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호

“朴 정부, 고장 난 자동차처럼 과거로 질주”

YS 차남 김현철의 거침없는 독설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13-11-21 0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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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 정부, 고장 난 자동차처럼 과거로 질주”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54) 씨를 처음 만난 것은 10여 년 전이다. 그가 1년간의 미국 어거스틴대 초빙교수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칩거하던 때였다. 귀국 후 첫 인터뷰였던 기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2004년 총선 출마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하지만 ‘YS 아들’에서 ‘정치인’ 김현철로 변신하기는 쉽지 않았다. 총선 때마다 의지와 상관없이 출마의 꿈을 접어야 했다. ‘비운의 황태자’란 말이 따라붙었다.

    그를 다시 떠올린 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독설 때문이다. 그는 새누리당의 모태인 신한국당을 만든 주역이고, 지난해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었다. 직설적으로 정곡을 콕콕 찌르는 게, 과거 YS의 거침없는 입담 그대로다. 그러고 보니 10년여 만에 다시 만난 그는 그때보다도 YS와 더 닮은 모습이었다.

    그는 지금 고려대 지속발전연구소 연구교수와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로 있다. 한양대에선 ‘글로벌 국정관리 세미나’ 강좌를 맡고 있다. “여전히 젊어 보인다”고 덕담을 건네자 “요즘은 학교에 나가 젊은 피들이랑 어울리는 데다 여의도 출입도 안 하니까 정신건강이 더 좋아진 것 같다”며 웃었다.

    “올해부터 강의를 시작했어요. 첫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40명 중 딱 2명이 손 들어요. 그나마 한 명이 ‘대통령 아들’이라고 하니까 다른 한 명은 잘못 알았던지 슬그머니 손을 내리더군요(웃음). 맞힌 학생도 마침 그날 아침 방송에 나온 저를 봐서 알았대요. 시간이 참 많이 흐른 거죠.”

    “박 대통령은 결과적 수혜자”



    ‘글로벌 국정관리 세미나’는 세계화, 금융실명제 등 김영삼 정부의 개혁정책을 분석하고 현재의 시각에서 재평가하는 강좌라고 한다. 김영삼 정부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의 주범이라는 낙인이 너무 강해 그간 객관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 이를 바로잡겠다는 집념이 느껴졌다. 김영삼 정부 이야기가 나온 터라 3당 합당을 화제로 올렸다.

    “3당 합당이 실질적인 군정 종식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봅니다. 1987년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도 대선에서 양김이 갈라서는 바람에 군정 종식에 실패했어요. 더구나 당시 지역감정이 고착화해 4당 체제로는 민주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이 낮았어요. 우리 민주계가 3당 합당을 통해 호랑이굴에 들어가 어려움 속에서도 호랑이를 때려잡은 거죠. 그래서 1992년 군부세력을 완전히 배제한 채 민간정치인 후보들로만 선거를 치를 수 있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민주화를 이룬 거죠. 3당 합당이 없었으면 군사정권이 더 이어지고 민주화가 훨씬 늦춰지는 등 대단히 불행한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 최근 트위터 등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더군요.

    “1987년 직선제 쟁취로 민주화를 꽃피운 이후 5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민주주의가 이렇게 후퇴할 거라고 상상도 못 했어요. 40년 전 유신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국정원은 물론 군까지 선거에 개입했다는 말이 나오고…. 더 심각한 건 박 대통령이 자신은 도움 받은 것도 없다며 침묵한다는 거예요.”

    ▼ 박 대통령이 시킨 일도 아닌데, 어떤 의미에선 그도 피해자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건 당시 그는 집권당 대선후보였어요. 자신이 알았든 몰랐든 결과적으로 수혜자죠. 같은 여당이었지, 이명박(MB) 정권과 별개 정당이었던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MB 정권과 다른 정권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도덕적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은 말로는 자신은 관계없다고 하면서 행동은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국정원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해임한다든지, 검찰총장이 불편하니까 개인 비리로 쫓아낸다든지 하는 게….”

    ▼ 취임 이후의 행보가 잘못이라는 건가요.

    “그렇죠. 정말 자기가 깨끗하다면 집권 후에 그렇게 해선 안 되죠.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것을 개인의 일탈행위로 치부하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철저히 조사해 일벌백계함으로써 다시는 이 땅에 과거의 독재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도록 뿌리 뽑아야 합니다. 그 일에 대통령이 앞장서야 하는데 지금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어요.

    ‘셀프 개혁’ ‘셀프 감찰’로 적당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에요. 정권이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제대로 일할 수 없어요. MB 정부도 초창기에 쇠고기 파동으로 홍역을 치른 후 임기 내내 끌려다녔잖아요.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은 정권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예요. 이렇게 말하면 ‘대선 결과를 부정하는 거냐’고 하는데 그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죠.”

    “원로가 없다”

    ▼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한 것은 어떻게 봅니까.

    “바로 그래서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정부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어요. 21세기에 아직도 공안통치, 공포정치를 하고 있어요. 물론 이석기 같은 이가 의회에 들어와 있는 것은 말이 안 돼요. 하지만 통진당이 해산돼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죠. 이 정권은 앞뒤가 안 맞는 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처럼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하면서, 통진당 사건은 현재 수사 중이고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해체하라고 하는 거예요. 법리상으로도 앞뒤가 안 맞죠.”

    ▼ 박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보는 게 또 있나요.

    “너무 많죠. 인사만 봐도 극우 인사들이 부활하고 있잖아요. 여당 내부에서조차 반대한 윤창중 대변인 같은 인사를 강행했다가 우리나라를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었잖아요. 김기춘 비서실장도 그래요. 누가 뭐래도 유신헌법을 기초한 사람, 중앙정보부 공작정치 책임자였는데 그런 이력을 가진 사람을 구태여 쓴다는 건….

    ‘제2의 새마을운동’을 주창한 것도 그래요. 아직도 군사독재 시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분이 많은데 그 상징인 새마을운동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죠. 더구나 온 국민이 국정원 문제를 놓고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데 보란 듯이 새마을운동 이야기를 하니, 진짜 오만하고 독선적인 행태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걸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잘못돼 있는 것 같아요.”

    ▼ 박 대통령에게 충고를 한다면.

    “가장 큰 문제가 원로가 없다는 거예요. 그게 대통령에게도 대단히 불행한 일이 될 겁니다. 지금 정권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과거로 질주하고 있어요. 박 대통령 본인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요. 이럴 때 제동을 걸어줄 원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정치 원로, 사회 원로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요. 과거 대통령들은 전임 대통령들을 불러 이야기도 듣고, 역대 총리와 국회의장들을 초청해 조언도 듣곤 했는데 박 대통령은 그런 적이 없어요. 매일 ‘레이저 광선’만 쏘고 있죠. 그러니 나이 든 비서실장이 군사독재 시절에나 할 법한 ‘받들어 모시겠다’는 표현을 하는 거죠.”

    ▼ 여야 정치권의 잘못은 없을까요.

    “정치가 실종됐어요. 예전엔 아무리 정국이 경색되어도 여당이 물밑에서 대화로 풀어가려 노력했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이 보이질 않아요.”

    YS민주센터 이사들과 갈등

    “朴 정부, 고장 난 자동차처럼 과거로 질주”

    김현철 교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사진은 2011년 10월 황장엽 씨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부자(父子).

    ▼ 지금의 정국 경색은 야당이 초래한 측면도 있습니다.

    “야당은 늘 그랬어요. 새누리당도 야당 시절 그랬어요. 노무현 정권 시절,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한다고 탄핵까지 했잖아요. 사사건건 발목 잡고…. 야당은 원래 그런 거예요. 그걸 여당이 풀어야지, ‘그렇게 나오면 아예 상대를 않겠다’고 하면 정치가 실종될 수밖에요. 지금 정치권은 정치력이 너무 취약해요.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없고, 정치권은 정치력이 부재하니 국정이 마비되는 거죠. 국민이 총체적 난국에 버려진 상황이죠.”

    YS는 4월 6일 폐렴 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후 아직 퇴원을 못하고 있다. 한때 심각한 상태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호전됐다고 한다.

    “늘 아침운동을 나가셨어요. 4월 초라 일교차도 심한 데다 그날 좀 무리를 하신 모양이에요. 처음엔 가벼운 감기인 줄 알고 병원에 가셨는데 갑자기 급성폐렴으로 악화된 거예요. 지금은 회복 단계이긴 한데 연세가 있어 회복 속도가 느려요. 요즘은 식사도 조금씩 하세요. 의식은 맑아 대화도 잘하고, 농담도 하세요. 병원에만 있으니까 갑갑해하시는데 좀 더 계셔야 하는 모양입니다.”

    YS는 2011년 1월, 50억 원 규모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YS민주센터(이사장 김수한)는 이 재산을 바탕으로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이하 YS도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상도동 자택에서 도보로 5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1221㎡(370평) 규모의 부지에 지상 6층, 지하 3층으로 설계됐다. 완공되면 김대중도서관과 함께 양 김의 상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9월 현철 씨가 YS민주센터 이사직 사임을 발표하며 “앞으로 아버지의 기념도서관과 관련한 어떠한 일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YS민주센터 측은 “가족은 당연직 이사라 사표 접수가 안 된다”고 했지만, 그는 지금까지 이사회 회의에 불참하는 등 발길을 끊고 있다.

    ▼ 사임을 선언한 이유가 뭔가요.

    “YS도서관이 완공되면 할 일이 많아요. 아버님 업적도 제대로 정리해야 하고,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도 정리해야 하고, 문민정부 자료도 축적해야 하고, 민주주의 훈련장으로서의 역할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YS민주센터 이사들은 솔직히 이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요. 이분들은 운영의 일부만 책임지고, 진짜 중요한 소프트웨어는 대학 같은 전문기관에 맡겨야죠. 제 주장은 김대중도서관을 연세대에 기증했듯이 아버님 모교인 서울대에 기부채납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버님 생각도 그렇고요. 그런데 상도동계 인사들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동교동계도 처음엔 반대했는데 DJ가 강력하게 의지를 표명해 결국 기증했다고 들었어요. 능력도 안 되고, 전문성도 없는 분들이 틀어쥐고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朴 정부, 고장 난 자동차처럼 과거로 질주”

    김현철 씨가 2012년 3월 자신의 19대 총선 공천 탈락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상도동계 인사들이 반대하는 이유가 뭔가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진짜 아버님을 위한다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게 안타까워요.”

    ▼ YS가 직접 뜻을 표명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아버님이 직접 김수한 전 의장을 불러 말씀하셨고, 저도 이사회에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버티는 거예요.”

    YS도서관 건립 소요 예산은 150억 원이다. 국고 보조 50억 원, YS가 출연한 재산 50억 원 외에 50억 원 이상을 더 모아야 한다. YS민주센터 이사진은 김수한, 김무성, 김덕룡, 박관용, 이석채 등 쟁쟁한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기부금이 잘 안 모이는 모양이다. 당초 올해 6월 완공 예정이던 것이 내년 2월로, 다시 내년 하반기로 늦춰졌다.

    “기금 모을 생각은 안 하고 아버님 재산을 처분하는 데만 급급해요. 심지어 아버님께서 ‘거제도 생가 뒤편의 땅은 거제시와 공동으로 공원화를 위한 작업을 해야 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신 선산 주변 땅은 다른 건물이 들어서면 좋지 않으니까 이 두 곳은 절대 팔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그 땅까지 팔려고 해요. 보고도 안 하고 팔려고 하니까 저로선 불쾌하죠.”

    ▼ 생각보다 기부금이 안 들어오는 모양이네요.

    “저는 이사들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심지어 대학도 현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박정희기념관이었다면 벌써 완공됐겠죠.”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는 듯 그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아버님이 몇 달째 병원에 누워 계신데 현 정권은 쾌유를 기원하는 난(蘭) 하나 안 보내왔어요.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이 한번 찾아온 적도 없고요. 이명박 대통령 때는 입원하면 직접 전화까지 했는데…. 원수 진 정적(政敵)이라도 이렇게는 안 할 겁니다.”

    “朴에게 정치 사기당했다”

    현철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정치가 꿈”이라고 할 정도로 ‘뼛속까지 정치인’이다. 일찍부터 아버지를 도와 YS가 대통령이 되는 데 기여했고, 김영삼 정부 시절엔 소통령, ‘小山’(YS의 아호 ‘巨山’을 빗댄 표현)으로 불릴 정도로 2인자 노릇을 했다.

    하지만 이후 행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1994년 한보 사건에 연루돼 구속 기소된 그는 정작 한보 사건과는 무관한 대선자금 잔금 문제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04년에도 대선자금 잔금 문제로 구속, 추징금 5억 원을 선고받았다. 이외에도 종종 그의 이름이 언론을 장식했지만 지나고 보면 별 사건이 아니거나 무혐의로 종결되곤 했다. 하지만 두고두고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회에 진출하려던 계획의 발목을 잡았다.

    ▼ 2002년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총선 때마다 출마를 선언했다 포기하기를 반복했는데, 이유가 뭔가요.

    “결국 민주계 중심의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기 때문이죠. 그때마다 지도부가 민정계 중심으로 움직였어요. 그러니 제가 공천이 안 될 수밖에요.”

    ▼ 지난해 19대 총선 때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번 총선에서 ‘속았다’고 했지만 저는 이번에 박 위원장에게 완전히 속았다. 철저하게 정치 사기를 당한 것으로, 이는 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무자비한 정치보복이자 정치테러”라고 강하게 비판했는데요.

    “저는 그때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가 들어서는 걸 보고 무소속 출마를 준비했어요. 민정계 사람들에게 한두 번 속은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당시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가 만나자고 하더니 ‘왜 공천 신청도 안 해보고 무소속 출마를 결정하느냐’며 만류하는 거예요. 저는 ‘해봤자 안 되는 거 아니냐, 괜히 신청했다 안 되면 나만 더 우습게 된다, 나는 무소속으로 나가도 자신 있다’고 했죠. 그랬더니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박 위원장에게 이야기해서 외풍을 다 막아주겠다고.”

    ▼ 당직자 혼자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떻게 혼자 결정해서 내게 책임지지 못할 얘기를 했겠어요. 그런데 막아주긴 뭘 막아줘요. 제가 공천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당내 경선에만 나가도 여론조사 1등은 자신 있었는데, 아예 서류심사에서 떨어뜨린 거예요. 저는 그 일이 김기춘 당시 의원과 무관하지 않다고 봐요. 거제는 그분 지역구이기 때문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죠. 결국 김 의원 후배 검사 출신이 공천 받고 나왔다 떨어졌잖아요. 나중에 그 핵심 당직자가 그러더군요. 자기도 한계에 부딪혔다고. 무슨 말이겠어요? 박 위원장이 안 된다고 한 거겠지. 박 위원장에게 나에 대한 감정도 있었겠지만 YS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못 믿을 약속

    ▼ 그런데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지 않은 이유는.

    “무소속으로 나가려고 했죠. 그런데 김한표 씨가 있었어요. 문민정부 때 우리 가족 경호를 했어요.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사이죠. 여론조사 결과 우리 두 사람 중 한 명만 나오면 누구라도 당선되지만, 둘 다 나오면 야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되는 걸로 나왔어요. 저는 그 사람과는 처지가 다르잖아요. 둘 다 나와서 떨어지면 제가 떨어진 게 뉴스거리가 되고, 더구나 야당이 당선되면 그 비난은 내가 다 받게 되고…, 제가 포기할 수밖에요. 그래서 여도 야도 아닌 그 사람이 당선됐죠.”

    ▼ 2008년에도 공천에서 탈락했는데, MB 정권에도 속은 거라고 봅니까.

    “결과적으로 그런 셈이죠. 적극적으로 해주려고 했으면 해줄 수 있었는데…. 이재오 의원이 너무 쉽게 생각한 부분도 있어요.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당시 제가 ‘나를 공천하려면 당헌·당규를 고쳐야 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알았다’고 하면서 안 고친 거예요.”

    ▼ 당시 현철 씨를 1997년에 구속한 검사 출신 국회의원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 기소유예되기도 했죠.

    “감정을 잘 다스렸어야 하는데, 당시 화가 많이 났었어요. 1997년 구속은 억울한 부분이 많았어요. 당시 조사를 받으면서 ‘막상 조사해보니까 당신만큼 깨끗한 사람 없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그런데도 결국 저를 구속기소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공천 탈락시키고 그 검사는 공천을 받았으니 결국 저를 두 번 죽인 셈이었죠. 그래서 그 사람에게가 아니라 당에 불만을 표출한 것이었죠.”

    ▼ 지역구인 거제는 자주 내려가나요.

    “요즘은 잘 안 내려갑니다. 과거 그 정당에 몸담고 있을 때는 제게 거제가 가진 상징성이 컸지만, 이젠 꼭 거제를 고집할 필요는 없어졌으니까요.”

    ▼ 왜 그렇죠.

    “제가 그동안 그 당에 몸담았던 이유는 3당 합당 정신으로 합리적 개혁, 온건한 개혁을 추진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당은 그 분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대단히 수구적인 세력이 잡고 있어요. 그런 당에 같이할 수 없어 나온 겁니다. 지금 정치는 여당에 너무 힘이 기울어져 있어요. 야당도 반성할 게 너무 많죠. 여당이 잘못해서 지지율이 떨어져도 야당 지지율은 오르지 않잖아요. 그만큼 중도세력이 지지할 정당이 없습니다.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전한 중도민주세력이 힘을 모은 야당이 필요합니다. 그 일에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그런 민주정당에서는 제가 꼭 거제를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부산, 서울 등도 고려할 수 있겠죠.”

    ▼ 왜 그렇게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 건가요.

    “아버지가 정치하는 걸 옆에서 도우면서 보스 정치, 1인 중심 정당의 문제점을 많이 봤어요. 공천권, 조직, 자금을 한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건 민주정당이 아니죠. 지금 외형적으로는 정당 민주화가 된 것 같지만 내면은 그때와 똑같아요. 제가 공천에 계속 떨어진 것도 그 때문이죠. 국회의원들이 거수기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수직적인 정당 구조를 타파하고, 네트워킹 정치 구조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또한 우리나라는 지역갈등, 세대갈등, 이념갈등 등 온갖 갈등이 중첩되어 있어요. 통일시대를 열어가려면 남남갈등부터 풀어야 합니다. 특히 지역갈등은 반드시 타파해야 할 문제인데, 누구보다도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해요. 1987년 이후 지금까지 분열돼 내려온 민주세력을 다시 하나로 묶는 역할을 제가 할 겁니다.”

    일맥산악회 건설

    ▼ 앞으로의 계획은.

    “곧 정치권에 큰 변화, 빅뱅이 올 거라고 봐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국민의 신뢰를 잃은 현재 여야를 대체할 중도민주세력이 힘을 얻을 겁니다. 이를 위해 과거 민주세력을 하나로 모으는 가교 노릇을 할 겁니다. 일맥산악회를 만들었는데, 지금 전국적으로 시도지부를 창설해가면서 전국 조직화하는 중입니다. 아직 명단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훌륭한 분을 많이 모으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돌이켜보니 왜 이렇게 자꾸 꼬였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아버님이 처음 저에게 정치를 권유한 게 1988년 13대 총선 때였어요. 신생 지역구였던 부산 사하구를 추천하시더군요. 그런데 그곳은 이미 민주계 의원이 활동하고 있었어요. 제가 양보할 수밖에 없었죠. 1992년엔 아버님이 대통령 출마하면서 지역구를 제가 물려받으려고 했는데 민정계 의원에게 넘겨버리더라고요. 첫발을 내디딜 때 문제가 생기니까 계속 틀어지더군요.”

    김영삼 정부 시절 그의 잘못들은 재판을 통해 가려졌다. 감옥에도 다녀왔고, 추징금도 냈다. 무엇보다 야인으로 지내며 20년 가까이 근신의 시간을 보냈다. 그의 나이 벌써 50대 중반, ‘황태자’의 비운이 언제쯤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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