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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생존설 추적기

1990년 여름, 빈(Wien) 호텔에 나타난 백발 老신사의 정체는?

이승만 前 대통령 양자 이강석 집단자살 미스터리

  • 이성춘│언론인

1990년 여름, 빈(Wien) 호텔에 나타난 백발 老신사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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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신 여인은 이강석이 머리가 백발이고 얼굴이 늙어 보이는 것 말고는 남자치곤 약간 작은 키와 말씨, 태도 등이 변하지 않았더라고 전했다.

정 선생은 신 여인의 부친과 이기붕이 1920~30년대 초 미국 유학을 했고 광복 후 각기 작고할 때까지 형제처럼 지냈으며, 식구끼리도 각별한 관계였음을 알고 있었기에 이강석과 만났다는 그의 얘기를 한낱 뜬소리로 여길 수 없었다고 했다. 신 여인도 어릴 때부터 너무나 모범적이고 착실한 사람이라며 거짓말은 아닌 듯하다고 했다.

신 여인의 뒷얘기는 계속된다. 남편에게는 물론 미국으로 돌아간 뒤 친형제들에게 이강석과 만난 얘기를 전하자 모두 놀라면서 절대로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고 재삼재사 당부하더라는 것이다. 기자들이 집요한 취재에 들어가면 오래 교류했던 집안 사정까지 이것저것 보도돼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누를 끼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 여인은 3년 동안 가슴속에 넣어둔 채 끙끙 앓다 당시 고국 방문길에 정 선생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되, 집안 얘기는 모두 가려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정 선생은 필자에게 “그녀는 내가 아직도 언론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줄 아는 모양”이라면서 “그 집안과 식구들에 관한 것은 약속한 대로 절대 취재도 보도도 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1990년 여름, 빈(Wien) 호텔에 나타난 백발 老신사의 정체는?

1957년 3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83회 생일 축하 케이크를 자르는 이 대통령 부부. 맨 왼쪽이 양자였던 이강석이다.

이기붕과 박마리아



이기붕(1896~1960)은 10세 때 부친이 작고해 홀어머니 밑에서 끼니를 거르며 가난하게 성장했다. 모친의 교육열로 상경해 보성중학과 연희전문에서 수학했다. 보성중학 시절엔 종로 YMCA(기독청년)회관에 나가 이상재, 이승만 등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건너가 농장 일, 호텔 일, 접시 닦기 등으로 고학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워싱턴에서 허정, 장덕수, 윤치영 등과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도와 ‘3·1신문’을 발간했고 1934년 귀국 후에는 잡화상, 광산업 등에 실패한 후 종로의 대형 요릿집 국일관의 지배인을 지냈다.

부인 박마리아와는 미국 유학 중 만나 약혼한 뒤 1935년 서울에서 결혼했다.

이기붕의 출세길은 광복 후인 1945년 10월 이승만의 귀국으로 열렸다. 윤치영 비서실장의 비서를 지내다 비서실장으로 승진했고, 윤보선에 이어 서울시장(1949년 6월~1951년 4월)으로 재임하던 중 6·25전쟁을 맞았다.

이승만은 대통령 연임을 위해 부산 정치파동을 일으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킨 후 유공자인 장택상, 이범석을 밀어내고 1953년 원내외 통합자유당의 2인자(중앙위 의장)로 자신의 충복인 이기붕을 내세웠다. 이기붕은 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민의원 의장에 선출된 뒤 이승만에게 초대 대통령의 영구 출마를 보장한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안을 억지로 통과시켜 보답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선거 때 부통령선거에 나섰다가 장면에게 패했고, 1960년 3월 15일 사상 최악의 부정선거로 부통령에 당선됐다.

박마리아(1906~1960) 역시 가난 속에 교회 전도사인 홀어머니 밑에서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후 주위의 도움으로 개성 호수돈여고를 거쳐 이화여전 영문과에 진학했다. 선교사 아펜젤러의 후원으로 미국에 건너가 매사추세츠 주 마운트 홀리요크대와 테네시 주 스칼렛대를 거쳐 피바디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이화여전에서 교편을 잡다 결혼 후 YWCA 총무로 옮겼고 일제강점기 말 4~5년 동안엔 일제가 내세우는 동조동근(同祖同根) 내선일체(內鮮一體)에 동조해 식민정책을 찬양하고, 학병과 근로보국대 지원을 독려했다.

박마리아는 광복 후 이화여대 교수로 복귀한 뒤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측근이 됐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총애에 힘입어 남편을 권력가도로 이끌었다. 이기붕이 권력의 2인자로 승승장구할 때 자신도 이화여대 부총장, YWCA 회장, 대한부인회 회장을 맡아 여성계를 좌지우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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