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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는 표준하도급계약서 전문건설사 두 번 울린다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외면받는 표준하도급계약서 전문건설사 두 번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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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는 표준하도급계약서 전문건설사 두 번 울린다

건설 현장에서 이뤄지는 불공정 거래는 불공정한 계약서 작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한 전문건설업계 관계자는 “하도급사가 공사 도중에 계약 해제를 당하면 공사 진행분만큼의 비용은

이미 투여된 것”이라며 “그럼에도 위약벌 조항 때문에 하도급사가 지출한 공사비는 공사비대로 날리고, 계약 해제에 따른 보증금까지 납부토록 하는 것은 원청사가 이중으로 착취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는 원청사들이 위약벌 조항을 악용해 일부러 계약을 해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다음은 한 전문건설 관계자의 증언이다.

“위약벌 조항은 원청사에는 전가의 보도와도 같다. 위약벌을 적용하면 원청사는 최소 2배의 이익을 남긴다. 예를 들어 B하도급사가 A원청사에 10억 원의 하도급 공사를 받았다고 치자. B사가 1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공사를 진행한 뒤 계약 이행을 못하면 A사는 B사가 계약이행을 제대로 못했다며 계약을 해지한다. 이 경우 B사가 투입한 1억 원만큼의 공사 시설물은 그대로 남고, 거기에 더해 A원청사는 계약서에 명시된 위약벌 조항을 적용해 보증금까지 챙길 수 있다. A사는 이후 C하도급사와 하도급 계약을 맺어 공사를 이어가면 된다. 극단적인 예지만 위약벌 조항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원청사가 얼마든지 악용할 소지가 있다.”

계약조건 변경도 다반사



전문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위약벌 조항은 그 자체로도 불평등할 뿐 아니라 원청사가 도덕적 해이에 빠지도록 유도하는 나쁜 조항”이라며 개선을 요구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월 원청사들의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해 건설업 표준하도급계약서 전문을 개정했다. 개정된 표준계약서에서는 ‘하도급계약의 추정’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 금지’ ‘물품 등의 구매강제 금지’ ‘부당한 위탁취소 금지’ 등 약자인 하도급사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대폭 강화됐다. 그러나 일부 원청사들은 하도급사 보호를 위해 마련한 표준계약서를 실제 하도급계약 때에는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1군 종합건설사인 H사는 최근 표준하도급계약서 가운데 하도급사 보호를 위해 마련한 조항을 대부분 삭제한 채 하도급계약을 체결해오다 몇몇 하도급사로부터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당했다. H사를 공정위에 제소한 하도급사들은 “H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약관 사용을 강제하고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를 자행해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며 “수십 년간 피땀 흘려 일궈놓은 사업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고 호소했다.

H사는 ‘특약조건’으로 모든 민원 처리를 을의 책임으로 전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H사의 하도급계약서는 특약조건으로 “을의 하도급 이행에 있어 필요한 대관 대민업무는 을의 비용과 책임으로 시행한다” “을은 하도급계약의 이행과 관련 민원이 발생 시는 동 공사 및 전체 공사의 이행에 차질을 주지 아니하도록 을의 비용과 책임하에 조속 처리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원청사들이 특약을 활용해 계약 단계에서 추가 비용을 하도급사에 떠넘기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전형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하도급 금액 산출내역서에 없는 항목을 현장설명서, 견적 특수조건으로 기재하는 경우 △도면이나 설계내역상 제외된 부분도 감독관이 원하는 대로 시공하도록 하고 금액을 조정해주지 않는 경우 △물가상승으로 인한 단가 변동이나 연동제를 적용하지 않는 경우 △사유를 막론하고 ‘을’이 계약금액 변경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시공을 거부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을 넣는 경우.

‘권장사항’의 한계

공정위가 권장한 표준하도급계약서는 나 몰라라 하고 건설 현장에서 특수조건 기재, 계약서 변경 등의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은 표준계약서 사용이 ‘권장사항’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현행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에 표준하도급계약서의 작성 및 사용을 권장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하도급계약 체결에서 공정위 권장 표준계약서 사용 비율은 2010년 70.3%에서 2011년엔 75.4%로 상승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사결과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많다.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사용하면 공공공사 입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가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사용하는 것처럼 ‘신고’는 하되, 실제 하도급사와는 이면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는 것.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지난해 13개 대형 종합건설사의 주요 하도급계약 126건을 분석한 결과, 표준하도급계약서 원안을 그대로 사용한 사례는 16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예 계약서를 사용하지 않은 사례가 25건이었고, 표준계약서에 특약을 덧붙인 변형 사례가 85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건설 현장에서는 ‘보고용 표준계약서’와 실제 공사에 적용할 ‘변형된 계약서’ 등 두 건의 계약서가 작성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표준계약서가 ‘무늬만 표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국회는 법 개정을 추진했다. 2012년 9월 노회찬 당시 의원을 비롯한 14명의 국회의원은 원청사(사업자) 등이 하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의무적으로 사용케 하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전문건설사 관계자들은 “건설 현장에서 이뤄지는 불공정 거래 관행 대부분은 불공정한 계약서 작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표준하도급계약서만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해도 건설 현장의 불공정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데, 법 개정이 무산돼 아쉽다”고 말했다. 한 전문건설사 대표는 “고질적인 건설업계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 관행을 고치려면 표준계약서가 작성되는지, 또 계약서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아 201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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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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