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보완적 일자리 창출 수단 질 낮은 비정규직 양산 우려

시간선택제 일자리

  •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입력2013-12-19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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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완적 일자리 창출 수단 질 낮은 비정규직 양산 우려

    지난 11월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 현장.

    고용률 70% 달성은 박근혜 정부의 민생 공약이자 서민의 가장 큰 관심사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각각 250만 개, 300만 개의 일자리 확충을 목표로 했지만, 재임 5년간 각각 125만 개, 124만 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그쳤다.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를 달성하려면 5년간 238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의 가장 큰 원동력은 경제성장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투자가 늘고 일자리도 함께 늘어난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갈수록 낮아져 현 정부의 경제성장률은 과거 두 정부 시절보다 낮은 3~4%대로 추정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정부의 두 배에 가까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하진 않을지 몰라도 어려운 목표임엔 틀림없다.

    바세나르 대타협

    정부가 발표한 고용률 70% 로드맵에 따르면 2017년까지 시간제 일자리 93만 개 등 총 238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다. 전체 일자리 확충 목표의 40% 정도를 시간제 일자리에 할당한 것이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가 저질의 비정규직 일자리로 전락하는 것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로 명명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최저임금 이상의 처우가 보장되고, 고용·산재·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 4대 사회보험이 적용되며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시간제 일자리를 의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고용률 평균은 약 65%이고, 일본은 70%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들어 고용률이 63% 수준에서 답보 상태다. 2012년에는 64.2%까지 올라갔지만 2013년 10월에는 60.5%까지 떨어졌다. 따라서 고용률 70%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고용률도 낮지만 OECD 회원국 중 시간제 일자리의 비중도 낮은 편이다. OECD 회원국의 시간제 일자리 비중은 평균 17%, 가장 높은 네덜란드는 38%에 달한다. 우리는 10%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 노동시장의 취약점인 시간제 일자리를 더욱 확충해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정부 고용정책은 전략적으로 타당하다.

    시간제 일자리는 우리 사회도 서구처럼 여러 종류의 고용 형태를 갖춰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우리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장시간 근로를 줄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본인이 원하는 시간만큼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어 주부 등의 경력단절 여성과 직장에서 은퇴한 장년층에게 고용의 기회가 제공될 수 있다. 우리나라 여성 고용률은 53%로 선진국보다 10%p 이상 낮다. 이번 기회에 여성이 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자리에 참여한다면 우리 노동시장의 취약점을 함께 해결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충 대책은 네덜란드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는 1970년대 이후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과 비정상적으로 높은 실업에 시달렸다. 이에 네덜란드 노·사·정은 1982년 바세나르 대타협을 통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대폭 늘리는 데 합의했다. 노동조합은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기업은 근로시간을 줄이고 시간제 일자리 등 고용 확충에 힘쓰며, 정부는 노와 사의 이러한 노력에 행정적 재정적 뒷받침을 하는 것이 합의의 골자였다. 특히 시간제 일자리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전일제 근로자와 차별 없이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차별금지정책을 철저하게 실시했다. 그 결과 가정주부를 포함한 여성인력이 대거 시간제 일자리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왕국’이 됐고, 1980년대 중반부터 고용과 경제가 함께 살아났다.

    정규직과 처우 격차 줄여야

    시간제 일자리의 바람직한 측면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충 계획에는 몇 가지 우려할 점이 있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차별 철폐가 선행되지 않으면 노동계의 지적대로 시간제 일자리 확충이 질 낮은 비정규직 양산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간제 일자리가 널리 확산되지 않은 것은 시간제 일자리가 비정규직으로 정규직 근로자와 처우 격차가 크다는 점에 기인한다. 현재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정규직 대비 55%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비자발적 비정규직 비중이 높고 자발적인 비정규직 비중이 낮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임금과 근로조건을 정규직과 동일하거나 높게 책정해 자발적인 시간제 일자리를 확산시키는 것이 고용의 양과 질을 함께 달성하는 방법이다.

    정부가 ‘고용률 70%’라는 목표에 집착한다면 일자리의 질을 희생한 가운데 일자리의 양만 늘어나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시간제 일자리는 근무시간이 적은 만큼 임금도 낮다. 시간제 일자리로는 한 가족의 생계유지가 어려운 만큼 한 가정의 보조적인 수입원으로 시간제 일자리가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범사례인 네덜란드의 경우처럼 육아나 건강의 부담으로 전일 근무가 어려운 주부나 중년·고령층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시간제 일자리의 순기능이다.

    질 높은 시간제 일자리의 핵심 요소는 ‘자발성’이며,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전일제 일자리를 구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구직자나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시장에 막 진출하는 청년들이 전일제 일자리가 없어 비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고용률을 높여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본질적인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의 목표 수치와 시한을 정해놓고 의무채용비율 확대, 공기업 경영평가 강화를 통해 공공부문이나 민간기업을 압박해 시간제 일자리의 할당량을 채워나간다면 시간제 일자리만 늘어나고 전일제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정책 부작용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충돌도 우려된다.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두 배가 넘는 10%에 육박하고 청년들이 체감하는 실업률은 30%를 상회한다. 인건비 예산을 무작정 늘릴 수 없는 기업들이 정부 압력에 못 이겨 시간제 일자리를 확충할 경우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 원하는 전일제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청년들의 구직활동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청년고용 친화도’ 평가하자

    이미 수년간 고율의 청년실업이 지속됐다. 이는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을 저해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부터 빈곤층과 사회 부적응층으로 내몰리게 만들어 사회 양극화 현상을 더욱 고착시킨다. 정부의 이번 고용정책으로 전일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비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첫 직장으로 선택하게 된다면 빈곤층을 양산해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사회양극화가 더 악화될 수 있다.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 확충과 더불어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획기적인 방안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공기업의 경우 전체 정원의 일부를 청년으로 뽑도록 하는 고용할당제(일명 로제타플랜)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 정책의 성과를 평가해 필요하다면 이를 보완하고 확충해나가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기업들로 하여금 청년들을 채용하는 정도를 매년 공표하게 해 ‘청년고용 친화도’를 평가받도록 하는 것도 청년 고용을 늘리는 유인책이 될 수 있다. 시간제 일자리 확충이 청년실업을 불러와 세대 간 충돌을 일으키지 않도록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시간제 일자리 정책의 가장 큰 과제는 이를 노사정 대화를 통해 노사정 합의로 추진토록 하는 것이다. 경제사회노사정위원회 등을 활용해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인 시간제 일자리를 추진한다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무리한 추진으로 빚어질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용률 70% 달성이 단순한 숫자 채우기가 아니라 국민의 진정한 복리를 향상하도록 추진하려면 노와 사가 일자리 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정부는 이를 재정적,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일자리는 기업이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만들 때 가장 큰 효과가 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을 압박하기보다는 기업 스스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도록 과감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논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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