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호

“순간을 뜨겁게 살고 싶다 재즈처럼!”

아리랑으로 세계 홀린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입력2013-05-23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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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대 교수 아버지, 뮤지컬 배우 어머니 슬하의 ‘꿈 없던’ 소녀
    • 전석 매진에 기립박수 15분…파리 샤틀레극장 매년 공연
    • 열려 있는 아리랑은 재즈 뮤지션에게 ‘놀이터’
    • 年 200여 회 공연…“재즈는 순간의 음악…지루할 새 없어요”
    “순간을 뜨겁게 살고 싶다 재즈처럼!”
    박수 받는 인생이란 흔치 않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위해 치는 기립박수를 15분이나 받는다면, 그건 어떤 기분일까. 지난 3월 프랑스 파리의 샤틀레극장(Theatre du Chatelet)에서 초청 콘서트 무대에 선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44). 프랑스 언론들은 이 무대를 극찬하며 ‘2500석을 꽉 채운 관객들이 15분이나 기립박수를 쳤고, 앙코르를 4곡이나 하고야 끝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발표한 8집 앨범 ‘렌토(Lento)’를 들고 국내 공연을 위해 모처럼 한국에 머물고 있는 나윤선을 만났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와 달리 그는 자주 수줍어했고, 말을 재미나게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질문마다 꾸밈없는 생각을 조곤조곤 풀어놓았다.

    ▼ 차이코프스키, 스트라빈스키, 말러 같은 이들이 섰던 150년 된 무대에서 기립박수를 그처럼 오래 받는 기분은 어땠나요.

    “사실 기억이 안 나요. 앙코르를 몇 번 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기립박수가 길었던 건 나중에 잡지 기사를 보고 알았어요. 샤틀레는 클래식 공연을 많이 하는 곳이라 재즈 뮤지션에겐 설 기회가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무척 떨렸어요. 앙코르 하는 동안 관객들이 계속 서서 박수 쳤던 것 같기도 하고요.”

    유럽 최정상 재즈 가수



    이날 공연엔 동성결혼 찬성으로 요즘 프랑스에서 이슈의 중심에 선 크리스티앙 토비라 법무부 장관이 찾아와 눈물을 흘렸고, 유명 영화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공연”이라며 “나윤선의 음악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해 화제가 됐다. 나윤선은 “총리 부인과 함께 무대 뒤로 찾아온 토비라 장관이 막 울어서 나도 같이 울었다”며 웃었다.

    ▼ 샤틀레극장은 파리 유학 시절부터 꿈의 무대였겠죠?

    “어휴, 꿈도 못 꿨던 곳이에요. 역사적으로도 파리지앵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곳이거든요. 거기 선다는 거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죠.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근데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전석 매진이었거든요. 극장에서 좋아하더라고요. 앞으로 매년 샤틀레에서 공연하기로 했어요.”

    나윤선은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유명한 재즈 뮤지션이다. 7집 ‘세임 걸(Same Girl)’은 10만 장 이상 팔렸고, 1~6집도 10만 장 가까이 나갔다. 프랑스 독일 스위스 벨기에 노르웨이 재즈 차트 1위를 석권했고, 얼마 전엔 프랑스 아마존닷컴 재즈 음반 순위 1~3위를 모두 자신의 앨범으로 채웠다. 2011년에는 13개국에서 180여 회 공연을, 2012년에는 25개국에서 200여 회 공연을 했다. 8집 앨범을 발표한 지난 3월에만 22번의 공연을 열었다. 최근 프랑스 최대 재즈 매거진 ‘재즈맨(Jazzman)’은 “슈퍼스타 나윤선이 ‘렌토’로 곧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며 극찬했다. 기자가 “1집 앨범 때부터 팬이다”라고 하자 ‘슈퍼스타’는 두 눈이 동그래져서는 “절 아세요? 어떻게 아세요?” 하고 반문한다.

    ▼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대받는 가수잖아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전화가 왔다는 얘기를 듣고 ‘왜? 나를 왜?’ 했어요. 사람들이 절 잘 모를 텐데…. 예정된 곡이 ‘아리랑판타지’여서 부른 것 같아요.”

    지난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그는 국회의사당 무대에서 안숙선, 인순이, 최정원과 함께 재일교포 음악가 양방언의 ‘아리랑판타지’를 불렀다. ‘렌토’ 발표를 앞두고 바쁜 때라 취임식 전날 귀국해 그 다음 날 출국했다고 한다. 이 무대 직후 인터넷에는 ‘미모의 가수 나윤선은 누구?’라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제가 대중매체에 나오지 않으니까 길거리에서 절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알아봐주시는 분들을 만나면 신기해요. ‘정말 절 아시나요?’ 하고 여쭤보고 싶고요.”

    현재 주목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유자 -르몽드, 2011

    진정한 목소리의 기적이 빚어낸 위대한 예술 -보그, 2010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공연을 봤다. 마술 같은 한 요정이 나를 홀렸고, 눈물나게 감동시켰다. 나윤선이었다. -나탈리 드세, 프랑스 최고의 소프라노 성악가

    나윤선의 노래를 직접 들려줄 수 없는 노릇이라 주요 평론을 옮겨 적었다. 그는 깨끗한 음색과 한계가 없는 가창력을 가졌다. 그의 아버지는 한양대 음대 교수를 지낸 나영수 전 국립합창단장이고, 어머니는 1세대 뮤지컬 배우 김미정 씨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천부적인 재능과 이를 뒷받침할 환경을 갖췄으나, 정작 노래를 시작한 건 26세 때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 후부터다.

    “부모 앞에서 노래한 적 없어”

    ▼ 왜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지 않았나요.

    “저는 부모님이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는 걸 봐와서 음악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알았어요. 부모님도 저한테 음악을 하란 얘길 한 번도 하신 적이 없고요. 집에서 늘 음악을 듣고, 부모님의 공연에도 자주 가면서 음악 속에서 살았지만, 음악을 하겠단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 그래도 부모는 딸의 재능을 알아챘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노래해본 적이 없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프랑스대사관에서 연 샹송대회에 나가 1등을 했어요. 그때 부모님이 제가 노래하는 걸 처음 봤죠. 그래도 음악 하란 소리를 안 하셨어요.”

    그는 별다른 장래희망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건국대 불문학과에 진학했고, 교사가 될까 싶었다고 했다. 졸업 후 의류회사에 취직해 홍보 업무를 맡았지만, 이 길이 아니다 싶어 곧 그만뒀다. 그리고 1994년 김민기 연출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발탁된다. 갓 서울에 온 연변 처녀가 그가 맡은 역할. 그는 “김민기 선생님이 왜 날 뽑아서 여주인공을 시켰는지 어리둥절했다”고 했다.

    “그때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어설프니까, 윤석화 씨가 절 가리키며 ‘연변에서 데려왔느냐?’고 했어요. 노래는 좀 하지만 시선 처리도 안 되고, 연기는 더더욱 안 되고…. 설경구, 방은진, 이두희 씨 등 다른 배우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저들이 얼마나 인생을 불사르면서 여기까지 왔는지가 보이니까 저는 감히 못하겠더라고요.”

    두 달 만에 ‘지하철 1호선’에서 스스로 하차했다. 그리고 두 편의 무대에 섰다. 정명훈 지휘 음악극에서 어미고래 역을 맡아 큰 인형을 뒤집어쓰고 노래만 불렀고, 어머니와 함께 김민기 연출의 뮤지컬 ‘번데기’에 출연해 역시 노래만 부르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노래 아닐까’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고 한다.

    ▼ 그리고 곧 프랑스 유학을 떠났지요.

    “그냥 공부를 해서 노래를 잘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음악 하는 친구한테 물어보니 클래식을 하기엔 늦었으니 재즈를 하래요. 파리에 가면 샹송이랑 재즈를 배울 수 있다고 했죠. 근데 잘못 왔더라고요.”

    ▼ 왜요?

    “클래식은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왔지만 재즈는 처음이었어요.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고, 아는 재즈 뮤지션 이름도 없고요. 선생님한테 ‘나는 여기 잘못 왔다. 나는 소프라노고, 흑인여성 목소리도 안 난다’고 했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유럽의 재즈 보컬리스트 음반들을 쥐여줬어요. 그걸 들으면서 재즈를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 학교인 CIM 재즈스쿨, 보베 국립음악원 성악과 등 동시에 4개 학교에 다녔다. 이렇게 음악에 몰두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일주일에 몇 번 수업을 들어선 따라갈 수가 없어서”라고 했다. ‘폴리포니(polyphony)’라고 하는, 여럿이 하는 앙상블 수업도 듣고, 따로 개인레슨도 받았다고 했다.

    팬케이크와 5달러

    ▼ 4년 동안 아주 바빴겠어요.

    “오늘만 살았어요. 오늘은 이 학교에 가서 이걸 해야 해. 그것만 중요하게 여기며 살았어요. 그러다보니 4년이 가더라고요.”

    ▼ 졸업 후엔 CIM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죠. 재즈 시작한 지 4년밖에 안 된, 그것도 동양에서 온 사람이 뭘 가르쳤나요.

    “아무것도 모른 채 여기 와서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얘기해줘라. 그게 저한테 강의를 맡긴 선생님의 뜻이었어요. 사실 재즈는 학교에서 다 배울 수 있는 음악이 아닌 것 같아요. 무대에서 배우는 음악이죠. 저는 운이 좋아서 학생 때부터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재즈는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가수와 반주자가 함께 하는 거죠. 내 소리도 중요하지만 남의 소리도 잘 들어야 해요. 그런 경험을 얘기했어요.”

    “순간을 뜨겁게 살고 싶다 재즈처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재즈 전문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나윤선.



    지금은 초대형 재즈 가수인 그 역시 시작은 조촐했다. 5인조 ‘나윤선 퀸텟’을 결성해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파리 시내 작은 클럽과 바 등에 돌렸다. 불러주면 가서 공연을 했고, 반응이 좋으면 다시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프랑스 대(對) 브라질 결승전이 열리던 날에는 미국인 관광객 몇 명 앞에서 공연했다. 그렇게 차츰 파리에서 재즈 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그의 자작곡 중 하나인 ‘팬케이크’는 배우고 공연하던 당시 생활을 반영한 곡이다.

    Pancake, ice cream, french fries, hamburger, milk shake, doughnuts, chocolate, chocolate.

    Carrot, radish, cabbage, celery, whole wheat sandwitch, cucumber, cucumber.

    I‘ve got 5 bucks. I‘ve got 10 minute. need some nice food. but, quick and fast I don’t that.

    -7집 ‘세임걸’ 수록 ‘Pancake’ 가사 중 일부

    “새 레퍼토리를 만들기 위해 각자 한 곡씩 써오기로 했는데, 시간이 모자란 거예요. 얼른 한 곡 써야겠다 싶어 곡부터 만들고 가사를 고민하는데, 식탁에 먹을 게 놓여 있더라고요. 그땐 얼른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가 많았어요. 늘 5달러 정도로 뭘 빨리 먹으면 좋을까 고민했죠. 여기에 착안해 평소 먹던 것들을 나열해 가사를 썼어요. 쉬워서 그런지 많은 분이 기억해주시는 곡이죠.”

    ▼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사는 얘기 좀 들려 주세요.

    “전 정말 쉬는 날엔 아무것도 안 하거든요. 사람을 많이 만나는 성격도 아니어서 낭만적인 말씀을 드릴 게 없어요. 파리에 오신 분들이 맛있는 레스토랑을 알려달라고 하시는데, 전 잘 몰라요. 재즈 공연을 하면서 뒤풀이해본 적도 없어요. 거긴 한국과 다르거든요. 공연 끝나면 각자 집에 가서 쉬어요.”

    ▼ 파리 사람들은 알아보나요?

    “그렇지 않아요.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면 동네 사람들이 좀 알아봐주는 정도? 싸이가 아닌 다음에야 동양 사람들을 잘 모르니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나윤선의 재즈는 변화무쌍하다. 천진난만한 소녀 같았다가, 깔깔깔 마녀였다가, 어느 순간엔 자식 잃은 어미처럼 한없이 애처로워진다. ‘아리랑’을 부를 땐 간데없는 한국적인 가수인데, 로커 같은 순간도 있고 듣는 이를 깊은 감미로움에 붙들어놓는 때도 있다.

    ▼ 나윤선의 음악은, 재즈는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요.

    “아무것도 모르고 음악을 시작했잖아요. 그때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공부했어요. ‘재즈는 이런 거야’ 하던 처음 생각이 ‘재즈는 모두 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어요. 재즈는 흑인음악이고 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왔어요. 전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요. 서로 환경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레퍼토리도 클래식에서 록까지 다양하게 했어요. 아마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프랑스 사람들은 문화적인 소양이 높아서인지 분별력이 있어요. 제가 승무(僧舞)를 한다면서 요염한 몸짓을 하면 아마 ‘그건 아니다’라고 했을 거예요. 제가 스윙재즈를 흉내 냈다면 지금의 제가 될 수 없었을 거예요. 제 음악은, 어떤 분들 보시기에 ‘재즈가 아니다’ 하실 수 있어요. 재즈란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살아 있는 음악이기 때문에,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예요. 한 곡 한 곡 할 때마다 새로운 옷을 입는 것일 수도 있어요.”

    ▼ ‘렌토’에 실린 곡들은 여백이 느껴집니다. 악기 사용을 최소화한 것 같아요.

    “저는 악기가 많은 것보다는 적게 해서 여백을 많이 두는 음악을 좋아해요. 음악이 숨 쉴 데가 없으면 저는 좋지 않더라고요. 같이 숨 쉴 수 있는 음악이 하고 싶어요.”

    이번 앨범에서 눈에 띄는 곡 중 하나는 이탈리아어로 ‘마법의 순간’이란 뜻의 ‘모멘트 마지코(Moment Magico)’이다. 2008년부터 나윤선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Ulf Wakenius)가 만든 곡. 바케니우스의 빠르고 경쾌한 기타 연주와 나윤선의 스캣(가사 대신 아무 뜻이 없는 소리로 노래하는 창법) 화음이 인상적이다. 바케니우스는 나윤선 음악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가 된 ‘아리랑’을 먼저 권한 사람이기도 하다.

    “울프가 처음 저한테 준 곡이 6집에 실린 ‘프레보(Freyo)’예요. 원래는 피아노곡이고 가사가 없어요. 악기의 속력이 나야 하고, 음을 정확히 맞추기 힘든 곡인데 해보라고 해서 했죠. 그게 마음에 드셨는지, 계속 그런 곡만 주세요. 특징이, 숨 쉬는 데가 없어요. 1000m 뛰고 난 것처럼 숨을 헐떡거리게 돼요.”

    ▼ 매 공연 ‘아리랑’을 부릅니다. 정말 외국 관객들의 반응이 좋나요.

    “아리랑을 들으면 유럽 사람들은 울어요. 이 얘길 몇 번씩 했는데, 한국 분들이 잘 믿어주지 않아서 양치기 소년이 된 것 같았어요. 근데 작년에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목록에 등재됐을 때, 그 기념으로 KBS에서 아리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제 파리 공연에 와서 아리랑을 듣는 관객들을 촬영해갔어요. 그때 촬영한 분이 ‘사람들이 우는 걸 보고 내가 다 떨리고 눈물이 나서 손을 덜덜 떨며 찍었다. 다시 찍고 싶다’고 했어요.”

    이 다큐는 지난해 12월 9일 ‘KBS스페셜’에서 ‘아리랑, 세계를 품다’ 편으로 방송됐다.

    아리랑에 홀린 사람들

    “순간을 뜨겁게 살고 싶다 재즈처럼!”

    지난 3월 25일 프랑스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열린 나윤선의 공연.

    ▼ 아리랑을 왜 좋아들 할까요.

    “이게 5박자 곡이거든요. 강원도아리랑의 경우 ‘아리아리쓰리쓰리아라리요’ 하는 왔다갔다 하는 리듬이 재즈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흥미롭고요. 또 음계가 단순하고 귀에 쏙 들어와요. 가장 만들기 어려운 게 단순하고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이에요. 그래서 재즈 뮤지션들에게 아리랑은 놀이터예요. 열려 있으니까. 외국 뮤지션들이 저 없이도 공연 때 아리랑을 연주해요. 콘트라베이스를 하는 한 독일인 뮤지션은 자기 음반에 경기아리랑을 넣었대요.”

    ▼ 지금까지 앨범에 ‘아리랑’과 ‘강원도아리랑’을 수록했습니다. 더 부를 아리랑이 있나요.

    “이렇게 많은 아리랑이 있는 줄 예전엔 몰랐어요. 가사도 누구나 쓸 수 있고요. 앞으로 더 많은 아리랑을 연구해보려고요.”

    나윤선은 6월부터 울프 바케니우스와 함께 미국 및 캐나다 초청 투어를 한다. 유럽과 달리 미국은 아직 나윤선에게 미개척지. 그는 “미국에선 나를 잘 모를 것”이라고 했다.

    ▼ 하지만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한 적도 있잖아요.

    “그게 2007년이라 너무 오래전이고요, 미국에서 음반은 나왔지만 홍보를 잘 안 했거든요. 미국은 공연을 한 번만 하면 안 되고 투어를 해야 하는데, 그동안 그럴 시간이 없었죠. 이번에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뉴욕, 몬트리올, 밴쿠버 등에서 6차례 공연을 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이에요. 평가가 어떨지 굉장히 궁금해요.”

    ▼ 미국은 재즈의 본고장인데, 반응이 어떨까요.

    “좋거나 깨지거나 둘 중 하나겠죠(웃음).”

    ▼ 지난 몇 년간 스케줄이 거의 살인적이었어요.

    “이건 제 일이고요, 좋아하는 일이기에 감사하고 있어요. 공연이란 게 관객에게 제가 드리는 만큼 에너지를 얻거든요. 매번 다른 곳에서, 새로운 분들 앞에서 노래하니까 지루하거나 힘들 새 없어요.”

    ▼ 20년 동안 한 우물만 팠어요. 뮤지컬 같은 무대로 외도할 법도 한데요.

    “일흔, 여든이 된 뮤지션들의 공연을 볼 때 눈을 감고 들으면 그분들 나이를 분간할 수 없어요. 20대처럼 흥미진진하고 신선하죠. 그게 재즈라는 음악이 갖는 가장 큰 장점 같아요. 순간의 음악이고, 매일 다르고. 그래서 아직 지루한지 모르겠어요.”

    ▼ 4월 30일 ‘유네스코 재즈의 날 기념 콘서트’에서 재즈1세대밴드를 소개하면서 “이분들처럼 되고 싶다”고 했죠.

    “그렇죠. 한 가지를 꾸준히 하는 건 싫다면 할 수 없는 거예요. 울프 바케니우스도 50대 후반인데도 생각이 젊고 늘 눈이 반짝반짝해서는 ‘이거 해보면 어떨까’ 해요. 전 재즈에 아주 천천히 온 것 같아요. 공연을 거듭하면서 재즈가 평생 할 일이란 걸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재즈1세대밴드는 한국에서 재즈라는 장르를 일궈낸 노장들로 평균연령이 70세다. 최근 재즈를 소재로 한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에 출연했다.

    한 분야에서 세계적이라 할 만큼 명성을 쌓았다면, 요즘 세태를 따라 ‘무릎팍도사’ 같은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자서전도 출간해 일반 대중에게 자신을 알릴 법도 하다. 그러나 나윤선은 이번에 한국에 머문 한 달 반 동안 무대에만 섰다.

    나윤선의 아리랑고개

    ▼ 자서전 출간이나 TV 출연은 왜 안 하나요.

    “책 쓰자는 제안은 많았지만, 저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고생은 누구나 하는 거고, 성취도 누구나 매일 느끼는 거잖아요. 재즈가 좋은 건 순간이라서거든요. 무대에서 노래하고 끝. 내일 또 시작. 그리고 또 시작. 음반이 남긴 하지만, 저는 제 음반을 듣지 않아요. 사진도 잘 안 찍어요. 뭔가 남기는 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TV도 그렇고요. 많은 분 앞에서 얘기하는 게 좀….”

    ▼ 나윤선은 아리랑고개를 넘었나요.

    “아직 다 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게 아리랑고개는 힘든 시기를 거쳐야 넘을 수 있는 무언가예요. 훌륭한 뮤지션의 공연을 보면 ‘난 왜 이것밖에 안 되나’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제 공연 날이 오면 용기 내서 해야 해요. 내려갔다가 또 올라오고, 또다시 올라가고…. 그렇게 아리랑고개를 넘고 하나씩 또 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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