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왜 검도에 미쳤냐고? ‘뒤’가 깨끗하니까!”

66세에 검도 8단 ‘入神’ 이국노 (주)지주 회장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입력2013-12-19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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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단 딴 지 16년 만에 6전7기 승단
    • 30cm 자로 강도 목뼈 부러뜨려
    • 검도 단증은 전 세계에서 통하는 ‘마패’
    “왜 검도에 미쳤냐고? ‘뒤’가 깨끗하니까!”
    지난 10월 27일, ‘2013년 추계 정기 중앙심사’가 열린 충북 음성군 대한검도회 중앙연수원. 검도 8단 승단에 도전한 백발의 최고령 응시자가 죽도를 힘껏 쥐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검도계를 영영 떠나자’는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선 길. ‘입신(入神)’으로 통하는 검도 8단 승단시험은 학과시험은 물론 본국검법과 진검교전을 치르고 대련을 통과해야 하는 험로의 연속이다.

    백발 도전자는 이미 6차례 도전했다 낙방한 쓰라린 과거를 갖고 있다. 그는 마지막 관문인 대련에서 상대를 향해 반보(步) 먼저 내디뎠다. 이른바 ‘마중’을 나간 것. 상대는 마중 나온 그를 향해 몸통 찌르기 공격을 해왔다. 이때다 싶어 큰소리로 ‘머리!’를 외치며 정수리를 있는 힘껏 가격했다.

    “만약 죽도가 아닌 진검으로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2분간의 대련에서 내가 더 많이 맞긴 했지만, 초반에 머리 공격을 성공시킨 것이 (승단에) 주효했다고 봐요.”

    이국노(66) (주)지주 회장은 자신의 8단 승단심사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이 회장은 대한검도회 수석부회장이자 한국예도문화체육장학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주)지주 빌딩 입구에는 ‘축 입신’이라 적힌 커다란 화환이 그의 8단 승단을 축하하고 있었다.

    “멀고도 험한 길을 돌아온 느낌입니다. 여러 번 떨어진 것도 억울하지만, 나이 먹고 승단시험에 나서다보니 몸을 자꾸 다쳐요. 그게 제일 답답했어요.”



    이 회장이 오른손 손등을 보여줬다. 나이를 짐작게 하는 검버섯 사이로 손목에서 손등으로 멍 자국이 선명했다. 8단 승단시험에 7차례 응시하는 동안 손등과 발목을 다친 건 부지기수이고 갈비뼈에 금이 가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조금만 더 하라”

    ▼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연세에 몸을 다쳐가며 계속 도전한 이유가 뭡니까.

    “50년 전 죽도를 처음 잡은 이래 입신의 경지라는 8단 승단을 줄곧 목표로 삼았어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일같이 수련했고요. 대련을 통과해야 하는 승단시험에 환갑을 훌쩍 넘긴 사람이 나선다는 게 무모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무도인으로서 8단은 꼭 이루고픈 목표였습니다.”

    ▼ 그야말로 6전7기였네요.

    “서너 번 떨어지니까 주위 사람들이 ‘수석부회장을 계속 떨어뜨리는 대한검도회가 진짜다’고 하더군요. 다른 격투기 종목에선 나이 먹은 사람이 직접 대련하기 힘드니까 일정 기간이 되면 단수를 올려주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검도는 달라요. 철저하게 대련을 거쳐 심사를 통과해야 승단할 수 있습니다.”

    이 회장이 네 번째 도전에서 떨어졌을 때 이종림 대한검도협회장은 수석부회장인 그에게 “조금 부족하니 조금만 더 하라”고 독려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고 생각하고 나선 다섯 번째 도전에서 이 회장은 또 떨어졌다.

    “다섯 번째 떨어졌을 때는 하도 화가 나서 3주 진단서를 발급받아 관계자들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소용없더군요. 여섯 번째 도전에서 또 떨어졌어요. 결국 실력을 더 쌓는 수밖에 없겠다고 깨달았어요. 그날 이후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운동을 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삭훈다’(‘삭이다’의 충청도 사투리)는 말이 있잖아요. 속으로 자꾸 삭여가며 운동했어요. 내공을 쌓는 과정이었죠.”

    그의 8단 승단은 ‘집념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사무실 바로 옆에 검도 수련을 위한 간이 연습장을 마련해놓고 틈나는 대로 가서 죽도를 휘둘렀고, 혼자 연습하는 것만으론 부족하겠다 싶어 전국의 고수들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전국 고수들에게 한 手

    “백 번 보는 것보다 직접 한 번 해보는 게 백배 더 나아요. 고수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가르침을 청해 배운 것이 승단시험 때 효과를 봤어요. 대련 때 반보 마중 나가는 것도 고수들의 가르침에서 영감을 얻은 거예요. ‘힘이 부족한 사람이 먼저 달려들어서는 젊고 힘센 상대를 당해내기 어렵다’며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조언해줬거든요.”

    이 회장이 검도를 처음 접한 것은 1963년. 충북 진천이 고향인 그는 청주공고 진학을 위해 청주로 옮겨왔고, 청주경찰서 부근에 있던 상무관에서 처음 죽도를 잡았다. 청소년기에 가라테를 익힌 이 회장은 이후 검도에 정식 입문해 줄곧 검도인으로 살아왔다.

    검도는 수련한 지 2년이 지나야 초단 응시자격을 주고, 초단 승단 후 1년이 지나야 2단에 도전할 수 있다. 이후에는 승단하려는 단수만큼의 최소 수련기간을 충족해야 한다. 즉 3단은 3년, 4단은 4년, 5단은 5년의 수련기간을 거쳐야 승단시험을 치를 수 있다. 더욱이 7단에서 8단으로 승단하려면 10년 이상의 수련기간이 필요하다. 이처럼 엄격한 룰 때문에 8단에 도전하려면 40년 가까이 수련해야 한다. 1997년 5월 7단에 오른 이 회장은 16년 5개월 만에 8단에 올랐다.

    ▼ 검도의 매력이 뭡니까.

    “사람은 뒷모습이 좋아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검도가 그래요. 검도는 뒤가 깨끗해요.”

    ▼ 무슨 말씀인지….

    “이런저런 뒷말이 안 나온다는 뜻이에요.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겨루고 심판의 판정에 승복하지요. 다른 격투기 종목은 심판 판정만으론 결론을 내지 못해 비디오 판독이다 뭐다 해서 시비를 가리지만 검도는 심판의 말에 100% 승복합니다. 또한 검도를 하면 자세가 좋아지고 예(禮)에도 밝아져요. 정당하게 대련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예의가 몸에 배지요.”

    승단시험에서는 10명의 심사위원과 10명의 심의위원이 판정을 내린다. 특히 심의위원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동의해야 합격할 수 있다.

    활인검, 살인검

    젊은 시절 이 회장은 사업에 매진하면서도 검도에 푹 빠져 지냈다고 한다.

    “경기도 김포에서 공장을 할 때 주변에 논을 조금 샀어요. 봄, 여름에는 벼농사를 짓고 가을걷이를 한 뒤에 볏단을 논에 죽 쌓아놓고 진검으로 베는 훈련을 했죠. 그땐 검도에 미쳐 살았어요. 검도장도 운영하고, 인근 학교(김포초·중교)에 검도팀도 창단하고.”

    ▼ 검도와 평생을 함께했으니 검도에 얽힌 별별 얘기가 다 있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희로애락을 겪었죠. 사무실에 강도가 든 적이 있어요. 칼처럼 생긴 긴 드라이버로 나를 찌르려고 하길래 피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책상 위에 있던 물건을 집어 들고 강도를 내리쳤죠. 그게 30cm짜리 대나무 자였어요. 반사적으로 목을 내리쳤더니 강도의 목이 꺾이면서 쓰러지더라고요. 사람이 그렇게 순간적으로 죽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목뼈가 부러지니까 목이 팩하고 돌아가면서 입에 거품을 물더군요.

    그 일로 경찰서에 가서 밤샘 조사를 받았죠. ‘강도를 막으려다 내리친 것뿐인데 무슨 죄가 되느냐’고 항변해서 정당방위를 인정받고 바로 풀려났어요. 그런데 한달쯤 뒤에 검찰에서 다시 소환했어요. 검사가 이러더군요. ‘지나가던 사람이 귀싸대기를 때렸다고 검도를 했다는 사람이 목을 부러뜨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당신은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을 배웠느냐, 아니면 살인검(殺人劍)을 배웠느냐’고 질책하더군요. 사람이 죽었으니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기소해서 벌금형을 받았어요. 당시 집 한 채 값이 200만~300만 원 할 때였는데, 특수폭력죄로 50만 원인가 60만 원인가 벌금형을 받았어요.”

    대나무 자로 강도를 내리쳤다가 목숨값을 벌금으로 내야 했지만, 이 회장은 검도를 수련한 덕에 남을 도울 수 있었고, 그 덕에 좋은 일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이 과거엔 그레이스백화점이었어요. 작고하신 김기식이란 분이 거기 회장이었어요. 1990년대 초에 그분이 경기도 송추에서 젊은 애들한테 봉변당하는 것을 구해준 일이 있어요. 깍두기처럼 생긴 애 셋이서 김 회장을 에워싸고 있길래 제가 지나가다가 ‘너희들 그러면 안된다’고 꾸짖었지요. 그런데 애들이 나를 알아볼 리가 없잖아요. 결국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목도를 빼들고 다가가 ‘내가 검도 6단이다’고 했죠. 그랬더니 신통하게도 깍두기 애들이 그냥 가더라고요.

    나중에 김 회장이 제게 은혜를 갚겠다며 그레이스백화점에 가게를 하나 내줬어요. 덕분에 제 처제가 거기에 보석 가게를 내서 먹고살았죠.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바로 앞자리여서 장사가 잘됐어요. 검도 덕에 덕본 일도 많아요.”

    마패가 된 검도 7단증

    ‘이야기 보따리’가 풀리자 검도 얘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7단 때 일본 도쿄에서 이런 일도 겪었어요. 한국플라스틱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일할 때인데, 업계 원로 예닐곱 분을 모시고 가와사키중공업에 가서 볼일을 보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렸어요. 여행사 직원이 공항에 먼저 가서 수속을 밟겠다며 우리 일행의 여권을 모두 걷어갔거든요. 신분이 불확실하다며 모두 경찰서로 끌고 갔죠.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다닌 원로 몇 분이 유창한 일본어로 ‘가와사키중공업에 의향서를 교환하러 다녀왔다. 한국으로 돌아가려 공항에 가는 길이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보내주지를 않아요.

    그래서 제가 담당 경찰관 앞에 가서 지갑에서 검도 7단증을 꺼내 책상에 탁 내려놓았죠. 검도 단증은 세계적으로 동일해요. 그 경찰이 단증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서 거수경례를 붙이며 ‘와카리마스’(알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아마 검도를 했던 사람인가봐요. 그러더니 우리를 경찰버스에 태워 공항까지 정중히 데려다 줬어요. 검도 7단에 대한 존경을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닌가 싶어요. 다들 도대체 그게 뭔데 일본 경찰이 저렇게 깍듯하게 태도가 바뀌느냐고 어리둥절해했죠. ‘검도 7단증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마패다’고 말해줬죠, 하하.”

    ▼ 검도를 한 게 사업에도 도움이 됐습니까.

    “큰 도움이 됐죠. 검도가 뒤가 깨끗하듯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남의 돈은 떼먹지 않아요. 월급을 적게 주더라도 반드시 제때 줍니다. 그래야 직원이든 거래처든 사람이 따라요. 그리고 권모술수 안 쓰고 깨끗하게 회사를 운영합니다. 검도처럼 앞도 그렇지만 등을 봐도 깨끗하게 회사를 운영합니다. 그래야 제품을 만들 때 거짓말을 안 해요. 좋은 물건 만들려고 더 노력하고 제품에 진실성이 담겨야 회사가 오래갑니다. 우리 회사처럼 플라스틱 파이프 만드는 공장이 지금까지 600개쯤 있었어요. 그중에 40년 이상 살아남은 회사는 2개뿐입니다. 저보다 먼저 시작한 김원기 회장이 하는 45년 된 회사가 있고, 우리 회사는 올해로 41년 됐죠. 나머지 회사는 모두 부도나거나 중간에 주인이 바뀌었어요.”

    ▼ 사훈이 ‘立正’이던데….

    “1980년대에 사훈을 그렇게 정했어요. 사업 시작하고 나서 사기도 당하고 배신도 당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그래서 ‘나라도 정의롭게 살아보자’고 결심했죠. 사훈을 ‘정의를 바로세운다’는 뜻으로 ‘立正’으로 했어요. ‘正立’이라고 하면 바르게 세운 것이란 정적인 의미가 강한 반면 ‘立正’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라는, 동적인 의미가 강해요.”

    墨虎에서 墨仙으로

    이 회장의 사무실 탁자에는 빛바랜 사진이 여러 장 꽂혀 있다. 그 가운데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추기경님과 만난 것도 검도가 인연이 됐어요. 1980년대 말 대만에서 열린 검도경기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추기경님 옆자리에 앉게 됐어요. 혈기가 왕성할 때라 함께 탄 선수들과 ‘추기경님 옆자리에 앉아서 10분만 얘기하면 100달러를 주겠다’고 내기를 걸었어요.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아서 ‘내가 갈 테니 10달러씩 걷어라’ 하고는 옆자리에 앉았죠.

    대만에서 서울로 오는 3시간 동안 추기경께 평소 궁금했던 것을 죄다 물어봤어요. ‘불기와 서기가 500년 정도 차이가 나고, 예수가 불가의 제자라는 얘기가 교황청 양피책자에 적혀 있다는데 맞느냐’고 여쭤봤죠. 그랬더니 추기경께서 ‘그런 얘기도 있다. 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만은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어떤 질문에도 기가 막히게 답해주셨어요.

    추기경을 뵙고 난 뒤 천주교에 귀의해서 영세를 받았죠. 그때 비행기에서 ‘나중에 꼭 한번 찾아뵙고 싶다. 만나주시겠느냐’고 여쭸더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이 사진은 중소기업중앙회장에 출마했을 때 천주교 신자인 조합 이사장들과 함께 추기경을 찾아뵙고 찍은 거예요. 추기경께서는 비행기에서 잠깐 만나 얘기를 나눈 사람과의 약속도 지켜주셨어요.”

    이국노 회장은 8단 승단 이후 겸양지덕을 몸소 실천하며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검명(劍名)을 ‘묵호(墨虎)’에서 ‘묵선(墨仙)’으로 바꿨다.

    “소망하던 8단 승단을 이루고 나니 스스로 몸가짐을 더 조심하게 돼요. 앞으로 묵가의 겸애사상을 실천하며 남에게 더 베풀고 배려하며 살아갈 작정입니다.”

    ‘호랑이’에서 ‘신선’으로 검명을 바꾼 때문일까. 날카롭고 매섭던 이 회장의 눈매가 한결 선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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