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호

“해외 비자금 2300억 업무 무관 지급 460억…”

국세청 2009년 동양그룹 세무조사 보고서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3-10-22 17: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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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비자금 2300억 업무 무관 지급 460억…”
    검찰이 동양그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을 고발한 사건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여환섭)에 배당됐다. 동양증권 노조가 낸 고소건도 같은 곳에 모였다. 고소·고발인들은 현 회장 등 경영진이 사기성 어음을 발행했으며 업무상 배임 혐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건을 배당받은 검찰은 10월 15일 현 회장 자택을 비롯해 (주)동양, 동양증권 등의 계열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 수사를 본격화했다.

    동양그룹 사태는 지난 9월 말 동양그룹이 핵심 계열사인 (주)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10월 1일엔 동양시멘트와 오너 일가가 지배하는 동양네트웍스에 대해서도 법정관리가 신청됐다. 동양그룹은 주요 계열사들을 순환출자 고리로 묶어놓았다. 지배구조는 동양→동양인터내셔널→동양레저→동양증권→동양파이낸셜대부→동양으로 이어진다. 동양이 사실상 지주회사 노릇을 하고 있고, 동양인터내셔널과 동양레저가 돈줄을 쥐고 있는 식이다.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은 수천 명의 피해자를 낳은 기업어음(CP)의 대부분을 발행한 곳으로 그룹의 모태인 동양시멘트, 동양파워(삼척화력발전소), 동양증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동양그룹을 둘러싼 의혹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부실 계열사의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동양증권 같은 금융계열사를 통해 불완전판매(상품에 대한 기본 내용 및 투자위험성 등에 대한 안내 없이 판매하는 행위)해 피해자를 양산한 의혹 △경영진이 계열사 간 불법적인 자금거래를 지시(배임)한 의혹 △법정관리 신청 직전 이혜경 그룹 부회장이 동양증권 계좌에서 현금 6억 원을 인출하고 금괴를 빼돌렸다는 의혹 등이다. 검찰은 동양그룹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과 관련된 의혹도 수사 대상이라고 밝혔다. 법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을 망라한다.

    최근 금융감독원(금감원)은 동양그룹에 대한 특별검사 과정에서 동양그룹이 계열사에 부당대출을 해온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동양증권 자회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가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에 수백억 원을 부당하게 대출한 혐의를 찾았다는 것. 동양파이낸셜대부는 동양증권이 지분 100%를 가진 자회사다.

    금감원은 동양파이낸셜대부가 두 계열사에 돈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담보를 전혀 잡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김건섭 금감원 부원장은 10월 8일 긴급 브리핑에서 “동양증권의 불완전판매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를 진행하던 중 계열사 간 자금거래와 관련해 대주주에 대한 수사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문이 확산되고 있는 현 회장 등 경영진의 비자금 조성, 횡령 의혹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



    비자금으로 미국에 저택 구입

    ‘신동아’는 동양그룹의 탈·불법 경영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국세청 내부 문서를 다수 확보했다. 2009년 11월~2010년 2월 서울지방국세청(조사4국)의 세무조사 과정에서 만들어진 문건과 세무조사 과정에서 동양그룹과 국세청 사이에 오간 서류다. 당시 국세청은 동양메이저(현 주식회사 동양) 등 동양그룹 계열사 6곳에 대해 예치조사 방식으로 특별세무조사를 벌인 바 있다.

    세무조사가 진행 중이던 2010년 1월 작성된 ‘조사진행 보고내용’(이하 보고내용)에는 당시 국세청이 조사한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이에 따르면, 당시 국세청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동양그룹의 부실경영, 탈세·비자금 조성 사실을 상당 부분 확인했다. 비자금 조성, 현 회장의 개인 비리, 의심스러운 해외투자 손실, 계열사 간 부당지원, 과도한 이자 지급 등이 포함돼 있다.

    ‘보고내용’은 먼저 국세청이 동양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한 이유(혐의내용)를 이렇게 설명한다. △해외 자회사를 이용한 은닉자금 조성 혐의 등(2334억 원) △업무 무관 가지급금 및 인정이자(468억 원) △자산유동화(ABS) 임차료 부당행위 계산 부인(313억 원) △(주)PK2의 해외차입금 이자비용 과다 유출혐의(236억 원).

    ‘보고내용’은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통해 확인한 것과 확인 중인 것을 구분했다. 이 가운데 국세청이 확인했다고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국세청은 동양그룹 자회사 동양메이저가 해외투자법인을 통해 투자한 모든 사업에서 투자금 전부를 잃는 손실을 입었고, 이후 이를 회계상 손실처리했음을 확인했다. 동양그룹이 투자한 곳은 필리핀 시멘트 회사 SEACEM(1295억 원), 대만 시멘트 회사 CHIAHSIN(1533억 원), 북한 금광개발기업 TYSON(1050억 원) 등이었다. 이 세 곳에서 동양그룹은 투자금 전액을 날렸다. 동양그룹은 홍콩을 통해서 투자를 진행했다.

    “해외 비자금 2300억 업무 무관 지급 460억…”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그런데 국세청은 동양그룹이 실제로 해외투자 과정에서 손실을 봤는지 아닌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해외 자본투자를 빌미로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국세청은 2006년 동양시멘트 지분 49.9%를 취득한 미국계 펀드 (주)PK2가 국내보다 높은 이자율(5.08%)로 자금을 차입하는 과정에서 236억 원의 이자를 과다하게 지급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업무와 무관한 해외 자회사(동양홍콩)의 이자비용으로 468억 원을 사용한 사실도 확인했다. 동양홍콩은 이후 청산됐고, 이자비용은 고스란히 동양그룹으로 전가됐다. 동양메이저가 자기 소유 부동산을 유동화 목적으로 특수목적법인(SPC)에 양도한 뒤 다시 임차해 사용하는 과정에서 과다한 임차료를 지급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조사 당시 국세청이 현재현 회장의 개인 비리를 확인한 부분이다. ‘보고내용’에 따르면 현 회장은 1999년부터 한 불교 사찰에 62억 원 가량을 기부한 뒤 그중 60억 원을 국세청에서 부당공제 받았다. 당시 국세청은 현 회장이 실제 기부를 했는지, 자금의 출처는 어디인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사찰에 대한 조사도 벌였다고 한다.

    ‘이상한 합병’ 꼬리 물어

    동양그룹이 수십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온 사실도 확인됐다. 동양그룹은 1997년 필리핀에서 조성한 비자금 260만 달러를 이용해 미국에 주택을 구입했다. 주택의 용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주식 스왑거래 등을 통해 해외에서 24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도 확인됐다. 2005년 11월 청산된 동양홍콩이 보유하던 동양메이저 주식예탁증서 180만 주를 팔아 조성한 매각차익 10억여 원이 동양메이저로 들어오지 않고 대표이사의 카드사용대금 등 사적인 용도로 사용된 사실도 적발됐다. 동양메이저는 이 주식증서를 몇몇 개인과 법인에 처분하면서 ‘매각차익이 발생하면 동양메이저와 주식 매수자가 35:65의 비율로 수익을 분배한다’는 내용의 이면합의서를 체결한 바 있다. 동양메이저는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가공 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불법을 저질렀다.

    동양메이저 경영진은 그룹 계열사인 세운레미콘을 합병하는 과정에서도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합병 대상인 세운레미콘이 보유한 동양메이저 자산을 빼돌려 13억 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 이 자금 중 일부는 직원들의 명절 선물, 회식비 등으로 사용됐다. 동양그룹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처리한 과정은 형법상 횡령죄에 해당한다.

    국세청은 동양그룹이 국내외에서 차입한 자금에 대해 이자비용을 상습적으로 부풀려온 사실도 확인했다. 그렇게 사라진 돈만 650억 원이 넘는다고 ‘보고내용’에서 밝히고 있다. 사라진 돈은 모두 비용으로 처리돼 법인세를 낮추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세청은 동양그룹이 여러 차례의 계열사 합병과정에서 부당한 방식으로 계열사를 지원한 혐의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부분은 최근 동양그룹 사태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동양캐피탈(현 동양인터내셔널)과 관련된 것이어서 특히 관심을 끈다.

    2002년 동양캐피탈은 기업구조조정조합인 ‘코레트1호’에 920억 원을 출자했다. 코레트1호는 이 출자금으로 그해 3월부터 9월까지 신동양레미콘과 대호레미콘(이하 신동양·대호)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식 873억 원어치를 매입했다. 신동양·대호는 동양캐피탈의 특수관계법인으로 당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양·대호는 이렇게 조성한 자금으로 동양캐피탈 차입금 600억 원 이상을 상환했다. 결국 동양캐피탈의 돈으로 동양캐피탈의 빚을 갚는 식으로 신동양·대호가 부실을 털어낸 것이다.

    2년 뒤인 2004년, 신동양·대호는 동양그룹 계열사인 세운레미콘에 합병된다. 합병비율은 1(세운레미콘) : 0(신동양·대호). 사실상 신동양·대호의 청산이었다. 신동양·대호가 청산되면서 조합자금 대부분을 이들 회사에 투자했던 코레트1호도 자연스레 해산됐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신동양·대호의 부실은 고스란히 동양캐피탈로 이전됐다.

    동양그룹의 ‘이상한 합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5년 1월 동양메이저는 세운레미콘을 합병한다고 발표한다. 합병비율은 또 1:0. 앞서의 경우와 같은 방식으로 세운레미콘은 청산됐다. 그런데 합병 직전 동양메이저는 세운레미콘에 1900억 원을 빌려줬다. 세운레미콘은 이 돈으로 동양그룹 금융계열사로부터 빌린 돈을 갚았다. 자금대여와 합병을 거치며 세운레미콘의 부실이 고스란히 동양그룹(동양메이저)으로 이전된 것이다. 국세청은 이 모든 과정을 금융계열사들의 손실을 동양메이저가 우회적으로 부당지원한 것이라 판단하고 에에 해당하는 법인세 부과를 결정했다.

    “해외 비자금 2300억 업무 무관 지급 460억…”

    10월 8일 동양증권 노동조합 소속 노조원들은 현재현 회장을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외압 있었나

    앞에서 살펴본 동양그룹 세무조사 내용과 자료가 외부에 공개되는 과정은 흥미롭다. 세무조사가 끝난 뒤 1년쯤 지난 2011년 3월, 당시 세무조사 상황을 잘 아는 국세청 관계자가 국민권익위원회를 시작으로 검찰, 감사원, 몇몇 국회의원실 등으로 진정서를 보냈다. 세무조사 책임자인 모 국세청 국장(현재 퇴직)을 고발하는 형식이었지만, 사실상 세무조사 과정 전반에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신동아’가 입수한 ‘보고내용’ 등 자료도 모두 이 진정서에 포함돼 있다. 진정서에는 ‘세무조사 책임자(국세청 국장)가 조사과정에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 있어 눈길을 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기인(국세청 국장)은 2009년 상반기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장으로 재직하며 동양그룹 계열회사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동양그룹 위장계열사에 대한 그룹의 부당금전지원(구조조정조합을 이용)에 대한 부당행위를 적발하고도 추징하지 아니하고, 본청 OO국장 재직시 (서울청) 조사4국에서 다시 이를 적발하였음에도 과세되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였음. (…) OOO 조사반장으로부터 당초 조사1국에서 동양캐피탈 세무조사 시 이 건(계열사 부당합병을 통한 탈세)을 적출하였으나 국장의 지시로 과세하지 못했다는 말과 혹시 과세되지 않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

    진정서에 따르면, 2009년 국세청은 이례적으로 한 해 동안 동양그룹에 대해 2번의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2월에 서울청 조사1국이 정기세무조사를, 11월엔 조사4국이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진정인은 국세청 모 국장이 두 번의 세무조사에 모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의혹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국세청은 2009~2010년 진행된 특별세무조사 이후 동양그룹에 대해 상당한 액수의 추징세액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천억 원이 추징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당시 나온 의혹의 대부분이 과세 대상에 올랐다. 외압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국세청은 탈세, 비자금 조성 등과 관련해 검찰에 고발하는 등의 후속조치는 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국세청은 수백억 원 이상의 탈루액이 확인되면 해당 기업을 검찰에 고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무조사 과정에 국세청 고위간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내부 고발자의 주장은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양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가 진행될 당시 현재현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경제정책위원장)이었다. 현 회장은 동양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가 끝난 직후인 2010년 5월 백용호 국세청장을 초청한 회의에서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기간 연장을 최소화하고 조사 주기도 늘려달라”고 공개 요청하기도 했다.

    진정서 내용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신동아’는 10월 8일 국세청에 질의서를 보냈다. 동양그룹 세무조사 이후 후속조치, 국세청 간부의 부당 개입 여부, 검찰 고발이 없었던 이유 등을 물었다. 그러나 국세청 측은 “개별기업의 세무조사 결과와 관련된 사안은 공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며 답변하지 않았다. 동양그룹 측에도 연락을 취했지만 별다른 입장을 듣지는 못했다. 동양그룹의 한 관계자는 “답변을 할 만한 사람이 현재 (그룹에) 없다”고 말했다.

    10월 3일, 동양그룹이 2009년 세무조사와 관련 국세청을 상대로 진행해온 세금 소송에서 승소해 400억 원가량의 세금을 환급받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앞서 소개한 ‘코레트1호’를 통해 신동양·대호의 부실을 동양캐피탈로 이전한 것과 관련된 내용이다. 동양캐피탈은 당시 투자금을 손실처리한 뒤 그에 맞게 법인세를 신고했지만, 국세청은 “회수 가능성이 없는 특수관계법인의 주식을 고가로 매입한 부당행위”라며 법인세 448억여 원을 부과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당시 조사과정을 잘 아는 한 국세청 관계자는 “동양그룹 세무조사 관련 의혹에 대해 검찰과 감사원 등이 상당한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2009년 조사1국이 부당행위를 적발하고도 과세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최근 법원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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