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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法’ 만들어 ‘사법 구멍’ 막아라!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 변호사의 분노

  • 엄상익│변호사 eomsangik@daum.net

‘사모님法’ 만들어 ‘사법 구멍’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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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도 막강한 재력 덕분에 변호사의 조력과 실세(實勢)의 지원을 받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는 현실을 개탄한다.
  • 대한민국의 사법체계에 이런 ‘구멍’이 있어도 되는 것인가.
  • 그들이 목숨을 빼앗은 여대생은 한 줌 재로 변해 납골당에 머물러 있는데….
‘사모님法’ 만들어 ‘사법 구멍’ 막아라!

2003년 4월 15일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실시된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 현장검증. 2002년 3월 여대생 하모 양은 공기총을 맞고 살해됐다.

SBS에서 전화가 왔다. 국회에서 ‘사모님법’이 발의되는 것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자는 것이다. ‘사모님’은 판사인 사위와 불륜관계라고 의심한 여성을 청부살인한 모 중견기업 회장 부인을 지칭한다.

나는 그 사건에서 ‘살인 심부름’을 했던 남자를 변호했다. 그러니 드러내고 TV 화면에 나갈 주제는 못된다. 하지만 진실을 위해, 조심스럽게 사실과 그 사건이 던지는 메시지를 세상에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광란의 청부살인극

2002년 여대생 하모 양 청부살인 사건은 ‘회장 사모님’이 판사 사위에게 흠이 있는 걸로 알고 벌인 한바탕 광란극이었다. 회장의 회사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친척 회사를 먹은 것이라는 둥 주가조작의 명수라는 둥 부(富)의 축적과정을 놓고 갖은 의혹이 떠돌았다. 하기야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습디다”라고 사돈에게 으스댄 것이 회장의 인격이라면 의심을 살 만도 하다.

회장은 국무총리와 골프를 치는 막역한 사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에겐 권력이라는 든든한 방파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판사 사위도 들여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런 판사에게 흠이 있다고 속삭였다.

광란의 청부살인극이 빚어졌다. 사모님에게는 삼류 추리극을 흉내 낸 장난 같은 짓이었을지 모르지만,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하던 여대생은 뼈가 조각나고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차가운 야산에 시체로 버려졌다. 여기까지는 1막에 불과했다. 그 뒤가 더 놀라웠다.

돈은 법정을 연극무대로 만들었다. 진실이 가짜로, 허위가 진짜로 둔갑하려고 했다. 나는 그 연극에 출연해야 했다. 이젠 그 기억들이 뿌연 청록색 안개 저쪽에 실루엣처럼 남아 있다. 그걸 꺼내어 세상이 궁금해하는 것의 일부라도 알려야겠다.

황사가 뿌옇게 도심을 점령하던 날 구치소를 찾아가 다른 사건으로 내가 변호하고 있던 한 살인범을 만났다.

“변호사님, 족집게처럼 살인범을 감별하는 방법이 있어요.”

“뭔데요?”

“제가 있는 방엔 살인범들만 있는데, 잠이 들면 다들 가위에 눌려 끙끙거려요. 죽은 사람이 귀신이 돼, 살인범들의 꿈에 나타나요. 잘 자는 사람은 살인하지 않은 거죠. 그런데 같은 감방에 있는 한 친구를 보니까 불쌍해요. 재벌 회장의 사모님이 시켜서 살인 심부름을 했는데, 그 사모님만 철석같이 믿고 있는 거예요. 이용만 당하다가 혼자 사형당할 것 같아요. 젊고 애도 있는데 안됐어요. 좀 멍청한 게 탈이지만요….”

옛날에는 양반인 주인 대신 머슴이 전쟁에 나가고, 곤장도 맞아줬다. 지금도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사장님이 운전을 하다가 뺑소니 사고를 내자, 기사가 대신 감옥에 가주는 것을 봤다. 사장이 밀수를 하다가 걸리면 자재부장이 뒤집어썼다. 교주들이 광신도를 시켜서 살인을 하고 자기는 법망을 빠져나갔다.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도 비슷한 구조였다.

돈이냐, 남편이냐

어느 날 초라한 모습의 30대 후반 여성이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살인범이 소개했다는 게 찜찜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번 와봤습니다. 저도 자식을 키우는 엄마예요. 죽은 여대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남편이 극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게 남편 잘못입니다.”

괜찮은 사람이다. 아무나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남이야 어떻든 내 가족만 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가 만연한 세상이다.

“남편에게 살인을 부탁한 회장 사모님이 변호사를 붙여줬어요. 그런데 그 변호사가 남편 스스로 범행한 것으로 조작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면 남편은 어떻게 될까요?”

여자의 예민한 감각은 이미 본질을 꿰고 있었다.

“회장 부인은 무죄가 되고, 남편은 사형될 가능성이 있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장 사모님은 제가 총대를 메면 50억 원을 주겠다고 하시는데요.”

‘남편이냐 돈이냐’ 양자택일이라는 얘기였다. 그녀의 남편은 내복 장사를 하다가 망했다고 했다.

반지하 셋방에 살면서 남편은 회장 사모님의 기사로, 아내는 파출부로 일했다. 기사 자리를 구한 것은 사모님이 남편의 고모였기 때문이었다. 그들 부부는 고모를 “고모”라고 부르지 못하고 “사모님”으로 불렀다.

“솔직히 진실을 털어놓고 각자 지은 죄만큼 대가를 치르는 게 어떨까요. 정직하면 그 보답을 받지 않을까요?”

부부가 진실을 말해야 정의가 산다. 자백하면 정상참작이 될 것 같았다. 그녀는 진실 쪽에 서기로 결심하고 나를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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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변호사 eomsangi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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