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교각 없어 홍수 예방 남과 북 잇는 ‘통일 가교’ 기대

롯데건설 특수 사장교 동이1교

  • 연천=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입력2013-12-19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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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각 없어 홍수 예방 남과 북 잇는 ‘통일 가교’ 기대
    경기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임진강-한탄강 합류지점. 거대한 암반을 강한 힘으로 내리친 듯, 양쪽으로 갈라져 위용을 뽐내는 적벽(赤壁) 사이로, 강물은 세력을 과시하듯 거친 물살을 이루며 흘러간다.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날카로운 적벽 사이에 최근 새로운 교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깊디깊은 산골짜기에 등장한 이 다리는 롯데건설이 만든 4차선 사장교(斜張橋) ‘동이1교’다.

    사장교란 교각 없이 주탑에서 내린 케이블만으로 다리 상판을 지탱하는 교량이다. 우뚝 솟아오른 100m 높이의 주탑 두 개가 마치 서로 힘을 겨루는 듯 긴장을 유지하며 균형을 잡고 있다. ‘사람 인(人)’자로 주탑에서 내려온 60개의 케이블이 다리 상판을 팽팽하게 지탱한다. 동서가 대칭을 이룬 모양에서 섬세한 균형미가 느껴진다.

    2009년 7월 착공해 현재 주탑 설치를 마치고 마무리 공사 중인 동이1교는 경남 거창에서 경기 파주까지 이어지는 국도37호선 공사의 일환으로, 경기 파주시 적성면과 경기 연천군 전곡읍을 잇는 ‘적성-전곡 도로건설공사 2공구 지역’에 해당한다. 이 지역은 선형(線形)이 좋지 않고 차도 폭이 좁아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고, 상습 교통 정체 구간으로 사고 위험도 많았다. 국토교통부는 노후 차로를 개선하고 파주, 연천, 포천 지역 교통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사업을 발주했다. 총 사업비는 634억 원으로 롯데건설 컨소시엄이 시공한다.

    홍수 막고 환경 보전

    교각 없어 홍수 예방 남과 북 잇는 ‘통일 가교’ 기대

    경기 연천군 임진강-한탄강 합류지점에 건설 중인 ‘동이1교’ 조감도.

    전남 광양 이순신대교, 울산 남구 울산대교 등 국내 선진 기술력을 앞세운 현수교가 앞 다투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현수교(懸垂橋)란 다리 양끝 땅속에 고정된 주탑에 케이블을 매달아 다리를 고정하는 교량이다. 현수교와 사장교는 교각 없이 케이블로 상판을 지지한다는 점이 같지만, 현수교 방식은 교량 바깥 부분에도 케이블을 연결하는 점이 다르다. 이 때문에 사장교보다 비교적 길이가 긴 교량에 적용한다.



    동이1교는 교량 길이가 비교적 짧아 비용 절감을 위해 현수교가 아닌 사장교 방식을 채택했는데, 여기에 현수교의 건설 특징인 ‘앵커리지’를 도입한 것이 주목된다. 앵커리지란 주탑 아래, 현수 케이블의 끝을 부착하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다리를 더욱 견고하게 해준다. 문형찬 현장소장은 “동이1교는 사장교의 경제성과 현수교의 안전성을 동시에 구현했다”며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흔치 않은 최첨단 기술과 시공 노하우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교각 대신 다리를 지탱하는 것은 케이블이다. 직경 0.6인치 와이어 7가닥을 꼬은 것을 다시 엮는 방식으로 총 60개의 케이블을 현장에서 만들었다. 현장에서 일일이 꼬아 만들다보니 케이블 하나를 만드는 데 이틀이 꼬박 걸리기도 한다. 케이블은 각 203~902t의 무게를 지탱한다. 이 다리를 만드는 데 쓰인 케이블을 모두 이으면 무려 502km에 달한다. 서울-부산 거리(약 390km)보다 100km 이상 길다.

    “산골짜기에 이런 다리가!”

    동이 1교가 이처럼 ‘교각 없는 다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연천 지역은 강의 수위가 높고 물살이 빨라 홍수가 잦다. 특히 이곳은 2009년 9월 북한이 임진강 상류 황강댐에서 예고 없이 강물을 대규모로 방류하는 바람에 야영객 6명이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한 지역이다. 이곳에 교각을 세우면 임진강의 물 흐름을 방해해 비가 많이 올 때 큰 홍수가 날 수 있다. 케이블로 교량을 지탱하면 홍수 예방은 물론, 교각이 물 속에 잠기지 않으니 환경 보전 효과도 크고 건설비용도 줄일 수 있다.

    사장교의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장점은 미학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이다. 실제 동이1교 주탑이 세워지면서 인근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연천군은 지난가을,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포화가 멈춘 땅에 남은 전쟁의 상처를 보듬자’는 의미에서 차탄리 포병훈련장에 아름다운 꽃길을 조성해 ‘연천읍 코스모스 둘레길’로 명명했다.

    교각 없어 홍수 예방 남과 북 잇는 ‘통일 가교’ 기대

    강에서 올려다본 동이1교.(왼쪽) 동이1교는 60개의 케이블로 상판을 고정한다.(오른쪽)

    아름다운 길이 입소문으로 퍼졌고,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소요산역에 내려 동이1교를 지나 연천 일대를 걷는 코스가 인기를 끌면서, 동이1교는 완공 전부터 연천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동이1교를 지나는 관광객들은 “산속에 이렇게 웅장한 다리가 있다니!”라며 놀란다. 전국의 사진가들은 아름다운 적벽과 웅장한 동이1교를 사진 한 장에 담기 위해 자리 경쟁도 불사한다. 문 소장은 “다리 건너편 아랫마을에서 북쪽으로 올려다본 광경이 가장 예쁘다”고 귀띔했다.

    연천 지역에는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고려의 공신 위패를 모아놓은 사당인 숭의전과 임진왜란 때 부산에서 왜군을 맞아 싸운 정발 장군의 묘 등 곳곳에문화유산이 있다. 특히 고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고려의 후손이 산다는 ‘고려왕씨마을’도 보존되고 있다. 문 소장은 “연천은 개성과 철원의 중간 도시로, 고려 왕건이 당시 도읍 철원에 머물던 궁예를 만나러 갈 때 꼭 지나갔다고 전해지는 등 고려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며 “이처럼 다양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음에도 그간 교통이 불편해 많은 사람이 찾진 않았는데 동이1교 덕분에 연천은 역사문화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동이1교 중앙에 서서 서쪽을 바라보면 어렴풋하게 개성 송악산의 등성을 볼 수 있다. 휴전선에서 고작 4km 떨어진 이곳은 6·25전쟁 이전에는 북한 지역이었다. 나이 많은 원주민들은 지금도 전쟁 이전을 기억한다.

    과거 북한에 속했던 이 땅은, 지금 통일을 준비하고 있다. 동이1교에서 채 1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2014년 10월 개관 예정인 ‘한반도통일미래센터’가 건설 중이다. 통일부가 남북 청소년 교류와 이산가족 상봉 등 다양한 남북 교류 행사에 활용하기 위해 521억 원을 들여 짓는 시설이다. 이 센터가 완공되면 동이1교는 남북 교류의 설렘을 전달하는 가교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귀농·귀촌 관심 커져

    교각 없어 홍수 예방 남과 북 잇는 ‘통일 가교’ 기대

    2013년 10월 1일 박창규 롯데건설 대표이사(가운데)와 문형찬 현장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공사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연천의 명물은 단연 ‘추위’ 아닐까. ‘따뜻한 남쪽나라’ 전남 보성 출신인 문 소장은 “공사 첫해 겨울 추위를 잊을 수가 없다. 차 안 온도계에 영하 26℃가 찍히더라. 이곳이 국내 비공식 기록으로 가장 추운 곳”이라며 “눈이 하도 많이 오고 미끄러워서 차를 2대나 갈아야 했다”고 말했다. 눈이 왔다 하면 50cm 이상 쌓여 공사가 모두 중단된 적도 부지기수. 이러한 추위에도 현장 인부들은 ‘한강 이북의 유일한 사장교를 짓는다’는 자부심으로 견뎌냈다. 현장 주변에는 군부대가 많아 K1-전차, K9-자주포 등 고급 군사 장비를 자주 볼 수 있다. 동이1교는 이런 지역적 특색을 살려 무게 50t이 넘는 전차가 지나가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건설사들은 ‘건설 개발에서 가장 어려운 절차는 주민을 설득하고 보상하는 과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집단이기주의, 그리고 보상과 기대의 차이 때문에 건설 시공이 늦춰지거나 아예 없던 일이 되기도 한다. 문 소장에 따르면 동이1교 역시 지역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동이1교 작업 공정이 다른 구간에 비해 2배 이상 빠르게 진행된 것은 주민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간 노력 덕분이었다.

    문 소장은 시공 과정에서 공사용 부지와 진입로를 확보하기 위해 동네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 민원 사항이 있으면 모두 경청했다. 1991년 롯데건설에 입사해 10여 년간 경기 성남, 인천 남항부두 등 현장에서 소장을 맡았던 그는 베테랑답게 주민들과 융화하고자 노력했다. 주변 지역 용지 보상이 끝나지 않은 시기라 주민 대부분이 불편해했지만, 이내 문 소장의 진심을 알고 그를 도왔다.

    2013년 10월 주탑이 완성되자마자 롯데건설 측은 주탑 전망대를 만들고 주민 40여 명을 초청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주민들에게 공사 과정과 의의를 설명했고 함께 주탑에 올라가 전망도 감상했다. 문 소장은 “이제 주민들과 왕래할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됐다”며 웃었다.

    동이1교는 주민들의 삶도 변화시켰다. 다리가 지어지기 전에는 육지로 빙 둘러 18km 이상 차를 달려야 갈 수 있던 지역을 다리 덕분에 1분 만에 왕래할 수 있게 된 것은 기본, 적막하던 적벽에 아름다운 다리가 생겼으니 마을에 대한 자부심도 높아졌다. 동이1교와 적벽을 올려다볼 수 있는 아랫마을에는 요즘 아담한 별장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문 소장은 “지역 사람들 말로는 땅값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고 전했다.

    20일 만에 주탑 건설

    연천군은 한반도의 중심이지만 휴전선 최접경지에 위치하다보니 전체 면적의 98%가 군사보호시설로 지정됐다. 당연히 개발에 뒤처졌다. 이런 사정 때문에 2013년 7월 기준 인구는 4만5000여 명으로 1984년(6만8000여 명)에 비해 2만 명 이상 감소했다. 하지만 동이1교 등 교통 인프라가 형성되면서 귀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천군은 인구 유입을 위해 귀농·귀촌인들에게 주택마련자금, 정착자금 등 여러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시공사 롯데건설이 사장교를 건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높이 100m가 넘는 주탑을 세우는 것은 도전, 그 자체였다. 높은 구조물 시공을 위해 개발된 거푸집 운영 시스템 ACS폼(Auto Climbing System-form)을 공장에서 제작해왔는데, 실제 시공을 위해 조립해보니 경사구간 대응이나 거푸집 조립부 등에서 불량이 발견됐다. 공사를 늦추면 하루에도 수 백만 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 문 소장은 시공사 관계자와 현장에서 ACS폼 설계를 다시 하면서 도면을 그렸고, 결국 성공적으로 주탑을 시공했다. 문 소장은 “주탑이 합류하는 시점을 만들기 어려워 통상 2개월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우리는 20일 만에 끝내 비용을 크게 절감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대기업의 협력사에 대한 횡포, 소위 ‘갑의 횡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롯데건설은 동이1교를 건설하면서 협력업체 4곳과 함께 일했다. 2013년 10월 1일 롯데건설 박창규 대표와 시공 협력사 대표들이 동이1교 현장에서 만났다. 격의 없는 소통이 이뤄졌고 동반성장 방안을 함께 모색했다. 문 소장은 “최근 부실 시공업체가 많고 부도도 많이 나지만 우리 협력업체는 그런 적이 없다. 회사에서 협력업체에 공사의 경제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일을 분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동이1교는 개통 이후 남과 북, 대도시와 소도시, 대기업과 협력업체를 잇는 ‘통일의 가교’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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