송하는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 시즌2’에 담아낸다.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는 채널A 개국과 함께 전파를 타 화제를 모은 ‘이영돈 PD의 운명, 논리로 풀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운명이나 전생이 논리로 풀어서 풀릴 문제인가 싶지만, 그는 “그래서 더 논리로 풀어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논리로 잘 풀리지 않는 문제이기에 논리로 접근하면 결론이 나지 않더라도 그 과정이 재미있다”고 한다.

    ‘이영돈 PD의 운명, 논리로 풀다’는 5월 초 같은 제목으로 책까지 나왔다. 사람들이 역술인이나 무속인의 말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하고, 긍정적인 예언보다 부정적인 예언이 듣는 사람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뇌과학에 근거해 설명한다. 사주가 정말 운명을 결정짓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주가 같은 사람들의 삶을 비교하고, 역술인들이 비명횡사한 이의 사주에서 그런 비운을 읽어낼 수 있는지 살펴본 내용도 흥미롭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부부의 궁합은 어땠을지, 개명이나 성형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 작두 타기는 정말 접신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인지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생에 세르반테스였다?

    “점쟁이 못 믿겠다 해놓고 만나면 설레니 그게 내 운명”


    ▼ 운명이나 전생, 이런 소재는 종편이라 가능한 건가요.

    “지상파도 할 수는 있죠. 그러나 좀 더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건 (종편의) 분명한 특징이에요. 채널A 인지도가 개국 당시보다는 확실히 높아졌지만 인지도 높이기를 더 가속화할 필요가 있기에 이런 소재들을 다루는 거죠. 결론이 나지 않아도 과정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으니까.”

    ▼ 그래서 전생에 뭐였답니까.

    “뇌파 측정을 하면서 최면을 걸고 전생을 알아보는데, 뭐가 보이냐고 묻기에 뭐가 보이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데, 일단 물어보는 대로 대답을 했더니 내가 전생에 일리야 세르반테스였대요. 실제로 그날 스페인어도 좀 했어요. 전쟁 장면도 나왔고. 그런데 뇌파 측정 결과를 보니까 내가 최면에 빠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면 1시간 넘게 내가 본 것은 뭔지. 그래서 다시 하기로 했는데, 의문이 남죠.”

    ▼ 세르반테스는 마음에 드나요.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우연히 떠오른 생각이 세르반테스였을 뿐이에요. 과거에 내가 본 책이나 뭐 그런 것들 중 하나겠죠. 그걸 가지고 내가 전생에 세르반테스였다고 한다면 과학적으로 납득이 안 되죠. 짧은 시간에 전생이 있다 없다 결론 내릴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전생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뭔가 얽힌 것을 풀어서 지금의 트라우마를 없앨 수 있다면,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치료할 수 있다면 좋은 거죠.”

    ▼ 운명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자기 운명을 미리 알아봄으로써 그게 삶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면 좋은데.

    “지금은 내가 일이 잘 안 풀리지만 내 전체 운은 좋다니까 걱정하지 말자 이렇게 되면 좋죠. 하지만 취재를 해보니까 좋은 사주팔자를 타고 난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아요. 사주가 좋다는 게 상대적인 의미이기도 하고요. 더군다나 사람 욕심은 끝이 없어서 고관대작이나 재벌총수라도 자기 사주팔자가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을 걸요. 전직 대통령은 어떤가요. 사람이 태어나 대통령이 된다는 건 그만큼 좋은 사주도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꼭 좋은 사주만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렇다고 시골에서 태어나 아들딸 낳고 아프지 않고 큰 걱정 없이 산 촌부의 사주가 좋은 거냐 하면, 역술인들은 그리 좋은 사주는 아니라고 얘기해요.”

    ▼ 기본적으로 운명, 팔자 이런 게 있다고 보는 겁니까.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운명이라는 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어떻게 찾고, 어떻게 보느냐는 또 다른 문제지만요. 과거엔 집 떠나면 고생이니 역마살을 나쁘게만 봤고, 도화살도 기생 사주라며 흉으로 여겼지만, 지금으로 치면 가수 싸이는 역마살과 도화살 덕분에 잘 나가는 것 아니겠어요? 제가 파악하기로는 사주팔자 개념 자체는 ‘그릇’을 말하는 것 같아요. 돈이나 명예를 어느 정도 그릇 크기로 타고났느냐 하는 거죠. 그리고 하는 일이 적성에 맞느냐 하는 것과 전체적인 운의 흐름, 이 세 가지는 제대로 보는 사람이면 대체로 맞힐 수 있어요.”

    연초는 물론 수시로 점을 보러 다닌다는 그는 경험에 비춰볼 때 이 세 가지 큰 틀에서가 벗어난 구체적인 결정을 역술인 판단에 기대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이를테면, 아이의 완벽한 사주를 위해 언제 제왕절개를 할 것이냐, 어떤 주식에 투자할 것이냐, 부동산을 팔 것이냐 말 것이냐, 누구랑 결혼을 하느냐마느냐 같은 문제는 역술인 말이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설사 못 맞혔다 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는 “역술인은 한 개인에게 아주 중요한 얘기를 자기 마음대로 떠들고 책임은 지지 않으니 아주 끝내주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바넘 효과 알면서도 빠져들어

    이 PD는 인터뷰가 있기 전에도 역술인을 만났다고 했다.

    “제 아내가 고집이 세다고 그러더라고요. 평소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내가 고집을 부렸던 때가 떠오르는 거예요. 10번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도요. 그러더니 ‘큰 아이가 해외를 왔다갔다 하는 군요’ 하더라고요. 제가 호주에 조금 살다가 뉴욕 특파원도 했고, 아들이 지금은 두바이에 있으니까 족집게구나 싶은 생각이 들죠. 그런데 따져보면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해외 나가는 일이 특별한 게 아니잖아요. 설사 해외에 거의 나갈 일이 없는 사람이라도 역술인이 그런 말을 하면 해외에 다녀온 일이 떠올라요. 그러니 역술인 얘기는 100% 맞는 걸로 생각되죠. 바넘 효과(누구나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특징을 자신만의 것으로 여기는 심리적 경향)에요.”

    ▼ 다 알면서도 빠져드나요.

    “그럼요. 역술인 만날 때 시간이 가장 잘 가요.”

    ▼ 그렇게 학습이 됐는데도?

    “다 소용 없어요. 내 얘기니까요. 그 앞에 앉으면 뭔가 안 맞다 생각하면서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이렇게 묻고 저렇게 묻게 돼요. 역술인이나 무당이 ‘내년엔 운이 좋지 않으니 주식엔 손대지 않는 게 좋겠다’라고 하면, 주식 할 생각이 전혀 없다가도 ‘왜 하면 안 되죠?’ ‘집사람 명의로는 괜찮을까요?’ 하고 묻는다니까요. 그 얘기를 듣고 나면 주식의 ‘주’자만 들어도 부담이 돼요. 그런데 어디서 좋은 정보를 듣고 1000만 원 투자했다가 돈을 좀 벌었다면 점쟁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1억 원 아니라 1000만 원만 투자했으니까 다행인 거지’라고 생각한다니까요. 주식투자 하지 말라고 했던 이들조차도 ‘1000만 원 갖고 투자라고 할 수 있나요?’ 하면서 얼마든지 빠져나갈 테고요.”

    ▼ 다 알면서 왜 자꾸 보나요.

    “저도 궁금해요.”

    ▼ 말려드는 걸 알면서도요?

    “내 일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앞날을 얘기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궁금하죠.”

    ▼ 회사 옮길 때도 찾아갔나요.

    “갔죠(웃음). SBS에서 다시 KBS로 건너갈 때는 ‘예스’냐 ‘노’냐는 사주팔자로 풀지 않는다면서 주역 점을 치더라고요. 제가 뽑은 걸 갖고 풀이를 하는데, 있어도 괜찮고 옮겨도 괜찮다기에 옮겼죠. 이번에 채널A로 옮길 때도 ‘있어도 괜찮은데 왜 옮기려고 하느냐’고 되묻더라고요. 점쟁이를 찾아갈 때는 이미 옮기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는 얘기거든요. 옮겨도 괜찮다고 하니까 그럼 새로운 걸 해보자 하고 옮긴 거죠.”

    역술인이 이직을 반대했으면 어땠을까. 그는 “만약 옮기지 말라고, 큰 일이 생긴다고 했으면, 말려드는 걸 알면서도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책에서도 밝혔듯 “불길한 예언은 그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듣는 순간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생존반응을 하기 때문에, 생존에 위협이 되는 정보는 절대 잊지 않아요. 뇌에 계속 남아서 안 들은 것만 못하죠. 누구에게나 운의 흐름상 좋은 때가 있고 안 좋은 때가 있는 건데, 돈 벌이 수단으로 안 좋은 이야기를 부각시키면 듣는 사람에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와요. ‘당신은 여자의 운을 타고 났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게 실은 굉장히 넓은 의미를 담고 있음에도 듣는 순간부터 여자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밑져야 본전? 무조건 손해!”

    흔히 운명을 보러 갈 때, 좋은 얘기를 해주면 좋고 설사 나쁜 얘기를 하더라도 미리 알고 조심할 수 있으니 밑져야 본전이라고 합리화한다. 그러나 이 PD는 운명을 보러 가서 부정적인 말을 듣는 건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무조건 손해”라며 “많은 역술인이나 무속인이 좋은 얘기보다 나쁜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사람들의 그런 불안한 심리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 PD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책을 쓴 목적에는 그런 나쁜 상술을 고발하고 일반인에게 주의를 주려는 의도도 있다.

    “예전에 이름 때문에 괴로워하는 여자분을 만났어요. 어디 가서 물었더니 이름 때문에 결혼하면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분 사주를 갖고 몇 군데 더 찾아가서 물어보니까 대체로 전체적인 운이 그리 좋지는 않은 걸로 나왔어요. 그렇다고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을 거라는 얘기를 들은 건 아니에요.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 여자분 이름이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을 담고 있다면, 그 남편감 역시 교통사고로 죽을 팔자를 타고 나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결혼할 남자의 사주엔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여러 사람 얘기를 종합해 봤을 때, 이 여자분의 ‘운 그룻’이 그리 크지는 않으나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는다는 얘기는 이름을 바꾸게 하려는 수작에 불과한 거죠.”

    어디 이름뿐인가. 전생의 업보 때문에 귀신이 붙었다고 하고, 배우자와 자식, 부모의 안위를 들먹이며 굿을 해야 한다고 하면 돈이 얼마가 들어도 외면하기 어렵다.

    “얼마 전에 만난 사람 말이 제가 전생에 권세와 부를 누렸는데, 악업도 많이 쌓았대요. 제가 잘 되려고 친구들에게 잘못을 저질러 친구 네 명의 귀신이 제게 씌웠으니 그걸 풀려면 사과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눈을 감고 사과를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저더러 사과를 제대로 안 했다는 거예요. 고개를 들어 보니까 눈을 부릅뜨고 ‘그런 식으로 사과해서 귀신이 떨어지겠어?’ 하며 호통을 치는 거예요. 그게 사람 잡는 거죠.”

    이 PD는 그래서 다시 마음 속으로 사과를 했다. 처음 사과할 때보다 더 길게. 그런데 이번엔 “너는 안 된다”는 고함이 들려왔다. 점쟁이는 그가 사과를 제대로 안 해서 귀신들이 안 떨어지고 계속 괴롭히겠다고 한다며 그를 못마땅해 했다.

    “점쟁이 못 믿겠다 해놓고 만나면 설레니 그게 내 운명”
    “그런 식으로 찾아오는 사람에게 겁을 주고 자기가 대신 기도를 해주는 대가로 돈을 챙기는 게 이 사람 수법인 거죠. 저한테 그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에겐 아주 잡아먹을 듯하지 않겠어요? 그런 상황에서 열이면 열 100만 원 내고 기도해 달라고 하죠. 안 하고는 못 배겨요. 무당도 조심해야 해요. 잘못 걸려들면 굿을 안 하고는 절대 마음이 편해질 수 없거든요. 처음엔 100만 원짜리로 시작하지만, 배우자에 자식, 부모까지 얘기를 더하다 보면 그 사람 경제 사정이 파악되면서 500만 원, 1000만 원, 1억 원짜리로 금세 올라가거든요. 사람 다루는 데는 도사에요.”

    이 PD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마음이 유약한 사람들이 돈벌이에 급급한 역술인이나 무속인에게 빠져들어 정신적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고 방송도 하고 책도 썼다. 하지만 그 역시 “역술인을 만나러 갈 때 마음이 설렌다”고 말하는 역술인 애용자다.

    “이렇게 비판하면서 마음이 설렌다니 이율배반적이죠. 논리적으로는 운명에 안 좋은 게 들어 있으면 그 자체가 운명이지, 부적 쓰고 굿 하고 조심한다고 바꿀 수 있다면 운명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해요. 하지만 역술인 앞에 앉으면 무슨 얘기를 해줄지 궁금하고, 안 좋은 얘기를 들으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슨 방법이 없을지 물어요. 그러다보면 1∼2시간은 금세 가버려요. 내 운명을 걸고 하는 흥미진진한 게임이죠.”

    완벽한 궁합이라 했지만…

    ▼ 결혼하실 때 궁합 봤나요.

    “원숭이띠랑 쥐띠가 만나 삼합이 들었으니 완벽한 커플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뭐 산전, 수전, 공중전에 핵전쟁까지 다 겪었죠. 30년을 살았는데 안 그렇겠어요?”

    ▼ 자제분은….

    “큰애가 지난해 결혼했는데, 궁합을 봤죠. 괜찮은 편인데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갈등을 겪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점쟁이가 아니어도 예상할 수 있는 얘기잖아요. 큰애는 부모가 둘 다 일을 해서 제대로 보살핌을 못 받았기 때문에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자기만 챙겨줄 수 있는 사람하고 결혼을 했어요. 틀림없이 어느 시점에는 남자든 여자든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집안일에 소홀해지면서 갈등이 생기지 않겠어요? 넓게 보면 다 맞는 얘기에요.”

    ▼ 가족들에게 얘기했나요.

    “아들이 궁합 봤냐고 묻기에, 찰떡궁합이라 잘 산다더라고 얘기해 줬어요. 젊은 애들이라 신경 안 쓸 것 같지만, 그래도 얘기 하는 순간 신경을 쓰게 되거든요. 역술인, 의사, 성직자 말은 한번 들으면 거부하기가 어려워요.”

    ▼ 현 시점에서 이 PD의 전체적인 운의 흐름은 어떻다고 하나요.

    “좋대요. 상반기보다는 중반기 이후가 더 좋고. 올해보다는 내년에 더 좋고. 그래서 ‘논리로 풀다’도 5월에 시작했는데, 책도 잘 나가겠죠?(웃음)”

    ▼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알고 싶어 하고, 또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하는 건 행복해지고 싶어서일 텐데, 이영돈 PD에게도 나름의 행복론 같은 게 있나요.

    “현실에 만족하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사는 게 정답이죠. 현재(present)는 신이 준 선물이잖아요.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알아 잘 되면 행복하겠지만, 앞날이 좋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그러니 운명을 알려고 하는 건 나중에 해도 될 걱정을 미리 끌어다 하는 거예요.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불행의 시작이죠.”

    이 PD는 과거에 김영삼 전 대통령과 사주가 똑같은 남성을 만난 적 있는데, 그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 분은 어려서부터 어머니하고 사주를 보러 다니면 점쟁이들이 벌떡 일어나 절하고 문밖까지 배웅 나와 인사했대요. 크게 될 사주라고. 그런데 평생 궂은 일 하며 힘들게 살았고 지금은 자식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겨우 월세 내고 살아요. 그 삶이 어땠겠어요. 어려서는 사주가 좋다니까 희망에 부풀었겠죠. 그런데 나이 먹을수록 큰 인물 되는 것하고 멀어지니 실망이 크지 않았겠어요. 그 사람은 사주를 안 믿어요. 사기라고 그러죠.”

    그의 책에 정진석 추기경의 말씀을 인용한 대목이 있다. “인간의 탐욕은 냉장고가 생기고 나서 시작되었다.” 그 전에는 음식을 필요한 만큼만 사거나 만들어 변하기 전에 나눠 먹었는데, 냉장고가 생긴 뒤로는 나중에 먹을 것까지 미리 사다가 쌓아둔다는 것. 음식물 썩는 것을 막으려고 냉장고를 만들어놨더니 오히려 냉장고 때문에 더 많은 음식물이 버려져 나가는 상황을 꼬집은 얘기다. 불교에서도 모든 고통의 원인을 인간의 욕심에서 찾는다. 이 PD는 “어느 정도의 욕심은 발전을 이끌어내지만 제 그릇 크기가 감당 못할 과욕을 부리면 불행해지는데, 그걸 알면서도 운명을 미리 알고 싶고 바꿔보고 싶은 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역술인 앞에서 현명해지기

    “살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누구에게 물어보기가 마땅치 않잖아요. 그럴 때 나를 잘 아는 친구 같은 역술인이 있다면 좋죠. 물론 그 사람 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선에서요. 그런데 역술인 앞에서 그 선을 지키고 현명해지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 점치는 분들이 보통은 좋은 얘기를 하다가도 결론을 안 좋게 내리는데, 제발 나쁜 얘기를 하다가도 헤어지기 전에는 상담자로서 따뜻하고 긍정적인 얘기로 격려를 해주면 좋겠어요. 이영돈 PD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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