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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박사의 ‘왕의 한의학’

주색 밝힌 ‘밤의 황제’ 서증(暑症) 시달리다 단명

열성 체질 성종

  •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주색 밝힌 ‘밤의 황제’ 서증(暑症) 시달리다 단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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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은 잘 흥분하고 예민했다. 재위 15년 1월 29일 권찬이 주사안신환을 처방해 올린다. 주사안신환은 열이 심하게 올라오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과 떠도는 화를 진정시켜 정신을 편안케 하는 약이다. 경계(驚悸)증에 쓰는 약이기도 하다. 경계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말하는데, 중국 한나라 말의 의사 장중경은 경계의 원인을 ‘밥은 적게 먹고 물을 많이 마셔서 물이 명치에 있는 것이 심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으로 정의했다.

성종은 재위 19년 12월 21일 형인 월산대군 이정이 죽자 자신의 증세를 다시 토로한다. “나의 증세는 본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마음이 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때 주사안신환을 처방한 권찬은 어의(御醫)로선 전무후무하게 공조판서에 오른 인물이다. 그의 졸기(拙技)는 칭찬 일색이다. ‘사마시에 합격한 후 처음 의서 습독관으로 보임되어 의방을 널리 연구하여 학업이 매우 정밀하였다. 종족과 성심으로 화목하여 비록 노예가 약을 물을지라도 반드시 마음을 다해 알려주니, 그로 말미암아 구제해 살린 자가 많았다.’

성종은 가뭄이 들면 자주 수반(水飯)을 들었다. 물에 밥을 말아먹는 수반은 자연재해를 극복하고자 하는 자신의 도덕성을 과시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속이 타는 체질의 특성이 드러난 것이다. 까칠하고 직설적으로 반응하는 특징은 실록에도 잘 나타난다. 원상(院相·조선시대에 왕이 죽은 뒤 어린 임금을 보좌해 정무를 맡아보던 임시 벼슬)인 김질이 “비위는 찬 것을 싫어하므로 수반이 비위를 상할까 염려합니다”라며 걱정하자 “경의 말과 같다면 매양 건식을 올려야 하겠는가”라고 성질 급하게 반박했다.

왕후 3명, 후궁 9명

수반을 자주 먹는 습관은 설사로 이어졌다. ‘단계심법’이란 책은 ‘여름철에 찬 음식을 많이 먹거나 찬물이나 얼음물을 너무 자주 마셔서 토하거나 설사한다. 더위 먹은 데는 비위를 따뜻하게 하며 음식물을 잘 소화시키고 습(濕)을 없애며 오줌이 잘 나가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위생가(衛生歌)’라는 양생법 책은 “사철 중에 여름철이 조섭하기 힘들다. 잠복한 음기 속에 설사하기 아주 쉽다”라고 적었다.



원상들의 말을 듣지 않은 대가는 심한 설사로 나타났다. 성종 15년, 20년, 25년 여러 번 설사와 이질을 호소하는데 특히 25년 8월 22일엔 사형수의 처형과 관련한 조계(朝啓·중신과 시종신이 편전에서 벼슬아치의 죄를 논하고 단죄하기를 임금에게 아뢰던 일)를 중단할 정도였다. “지난밤과 오늘 아침에 뒷간에 여러 번 다녔기에 조계를 정지한다.” 11월 20일엔 경연을 정지하면서 세자가 “주상께서 측간을 너무 자주 가셔서 피로해 계십니다”라며 우려한다. 성종이 재위 25년 심한 설사와 이질 직후 세상을 떠났다는 건 건강의 지혜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이다.

서증을 앓는 사람에게 주는 양생지침을 동의보감은 이렇게 적고 있다. ‘여름은 사람의 정신을 소모하는 시기다. 심장의 기운 심화는 왕성하고 신장의 기운 신수는 약해져 있다. 그러므로 성생활을 적게 하고 정기를 굳건하게 해야 한다.’ 또 다른 문장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여름은 더위가 기를 상하게 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술을 마시거나 성생활을 하면 신이 상하여 죽을 수 있다.’

있으렴 부디 갈다 아니 가든 못할쏘냐.

무단히 싫더냐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래도 하 애닯구나 가는 뜻을 일러라.

사랑하는 연인의 애처로운 이별가인 듯하지만 성종이 아끼던 신하 유호인(兪好仁)을 떠나보내며 지은 시다. 얼마나 다정다감한 심성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멋쟁이가 왕이란 지존의 신분이 됐으니 여성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었을까.

성종은 자타가 공인하는 ‘밤의 황제’였다. 오죽하면 ‘주요순(晝堯舜) 야걸주(夜桀紂)’란 별명이 붙었을까. 낮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였던 요순 임금처럼 정사를 돌봤고, 밤엔 중국 하나라의 걸 임금과 은나라의 주 임금처럼 주색잡기에 능한 임금이라는 뜻이다. 이런 별칭에 걸맞게 ‘경국대전’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편찬 등 큰 업적을 남긴 반면, 거의 매일 밤 곡연(曲宴·임금이 궁중 금원(禁苑)에서 가까운 사람들만 불러 베풀던 소연)을 베풀고 기생들과 어울렸고 많은 후궁을 거느렸다. 25년의 재위기간에 3명의 왕후와 9명의 후궁을 맞아들였고 16남12녀를 거느렸다. 자식이 너무 많아 궁궐에서 다 기를 수 없게 되자 궐 밖 여염집에 살게 할 정도였다.

야사(野史)의 기록을 다 신뢰할 순 없지만 차천로가 지은 ‘오산설림초고’엔 성종과 관련한 기생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함경도 영흥의 명기로 ‘봄바람에 웃는다’라는 이름의 소춘풍(笑春風)이 성종의 부름을 받았다. 연회도 없이 조용하기만 한 궁중의 별전에서 성종이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소춘풍에게 술잔을 건네며 “오늘 밤은 너와 함께하고 싶은데 너의 뜻은 어떠하냐”고 물었다. 성은을 받으면 평생 다른 사람과 정을 나눌 수 없기에 독수공방이 싫었던 그녀가 거절의 뜻을 비치자 성종은 웃으면서 술과 시로 밤을 새웠다. 그의 풍류를 짐작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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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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