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호

한류 대박에 묻어가기? 영혼 없는 ‘문화수출’ 정책

왜 싸이는 되고, 韓食은 안 될까

  • 전원경 │작가·문화정책학 박사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13-09-23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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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화권 케이블TV 시장 열리며 값싼 ‘한드’ 히트
    • 한류를 저질문화 취급한 한국 정부
    • “韓 스타일까지 수출하자”? 문화국가주의 발로
    • ‘빅뱅’에 열광한다고 판소리에도 환호할까
    한류 대박에 묻어가기? 영혼 없는 ‘문화수출’ 정책

    미국 뉴욕에서 공연 중인 싸이.

    #1 지난해 9월 화창한 토요일, 아이들 손을 잡고 영국 글래스고의 중심가인 뷰캐넌 스트리트로 나갔다(당시 글래스고대학에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다). 모처럼 비가 오지 않는 주말이라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런 날이면 거리 한 모퉁이에 묘기를 보여주거나 춤을 추면서 행인의 푼돈을 받는 버스커(Busker)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날도 서너 명의 젊은이가 현란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춤추는 음악이 귀에 익었다. “오빤 강남스타일!” 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구나. 젊은이들은 한국말 가사까지 제법 엇비슷하게 불러가며 춤을 췄다. 거리를 지나던 젊은이 서너 명이 함성을 지르며 합류했다. 삽시간에 영국의 북쪽 도시 글래스고의 중심가에서 ‘강남스타일’ 댄스파티가 벌어졌다.

    # 2 새 학기를 맞아 글래스고대 문화정책센터 박사과정에 신입생이 들어왔다. 어느새 박사 3년차가 된 나는 약간 심드렁한 표정으로 1년차 학생들과 인사를 나눴다. 프랑스에서 온 여학생 이본과 이란 국영방송국에서 프로듀서로 일했다는 무하마드가 신입생. 한국에서 왔다고 인사하자 무하마드의 눈이 커다래진다. “한국? ‘대장금’과 ‘주몽’의 나라! 이란 사람들 한국 드라마 정말 좋아해. 우리 방송국 사람들도 다들 ‘대장금’ 얼마나 재미있게 봤는데….”

    또 이런 반응이다. 아시아권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며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나 한국 드라마 정말 좋아해! 송혜교랑 권상우 팬이야!”라든지 “너, 한국에서 기자였다며? 배용준 만난 적 있니?” 하며 반색한다. 말레이시아 대학의 영문학 교수인 친구 자리나의 큰딸은 ‘수퍼주니어’ 팬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제는 아시아권을 넘어 중동 국가에서 온 친구들에게서도 이런 반응은 예삿일이다.

    영국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그것도 문화산업과 문화정책을 전공했다고 하면 반사적으로 이런 질문이 돌아온다. “영국 사람들도 정말 한국 드라마나 한국 가요를 좋아해요?” “진짜로 영국에서도 ‘소녀시대’가 유명해요?”….



    한류 수출 = 국위 선양?

    글쎄, 소녀시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난가을 ‘강남스타일’ 열풍이 영국을 비롯해 전 유럽을 강타한 것만은 확실하다. 휴가를 보내러 간 스페인의 작은 섬에서도 ‘강남스타일’을 들었을 정도이니. 하루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강남스타일’ 가사 영어로 만들어줄 수 있어?”라고 물었다. 친구들이 ‘강남스타일’ 가사 좀 해석해달라고 자꾸 부탁해 귀찮아 죽겠다면서 말이다.

    1990년대 후반 이래 아시아권,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 있는 방송 콘텐츠가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 시청자에게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이미 ‘미드(미국 드라마)’를 넘어선 지 오래다.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 등에서도 한국 드라마는 확고한 시청자층을 확보한 방송 콘텐츠로 자리 잡았고, 이런 인기는 앞으로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듯하다.

    韓스타일 프로젝트

    유럽 시장 진출은 아시아권과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이긴 하나,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에서 알 수 있듯 최근 유럽에서 케이팝(K-pop) 마니아층은 급속도로 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2005년 6월 28일 보도처럼 ‘한때 일본이나 중국의 문화적 속국처럼 보이던 한국은 이제 그런 오해를 딛고 아시아의 대중문화 리더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런 대중문화 인기를 등에 업고 한국의 대외적 이미지도 ‘비무장지대와 대학생 시위’에서 ‘최신 유행과 첨단 기술의 산실’로 바뀌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이 있다. 그렇다면 한류의 수출은 곧 한국의 국위 선양일까.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니 다른 한국 문화도 외국에 진출하는 것은 시간문제일까. ‘대장금’에 열광했던 세계 80개국의 시청자들은 한복과 한식의 고객이 될 수 있을까.

    먼저 한류 수출이 우리에게, 그리고 그 소비자층인 해외 시청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 ‘별은 내 가슴에’나 ‘사랑이 뭐길래’ 같은 드라마, 그리고 H.O.T와 N.R.G 등 보이 그룹들이 중화권에 진출하기 시작할 당시, 언론 보도에는 ‘문화외교’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한국 드라마와 대중가수들은 한국의 문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문화외교관” “‘겨울연가’ 한 편이 외교관 50명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는 식의 흥분된 보도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류는 광복과 정부 수립 이래 한국이 처음으로 이뤄낸 본격적이고 지속적인 문화상품 수출이다. 영국인에게 자국의 문화상품 수출은 흔한 일이다. 1960년대의 ‘브리티시 인베이전’ 즉 비틀스를 위시한 영국 팝 뮤직의 미국 시장 열풍까지 가지 않는다 해도, 요즘 한국 TV에서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댄싱 위드 스타’나 ‘마스터셰프 코리아’ 등은 영국 프로덕션들이 개발한 프로그램 포맷을 한국 방송사에서 구입해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영국 사람들은 자국의 문화상품 수출, 가령 “한국 젊은이들이 요즘 ‘셜록’과 ‘닥터 후’ 같은 영드(영국 드라마)를 정말 좋아해”라고 말해도 “응, 그래?” 하고 심드렁해한다. 영국 드라마와 영화가 한국의 젊은층에게 인기를 얻고 ‘댄싱 위드 스타’가 한국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부상했다고 해서 이를 ‘영국 문화’ 그 자체의 수출로 여기거나 영국의 대외 이미지 향상과 연결 짓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한류 열풍이 형성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까지 한 번도 본격적인 문화상품 수출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당초 한류를 ‘잠깐 그러다 말 것’이라는 식으로 반신반의하던 한국 언론은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2004년부터 드라마, 가요 등 대중문화 콘텐츠를 해외에 진출하는 한국 문화의 첨병으로 내세웠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듯, 정부는 2005년부터 한류 수출을 독려하는 정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2005년 문화관광부가 내놓은 ‘한류의 글로벌화를 통한 국가 이미지 제고 방안’은 한류가 인기를 얻은 지역에 전통문화상품을 홍보하고, 해외 15개 도시에 ‘코리안 플라자’를 열며, 1만 명 규모의 아시아 문화동반자를 육성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2005년 ‘문화산업백서’, 25~27쪽). 아울러 한옥 한식 한국어 한지 한복 국악 등 6개 전통문화상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한스타일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정부가 한류의 인기를 등에 업고 한국 전통문화의 상품화, 세계화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전통문화상품의 세계화나 한국의 국가브랜드 홍보 등과 한류의 실체가 과연 얼마나 연관돼 있을까. 한류는 1990년대 후반, 중국의 한 언론사가 중국 신세대들이 한국의 가요와 드라마에 열광하는 현상을 지칭하며 사용한 신조어다. 말하자면 한류는 가요와 드라마, 그중에서도 ‘사랑이 뭐길래’ 등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중화권 진출에서 탄생한 것이다.

    한류 본질은 상업 콘텐츠

    드라마가 아시아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산 문화상품이 된 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1990년대 초 문민정부의 등장과 엇비슷한 시기에 상업방송 SBS가 개국했고, 이는 한국 방송산업이 국가 주도 공영방송 체제를 벗어나 본격적인 산업으로 변모했다는 신호탄이었다. 곧 광고 이익의 극대화를 의미하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방송 3사 간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3파전의 대표주자가 된 프로그램 장르가 드라마, 그중에서도 평일 밤 10시대에 방송되는 ‘미니시리즈’였다. 미니시리즈에 대한 세 방송사의 중점적인 관심과 투자는 한국 드라마의 독특한 개성-스피디한 전개, 드라마틱한 스토리, 다양한 주제에 도전-을 구축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시청률 경쟁 덕에 날로 발전한 한국 드라마는 1990년대 중반 들어 팽창하기 시작한 중화권의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국으로 진출한다. 이때를 전후해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등에서 케이블 방송 산업이 시작됐고, 작은 규모의 케이블 방송국들은 미국, 일본의 비싼 프로그램 대신 양질의 값싼 프로그램을 시급히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중화권의 케이블 채널 관계자들에게 일본 드라마의 10분의 1 가격이지만 품질은 일본 드라마에 떨어지지 않는 한국 드라마는 대단히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즉 한류, 즉 한국 드라마와 가요에 대한 해외의 인기는 세계 문화산업의 글로벌한 트렌드가 한국 방송산업에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각국의 방송산업이 제한된 공중파 채널에서 수백 개의 케이블 채널로, 그리고 소셜미디어로 급속히 확대되면서 보다 많은 방송 콘텐츠가 필요하게 됐고, 방송 3사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내부 경쟁력을 갖춰 온 한국 드라마가 이렇게 확대된 아시아권 방송 시장에서 적절한 콘텐츠로 선택된 것이다. 드라마의 아시아 시장 진출과 ‘강남스타일’의 글로벌 히트 간의 차이는 후자가 전자에 비해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의 위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장르라는 장점을 가졌다는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저지른 오류는 이 같은 산업 흐름, 즉 대중문화산업, 방송산업이라는 개별 산업의 성공인 한류를 국가브랜드 홍보, 또는 전통문화상품 수출이라는 거창한 명제와 연결하려 했다는 데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한류의 본질은 일부 방송산업, 또는 연예산업의 콘텐츠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 소비자층에게 소비되는 현상이며, 이 현상 어디에도 ‘전통문화가 개입한 흔적, 또는 앞으로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대장금’ ‘주몽’ 등 역사드라마의 해외 진출이 한식, 한복 등 한국 전통문화상품에 대한 선호 현상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주장은 마치 영국 역사드라마 ‘튜더스’를 보는 한국 시청자들이 15세기의 영국 전통복장에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라는 주장만큼이나 개연성이 없다.

    서울의 착각

    사실 한류 후원 정책이라고 이름 붙여진 정책들이 실은 한국 드라마의 인기를 도구 삼아 해외 시청자에게 접근해 그들에게 한국 전통문화상품을 홍보하거나 나아가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많은 문화산업 전문가가 비판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인기를 국가 이미지 홍보에 이용하려는 한국 정부의 시도가 무리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한국인들은 급속한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중국과 일본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에 공분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감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더 나은 대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국가 이미지를 만들고 홍보하는 주체로 나서는 것은 지나친 참견이다. 산업에서 챔피언이 되는 것과 소프트파워 강국이 되는 것은 명백히 다른 문제다.’(파이낸셜타임스 2012년 10월 30일자 ‘강남스타일’의 성공이 드러낸 서울의 착각’ 중에서)

    한류 대박에 묻어가기? 영혼 없는 ‘문화수출’ 정책

    2007년 드라마 ‘대장금’의 인기를 계기로 베트남에서 한국 궁중음식을 홍보하는 웰컴투코리아시민협의회(회장 최불암)가 열렸다.

    그렇다면 왜 한국 정부는 굳이 한류와 국가 이미지 홍보, 또는 한류와 전통문화 를 연결하려 하는가. 이 부분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연결고리의 느슨함’을 무수히 지적해왔기 때문에 정부도 문제점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의심스러운 부분은 정부가 1970년대에 형성된 문화국가주의(Cultural nationalism)에 입각한 문화정체성(Cultural identity)을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문화국가주의란 자국의 문화, 특히 전통문화를 한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시켜 국가에 대한 국민적 자부심을 고양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문화국가주의의 주된 목적은 ‘국가의 정체성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고취시키는 것’이며, 뛰어난 전통문화는 그 자부심의 근거로 활용된다.

    이 같은 문화국가주의는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 지 얼마 안 된 아시아 국가들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들 국가의 독재 정권이 장기 집권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또 신흥 국가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혼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희석시키기 위해 ‘유구한 전통문화를 가진 우리나라는 분명 번영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식의 문화국가주의적 슬로건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유신 시대 한국 정부가 해외 각지에서 대규모로 개최한 ‘한국미술 5천년전’은 이 같은 문화국가주의의 전형적 사례다.

    “저질 문화가 한국 대표해서야…”

    한국 정부는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집권과 함께 전통문화 보호와 규제 위주의 기존 문화정책에서 규제 완화와 가능성 높은 문화산업에 대한 집중적 후원이라는 획기적 정책 패러다임 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실무적 정책 시행 차원에서 한국의 문화정책은 오래된 문화국가주의를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화국가주의적 문화정체성 때문에 정부는 초기 한류의 유행을 그리 달가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저질 문화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해외에 소개되는 현실’을 우려했다.

    2003년 문화정책백서는 ‘한류가 대중음악, 드라마 및 게임 등 국내 문화산업의 일방적인 진출 방식과 경제적 수익 창출에만 몰두하고, 상호주의 차원의 전반적인 문화예술 교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한류가 국가 간 진정한 상호 이해와 신뢰의 기반이 되는 장기적인 비영리 문화교류 차원의 전통문화나 순수예술, 고급문화의 소개는 미약하고, 다양한 장르와 소재가 부족한 데서 기인한다’고 드라마, 가요 중심의 한류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한류 대박에 묻어가기? 영혼 없는 ‘문화수출’ 정책

    지난해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음식점에서 열린 ‘한식세계화 홍보 캠페인’에 국내 대학생들이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참가했다.

    다시 말해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정부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대중문화상품이어서는 안되며, 전통문화상품의 수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히트하는 등 한류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확대되자 정부는 한류의 인기를 등에 업고 전통문화상품의 국제화, 나아가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 홍보에 나서보자는 식으로 정책 방향을 수정한다.

    2003년 한류에 대해 ‘중국, 대만, 베트남 등 동아시아 현지인들의 한국 가요, TV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선호가 증가하는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 정의(2003년 문화정책백서)했던 정부는 2006년 들어 ‘기존 한류의 장르, 지역적 한계를 넘어 신한류를 전개하고 전통문화 기반의 한류 문화상품 개발로 한류 콘텐츠 다양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한다(2006년 문화산업백서). 의도적으로 한류의 범위를 ‘대중 및 전통문화, 또는 그 관련 상품’으로 확대하려 한 것이다.

    보수 성향 정부의 집권 이후 문화국가주의적 문화정체성은 정책에서 더욱 부각되는 경향을 보였다. 거액의 예산을 집행하고도 성과가 미미한, 그러나 정부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는 한식(韓食) 세계화 프로젝트가 그런 예다. 정부는 ‘싸이는 되는데 한식이라고 안 될 게 있나? 다 같은 문화상품 아닌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싸이와 ‘대장금’은 수출됐는데 한식이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 문화산업의 트렌드가 싸이와 ‘대장금’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문화상품을 요구하고 있었고, 싸이와 ‘대장금’은 그런 경쟁력을 갖춘 상품이었다. 정부가 개입해서 싸이와 ‘대장금’을 해외에 진출시킨 게 아니듯, 정부가 개입한다고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문화상품이 수출될 수는 없다.

    문화국가주의 떨쳐내야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싸이와 한식 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가 아니라, 싸이든 한식이든 개별 문화상품의 해외 진출 여부에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울 이유가 없다는 데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별 상품의 경쟁력과 상품성 여부에 따라 결정될 문제다. 나아가 ‘강남스타일’의 글로벌 히트가 한국 문화의 세계 진출이나 국위 선양이 아니라 ‘강남스타일’이라는 뛰어난 콘텐츠의 성공인 것처럼, 한식의 세계화와 한국의 국가 이미지 홍보를 연결 짓는 것 역시 시대착오적인 문화국가주의의 발로다.

    한류 대박에 묻어가기? 영혼 없는 ‘문화수출’ 정책
    전원경

    연세대 졸업, 영국 시티대 석사(예술경영·비평), 글래스고대 박사(문화정책)

    전 ‘주간동아’ 기자

    저서 및 논문 : ‘한류, 한국 드라마 수출과 한국 문화산업정책 연구 : 1995-2005를 중심으로’(2013, 박사논문), ‘영국 :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예술가의 거리’ ‘런던미술관산책’ 등


    결론적으로 한식, 또는 한국 전통문화상품 수출이라는 정부의 목표는 아시아와 유럽을 종횡무진 누비는 한류 콘텐츠와 연관 짓기 어려운 문제다. 빅뱅이 인기 있다고 영국과 프랑스의 빅뱅 팬들이 새삼 판소리에 관심 둘 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류가 인기를 끈다고 한식이 이에 힘입어 세계에 진출할 가능성은 무망하다. 한국 정부에 보다 시급한 과제는 개별 문화상품의 수출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정책 저변의 문화국가주의를 뿌리 뽑는 일이다. 문제는 그 뿌리가 예상보다 훨씬 깊숙이 박혀 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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