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주색 밝힌 ‘밤의 황제’ 서증(暑症) 시달리다 단명

열성 체질 성종

  •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입력2013-12-18 16: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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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색 밝힌 ‘밤의 황제’ 서증(暑症) 시달리다 단명

    SBS 드라마 ‘왕과 나’에서 성종(고주원 분)이 승하하는 장면.

    세조의 장자 의경세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일찍 세상을 마감했다. 그의 둘째 아들인 조선 제9대 왕 성종(成宗·1457~1494, 재위 1470~1494)은 의경세자의 동생인 예종의 타계 직후 갑자기 왕위에 오른다. 대군 칭호도 받지 못한 채 자산군에서 자을산군으로 봉해진 성종의 즉위는 장인 한명회와 관련이 깊다. 형 월산군과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당시 4세)이 있었는데도 성종이 왕위에 무난히 오른 배경엔 당시 최고 권력자 한명회의 존재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성종의 질병도 한명회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성종을 평생 동안 괴롭힌 질환은 더위 먹는 병인 서증(暑症)이었다. 서증은 11세 무렵부터 시작돼 승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호소한 질병이다. 최초의 관련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성종 14년 6월 11일에 나타난다. “정해년에 심한 더위를 먹어 여름만 되면 이 증세가 발병한다.” 같은 해 6월 25일 기록엔 정희왕후의 제사를 임금이 지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을 밝힌다. 19년 6월 7일엔 의정부에서 더위 때문에 경연과 국정 활동을 중지했고, 25년엔 머리가 아프고 더위 먹은 증상이 있어서 경연을 취소했다.

    서증은 한명회의 집에서 얻은 것이다. 실록 14년 6월 14일, 왕의 질병이 점차 나아지자 육즙을 먹어야 한다고 대신들이 강권한다. 성종은 자신의 병을 오래전에 얻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며 육즙을 거부한다. “내가 어렸을 때 서질(暑疾)을 얻어 언제나 심한 더위를 만나면 그 증세가 다시 일어나니, 이것은 상당군(上黨君·한명회)이 알고 있는 바이다. 내가 이 병을 얻은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됐다.”

    19년 6월 7일엔 “내가 어려서 한 정승의 집에 있을 때 더위를 먹어 인사불성이 되니, 대부인이 손수 목욕시켜 구료하여 다시 깨어났는데, 지금까지 더운 철을 만나면 항상 더위를 먹어 병이 날 것 같아 6월부터 7월까지는 경연에 나아가 정사 보는 것을 중단한 것이 오늘날 비롯된 게 아니다.”

    ‘동의보감’은 서증을 이렇게 정의한다. “하지 이후에 열병을 앓는 것은 서병이다. 서란 상화(相火)가 작용하는 것이다. 여름에 더위를 먹으면 답답증이 생기고 말이 많아지며 몸에서 열이 나고 갈증이 나서 물을 들이켜고 머리가 아프며 땀이 나고 기운이 없어진다.” 여기서 의미 있게 되새겨볼 것은 상화가 작용한다는 점이다.



    약한 에어컨, 강한 보일러

    상화란 신장(腎臟)에 소속된 명문(命門·생명의 문 또는 생명의 근본이라는 뜻으로, 오른쪽 콩팥을 이르는 한의학 용어)의 화를 가리킨다. 한의학에서 심장과 신장에 대한 해석은 현대의학의 그것과 다르다. 인체를 소우주라는 관점으로 확대할 때 뜨거운 심장은 여름이고 신장은 겨울이다. 겨울은 계절의 시작과 끝이다. 1월이 두 얼굴의 사나이인 야누스를 뜻하는 ‘january’인 점과 같다. 가장 차가운 계절인 겨울과 가장 뜨거운 계절의 시작인 봄의 기운을 아우른다는 의미다.

    신장은 차가운 쪽과 뜨거운 쪽 양면이 있다. 차가운 쪽이 물을 상징하는 신수(神水·진액을 이르는 한의학 용어)라면 신장의 뜨거운 부분인 명문은 보일러이며, 흔히 단전(丹田)이라는 붉은 밭과 맥락을 같이한다. 현대의학의 부신(副腎)은 보일러와 같은 의미를 내포한다. 명문은 생명의 문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체의 보일러다. 상화가 있어 더위를 잘 탄다는 점은 보일러가 지나치게 항진돼 잘 달아오르는 걸 의미한다.

    인간은 체온 36.5℃의 항온동물이다. 보일러도 있지만 반대편엔 에어컨도 있다. 에어컨으로 진정하는 힘은 약하고 보일러로 달아오르는 힘은 큰 게 곧 상화다. 성종은 에어컨인 신수는 약하고 보일러인 상화, 명문화는 강한 열성 체질이었다.

    까칠하고 직설적인 성격

    왜 하필 장인 한명회의 집에서 서증이 시작됐을까. 중국 원나라 때의 유명한 의사 주진형은 상화를 식욕, 성욕 등 인간적 욕망이 발동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했다. 인욕(人慾)이라고 하지만 사실 분노의 감정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성종은 한명회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한명회의 집에 있는 동안 성종은 사실 별 볼일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상화가 발동할 만큼 분노할 상황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한명회는 결국 성종 12년 6월 중국 사신과 압구정에서 잔치를 벌이려고 국왕의 차양을 빌리려다 실각한다. 성종은 이 일을 계기로 한강변의 정자 중 선대왕이 지은 두 곳을 제외한 모든 정자를 헐어버리라는 명을 내렸다. 차양막을 요청한 죄에 대한 벌치곤 과도해 보인다.

    성종은 잘 흥분하고 예민했다. 재위 15년 1월 29일 권찬이 주사안신환을 처방해 올린다. 주사안신환은 열이 심하게 올라오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과 떠도는 화를 진정시켜 정신을 편안케 하는 약이다. 경계(驚悸)증에 쓰는 약이기도 하다. 경계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말하는데, 중국 한나라 말의 의사 장중경은 경계의 원인을 ‘밥은 적게 먹고 물을 많이 마셔서 물이 명치에 있는 것이 심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으로 정의했다.

    성종은 재위 19년 12월 21일 형인 월산대군 이정이 죽자 자신의 증세를 다시 토로한다. “나의 증세는 본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마음이 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때 주사안신환을 처방한 권찬은 어의(御醫)로선 전무후무하게 공조판서에 오른 인물이다. 그의 졸기(拙技)는 칭찬 일색이다. ‘사마시에 합격한 후 처음 의서 습독관으로 보임되어 의방을 널리 연구하여 학업이 매우 정밀하였다. 종족과 성심으로 화목하여 비록 노예가 약을 물을지라도 반드시 마음을 다해 알려주니, 그로 말미암아 구제해 살린 자가 많았다.’

    성종은 가뭄이 들면 자주 수반(水飯)을 들었다. 물에 밥을 말아먹는 수반은 자연재해를 극복하고자 하는 자신의 도덕성을 과시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속이 타는 체질의 특성이 드러난 것이다. 까칠하고 직설적으로 반응하는 특징은 실록에도 잘 나타난다. 원상(院相·조선시대에 왕이 죽은 뒤 어린 임금을 보좌해 정무를 맡아보던 임시 벼슬)인 김질이 “비위는 찬 것을 싫어하므로 수반이 비위를 상할까 염려합니다”라며 걱정하자 “경의 말과 같다면 매양 건식을 올려야 하겠는가”라고 성질 급하게 반박했다.

    왕후 3명, 후궁 9명

    수반을 자주 먹는 습관은 설사로 이어졌다. ‘단계심법’이란 책은 ‘여름철에 찬 음식을 많이 먹거나 찬물이나 얼음물을 너무 자주 마셔서 토하거나 설사한다. 더위 먹은 데는 비위를 따뜻하게 하며 음식물을 잘 소화시키고 습(濕)을 없애며 오줌이 잘 나가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위생가(衛生歌)’라는 양생법 책은 “사철 중에 여름철이 조섭하기 힘들다. 잠복한 음기 속에 설사하기 아주 쉽다”라고 적었다.

    원상들의 말을 듣지 않은 대가는 심한 설사로 나타났다. 성종 15년, 20년, 25년 여러 번 설사와 이질을 호소하는데 특히 25년 8월 22일엔 사형수의 처형과 관련한 조계(朝啓·중신과 시종신이 편전에서 벼슬아치의 죄를 논하고 단죄하기를 임금에게 아뢰던 일)를 중단할 정도였다. “지난밤과 오늘 아침에 뒷간에 여러 번 다녔기에 조계를 정지한다.” 11월 20일엔 경연을 정지하면서 세자가 “주상께서 측간을 너무 자주 가셔서 피로해 계십니다”라며 우려한다. 성종이 재위 25년 심한 설사와 이질 직후 세상을 떠났다는 건 건강의 지혜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이다.

    서증을 앓는 사람에게 주는 양생지침을 동의보감은 이렇게 적고 있다. ‘여름은 사람의 정신을 소모하는 시기다. 심장의 기운 심화는 왕성하고 신장의 기운 신수는 약해져 있다. 그러므로 성생활을 적게 하고 정기를 굳건하게 해야 한다.’ 또 다른 문장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여름은 더위가 기를 상하게 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술을 마시거나 성생활을 하면 신이 상하여 죽을 수 있다.’

    있으렴 부디 갈다 아니 가든 못할쏘냐.

    무단히 싫더냐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래도 하 애닯구나 가는 뜻을 일러라.

    사랑하는 연인의 애처로운 이별가인 듯하지만 성종이 아끼던 신하 유호인(兪好仁)을 떠나보내며 지은 시다. 얼마나 다정다감한 심성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멋쟁이가 왕이란 지존의 신분이 됐으니 여성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었을까.

    성종은 자타가 공인하는 ‘밤의 황제’였다. 오죽하면 ‘주요순(晝堯舜) 야걸주(夜桀紂)’란 별명이 붙었을까. 낮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였던 요순 임금처럼 정사를 돌봤고, 밤엔 중국 하나라의 걸 임금과 은나라의 주 임금처럼 주색잡기에 능한 임금이라는 뜻이다. 이런 별칭에 걸맞게 ‘경국대전’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편찬 등 큰 업적을 남긴 반면, 거의 매일 밤 곡연(曲宴·임금이 궁중 금원(禁苑)에서 가까운 사람들만 불러 베풀던 소연)을 베풀고 기생들과 어울렸고 많은 후궁을 거느렸다. 25년의 재위기간에 3명의 왕후와 9명의 후궁을 맞아들였고 16남12녀를 거느렸다. 자식이 너무 많아 궁궐에서 다 기를 수 없게 되자 궐 밖 여염집에 살게 할 정도였다.

    야사(野史)의 기록을 다 신뢰할 순 없지만 차천로가 지은 ‘오산설림초고’엔 성종과 관련한 기생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함경도 영흥의 명기로 ‘봄바람에 웃는다’라는 이름의 소춘풍(笑春風)이 성종의 부름을 받았다. 연회도 없이 조용하기만 한 궁중의 별전에서 성종이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소춘풍에게 술잔을 건네며 “오늘 밤은 너와 함께하고 싶은데 너의 뜻은 어떠하냐”고 물었다. 성은을 받으면 평생 다른 사람과 정을 나눌 수 없기에 독수공방이 싫었던 그녀가 거절의 뜻을 비치자 성종은 웃으면서 술과 시로 밤을 새웠다. 그의 풍류를 짐작게 하는 이야기다.

    과도한 음주와 성생활

    주색 밝힌 ‘밤의 황제’ 서증(暑症) 시달리다 단명

    성종은 경회루 등지에서 연회를 자주 벌였다.

    성종의 첫 번째 왕후는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 한 씨였는데 일찍 세상을 떠났고, 두 번째로 숙의 윤 씨를 왕후로 맞았다. 윤 씨는 연산군의 어머니다. 성종은 궐 밖에서 형 월산대군과 어울리고 호색 기질을 계속 발휘하면서도 한편으론 정소용과 엄숙의 등 후궁을 가까이했다. 질투심에 불탄 윤 씨는 비상(砒霜)이 든 주머니와 책으로 방양이라는 저주 의식을 치르다 발각된다. 이후 잠잠해졌지만 중궁위(中宮位) 생일인 재위 10년 6월 1일 저녁, 문제의 사건이 벌어진다.

    “지금 중궁(왕비를 높여 이르던 말)의 행실은 길게 말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내간에는 시첩(侍妾)의 방이 있는데, 일전에 내가 마침 이 방에 갔는데 중궁이 아무 연고도 없이 들어왔으니, 어찌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마땅하겠는가. 예전에 중궁의 실덕이 심히 커서 일찍이 이를 폐하고자 하였으나, 경들이 모두 다 불가하다고 말하였고 나도 뉘우쳐 깨닫기를 바랐는데 지금까지도 고치지 아니하고 나를 능멸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왕비로선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자신의 생일날 하례도 없이 옷 한 벌로 때우면서 다른 시첩의 방을 찾았으니 분통이 터지지 않았겠는가. 결국 폐비가 되어 쫓겨난 후 사약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연산군을 역사상 가장 타락한 왕으로 만든 폐비 윤 씨 사건이다.

    체질적으로 신장이 약한 성종이 자신의 건강을 해치려고 성생활로 마음껏 역주행한 셈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술도 왕의 건강을 해쳤다. 공식적으로도 명나라와 일본의 사신들과 연회를 자주 벌였는데 회례연이 18회, 양로연이 21차례, 진연이 50차례로 술 마실 기회가 너무 많았다. 서병에 가장 해롭다고 경고한 음주와 성생활이 과도했다는 점은 반드시 짚어야 할 해악이었다.

    신장 약해 치통 호소

    동의보감은 정기(精氣)를 이렇게 정의한다. “대체로 정(精)은 쌀 미(米) 자와 푸를 청(靑) 자를 합해서 만든 것으로 아주 좋다는 말이다. 사람한테 정은 아주 귀중하면서도 매우 적다. 사람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목숨이며 아껴야 할 것은 몸이고 귀중히 여겨야 할 것은 정(精)이다.”

    중국 고대 한의서 ‘난경(難經)’은 “심장엔 정이 3홉 있고 비장엔 흩어진 정기가 반 근 있으며 담에는 정이 3홉 들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양생서는 “사람 몸에 정이 통틀어 1되 6홉 있다. 16세 남자가 정액을 내보내기 전엔 1되다. 정이 쌓여 그득 차면 3되가 되며 자꾸 내보내서 적으면 1되도 못된다”고 했다.

    재미있는 구절도 있다. “사람이 성생활을 하지 않을 때는 정이 혈액 속에서 풀려 있어 형체가 없다. 그러나 성생활을 하게 되면 성욕이 몹시 동하여 정액으로 되어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쏟아낸 정액을 그릇에 담아 소금과 술을 조금 넣고 저어서 하룻밤을 밖에 두면 다시 피가 된다.”

    사실 보신(補身)과 보신(補腎)의 개념은 비슷하게 쓰였다. 보신은 몸을 보한다는 일반적인 뜻이지만 보신은 간, 심, 비, 폐, 신 중 하나인 콩팥을 보한다는 뜻으로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 신장은 ‘생명의 정을 간직하는 부위로 정신과 원기가 생겨나는 곳’이며 ‘남자는 정액을 간직하고 여자는 포(胞), 즉 자궁이 매달린 곳’이라고 난경에선 풀이했다. 신장이 생명활동을 영위케 하고 성행위와 생식활동을 주관한다는 것은 보신(補身)의 핵심이 보신(補腎)이라는 말과 잘 통하는 의미로 이해하는 게 맞다.

    성종을 고통스럽게 한 또 하나의 질병은 치통이었다. 재위 11년 7월 8일 치통으로 고통받던 성종은 승정원에 하교해 중국 사신에게 치통을 그치게 하는 약을 물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운을 띄운다. 그러자 김계창은 단박에 “전하의 병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알게 할 수는 없다”고 거절한다.

    7월 21일 우여곡절 끝에 사신들을 경회루에 불러 잔치를 벌이는데, 사신들이 술잔을 권하자 성종은 “사신들이 가르쳐준 곡소산을 먹고 치통이 좋아졌는데 술을 먹으면 심해질까 두렵다”고 사양한다. 사신들은 다른 처방이 있다며 안심시키고 술잔을 비우게 한다. 곡소산은 동의보감에 기재된 곡래소거산의 준말이다. 웅황, 유향, 후추, 사향, 필발, 양강, 세신 등이 들어간 약물로 약을 가루 낸 뒤 콧구멍에 불어넣어 치료한다.

    성종이 앓은 치통은 그의 약점인 신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의보감에서 치아는 뼈의 끝인데 이는 신장이 주관한다. ‘황제내경’은 신장이 쇠약하면 치아 사이가 벌어지고, 정기가 왕성하면 이가 든든하며, 허열(虛熱)이 있으면 이가 흔들린다며 신장의 허열이 병의 뿌리임을 강조했다.

    주색 밝힌 ‘밤의 황제’ 서증(暑症) 시달리다 단명

    과도한 주색 즐기기, 과로, 과식으로 생긴 입마름증에 처방하는 약물인 청심연자음의 주성분은 연밥씨다.



    기세 좋게 내딛는 돼지

    주색 밝힌 ‘밤의 황제’ 서증(暑症) 시달리다 단명

    성종이 잠든 서울 강남구 선릉.



    성종은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하직했다. 세상을 떠나기 나흘 전 배꼽 밑에 작은 덩어리가 생겨 지난밤부터 조금씩 아프고 빛깔도 조금 붉다고 얘기하면서 전에 유사한 증세를 앓았던 이세좌를 불러 질병 치료 경험을 듣는다. “신은 이 병을 앓은 지 15년이 지났는데 별다른 치료방법은 없고 다만 무쇠와 천년 된 기와를 달궈 그 부위에 찜질을 하였을 뿐입니다”라는 답변을 듣는다.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날 의관 송흠이 진후하고 나와서 말했다. “성상의 몸이 몹시 여위셨고, 맥도가 부삭하여 어제는 육지였는데, 오늘은 칠지였습니다. 그리고 얼굴빛이 위황(·#54291;黃)하고 허리 밑에 적취(積聚)가 있고, 내쉬는 숨은 많고 들이쉬는 숨은 적으며, 입술이 또 건조하십니다. 성상께서 큰 소리로 약을 물으시므로 아뢰기를, ‘청심연자음, 오미자탕, 청심원 등의 약은 청량한 재료가 들어 있어서 갈증을 그치게 할 수 있으니, 청컨대 이를 진어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또 성상의 몸을 보건대 억지로 참으시면서 앉으신 듯하기 때문에 마침내 물러나왔습니다.”

    난경 56편엔 배꼽 밑 덩어리인 적취에 대한 상세한 병리적 설명이 있다. 아랫배에 있는 적취는 신장 부위에 있다고 해서 신적(腎積)이라고 한다. 신적은 신수가 부족해서 생기는데, 신수는 신장에 저장된 에어컨과 같은 음적이고 차가운 물질이다. 상화가 망동하면 음이 모자라게 되며 반대편인 양적인 양기가 병적으로 왕성해지고 상승한다. 이런 상태를 분돈(奔豚)이라 한다. 돼지새끼가 기세 좋게 내디디는 상태와 같아서 숨쉬기가 어려워지고 씩씩대게 된다. 사실 죽기 한 달 전 성종은 숨 가쁘고 기침이 나는 천증(喘症)을 호소한다.

    어쩌면 그런 증상들은 성종의 마지막을 위한 예고편이었는지 모른다. 또 신수가 부족해지면 혈액 속의 물이 줄면서 끈적해지고 응고돼 쌓이면서 적취가 된다고 설명한다. 이런 병리관은 성종이 앞에서 호소한 증세와 딱 맞아떨어진다. 그에 따른 처방은 이 같은 추론을 더욱 명확히 한다. 청심연자음은 주색을 과도하게 즐기거나 과식으로 인해 입마름증이 왔을 때 처방하는 대표적 약물이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위장이 약하고 식욕이 부진하며 소변을 자주 보고 입이나 혀가 건조한 하반신 쇠약에 적용한다.

    매실의 두 얼굴

    청심연자음의 주성분인 연밥씨는 그런 특징을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연은 무성한 여름 햇볕에 대응해 더욱 무성히 푸르러진다. 뿌리가 끌어올린 수분에 의존해 상부의 무성한 열을 식히는 것이다. 인체에서도 하부에 빠져나가는 수분을 수렴해 상부를 적셔주므로 소변이 자주 빠져나가는 걸 막으면서 입마름을 해소한다.

    오미자탕도 마찬가지다. 오미자는 5가지 맛을 고루 갖췄지만 신맛이 가장 우세하다. 오미자를 쪼개 보면 돼지 콩팥처럼 생겨 신장 기능을 도우면서 침을 잘 만들어 입마름을 없애준다.

    마지막으로 처방된 제호탕은 갈증을 없애는 대표적 약물이다. 제호탕의 효능은 여름의 번열을 없애고 갈증을 그치게 하는 것이다. 처방은 불에 구운 오매라는 매이 한 근, 초과 한 냥, 사인, 백단향 각 5돈, 연밀 5근을 가루 내어 꿀에 넣어 끓인 다음 자기그릇에 담가두고 찬물에 타 먹는 방식으로 복용한다.

    제호탕의 주 약물인 매실의 약효는 한 편의 시와 같다. “봄이 오기 전에 매(梅)는 꽃을 피우며 얼음과 눈을 흡수하여 스스로를 적신다. 따라서 매화나무는 얼음처럼 차가운 한수(寒水)로 불꽃 같은 욕망인 상화를 억제한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입이 마른 것을 촉촉하게 하고 가슴이 답답한 것을 없애준다.”

    선비들은 매화꽃으로 안주를 만들어 술을 마시기도 했다. 눈 녹인 물에다 백매를 조금 넣고 매화꽃을 띄워 하룻밤 묵힌 다음 꿀을 넣어 안주를 만드는 것이다.

    종기와 갈증으로 운명

    주색 밝힌 ‘밤의 황제’ 서증(暑症) 시달리다 단명

    약효와 부작용의 양면을 지닌 매실.

    ‘본경소증’은 그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갈증을 느낄 때 매실이라는 말만 들어도 입에 침이 나온다. 매실은 가장 빠르게 진액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그 진액은 공짜가 아니다. 내부에 있는 액을 끌어올리는 것이며, 내부의 액은 우리 몸의 액의 근원인 신장에 있는 생명의 액이다. 자꾸 액을 끌어올리면 신장 기능이 허약해지며, 그 결과 신장이 주관하는 치아가 손상된다. 근육도 상하고 위장도 부식하여 허약해진다.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치아가 약해지면 호도 육을 씹어 먹어라.”

    성종의 재위기간은 25년이다. 24년 말부터 그의 건강은 아주 나빠졌다. 24년 입술 위에 종기가 나서 8월 14일부터 9월 17일까지 낫지 않아 어쩔 줄 몰라 한다. 25년 1월 20일엔 코피가 나오면서 멈추지 않아 경연을 중지하며, 2월엔 감기 증세가 덮친다. 5월부터는 다시 서증으로 두통이 생겨 일본 사신을 접견하지 못하며, 중국 황제의 탄신일에도 배례를 올리지 못한다. 12월 12일엔 다리가 여위고 연약해 마비된 것을 힘들어하다 허리 밑 종기와 갈증으로 운명한다.

    동의보감 소갈(消渴)문에 따르면 소갈의 종류는 상·중·하 3가지다. 성종의 증상은 하소에 가깝다. 하소는 “하초에 열이 잠복해 있는데 신이 허하여 받게 되면 다리와 무릎이 여위어 가늘어지고 뼈마디가

    시큰거리며 정액이 소모되어 골수가 허해지고 물이 당긴다.” 소갈의 증상은 지금의 당뇨와 가깝다.

    주색 밝힌 ‘밤의 황제’ 서증(暑症) 시달리다 단명
    이상곤

    1965년 경북 경주 출생

    前 대구한의대 안이비인후피부과 교수, 대한한의사협회 외관과학회 이사

    現 갑산한의원 원장, 한의학 박사, 동아일보·농민신문·프레시안 칼럼 집필

    저서 : ‘콧속에 건강이 보인다’ ‘코 박사의 코 이야기’ ‘낮은 한의학’ 등 다수


    성종은 재위기간 중에도 섹스 스캔들로 곤욕을 치른다. 어우동 사건이 그것이다. 왕실의 종친 태강수 동의 부인이 종친 방산수 난과 수신수 기와 놀아난 것이다. 이는 고위관료들이 줄줄이 불려오면서 정권 차원의 사건으로 발전한다.

    성종이 잠든 곳은 서울 선릉이다. 한평생 풍류를 즐긴 그는 죽어서도 잠들지 못한 채 선릉의 환락가 불빛 속을 거닐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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