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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의 오아시스에서 문화 욕망을 채우다

홍익대 앞 북카페 ‘토끼의 지혜’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청각의 오아시스에서 문화 욕망을 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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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음의 도시에서도 가장 번잡한 홍대 앞에 터 잡은 ‘토끼의 지혜’(사진)는, 우선 조용했다. 좌석은 대체로 2인용.
  • 책의 수준이 일정했고 더러는 귀한 책도 눈에 띄었다.
청각의 오아시스에서 문화 욕망을 채우다
프랑스 파리. 그 도심지의 허공으로 전철이 기계음을 내며 달린다. 폴은 전철 소리에 경악한다. 전철의 제동장치가 내는 잔인한 마찰음 때문에 폴은 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소리친다. “제기랄!”

영화 ‘파리의 마지막 탱고’의 첫 장면이다.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불안과 불만으로 일그러진 초상화를 전면에 내건다. 영국의 자기 파괴적인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 두 점이 영화의 시작을 지배한다.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과 ‘이사벨 로우스톤의 초상화’다.

소음의 도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베이컨의 전시회에 가서 그 충격의 불안과 파괴를 보고는 곧 그만큼이나 문제작이 될 영화 ‘파리의 마지막 탱고’의 주인공을 말론 브랜도로 결정하게 된다. 가토 바비에르의 신경질적인 재즈 음악에 얹혀진 베이컨의 분열적인 초상화, 그리고 이어지는 첫 장면, 폴(말론 브랜도 분)이 고가 전철 밑에서 “제기랄!” 하고 소리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그로부터 곧장 부조리한 상황 속으로 치닫는다.

그런 정황을 우리는 나날의 도시 일상에서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시는 소음투성이다. 자동차 경적, 공사장의 중장비 소리, 지하철에서 휴대전화 하는 소리, 일방적으로 전도를 하고 개종을 강요하는 소리, 젊은이들을 훈계하는 ‘철없는’ 노인들의 소리, 도시 모퉁이 곳곳마다 들어선 휴대전화 가게의 영업용 음악 소리…. 소음은 다른 소음과 섞여 더 큰 소음이 된다. 소음과 소음 사이, 그 잠깐의 휴지부마저 곧이어 습격해 오는 또 다른 소음에 의해 빈틈없이 메워진다. 그 사이를 걸을 때, 우리는 흡사 영화 속의 폴처럼 “제기랄!” 하고 외치고 싶어진다.

청각의 오아시스에서 문화 욕망을 채우다

홍대 앞은 소란스러우면서도 고즈넉한 공간이다.

실례를 보자. 한국환경공단이 대구광역시를 조사했다. 도로변 5곳에 소음 자동 측정기를 설치해 분석했는데, 2009~2011년 월별 평균 소음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준치를 웃돌았다. 대구는 밤낮으로 시끄러운 도시로 확인된 것이다. 낮에는 36개월 모두 평균 소음도가 기준치 65㏈을 훨씬 넘는 71㏈ 이상이었고 그중 72㏈을 넘긴 경우도 22개월이나 됐다. 밤에는 대부분의 측정 기간이 기준치(55㏈)를 웃돌았다. 도심 도로뿐만 아니라 병원, 학교, 주거지 심지어 녹지까지 주야간 평균 기준치를 넘겼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르면 병원 실내에서 30㏈ 이상이면 수면을 방해받게 되고, 거주지의 실외에서 55㏈ 이상이 지속되면 심한 불쾌감을 갖게 되며, 교통량이 많은 도심지에서 70㏈ 이상 지속되면 청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청력 손실이나 이명 증상 같은 육체적인 피해에 더해 초조, 불안, 불쾌, 식욕 부진, 불면, 학습능력 저하 같은 부작용이 뒤따른다.

대구 지역의 대표적 일간지 ‘매일신문’의 2013년 4월 15일자 기사에 따르면, 이러한 도시 소음 때문에 불쾌감이 극도에 달한 시민들끼리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4월 10일 오후 7시 30분경 대구 동구 율하동 도로에서 A(23)씨 차량과 B(31)씨 차량이 마주 보며 교행하던 중 B씨가 경적을 울리자 A씨가 시끄럽다고 언성을 높였고 이에 B씨도 욕설을 퍼부었으며 끝내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서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상대방 차량의 뒷거울을 발로 차는 폭력 시비가 벌어졌다.

이 작은 사건의 각 항목에 이 나라 대도시의 주요 도심지를 쳐넣고 그 나이와 이름을 다르게 바꿔놓아도 실은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일상 폭력’의 한 장면이 된다. 서울이든, 광주든, 부산이든 상관없이 20대나 50대나 70대나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고 삿대질을 하고 욕설을 퍼붓다가 끝내 주먹질까지 한다. 그 순간에도 도시의 소음은 그들의 모든 행동과 자제되지 못한 심리적 충동이 자기 자신에게 있기라도 하다는 듯 데시벨을 더 올린다. 우리도 그 한 무리가 되어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워놓고 서로 삿대질을 하는 사람들 곁으로 지나가면서 경적을 신경질적으로 눌러댄다.

이렇게 도시 소음이 밤낮으로 높은 데시벨을 유지하면서 일부 명금류가 둥지를 틀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명금류(鳴禽類)라고 하면 다소 딱딱한 표현인데 영어로 ‘the songbirds’라고 하는 이 명금류는 ‘사람이 듣기에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내는 새’를 뜻한다. 꾀꼬리, 할미새, 여새, 종다리, 참새, 동고비, 직박구리, 휘파람새 등이 명금류다. 그들이 도시의 소음에 지쳐 사라지는 중이다. 도심지에서 수컷의 노래는 자동차 경적이나 중장비나 각종 기계음에 뒤섞여 울리게 된다. 암컷들은 이 혼란 속에서 짝짓기에 적합한 상대의 울음소리를 분간해내지 못한다. 그들의 개체 수는 줄어든다. 새 소리가 사라지는 도시, 그 안에서 우리는 인공의 소음을 더 많이, 더 악착같이, 더 높은 데시벨로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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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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