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실수에 관대한 문화가 활기와 창의성 꽃피워

‘기업 혁신의 멘토’ 아이디오

  • 구미화 객원기자 | selfish999@naver.com

    입력2013-12-18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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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들이 저마다 혁신과 창의성이 살길이라고 외친 지 오래다. 그래서 달라진 면도 있지만, 과연 성공적인 혁신 덕분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여전히 가장 전망 좋은 공간은 오너나 임원 차지고, 브레인스토밍이 또 하나의 부담스러운 회의가 돼버린 기업도 많다. 세계 최고의 혁신기업 아이디오(IDEO)가 실천하는 ‘돈 버는 혁신’은 어떤 것일까.
    실수에 관대한 문화가 활기와 창의성 꽃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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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디오는 미국의 디자인 컨설팅 기업이다. 전 직원이 600명 조금 넘는 규모지만, 세계적인 기업들과 작업하며 ‘혁신’의 대명사로 불린다. 아이디오가 창안한 애플 컴퓨터의 첫 번째 마우스, P·G 크레스트 치약의 한 번 돌려 여는 뚜껑, 개인용 휴대단말기(PDA) 팜(Parm) V 등은 디자인을 통해 기술을 혁신한 사례로 꼽힌다.

    펩시콜라, 도요타, JP모건 등도 아이디오의 고객이며, 삼성전자, 현대카드 같은 국내 기업도 고객이다. 특히 삼성과는 수년에 걸쳐 컴퓨터 모니터를 함께 개발했다. 현대카드는 단순히 신용카드 디자인을 의뢰하는 수준을 넘어, 장기 전략을 세우고 운영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아이디오와 긴밀히 협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디오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건 1999년 미국 ABC방송 ‘나이트라인’에서 아이디오를 집중 보도하면서부터다. 당시 ABC는 아이디오에 닷새 만에 대형마트에서 사용할 새로운 카트를 만들어달라는 미션을 주고, 미션 수행 과정을 녹화해 내보냈다. 지금까지도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이 영상을 즐겨 보는데, 특히 경영학 수업이나 기업 연수 프로그램 등에서 자주 활용한다.

    카트에 보기 좋은 새 옷을 입히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방송 주제는 ‘혁신’이었다. 그 자체로 완벽하진 않지만 미국인에게 이미 익숙해진 카트를 어떻게 새롭고 만족스럽게 변화시킬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그것도 단 5일 만에. 아이디오 공동대표인 톰 켈리는 ‘유쾌한 이노베이션’이라는 책에서 “이노베이션 지옥에 빠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5일간의 미션 수행 과정은 아이디오가 어떻게 혁신을 이끌어내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아이디오는 맨먼저 젊은 직원 피터 스킬먼을 주축으로 팀을 꾸렸다.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는 물론 심리학, 건축학, 경영학, 언어학, 생물학 등을 전공한 이들이 팀원으로 참여했다.



    아이디오에선 연공서열이나 담당부서 같은 구분이 철저히 무시된다. 엄격한 위계질서나 고지식한 영역 주장이 조직원들의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팀워크를 무너뜨린다는 생각에서다. 프로젝트가 떨어지면 일사불란하게 팀을 꾸리고 정해진 마감시간을 향해 전력질주할 수 있는 게 아이디오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힌다.

    브레인스토밍, 프로토타이핑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팀원들은 가장 먼저 카트는 물론, 카트를 사용해 장을 보는 행위 자체를 다시 들여다보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마트에 가서 사람들이 실제로 카트를 사용하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고, 전문가에게 자문도 했다. 카트 구입 대행업체 관계자 의견을 듣고, 동네 자전거 가게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소재를 탐구했다. 유아용 카시트와 유모차를 분석적으로 살피는 팀원도 있었다.

    아이디오는 디자인이 성공하려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좀 더 생산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보기 좋아도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제품이라면 곁에 두고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 그래서 인간적인 접근에 가장 큰 무게를 두는 아이디오에선 관찰하는 것으로 모든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디자이너, 자료조사원 따로 구분하지 않고 팀원 전체가 목표물이 있는 현장을 누빈다.

    하루 동안의 관찰과 조사를 통해 팀원들은 어린이에게 좀 더 친근하면서도 안전하고 효율적인 쇼핑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그리고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둘째 날 아침 모두가 브레인스토밍에 참여했다.

    브레인스토밍은 자유분방한 분위기였지만 분명한 규칙을 따랐다. 가능한 한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 모든 아이디어는 문자 혹은 그림으로 표현해 벽에 붙였다. 1시간여 만에 수많은 아이디어가 벽을 메웠다. 브레인스토밍은 60∼90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아이디오의 또 다른 규칙이다. 모든 팀원은 자신의 맘에 드는 아이디어에 색깔 포스트잇을 붙였다.

    점심시간 이후엔 팀원들이 가장 많은 지지를 표시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시제품(prototype) 4가지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각각 이동편의, 계산편의, 수납편의, 안전에 초점을 맞췄다. 3시간 만에 완성해야 했으니 결과물은 조악했다. 그러나 각각의 아이디어가 현실적으로 어떤 장단점을 가졌는지 확인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시제품을 기초로 완성품에 반드시 포함해야 할 기능을 골라내 정교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둘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시제품 만들기(prototyping)’는 브레인스토밍만큼이나 아이디오를 상징하는 절차다.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끄집어낸 아이디어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실물 크기로 만들어보는 작업이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물체로 표현하면서 팀원들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며 마감의 압박을 이겨낸다.

    아이디오를 설립한 데이비드 켈리 회장이 자주 하는 말이 “손으로 생각하고, 뭔가 만들거나 시도해본 다음에 얘기하라, 그 반대로 하지 말고”다. 그는 톰 켈리 공동대표의 형이다. 톰 켈리 대표는 “어떤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에 관한 프로젝트라면, 팀원이나 고객에게 실제 해보임으로써 아이디어를 구체화해볼 수 있다”고 했다.

    셋째, 넷째 날은 시제품의 대표적인 특징들을 반영해 설계도를 완성하고, 실물을 제작하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섯째 날 아침 스포츠카처럼 미끈하게 빠진 카트가 완성됐다. 곡선으로 된 뼈대에 바구니 6개를 2단으로 끼워 넣을 수 있는 형태였다. 식품을 담은 비닐봉투도 편리하게 걸 수 있도록 했다. 손잡이 부분에 파란색 플라스틱으로 어린이 의자를 설치하고, 안전띠도 달았다. 주어진 닷새를 다 쓰지 않고도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팀원들은 그날 오후 모두 휴식을 취했다.

    “똑똑한 사람과 의논하라”

    방송이 나간 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은 신형 카트보다 아이디오의 작업 방식에 더 쏠렸다. 그전에도 집단 창의성이나 비즈니스 혁신에 관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눈으로 확인해준 건 아이디오가 처음이었다. 이후 아이디오엔 혁신적인 제품은 물론 제조 공정 및 기업문화를 새로 디자인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기업들엔 브레인스토밍과 프로토타이핑이 유행처럼 번졌다.

    아이디오는 1978년 데이비드 켈리가 캘리포니아 주 팰러앨토에 세운 작은 디자인 회사로 출발했다. 켈리는 오하이오 주 버버턴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카네기멜론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1973년 보잉사에 입사하면서 보잉 제조공장이 있는 시애틀로 옮겨왔다. 사회 초년병으로 보잉 747기 내부 설계 작업에 참여한 그는 승객들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 중 하나인 ‘lavatory occupied(화장실 사용중)’ 표시등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후 세계 최초로 금전등록기를 개발한 NCR로 이직했다. 그러나 이내 대기업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스탠퍼드대 제품디자인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그는 보잉사 재직 당시 인근 스탠퍼드대에 제품디자인 프로그램이 있는 걸 알고, 인간의 특성을 고려한 테크놀로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학창 시절 공부와 거리가 멀었던 자신을 스탠퍼드대가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아 NCR 본사가 있는 오하이오 주로 떠났다. 그런데 합격 소식이 전해져 스탠퍼드대가 있는 팰러앨토로 돌아왔다. 이후 지금까지 팰러앨토를 근거지로 살고 있다.

    1977년 석사과정을 마쳤을 때, 스탠퍼드대 학위를 갖고 일자리를 구하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조직생활이 잘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그는 직접 사업을 벌이기로 결심했다. 자금도 인맥도 없었던 그는 평소 멘토로 여기던 밥 매킴 스탠퍼드대 교수에게 찾아가 함께 일할 동료를 추천받았다.

    매킴 교수의 도움으로 켈리는 스탠퍼드대 출신의 딘 허비와 ‘허비 켈리 디자인’을 열었다. 팰러앨토의 의류상가 2층에 사무실 두 칸을 얻고, 스탠퍼드대 졸업생 4명을 엔지니어로 고용했다. 번듯한 사업계획서 같은 것도 없이 사무실부터 열었던 터라 처음엔 스탠퍼드대 교수들이 주는 일감을 받아 처리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기계와 의료기기 등을 디자인하는 작업이었다. 그런 일마저 없을 때 직원들은 갖은 재료와 소품들을 이용해 희한한 물건을 만들고 짓궂은 장난을 쳤다.

    당시 팰러앨토엔 그들과 비슷한 처지의 신생기업이 많았다. 켈리는 한가할 때면 스탠퍼드대 동창이 운영하는 다른 디자인회사에 가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자기 회사 사정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침 그 회사가 애플과 거래를 하던 터라 스티브 잡스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이후 켈리는 애플 제품 일부를 맡아 디자인했고, 덕분에 회사 인지도가 올라갔다. 애플 제품을 디자인하는 곳이 어디인지 사람들이 궁금해한 것.

    켈리는 “잘 모르는 문제나 힘든 결정을 앞두고 어려움을 겪는다면, 주위의 모든 똑똑한 사람과 의논하라”고 말한다. 그가 매킴 교수나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는 동창에게 터놓고 도움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허비 켈리 디자인회사는 세워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애플은 켈리에게 급성장하는 기회뿐 아니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문화의 좋은 본보기를 제공했다. 그는 “애플 사람들을 만난 뒤 혁신 문화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청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자유롭게 일하는 근무환경은 물론 실험실과 사무실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방식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이나 경력에 신경 쓰지 않고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는 분위기도 그를 매료시켰다. 이후 켈리는 팀워크를 토대로 모험에 뛰어들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무실 분위기를 바꿔나갔다.

    1980년 켈리와 공동 창업한 딘이 떠나면서, 이듬해 회사 이름이 데이비드 켈리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켈리는 팰러앨토에 자리 잡고 있던 영국 출신 디자이너 빌 모그리지, 마이크 너톨과 손을 잡았다. 접었다 펴는 노트북PC 형태를 처음 디자인한 빌 모그리지는 ‘모그리지 어소시에이츠’와 ‘아이디투(ID Two)’라는 디자인회사를 갖고 있었다. 한때 아이디투에 몸담았던 마이크 너톨은 독립해 ‘매트릭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결국 데이비드 켈리 디자인까지 4개의 디자인회사가 하나로 뭉쳐 아이디오가 됐다. 아이디오란 회사명은 빌 모그리지가 택한 ‘ideology’에서 ‘아이디어’를 뜻하는 접두사 ‘ideo’만 딴 것이다.

    켈리는 당시 합병이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결합하고자 하는 고객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탁월한 결정”이라고 했다. 실제로 아이디오는 1990년대 들어 급격히 성장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빌 모그리지는 지난해 폐암으로 세상을 떴고, 마이크 너톨은 디자인 컨설턴트로 독자 행보를 걷고 있다. 켈리도 2000년에 아이디오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현재 아이디오는 그의 동생 톰 켈리와 영국 출신 디자이너 팀 브라운이 이끌고 있다. 켈리는 회장으로서 아이디오의 전략적인 방향과 기업문화에만 관여한다.

    켈리는 최근 ‘포춘’지에서 “다른 이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만한 무대를 만들었다는 데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이디오가 창의성과 혁신의 무대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주인의식이 꼽힌다. 아이디오에선 일방적으로 인사 발령 내는 일이 드물다. 자신이 속하고 싶은 팀이나 도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를 직원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켈리는 창의성이 특별한 소수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으며, 다만 발휘할 기회가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어디서 누구와 일하느냐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회사 규모가 작을 땐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었지만, 직원이 100명을 넘어서자 그게 불가능해졌다. 결국 과감하게 재편을 시도했다. 우수한 직원에게 팀장 권한을 주고 팀원 10∼20명을 모은 다음, 팰러앨토에 있는 아이디오 사무실 여러 곳 중 원하는 곳을 골라 일하도록 했다.

    failing forward

    그러나 팀장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팀원을 지명할 수는 없었다. 팀장은 직원들에게 자신이 하려는 일과 자신이 생각하는 혁신적인 작업방식에 대해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직원들의 선택을 받아야 했다. 직원들은 원하는 팀장 2명을 고르고 우선순위를 정해 켈리에게 전달했고, 켈리는 직원들이 되도록 1순위로 선택한 팀에서 일할 수 있도록 팀 규모를 탄력적으로 조정했다. 이렇게 완성된 팀 조직은 2년간 유지된 다음 재조직하도록 했다. 이렇게 팀을 구성했지만,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있으면 언제든 ‘헤쳐모여’가 가능하다.

    각각의 팀을 아이디오에선 ‘스튜디오’라고 부른다. 팀장이 아이디오 건물 중에서 스튜디오 공간을 선택해 전체적인 윤곽을 설정하면 나머지는 팀원들이 알아서 꾸민다. 아이디오 사무실 천장엔 자전거들이 매달려 있다. 산만해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유치원 같다고도 하지만, 직원들은 자부심으로 충만하다. 누구의 명령이나 허락 없이 직원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켈리는 물론 직원 대부분이 출퇴근할 때 주로 자전거를 이용하는데, 자전거를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자 누군가 천장에 자전거를 매달았다. 팰러앨토 사무실은 층고가 꽤 높아 시도해봄직한 일이었다. 또 다른 직원이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 손쉽게 자전거를 들어 올리는 기구를 개발하면서 천장은 공간부족이나 분실 걱정 없는 아주 훌륭한 자전거 보관소가 됐다.

    톰 켈리는 “직원들이 직장에 주인의식을 가지면 아주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재미와 일이 융합하면 사무실에 활기가 넘치”는 것은 물론이다. 아이디오는 어디서 누구와 일할지 스스로 선택하게 함으로써 직원들에게 강력한 오너십을 갖게 했다.

    형과 달리 MBA 출신으로 많은 기업의 경영 컨설팅을 해온 톰 켈리는 “전 세계 수많은 일류기업을 방문해본 결과 팀워크의 요체는 공평함과 단순함”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위에 따라 달라지는 사무실 규모나 중역 전용 주차 공간 등은 1950년대 전통”이라며 “상급자에게 더 좋은 공간을 주려는 관습은 팀워크와 기업문화를 해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누군가를 특별하게 대접하려는 의도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당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 그래서 그는 “기업의 공간 활용 방식은 기업의 보디랭귀지”라고 했다.

    말로는 혁신을 부르짖고 직원 오너십을 강조하는 기업들이 실제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밖에선 잘 몰라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안다. 아이디오에선 공간이 신분을 상징하지 않는다. 사무실 칸막이부터 책상과 파일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에 따라 언제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공동대표 팀 브라운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별도 사무실이나 따로 정해진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선택권과 공평함 외에 아이디오가 가진 또 하나의 남다른 문화는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다. ‘포브스’는 “아이디오가 ‘실패를 디디고 전진하는(failing forward)’ 기업문화를 통해 직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혁신을 추구해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고 보도했다. 직원들이 실수할까 염려하는 분위기라면, 그곳에서 일하는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 새롭고 더 나은 방식을 발견할 기회도 줄어든다. 자신이 하는 일을 단지 ‘실수 없이 처리해야 업무’로 여긴다면, 창의성이나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실패할 수 있는 권한

    ‘포브스’는 그런 점에서 “진정한 직원 오너십은 마음껏 시도해보고 실패할 수 있는 권한에서 비롯된다”고 썼다. 아이디오의 슬로건은 “빨리 성공하려면 자주 실패하라(Fail often to succeed sooner)”다. 사실 아이디오를 대표하는 작업 과정 ‘프로토타이핑’ 자체가 실패하더라도 시도해보자는 의도를 제도로 정착시킨 것이다. 브레인스토밍 또한 아무리 엉뚱한 발상이라도 일단 입 밖으로 내뱉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런 문화를 정착시킨 데이비드 켈리는 직원들에게 “나는 당신의 성공보다 실패가 더 흥미롭다”고 즐겨 말한다. ‘포브스’는 아이디오의 이 같은 문화가 “직원들의 오너십을 강화하고, 높은 참여도와 낮은 이직률로 이어져 결국 거대한 성공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아이디오가 참여한 프로젝트 중 켈리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건 1996년 작업한 하트스트림의 심장 제세동기다. 그전까지 심장 제세동기는 신체의 적절한 부위에 패드를 부착하고 버튼을 누르면 작동했다. 언뜻 빠르고 간편해 보이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제세동기를 써보지 않은 사람은 패드를 어디에 붙여야 할지 난감해한다. 관찰을 통해 이 점을 파악한 아이디오는 벽에서 잡아 꺼내는 순간 사용법을 들을 수 있고, 그 지시에 따라 패드를 부착하고 버튼을 누르면 작동되는 제세동기를 개발했다. 제세동기 자체가 아니라 제세동기를 사용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인간적인 디자인에 그는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아이디오의 업무는 크게 소비재, 보건의료, 시스템 세 분야로 나뉜다. 시스템은 기업이나 조직 운영 방식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보건의료 분야 업무가 확대되면서 아이디오는 국내 대형 병원들과도 교류한다.

    켈리는 2007년 후두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의사는 생존율이 40%라고 했지만, 수술과 항암치료 후 비교적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암 투병 후 그는 개인과 조직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디자인 학교 강의가 대표적이다. 스탠퍼드대 시절 가르치는 일에 매력을 느낀 그는 2005년 스탠퍼드대에 ‘d. school’을 설립했는데, 현재 그곳에서 1년에 5과목을 직접 강의한다. 10월에 동생 톰 켈리와 함께 ‘Creative Confidence’란 책을 펴낸 것도 같은 취지에서다.

    아이디오는 누구나 창의적일 수 있으며, 혁신은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설립자 켈리는 그것을 교육으로 확인하고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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